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3대 위기를 넘어, 3대위기론을 넘어

 

이명박시대, 민주적 법치와 도덕성의 위기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등, 편서로 『87년체제론』(창비담론총서 2) 등이 있음. jykim@hs.ac.kr

 

 

1. 3대위기론의 의의와 한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 전 2008년 11월 27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명박정부하에서 민주·민생·남북관계가 모두 위기에 처했음을 지적하며 ‘3대위기론’을 처음 설파했다. 이후 그는 기회 닿는 대로 3대 위기의 심각성과 그것에 도전해야 함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태에 직관적으로 호소하는, 누구보다 비중있는 정치인의 3대위기론은 이명박정부를 파악하는 핵심적 프레임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3대위기론은 위기의 양상을 포착하긴 해도 그 구조를 해명하고 있지는 않으며, 2008년 겨울과 2009년 초의 정세에 깊이 연계되어 있는 면도 있다.

예컨대 남북관계를 보자. 2008년과 2009년초 이명박정부는 촛불항쟁으로 인한 통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사회 내부의 냉전세력을 결집하고자 노력했다. 관광객 피격사건을 계기로 금강산관광을 중단한 데 이어 개성공단의 확장을 막고 북미대화를 견제하는 등 다양한 냉전적 시도를 펼쳤다. 그리고 그런 시도들은 2009년 봄 제3차 북핵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관계 위기론은 이런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명박정부는 남북간 대화를 조금씩 복원하고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시도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연내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함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부시 정부 말기부터 북미관계가 대결국면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였고 오바마 정부의 출범으로 상황이 더욱 좋아졌음을 고려하면, 그간 이명박정부가 조장한 남북관계 경색으로 한반도 주민의 더 나은 삶을 향해 성큼 나아갈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마모된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근 사태의 진행은 2000년 6·15 정상회담을 계기로 해체기에 들어선 분단체제를 재안정화하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명박정부조차 민주정부 시기에 부설된 철로를 장기간 이탈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도 3대위기론은 정세적인 부분이 있다. 촛불항쟁에 의해 중단된 대운하사업이 4대강사업으로 다시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 6월 8일 22조의 예산을 내걸고 4대강 사업계획이 공식 발표되면서부터다. 아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하반기 상황을 목도했다면, 그는 국토·환경의 위기를 추가해 4대 위기를 말했을지도 모른다.

민생위기의 경우에도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서술하기 위한 틀로서 적합한지 따져볼 점이 있다. 이명박정부 아래서 중간층과 하층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 경제성장만 하더라도 공언했던 7%는 고사하고 참여정부 시절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 중 일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생적 요인에 있고, 일부는 외환위기 이후 민주정부 10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비정규직화, 고용 없는 성장,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의 책임을 이명박정부에만 묻기는 어렵다. 용산참사를 비롯해 지금도 진행되는 서울 곳곳의 뉴타운사업으로 인한 철거민 문제만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벌인 일이지만 당시 중앙정부였던 참여정부 또한 책임을 벗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고용효과도 크지 않으며 대규모의 환경파괴를 유발하는 4대강사업은 현재의 경제문제 해결과 아주 거리가 멀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정부의 무능과 근시안 그리고 아집을 비판할 수 있지만, 민생위기가 이명박정부 ‘아래서’ 일어나고 있고 한층 심각해졌다는 상황 진단에서 나아가 이것이 이명박정부가 야기한 중심위기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기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관련해서는 3대위기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위기’라는 규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명박정부의 첫해는 촛불항쟁에서 보듯이 국가와 시민 사이에 비상한 대결국면이 형성되었으며, 두번째 해는 용산참사로 시작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 등으로 인해 집합적 애도와 우울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난해 봄 이후는 미디어법, 4대강사업, 그리고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모든 사회적 의제를 흡수했는데, 이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스런 경제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가계가 희망을 발견하기란 무망한 일이었다. 이명박정부는 친서민 행보라는 미디어 이벤트를 벌였지만, 그 서민들은 용산에서 죽임을 당했고 올겨울에도 수많은 뉴타운에서 철거민으로 내쫓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저항하거나 저항의 잠재력을 지닌 사람들은 구습으로 재빨리 복귀한 공안기관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리 민주적이지 못한 실정법조차 불공평하게 적용하며 고전적 자유권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삐걱대고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지만 3대 위기 가운데 민주주의의 위기가 유난히 도드라지는 셈이다.

이하에서는 이런 위기상황을 좀더 분석적으로 해명하기 위한 열쇠로 민주적 법치국가 개념을 도입할 것이다. 먼저 민주적 법치국가의 계보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하고(2절), 현재의 위기를 우리 사회의 중대한 성취인 민주적 법치국가가 퇴락하는 상황과 관련해 서술해볼 것이다(3절). 그리고 그런 정치적 퇴행 밑에 도덕적 위기가 자리잡고 있음을 규명하고자 한다(4절). 이어서 이런 위기를 극복할 도덕적 자원을 탐색해볼 것이다(5절).

