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통신

 

이라크, 그참상

 

 

다르 자마일 Dahr Jamail

알래스카 앵커리지 출신의 독립 언론인. 그의 기사들은 썬데이 헤럴드(Sunday Herald), 인터 프레스 써비스(Inter Press Service), 네이션(The Nation)의 웹싸이트, 또한 그가 이라크 통신원으로 있던 뉴 스탠더드(New Standard) 인터넷뉴스 싸이트에 실려 있다. 그는 플래시포인츠(Flashpoints) 라디오의 이라크 특별통신원인데 BBC, 디마크러씨 나우!(Democracy Now!), 프리 스피치 뉴스(Free Speech News), 라디오 싸우스 아프리카(Radio South Africa)에도 등장한 바 있다. website@dahrjamailiraq.com

ⓒ Dahr Jamail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5 website@dahrjamailiraq.com

 

 

 

편집자 주

미국의 침공부터 지난 1월 30일 선거에 이르기까지 이라크 현장에 대한 서방 언론의 보도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대다수 기자들은 미국의 언론통제방침에 따라 미군에 ‘배속되어’(embedded) 취재했으며, 저항세력의 폭탄테러 및 납치·살해가 잇따르자 바그다드의 안전한 호텔에 앉아 미군측의 보도자료를 적당히 엮어서 기사를 작성하는 이른바 ‘호텔 저널리즘’까지 성행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현장을 답사하여 그 진상을 생생하게 보도하는 전선기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데, 다르 자마일이야말로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기자이다. 여기 실린 그의 글은 1월 7일 Tomdispatch.com에 기고한 글로서 원제는 “Iraq: The Devastation”이며 말미에 한국 독자를 위해 짤막한 말을 덧붙였다. 이 글 이후에도 그는 미군의 공중폭격이 야기한 참상을 고발하는 「폭격 아래에서의 삶」(Living Under the Bombs)을 비롯해 생생한 현장취재 기사를 여러편 썼는데, 그의 기사는 웹싸이트(http://dahrjamailiraq.com)에서 찾아 읽을 수 있다.

 

 

이라크의 참상?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지난 열두달 중 일곱달을 이라크에서 일한 후에 그 참상을 묘사해보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모른다.

불법적인 이라크 전쟁과 점령은 부시행정부에 따르면 세 가지 이유로 수행되었다. 첫째는 대량살상무기인데 아직껏 발견되지 않았다. 둘째는 사담 후쎄인 정권이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것이나 이것이 입증되지 않았음을 부시도 개인적으로 인정했다. 셋째는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바로 그 이름에 각인되어 있듯이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이라크는 해방된 나라이다.

간간이 떠나 있기는 했지만 나는 열두달 동안 해방된 바그다드와 그 근교에 있었고, 4월의 팔루자 포위공격 동안 그 안에 있으면서 머리 위로 병사들의 경고사격을 두 번 이상 받기도 했다. 나는 남부와 북부 이라크를 여행했고, 중부 이라크 주변을 광범위하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외국인 기자가 이 나라를 여행하기가 훨씬 쉬웠던 2004년의 첫 몇달에 내가 목격한 것이 그해의 나머지 기간에(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2005년에도) 벌어질 참사를 강력하게–심지어 예시(豫示)적으로–맛보게 해주었다. 지금은 잊혀진 작년 상반기로 돌아가, 우리가 이 나라를 점령한 비교적 초기였던 그때조차 실로 이라크인에게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기억해둘 만하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이라크인에게 우리의 침략과 점령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에 해당되었다. 예컨대, 인권으로부터의 해방(아부 그라이브Abu Ghraib에서 자행되었고, 아직도 그곳과 다른 곳에서 매일 일어나는 잔혹행위를 생각해보라),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기반시설로부터의 해방(기능 불량이 된 전기체계와 수마일 길이의 가스라인, 거리에 방치된 하수오물을 생각해보라), 거주할 도시 전체로부터의 해방(지금쯤 공중폭격과 여타의 수단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지역이 초토화되어버린 팔루자를 생각해보라) 말이다.

이라크인들은 그때 이미 비참했고 혼란스러웠으며 부시행정부가 깨뜨린 무수한 약속으로 말미암아 황량함 한가운데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내가 초기에 알게 된 해방된 이라크인들은 모두가 정말 문자 그대로 가족이나 친구가 미군에 의해서 또는 전쟁·점령의 결과로 살해당하는 일을 겪었다. 전쟁·점령의 결과에는 대량실업과 치솟는 에너지가격 때문에 식량이나 연료를 구할 충분한 돈이 없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의 현실들이나 그밖에 앞서 언급한 제반 상황으로 야기된 무수한 참사도 포함된다. 깨어진 약속들, 파괴된 사회기반시설, 파괴된 이라크 도시들이 2004년 초기의 그 몇달에 벌써 명백히 드러났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그때 목격한 참상이 그후로 악화되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라크인의 일년 전 삶은 비록 끔찍하기는 했으되 미국 점령하에 장차 벌어질 것에 비하면 서곡에 불과했다. 경고의 징후는 박살난 사회기반시설에서부터, 그 모든 고문행위에, 자라나는 폭력저항에 이르기까지 분명했다.

 

 

깨어진 약속들

 

우리가 이라크에 가져다준 해방의 진정한 본질을 이라크인이 벌써 알고 있었음이 지난해 그 첫 몇달을 겪은 신출내기 기자에게조차 금방 명백해졌다. 미국 언론이 아부 그라이브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행위들을 보도할 때가 되었다고 결정하기 훨씬 전에 대다수 이라크인은 자기 나라의 ‘해방자들’이 자기 동포들을 고문하고 능욕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예컨대, 2003년 12월 바그다드의 한 남성은 내게 아부 그라이브의 잔혹행위를 거론하면서 “그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요? 사담 후쎄인조차 이런 짓은 하지 않았소! 이건 선행이 아니잖소. 그들은 이라크를 해방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때쯤 이미 고초를 겪은 사람들에 대한 황량한 농담들이 나돌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