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점검 | 의료대란과 의료개혁

 

의사파업과 노동자·민중운동

 

 

채만수 蔡萬洙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지난 6월 이래 한국사회는 의사들의 대대적인 폐업·파업투쟁이라는 일찍이 겪어본 적도 없고, 어쩌면 아무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사태를 겪고 있다. 10월 중순 이후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대화로 사태가 다소 진정되면서 예민하게 반응하던 매스컴도 다소 조용해지긴 했지만, 대학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의 주요 치료진을 구성하는 인턴(수련의)·레지던트(전공의) 등은 계속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대생들도 대부분이 자퇴서를 낸 채 쉽사리 학교로 복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금년 의사자격시험 원서접수 결과도 전국 41개 의과대학 본과 4학년생 3081명 가운데 겨우 2%에 해당하는 62명만이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은 상황전개에 따라서 의사들의 대대적인 파업투쟁이 다시금 벌어질 수도 있음을 뜻하므로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그런데 의사들의 이러한 파업투쟁은 당장의 환자들뿐만 아니라 잠재적 환자인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포로 다가와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왔는데, 대체로 그 반응은 의사들이 ‘환자, 곧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기득권층의 집단이기주의를 추구한다’고 규탄하면서 파업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정부나 언론 그리고 시민운동단체 및 그들에 의해 강하게 영향받은 대중뿐 아니라 의사사회 내부의 일부 ‘진보적 분파’나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에서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의약분업’ 강행과 이에 따른 병원·의사들의 수입감소가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이기 때문에, 이번 의사들의 파업을 가리켜 ‘집단이기주의’라고 규정하고 비판하는 데는 어느정도 근거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과 자본의 언론이 파업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대중으로부터 분리하여 억누르고자 할 때 이 ‘집단이기주의’라는 개념을 즐겨 동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어느 집단의 정당한 이익추구를 억제하기 위해서도 동원되는, 아니 사실은 주로 그런 목적을 위해 고안되고 사용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실과 상황에 입각해서 그러한 이익추구가 왜 부당한가를 증명하지 않는 한 ‘집단이기주의’라는 규탄은 사실 부당한 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의사들의 파업이 ‘집단이기주의’라고 규탄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도 물론,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의약분업’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체계가 획득해야 할 핵심적인 과제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의사들이 부당하게도 ‘완전 의약분업’이라는 ‘비현실적’ 요구를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이 의약분업을 회피하거나 이를 빌미로 의료수가를 대폭 인상시키려는 것은 ‘기득권층’의 집단이기주의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언론 및 시민운동단체의 강력한 선전과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이 대체로 고소득층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힘입어 대중적 호응을 얻었는데, 이러한 주장과 대응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좀더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의약분업’ 및 ‘국민부담의 증대’ 문제

 

우선 정부·언론 그리고 시민운동단체 등의 선전활동에 의해 ‘의약분업’에 절대적 필요성과 정당성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의사들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런데 과연 정부나 언론, 시민운동단체 등이 정말 의약분업의 의학적·약리학적 필요성과 정당성 때문에 현재와 같은 정치적 무리를 유발하고 감수하고 있는지, 즉 그들이 선전하는 대로 의약분업을 통한 ‘약물의 오·남용 방지’가 그러한 무리를 감행하는 진짜 이유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그러면 현 의료보험의 임박한 재정파탄이라는 사정이 정부가 정치적 무리를 감수하면서 ‘의약분업’을 강행하게 된 진짜 이유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수많은 종류의 감기약, 소화제 등 어쩌면 사람들의 복용회수와 복용량이 가장 많은 약들이 대부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이들 약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의사·약사 간의 이해관계와는 별도로, ‘의약분업’을 내세우는 정부의 진짜 동기, 즉 ‘의약분업’을 통해 보험재정의 예상되는 파탄을 모면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나아가 일반적으로 간과되는 것 중의 하나로, ‘의약분업’이 마치 그 자체로서 자명한 것처럼 얘기되지만, 사실은 ‘의약분업이 무엇’인지 혹은 ‘어떠한 의약분업’인지조차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약분업’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일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기 때문에, 실상 여러 형태와 내용을 가질 수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아스피린’이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판매가 가능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느냐, 아니면 약사가 임의로 판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의사와 약사 그리고 건강보험공단, 나아가 그 약의 소비자인 환자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엇갈릴 뿐만 아니라, ‘의약분업’의 형태와 내용도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의사들이 ‘완전 의약분업’ 혹은 ‘임의조제나 대체조제 금지’를 주장하는 것도 바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의약분업’이 그 자체로서 자명하다는 듯이 주어진 형태대로의 정착만을 주장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채 어느 한편의 이해만을 옹호하는 것일 수 있는데, 실제 현실 역시 그러하다.

한편 ‘의약분업’은 약물의 오·남용이 광범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약물의 오·남용이 상업주의적인 보건의료체계 때문에, 즉 비싼 병원비 때문에 환자들이 손쉽게 약국의 매약에 의존함으로써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나 언론 그리고 시민운동단체 누구도 침묵하고 있다. 더구나 사회의 일부 계층이 바로 그 상업주의적 보건의료체계 때문에 약물의 오·남용은 차치하고 약물을 포함한 일체의 치료로부터 배제된다는 사실은 은폐되고 있다.

시민운동단체나 ‘진보적 의료단체들’, 그리고 많은 노동운동단체들이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적 투쟁’ 때문에 의료보험료 인상 등 국민의 부담이 증대된다고 규탄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의사들의 투쟁에 밀려서 그리고 그것을 핑계로 정부가 의사의 처방료나 기타 수가 그리고 의료보험료 등을 인상하기로 함으로써, 국민부담이 증대한다는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투쟁을 통해 인상되는 처방료 등의 액수는 기껏해야 ‘의약분업’에 따른 의사들의 수입감소분을 보상할 뿐 그 이상은 결코 아니다. 그 때문에 의사들의 투쟁을 계기로 의료보험료나 의사의 처방료 등이 인상된다고 해도, 그것이 ‘의약분업’ 이전, 그러니까 의료보험료가 인상되지 않았던 때에 비해서 의사집단의 총수입을 증대시키지 않는다면, 의료보험료 등의 인상에 따른 ‘국민부담 증대’의 원인은 사실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엄청난 리베이트를 포함해서 의사들의 과거의 수입이 정당한 것이었느냐 여부는 여기서는 물론 별개의 문제다.)

이미 ‘의약분업’ 실시 이전에 보험료 등을 인상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