 

 

2. 민주적 법치국가의 형성 경로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에 대해 적어도 진보개혁진영 내에서는 폭넓은 합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런 위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층위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경험적인 예증들이 제시될 뿐인 경우가 많다. 위기의 소재에 대한 이론적 작업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몇가지 사례를 근거로 현 정부를 파시즘의 초기형태로 봐야 한다는 논의가 돌출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이명박정부에 대한 투쟁이 민주대연합을 따라야 하는지 반신자유주의전선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등장했다. 그런 중에 최근 더욱 쟁점으로 떠오른 이명박식 법치가 민주주의 위기와 어떤 내적 관련을 갖는가의 문제는 그다지 명료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정부 아래서 진행되는 민주주의 위기를 해명할 척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법과 정치권력의 발달 및 상호침투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발달사의 재구성에는 방대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현재 논의에 필요한 수준에서 그것을 간결하게 제시한다면 ① 법을 통한 지배로부터 ② 법의 지배(법치국가)로, 그리고 ③ 민주적 법치국가로의 이행으로 규정할 수 있다. 홉스(T. Hobbes)를 통해 이론적 표현을 획득하는 (절대주의) 국가는 주권자의 손에 폭력을 집중함으로써 사회적 평화를 달성한다. 예외적 권력을 가진 주권자도 법적 통치를 시행하게 되는데, 그것은 법적 지배가 더 안정화된 지배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법적 지배는 예측가능성과 평등한 대우를 가져오며, 그로 인해 신민의 협력을 얻을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법 없는 자연상태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통치자는 법적 상황에서도 최상의 권력을 누리게 되지만, 피치자(被治者) 또한 예측가능성의 면에서나 동등한 대우라는 면에서 자연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홉스적 계약상황에서 구성되는 법적 통치 속에서 주권자는 여전히 예외적인 힘을 갖는다. 그는 법을 수립하고 폐지할 수 있는 권한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법을 계류할 권능 또한 가진다. 하지만 신중한 통치자라면 이런 예외상태를 주권자의 자비라는 형태 또는 사면권의 형태로 최소화함으로써 폭군이라는 칭호에서 벗어나고자 할 것이다.1

법을 통한 지배의 존속하에서 통치자가 조직된 사회성원에게 도전받게 되고 그 결과 양자가 일정한 타협에 이르러 그 성과가 제도화되고 법제화될 경우, 우리는 법이 통치자와 시민 모두를 통제하는 법치국가, 즉 법의 지배 상황에 이를 것이다. 법의 지배 아래서 정부는 시민들의 사적 주도권이 작동하는 삶의 일정 영역에 대해 ‘법에 반해서도, 법을 벗어나서도, 법을 넘어서서도’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경우 법의 발생과 적용의 맥락은 여전히 시민들의 의지와 연계되지 않는다. 법 형성과 적용이 시민들의 민주적 의지를 참조해 이루어지고 그 의지로부터 정당성을 길어올리게 될 때에야 비로소 루쏘(J.-J. Rousseau)에 의해 이론적으로 표현되고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민주적 법치국가에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 시민들은 법의 수신자일 뿐 아니라 저자이며, 따라서 입법과정에 참여할 제도적 절차가 형성되고, 법의 적용과정에 대해 민주적으로 형성된 여론에 의해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 정당성의 근원이 시민의 공론과 민주적 의지에 귀속됨에 따라 민주적 의지를 확인하는 절차 또한 법제화된다. 보편적이고 평등한 선거권이나 정당결성 자유의 법적 보증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민주적 법치국가는 민주적 복지국가를 예비한다. 민주적 복지국가로의 발전은 계급구조에 뿌리를 둔 사회 내의 권력관계를 법적으로 규제하게 됨을 의미한다. 노동 3권의 법제화, 부당해고 금지와 사회적 안전망의 형성은 그런 과정의 기본적 예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민주적 법치국가가 통치자나 그와 연계된 관료제적 국가기구의 권력행사를 통제하듯이, 민주적 복지국가는 자본축적의 연자방아 속에서 으깨질 위험에 놓인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보호하고 자본과 노동하는 시민들의 불균형한 권력관계에서 균형추 역할을 한다.

