소설 | 제24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성혜령 成慧玲

1989년 경기 광명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소설 전공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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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소 정

 

 

정이 오년 만에 나타나 윤과 소를 집으로 초대했을 때, 윤은 코끝을 쏘는 나프탈렌 냄새로 정의 집을 기억했다. 정의 집 옷장과 화장실에 몇개씩 놓여 있던 곰팡이 방지제 냄새였다. 정의 어머니는 수도권 신도시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에서 정을 혼자 키웠다. 윤과 소가 늦은 저녁까지 정의 집에서 놀던 날이면, 정의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고 청소기부터 돌렸다. 어떤 날에는 거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 듯 말없이 청소기부터 켤 때도 있었다. 소는 정의 집에 있던 러시아 도자기 인형이 떠올랐다고 했다. 텔레비전이 놓인 거실 선반엔 섬세하게 채색된 마뜨료시까가 화병처럼 큰 것에서부터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것까지 일렬로 놓여 있었다. 모두 똑같이 생겼지만 어쩐지 큰 인형은 엄마, 가장 작은 인형은 막내딸처럼 보였다. 그들은 막내부터 시작해 하나씩 옆에 있는 인형 안에 넣어가며 놀았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인형을 전부 다시 꺼내놓아야 했다. 엄마가 큰 애 안에 작은 애들이 들어 있는 걸 싫어해. 정이 말했다. 다들 숨 쉬게 꺼내줘야 해.

정과 윤, 소는 열두살 겨울, 대형 입시학원의 버스에서 처음 만났다. 셋이 살던 동네가 학원 버스의 마지막 운행지였다. 주위가 조용해져서 둘러보면 삼십이인용 버스 안에 셋뿐이었다. 셋은 침묵과 어둠과 갑자기 켜진 기독교방송 라디오 소리를 견디려고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셋은 학원 버스의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졸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시험이 끝난 날에는 학원에 가지 않고 동네 공원을 함께 걸었다. 입시를 끝내고 대학에 가면 자유로워질 거라는 선생들의 말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서울로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셋은 평범한 학점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하며 함께 밤의 공원을 걸었다. 졸업 후에는 정이 가장 먼저 지방 공공기관에 연구직으로 취직했고, 뒤이어 윤이 대기업 계열사에 들어갔다. 일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소가 가장 늦게 광고대행사 마케팅부로 들어갔다. 그들은 가을마다 해외로 휴가를 떠났다. 주말에 제주도나 일본, 대만을 다녀오기도 했다. 애인이 있을 때도 셋이 가는 휴가는 빠지지 않았다. 셋은 서른이 되는 해를 기념해 조금 특별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예산을 넉넉하게 잡고 좋은 호텔에서, 좋은 음식만 먹으면서 유럽을 돌다 올 계획이었다. 항상 그랬듯 정이 예산을 맡았다. 그들은 스물여덟살 겨울부터 시작해 매달 이십오만원씩 꼬박 스무개월간 정의 통장에 돈을 모았다. 비행기표 예매와 숙소 예약으로 얼마의 금액이 빠지긴 했지만, 여행을 떠나기 한달 전 그 통장에는 천만원이 훨씬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그 돈은 사라졌다. 정은 자기도 왜 그 남자의 말을 믿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남자의 발음, 억양에는 조금의 떨림도, 이상한 점도 없었다. 차분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전화 속의 남자는 자신을 검찰청 금융사기 전담반의 사무관이라고 소개했다. 남자는 정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는 정에게 정의 계좌가 현재 압수 직전에 있으며 본인 명의 계좌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자기가 알려준 사이트로 접속해보라고 했다. 사이트 주소에는 정부기관 도메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계좌를 조회해보니 대포통장으로 신고가 들어와 압수 절차 준비 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정은 계좌에 든 돈을 전부 남자가 알려준 계좌로 이체했다. 남자는 그 계좌가 정의 이름으로 만든 임시 계좌라고 했고 정밖에는 돈을 꺼낼 수 없다고 했다. 계좌주 이름도 정말 정의 이름이었다. 돈을 이체하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은 말했다.

정은 경찰서를 다녀오고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에 가입해 집단 소송에도 참여했지만, 돈을 찾을 수는 없었다. 비행기표와 숙소를 취소하면서 수수료도 꽤 많이 물었다.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날 저녁 셋은 오랜만에 함께 공원을 걸었다. 거리의 모든 음식점과 까페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공원은 한적했다. 이상할 정도로 춥지 않은 겨울이었다. 벚나무가 많은 공원이어서 겨울에는 가늘고 뾰족한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깊게 찔러보지도 못하고 말라갔다. 정은 말없이 땅만 보고 걸었다. 정을 가운데 두고 윤과 소가 나란히 걸었다. 그 돈 없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잖아. 윤은 정에게 말했다. 여행 못 간다고 안 죽어. 우린 괜찮아. 그 ‘우리’에 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윤은 알지 못했다. 소는 정에게 네 잘못이 아니란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정에게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정이 처음 한 말은 내가 정말 미친년이야,였다. 내가 모자라서 그래.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정은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윤과 소가 달래봤지만 정은 고개를 젓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괜히 나서서 피해만 끼쳤어. 내가 미친년이야. 윤이 다소 짜증 난 어투로 우리는 괜찮으니까 너나 잘 추스르라고 말할 때도, 정은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공원에는 넓고 둥근 잔디밭이 있었는데 셋은 자정이 넘을 때까지 그 주위를 뱅뱅 돌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왜 우리 한번도 잔디밭에 안 들어가지? 잔디밭을 돌아 나오는 길에 소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셋은 그 이후로 함께 여행을 가지 않았다. 정은 지방에서 잘 올라오지 않았고, 올라오더라도 윤과 소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간간이 문자로 주고받던 소식마저 완전히 끊겼다. 윤과 소는 정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과 아무 연락 없이 오년이 지나는 동안 윤은 저축을 약간 늘리고 주식을 시작했고, 소는 코에 필러를 넣었고 어떤 남자를 소개받았다고 하더니 만난 지 일년도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신혼집은 소가 살던 집 근처 아파트에 얻었다. 소의 남편은 신도시 근교 혁신사업 단지에 있는 바이오테크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고 소와 마찬가지로 그 도시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소는 정에게 청첩장을 보냈지만, 정은 소의 계좌로 부조만 하고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소는 윤에게 정이 부담스러울 만큼 큰 금액을 보냈다고 전했다.

 

*

 

윤과 소가 정의 집에 가기로 한 날 저녁에는 눈이 쏟아졌다. 정의 집은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의 가장 뒤쪽이었다. 오르막길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소는 내려갈 일이 걱정이라고 말하며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윤은 레드향 한 박스를 들고 말없이 걸었다. 낮에 항상 비어 있던 정의 집은 윤과 소의 집이기도 했다. 정의 어머니가 출장을 가면, 학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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