법은 정치권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강제력의 체계일 뿐 아니라 권리의 체계라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런 발달과정은 권리체계의 발달로 재서술될 수도 있다. 법치국가, 민주적 법치국가, 민주적 복지국가는 마셜(T.H. Marshall)이 제시한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의 제도화와 각각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적할 점은 마셜이 단순한 진화적 과정으로 제시하며 동일 평면 위에 배치한 권리들 가운데 참정권은 예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법제화 이전에도 자유를 제도화하는 힘은, 정치적 참여를 권리로 자임하는 태도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그것은 모든 권리의 근본 토대이다.2 따라서 참정권과 연계되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이념 없이는 어떤 권리의 제도화도 규범적 토대를 상실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적 법치국가는 사회발전의 결정적 지표라 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의 후퇴는 진정한 사회적 위기를 구성한다. 그런 후퇴는 축적된 사회발전 성과의 해체이며, 민주적 복지국가라는 미래의 상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3

 

 

3. 민주적 법치국가로부터의 퇴행

 

재구성된 발달사가 경험적 역사와 일대일로 대응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우리의 근현대사, 특히 민주화 이후의 역사를 특정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탐조등으로 삼을 수 있다. 민주적 법치국가 이념에서 본다면, 식민지시대는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 자체를 형성하고 주권을 회복하려 한 ‘인민의’(of the people) 투쟁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분단체제의 수립이 이어지면서 통일적 인민은 형성되지 못했다. 세계사적 냉전을 내전으로 내재화한 분단체제는 일종의 예외상태의 일반화 또는 장기적 예외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에서 반공주의는 이 예외상태의 이념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여러차례 개헌을 거친 헌정사에서 국가보안법은 ‘이면의 헌법’으로서 예외상태를 떠받쳤다. 이로 인해 남한정부는 세계사적 성과를 기반으로 이념적으로는 민주적 법치국가를 표방하며 출발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 지속적인 장애에 직면했다. 실제 통치의 경험적인 수준에서 보면 남한사회는 앞서 발달사적으로 재구성한 모든 단계가 혼용된 모습을 보였으며 때로는 사회상태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나타나는 원시적 지배로 퇴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인민에 의한’(by the people) 정치, 즉 민주적 법치국가를 향한 길은 비교적 일관성있게 발전했다. 민주화 이행은 분단체제 자체를 흔들었고 이런 흔들림은 세계사적 냉전의 해체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었는데, 이 과정은 남한의 경우 분단체제가 강요해온 억압적 사회통합력의 약화로, 북조선의 경우에는 체제통합의 급속한 약화로 나타났다.4 이렇게 분단체제가 흔들림에 따라 남한사회는 민주적 법치국가 그리고 더 나아가 민주적 복지국가로 발전할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러면서도 분단체제는 엄연한 제약요인으로 남아 있었다.5 따라서 새롭게 열린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명박정부 아래서 일어난 현상은 분단체제의 제약이 현저히 약화된 상황에서도 그것이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 사회 보수세력의 중핵은 여전히 분단체제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냉전형 보수이며, 집권을 위해 제시한 경제적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는 이명박정부는 통치의 안정화를 위해 이들을 중심 파트너로 삼았다.6 그럼에도 통치가 유지되는 것은 그것이 사회성원 다수의 동의와 협력을 필요조건으로 삼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령 다수가 정부의 통치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유효하게 결집할 수 없고 선거와 선거 사이에 민주적 의지가 투입될 제도적 장치가 마땅치 않으면, 사회 내의 소수집단을 파트너로 삼기만 해도 통치를 지속할 수 있다. 잘 발달된 관료기구를 제어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명박정부는 재벌이나 보수언론 등을 중심 파트너로 선별하고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물질적 수혜를 제공했으며, 감세 등을 통해 상류층 자산계급 전반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더불어 비판적 언론을 무력화하거나 고립시키고 선택적인 법적용으로 정권에 저항적인 집단을 적극 통제했다. 이에 따라 민주화 이후 발전된 민주적 법치국가는 거꾸로 법치국가를 거쳐 법을 통한 지배로까지 빠르게 퇴행했다.7

이같은 법을 통한 지배로의 퇴행을 검경(檢警)의 법적용과 집행에서의 선택성·자의성만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검경은 이명박정부에 부담이 되는 사건들은 대선 전 BBK사건부터 시작해 효성 비자금사건이나 한상률 게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부실한 수사와 무혐의 처리 등으로 일관했다. 이에 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상대로는 가혹한 수사를 계속했다. 1600여명의 촛불시민에 대한 기소 및 약식기소, 미네르바 구속,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혐의, <PD수첩>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일일이 거명하기 힘들 만큼 많다.8

특히 고약한 것은 검찰이 단지 법적용에서 편파성을 보일 뿐 아니라 정부에 대립하는 시민들을 수사와 재판 과정에 밀어넣고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오명을 씌우며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항소와 상고를 이어감으로써 그런 과정을 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 자체를 징벌수단으로 전환한 것이다.9

이런 퇴행은 앞절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며, 다른 무엇보다 민주적 법치국가를 복원하는 것이 핵심과제임을 말해준다. 87년체제를 통해 민주적 법치국가가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도 민주적 복지국가의 발전은 답보에 빠질 때가 많았다. 바로 그 점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이명박정부와 민주정부 10년간의 차이를 부차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입장들이 있다. 하지만 민주적 법치국가의 발전이 민주적 복지국가의 길을 보증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자가 유지되는 한 후자를 향한 공간은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민주적 법치국가로부터의 퇴행은 민주적 복지국가로의 길을 차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진영 일각에서 나타나는, 성취되지 못한 민주적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민주적 법치국가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 민주적 법치국가의 복원이라는 과제를 향해 연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4. 점증하는 도덕적 퇴락의 위험

 

민주적 법치국가의 복원이 중요한 것은 단지 그것이 정치적 위기에 한정되지 않고 도덕적 위기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법을 통한 통치로의 퇴행이 적어도 다음 두가지 수준의 도덕적 위기와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법을 통한 지배로의 퇴행을 유발하는 원인으로서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도덕적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통치집단의 도덕적 위기가 불러오는 사회적인 수준에서의 도덕적 퇴행 위험이다.

첫번째 문제를 살피기 위해 우선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순수 대통령제, 그러니까 유권자가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하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곧잘 쓰인다. 하지만 대통령은 제왕적이라기보다 세속화되고 한시화된 군주에 다름 아니다. 전통사회에서 군주제는 항상 승계의 위기를 겪는다. 대통령제 민주주의란 이 승계의 위기를 오히려 제도의 긍정적 조건으로 전환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즉 혈통에 의한 승계를 시민에 의한 선출로 바꿈으로써 전자에서 비롯되는 불안정성을 절차화된 민주적 의지가 실현될 수 있는 ‘비어 있는 공간’으로 전환한다. 이런 변형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는 제도적 실행을 결정권자의 인격적 통일성, 즉 1인통치와 연계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군주제의 속성을 유지한다. 이런 대통령제에서 민주주의의 작동은 대통령의 지적·도덕적 지도력, 한걸음 더 나아가면 교양 수준과 깊이 연계된다. 따라서 언론이나 항간의 가십성 이야기들에서 드러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표준적인 사회과학에서 다뤄지는 것보다 훨씬 더 민주주의의 작동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10

선거유세 기간에 이미 드러난 전과(前科) 경력이나 숱한 의혹들에 비추어볼 때,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에 중대한 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에 이미 크게 실망한데다 분배를 성장을 통한 우회적 방식으로만 경험해온 사회성원들에게, 이명박 후보가 지닌 경제성장의 후광은 그의 흠결을 덮을 정도의 호소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획기적인 경제성장의 구체적 방법을 묻는 기자들에게 “사업을 해본 사람은 노하우가 있다”고 말한 그에게 그런 비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집권 후 곧장 드러났다. “문제가 있지만 성장을 이룩한다면”이라는 대중의 기대 가운데 한축이 무너지고, 남은 것은 그의 흠결을 자아냈던 도덕적 위기였다.

혹자는 공약에 대한 기대가 배반되는 것은 항용 있어온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공약의 불이행이 아니라 최근에도 그가 흠결을 더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자주 논란이 되는 그의 언어행태이며, 특히 ‘명백한 거짓말’이라는 논란을 빚은 권총협박 사건은 매우 징후적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일 국빈 방문중인 헝가리 대통령 쇼욤 라슬로를 초청한 만찬 자리에서 자신이 겪은 권총협박 사건에 대해 술회했는데, 그것은 거짓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청와대의 변명처럼 그것이 와전된 것이 아니라면,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대 대통령 가운데 거짓말 논란을 겪은 이가 이명박 대통령 한 사람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통령의 발언에서 거짓말이 문제된 것은 대체로 의지의 비일관성이나 은폐 또는 왜곡해온 사실의 폭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라면 처음부터 은폐나 왜곡을 위해 가능한 모든 권력자원들이 미리 동원되지,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처럼 증언과 목격자로 둘러싸여 은폐나 왜곡이 거의 불가능한 사실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거짓말한 것이 맞다면, 그것은 정치적 용도를 갖지 않았고, 은폐나 왜곡의 성공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며, 의지의 비일관성이 노출된 경우도 아니다. 이 특수한 말의 출현을 설명하는 것은 그가 공적 영역과 사적 비즈니스를 준별할 수 없다는 것, 더 나아가 오직 구체적으로 자신 앞에 현존하는 타자와의 대화를 그럴 듯하게 꾸려나갈 따름이지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일반적 타자 혹은 공적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통상 거짓말하는 주체는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하거나 자신의 의도에 대해 변명하려 하는데 바로 그런 사실 자체가 공적 시선의 존재를 전제하고 의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에는 그런 전제와 그것에 대한 의식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11

통치권자의 이런 행태는 관료집단 속으로 펼쳐져 흘러들어가며 공적 문화의 퇴락을 유도한다.12 이런 퇴락이 민주적 법치국가를 떠받치는 도덕의 위기와 연계되는 것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발전이란 일반적 타자 혹은 공적 시선의 형성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되짚어보면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중대한 개인적 손실조차 감수한 숱한 내부고발자, 부패를 감시하는 시민단체, 독립성을 지키려는 기자, 불편부당한 역사가와 판사, 그리고 양심적인 과학자와 공무원들에 의해 도덕적 자기정화를 더해왔고 관련 제도를 개선해왔다. 더불어 전체 사회성원들이 공적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행동하는 것 때문에 겪어야 할 개인적 손실은 낮아지고 공적으로 환류되는 이익은 증대하는 선순환으로 이행해왔다.

이렇게 민주적 법치국가가 진전함에 따라 함께 구축된 문화적 하부구조가 대통령과 관료기구의 도덕적 퇴락으로 단번에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뒤에 다시 다루겠지만 촛불항쟁 속에서 「헌법 제1조」를 소리높여 부르고 전경차에 불법주차 딱지를 발부한 시민들의 행동은 민주적 법치국가를 떠받치는 공적 문화가 만만치 않게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민주적 법치국가의 문화적 토대가 충분히 견고한 것은 아니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경험보다 훨씬 긴 세월 동안 우리 사회의 성원들은 민주적 법치국가에 미달하는 체제 아래서 살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체제 아래서 형성된 습속이 청산되진 못했다. 통치자와 국가관료기구의 퇴행, 보수파 내에서의 냉전적 집단의 강화와 보수언론의 공론장 지배, 경제적 생활기회의 악화가 오래된 습속을 되살리고 민주화 이후 어렵게 성장한 공적 문화의 퇴락을 유도할 위험은 항존한다.

위협이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형성된 구습으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화 또한 도덕적 위기를 유발하는 위협요인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제구조를 재구성하는 이론적 담론일 뿐 아니라 일상적인 실천에 파고들어 그것을 해석하는 의미자원이 될 수 있는 힘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체계통합의 담론일 뿐 아니라 사회통합의 담론으로 가동됨으로써 행위자들의 동기와 태도에 닻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유행한 숱한 자기계발서들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런 책들은 개인들에게 스스로를 기업으로 간주하는 자기경영의 주체가 될 것을 권고하며, 자신의 속물성을 승인하는 자기배려의 주체가 될 것을 추천해왔다. 매우 낮은 수준의 연대의 문화마저 고갈시키는 이런 신자유주의적 자아테크닉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그리고 자영업화 속에서 불안해진 개인들 속으로 깊게 스며들었다.13 실제로 자산과 부채 대부분이 부동산에 파묻혀 있는 숱한 가계들에 재테크는 절박한 과제다. 품위있는 일자리가 나날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스펙 쌓기에 여념 없는 대학생 그리고 그들을 자녀로 둔 가장에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유의 이야기나, 부실한 연금제도로 인해 노후를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10억 만들기 프로젝트’ 따위는 쎄이렌의 유혹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극복의 전망 없는 적응, 적응을 넘어 적응강박으로 이끄는 신자유주의적 사회통합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집합적이고 정치적인 문제 해결로부터 등을 돌리게 함으로써 민주적 법치국가의 도덕적 자원을 침식하고 민주적 복지국가로 나아갈 힘을 약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그런 체제의 위협을 자아테크닉을 통해 방어하도록 부추기는 문화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집권세력의 도덕적 위기와 민주화 이전 체제로부터 연원하는 구습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위협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사회가 심층적인 도덕적 퇴행을 겪을 위험을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어쩌면 현재 일어난 공적 문화의 퇴락은 부분일식에 그치지 않고 개기일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5. 촛불로 되돌아본 도덕적 성찰

 

무엇이 현재의 부분일식을 걷어낼 수 있는 힘일까? 그것을 위해 우리가 가진 자산은 무엇이고 거기에 무엇을 더해야 할까? 이 문제를 살피기 위해 한때 숱한 시민과 지식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촛불항쟁으로 다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촛불항쟁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배치 양상과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인개스트가 지적했듯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와 선거 사이에 시민들이 통치자를 직접 통제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다수의 가치합의와 집합행동이 필요하다.14 이런 두가지 조건은 다원적이고 복잡한 사회에서는 쉽사리 충족되지 않지만, 촛불항쟁은 그것을 모두 충족했다. 첫번째 조건이 충족된 이유는, 한편으로는 이명박정부의 초기 행태에서 드러난 편협성과 천박성에 대중이 실망하던 차에 미국산 쇠고기 개방의 강행이 마침내 어떤 도덕적 최저선을 건드렸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적 법치국가가 형성됨에 따라 방송영역의 독립성이 확장되고 비판적 언론이 형성됨에 따라 공론장이 일정한 수준의 건강을 회복한 점, 그리고 정보화가 계몽을 조직할 역량을 보강함에 따라 보수언론의 헤게모니가 제약되었던 점 때문이었다.

두번째 조건은 훨씬 충족하기 어려운 고전적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흔히 ‘무임승차’라고 불리는 문제가 개입하는 탓이다. 공적으로 가치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사회성원 가운데 다수가 참여해야 할 경우, 개인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것은 자신을 제외한 다수가 협동에 나서고 자신은 그런 협동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비용을 전혀 치르지 않고 가치있는 결과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면 공적으로 가치있는 결과는 산출되지 않는다. 제재력을 갖춘 중심적 권위가 없는 탈중심화된 집합행동 상황에서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촛불항쟁에서는 이런 집합적 협동에 내포된 딜레마가 빠른 속도로 해결되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단기적인 개인의 이해관계를 일정 정도 초과하는 도덕적 태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필자는 전통적인 도덕철학의 범주를 원용해 세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일상적 칸트주의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이들은 다수가 협동해서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면 그것을 행하는 도덕적 태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의 산출 여부와 타자의 참여를 행위선택의 주요변수로 고려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공리주의다. 이들은 공공선의 증진을 지향한다. 하지만 결과지향적이기 때문에 적은 수가 참여해 결과를 산출하기 어렵다면 협동하지 않는다. 세번째는 공정성주의다. 이들은 공정하기(fairness)를 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협동에 무임승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타자의 참여를 주요한 고려사항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15

이런 도덕적 태도를 촛불항쟁에 대입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에 항의하며 가장 먼저 집회를 조직한 청소년들은 칸트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일관된 칸트주의자는 아니겠지만 특정한 쟁점에 대해 결과의 산출이나 타자의 참여와 무관하게 옳은 일을 하고자 했다. 이들의 행동은 추가적으로 다른 칸트주의자들을 모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그런 결집이 정부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공리주의자들이, 그 다음엔 무임승차에 수치심을 느끼는 공정성주의자들이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16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촛불항쟁은 높은 수준의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도덕적 동원의 산물인 동시에 그런 도덕적 성향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을 두고 있다는 확증인 셈이다.

도덕적 태도는 상황에 따라 변동하는 이해관심보다 훨씬 장기적인 사회화의 결과이며 그런 만큼 상대적 안정성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지적한 도덕적 태도들의 확산과 표출은 민주적 법치국가 아래서 형성된 민주주의적 선호와 도덕 발달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촛불항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입시에 시달리고, 줄어든 일자리 때문에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고, 경제적 고통 속에서 저임금과 집세와 교육비와 노후를 걱정하는 청소년, 대학생, 일반시민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사적 삶의 고단함 때문에 더욱 개인적 합리성을 추구하며 상황에 적응해야 하지만 동시에 민주적 법치국가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오면서 공적 삶에 자신을 일정 정도 투입할 의지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촛불항쟁은 이런 공적 문화가 권위주의정부 시기로부터 물려받은 습속과 신자유주의적 문화변동에 맞설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제약된 기회구조가 변한다면 충분히 풀려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도덕적 성향의 분포에는 약점이 존재한다. 정부의 정책을 통제하는 유효한 집합행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 이상의 칸트주의자와, 그들의 바통을 공리주의자와 공정성주의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도덕적 릴레이 조건(예컨대 언론보도나 서울광장 같은 높은 가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은 경험적인 만큼 언제나 확보되는 것은 아니며 파괴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는 이런 경험적 조건을 파괴하는 데 주력했다. 집회를 적극 통제하고 보수적 시민단체를 동원하고 언론을 탄압함으로써 공리주의자들에게 정부로부터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어 그들의 이탈을 유도했다. 이에 따라 참여자 수가 줄자 공정성주의자들이 무임승차의 부담을 덜고 빠져나갔으며, 그렇게 해서 고립된 칸트주의자들을 이명박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탄압했다.

이같이 잠재상태로 후퇴한 시민들은 자신의 선호와 도덕적 태도를 현실화할 출구를 지금까지는 재보선이라는 좁은 기회 안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제 훨씬 확장된 정치적 출구인 지방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촛불항쟁에서 드러난 시민들의 욕구가 그것을 충족할 정치적 대안과 결합한다면 민주적 법치국가의 퇴락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상당 수준 방어할 수 있을 것이며, 정치적 기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도덕적 위기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논의되는 정치연합은 결정적 중요성을 가진다.

하지만 도덕적 위기의 방어에서 나아가 그것을 극복할 방향을 찾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민주적 법치국가를 지키며 그것을 민주적 복지국가로 이끌기 위한 가장 견고한 진지는 시민적 도덕의 강화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촛불항쟁을 이끈 힘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주권의식과 계몽된 자기이익이 연계된 것이었다. 계몽된 자기이익은 복잡한 사회적 과정을 경유해서 그 이익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만큼 근시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양과 도덕적 안목을 요청한다. 확실히 촛불항쟁은 그런 안목이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자기이익과 연결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양하고 있는 사회적 연대성에 충분히 민감하지 않다. 이런 연대성에 둔감한 이는 자신의 성공이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활용하고 그중 일부는 찬탈한 덕분임을 알지 못하며, 타인의 실패가 인간적 약점뿐 아니라 사회구조라는 수레바퀴에 치인 결과일 수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연대로까지 도덕적 통찰이 확장된다면, 우리는 민주적 복지국가를 향해 뚜렷한 한걸음을 뗄 것이다. 민주적 법치국가가 민주적 복지국가를 예비하지만 민주적 복지국가의 발전은 민주적 법치국가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바로 서지 못하는 자전거와 같기 때문이다. 민주적 법치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페달을 밟아야 하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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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 슈미트나 조르조 아감벤은 이런 주권자에 의한 예외상태 수립이 민주적 법치국가 단계에서도 발생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예외상태의 개념사는 이런 법의 계류가 사회상태가 아닌 자연상태에서 연원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예외상태는 사회상태의 외부인 국제관계나 전쟁, 혹은 사회상태가 해체된 내전과 연계된 것이거나 적어도 허구적으로라도 그런 상태를 가정함으로써 형성된다. 상세한 논의는 아감벤 『예외상태』, 김항 옮김, 새물결 2009 참조.
  2. 참정권은 그것에 선행해 제도화된 고전적 자유권조차 근거짓는 원리이다. 자유권은 그 정당화 원리를 자연권 이론에서 찾았다. 하지만 참정권의 등장과 함께 자유권은 자연권에 의존할 필요 없이 사회 내부로부터 구성된다. 결정에 영향을 받은 자와 결정에 참여하는 자의 합치를 요구하는 참정권에서 볼 때, 사적 자주권을 확보하는 자유권은 사회성원의 결정능력을 형성하는 토대로서 보호되어야 한다.
  3. 여기서 논의되는 민주적 법치국가나 민주적 복지국가 개념에 대해 두가지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이런 개념들이 특정한 국가를 경험적 준거로 삼는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적 법치국가나 민주적 복지국가는 현실의 사회들을 참조하지만 기본적으로 법과 정치권력의 작동논리를 지칭한다. 예컨대 민주적 복지국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북유럽 복지국가 등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법치국가에 매개된 ‘인민을 위한’(for the people) 정치의 전개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일국적인 모델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확실히 국가라는 명칭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개념들은 국가 범주 이상의 정치공동체에 적용 가능하다. 예컨대 유럽연합은 국가 범주를 초월하지만 그것의 구성논리는 민주적 법치국가나 민주적 복지국가 개념에 비추어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다.
  4. 이하 논의에서도 사회학 이론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과 체계통합(system integration)의 구분을 활용할 것이다. 전자는 사회가 해체되지 않고 하나의 전체로서 유지되는 통합성이 사회문화적 가치나 규범에 의지하는 경우이다. 후자는 개인들의 구체적 상호작용 맥락을 넘어 자립화된 씨스템에 의해서 사회의 통합성을 유지하는 경우를 뜻한다. 예컨대 시장경제나 국가 행정체계 또는 군사적 조직 등은 구체적 행위자들의 가치와 규범에 입각한 동의가 아니라 그것이 이룩하는 투입-산출의 조절능력에 의존한다. 분단체제의 동요와 관련해 부연할 경우, 그것의 동요가 남한에서는 체계통합 수준보다는 사회통합 수준에서 균열을 가져왔다면, 북조선에서는 사회통합 수준보다는 생필품 공급이나 연료 공급 등 체계통합 수준에서 균열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수준이 더 큰 균열 요인이든 한쪽에서 발생한 균열은 장기적으로는 다른 통합 수준에도 균열을 불러온다.
  5. 여기서 상세히 다루기는 어려우나 우리 사회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법치국가 및 민주적 복지국가와 분단체제의 연관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둘 사이의 관련을 다룰 때, 분단체제를 남한사회의 민주적 법치국가와 민주적 복지국가의 발전을 한정하는 경험적 요인으로만 보는 것은 폭이 좁은 접근이다. 민주적 법치국가와 민주적 복지국가는 앞서 지적했듯이 국가 이상의 정치공동체에도 적용되며 그런 의미에서 분단체제가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내적 구성방식과도 관련을 맺는다. 예컨대 분단체제론이 분단극복의 핵심단계로 설정하는 국가연합이나 그 이상의 발전형태에서도 정치권력과 법의 작동논리는 민주적 법치국가와 민주적 복지국가의 이념에 입각해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6. 우리 사회 보수층 안에는 ‘합리적 보수’라고 할 만한 집단이 있다. 하지만 뉴라이트 세력이나 보수언론에서 보듯이 능동화된 보수층은 냉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전체 사회에서 갖는 헤게모니적 능력은 분단체제가 흔들림에 따라 결정적으로 훼손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7. 이러한 퇴행을 좀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 약간의 분석틀을 도입해보자. 단순화를 위해서 전체 사회성원을 중하층집단과 x와 상층집단 y로 분류해보자. 그리고 두 집단간의 경제적 분배상황을 D(x, y)로, 정치적 자유와 권리의 제도화 수준과 배분상황을 L(x, y)로 표시해보자. 예를 들어 D(4, 6)가 D(5, 5)로 변할 경우 민주적 복지국가로의 전진으로, D(3, 7)로 변할 경우 그것으로부터의 후퇴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자유의 경우 L(4, 4)가 L(5, 5)로 변한다면 그것은 자유의 확대와 제도화를 뜻할 것이며, L(3, 3)으로 변할 경우 민주적 법치국가의 법치국가로의 퇴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민주적 법치국가가 법치국가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자유의 제도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L(4, 4)가 L(3, 5) 혹은 L(2, 6)로 변한다면 그것은 법을 통한 지배로의 퇴행이라고 할 수 있다. 법치국가는 통치자와 시민집단 일반이 동등하게 법의 적용을 받는 반면 법을 통한 지배에서는 이런 동등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8. 이런 사건들에 대해 계속해서 무죄판결이 내려진 것은 검찰이 얼마나 무리한 기소를 남발해왔는가를 보여준다. 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보수언론은 집요하게 판사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판결을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축에 배열하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었던 것을 생각하면 보수언론의 행태는 후안무치할 뿐 아니라, 현재 사안과 관련해서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누구든 법원을 비판할 수 있다. 사회적 여론의 파도가 법원 울타리를 두들기는 것은 민주적인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법의 적용이 기계적인 과정이 아닌 한에서 법관 또한 소극적 입법자의 역할을 떠맡으며, 그런 한에서 여론의 진공상태 속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안이 헌법과 법률의 진보적 혹은 보수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정연주 전 사장의 경우처럼 법원의 중재에 따라 내린 결정을 배임으로 봐야 하는가의 문제나, 피의사실 공표를 밥 먹듯이 하는 검찰이 사생활 보호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은폐하는 수사기록 공개를 명하는 일, 또는 강기갑 의원 사례 같은 공무집행방해죄나 공용물건 손상죄 문제라면, 그것과 관련해서 판사가 사회적 여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판결에 반영하는 소극적 입법자의 모습을 보이길 기대해서는 우스운 일이다. 그런 문제들은 법률과 축적된 판례에 의해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9. 이명박정부에서도 민주적 정당성을 산출하는 선거를 비롯한 일련의 과정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명박정부를 여전히 민주적 정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단지 ‘지속’(last)한다는 것과 ‘작동’(work)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쉐보르스키의 지적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민주주의와 시장』, 임혁백·윤성학 옮김, 한울 1997, 288면)
  10. 비근한 예로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은 일종의 메가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김영삼 대통령은 OECD 가입과 금융개방을,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과 한미FTA를,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사업을 진행했다. 메가 프로젝트의 시도 자체도 그렇거니와 그것이 어떤 종류이며 어느 정도로 정책적 정교함이나 일관성을 지니느냐는 대통령의 지적 안목 그리고 교양 수준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11.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상대가 듣기 원하는 말을 그냥 하고 사후의 검증은 또 그것대로 모면하려는 식의 태도는 이밖에도 많다. 촛불항쟁에 직면해서는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해 사과하고 촛불항쟁이 퇴조하자 촛불시민을 탄압한 것이나 대운하를 4대강사업으로 둔갑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해 참여정부의 물관리 보고서를 꺼내들고 그 내용을 왜곡해서 소개한 것도 마찬가지 예이다.
  12. 그런 예로 올해 1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발전방안’(수정안)을 들 수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수정안에는 상당한 왜곡과 거짓말이 들어 있다. 정부는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세종시 목표인구를 ‘원안은 17만명, 수정안은 50만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세종시 원안의 목표인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계획’(행정도시건설청)에 나와 있는 대로 50만명이다. 개발계획에서 이를 고친 적이 없는데도 정부는 수정안에서 이를 임의로 33만명이나 줄여 발표했다. 이렇게 목표인구를 낮춰 잡음에 따라 고용인구도 원안은 8만 4000여명으로 수정안의 고용인구 24만 6000명의 3분의 1에 불과하게 됐다. 이런 식의 일이 쉽게 벌어지는 것은 통치자의 행태가 공직문화를 일그러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각종 법률을 위반하며 진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도 같은 예이다.
  13. 푸꼬의 자아테크닉 개념을 활용하여 신자유주의 문화의 침투양상을 상세히 살핀 저작으로는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2009)를 참조할 수 있다. 한가지 지적할 점은 푸꼬의 자아테크닉이 단지 신자유주의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인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자유와 자아를 연계하는 자아테크닉에 대한 문제의식이 비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 진보개혁진영의 중대한 약점이다. 일상적 국면에서 응용 가능해지는 이런 테크닉을 아마도 생태주의만이 일부 개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답하는 동시에 그것을 개인의 자유의 행사와 연계할 수 있는 자아테크닉의 개발이 없다면 사회적 연대감과 공적 문화는 역동성과 추진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14. B.R. Weingast, “The Political Foundations of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91(2), 1997, 245~63면 참조.
  15. 이 경우 어느 정도의 다수가 참여할 때 자신도 참여해야 한다는 도덕적 압력을 느끼는지는 경험적인 문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참여할 때에야 비로소 참여한다면 공정성주의자라기보다 기회주의자일 것이다.
  16. 촛불항쟁의 후퇴 또한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