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이명박정부의 의료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이창곤 李昌坤
한겨레신문 사회부문 부편집장. 저서로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등이 있음. goni@hani.co.kr
1. 핵심을 비껴간 동문서답식 논란
의료민영화를 두고 논란이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한 이 논란은 2008년 대한민국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시금석으로 주목받았던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이 제주도민의 반대로 무산1되면서 논란은 잠시 주춤할 듯하지만,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히 농후하다.
지난 7월말 보건의료노조 산별파업의 핵심 구호는 의료영리화 반대였다. 홍명옥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올해 우리의 가장 큰 요구는 의료영리화 반대”라고 말했다. 또 촛불집회를 이끌어온 170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모임인‘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지난 7월 5일‘5개 국민요구사항’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 다섯 중 하나가‘의료민영화 반대’였다. 6월 23일부터는‘1인 릴레이시위’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한동안 이어져왔다. 6월 19일에는 이 주제를 내건 별도의‘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2천여명의 시민들은 서울 시청앞 광장에 모인 뒤, 보건복지가족부가 있는 계동 현대사옥 쪽으로 거리행진을 벌였다.
온라인에서는 논의가 더 활발하게 불붙었다. 포털싸이트‘다음’의 토론방‘아고라’에서 의료민영화는 내내 핵심쟁점이었다. 이곳에서는 의료민영화 반대 온라인서명운동이 벌어져 짧은 시간에 10만명이 넘게 동참하기도 했다. 의료민영화반대 시민연합 등 각종 싸이트와 까페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토론회도 잇따랐다.‘촛불’현장에선 간이토론회가 수시로 열렸고, 시민단체나 정당이 개최한 공식 토론회도 줄을 이었다. 7월 10일 건강연대가 주최한‘정부의 의료정책: 선진화인가 민영화인가’라는 토론회는 주목할 만했다. 이 논란과 관련해 정부 쪽이 처음으로 참여한 토론회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토론회에서는 의료민영화 논란의 양태가 잘 드러났다. 이날도 정부는 “의료민영화는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고, 시민단체 등은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를 질타했다. 논란의 한쪽 편인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반대를 외치는데, 다른 한쪽 편인 이명박정부는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도 양쪽으로 갈려 가세했다. 보수성향 신문들은 사설과 칼럼 등에서 이를‘괴담’이라고 일축해온 반면, 진보성향 신문들은‘의제’화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큰일 날지 모르니 그만두라’는 쪽과‘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웬 난리냐’는 쪽이‘동문서답’식 대립각을 세우며 논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2.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나
이런 모양새는 논쟁 당사자가‘한다, 안한다’는 식으로‘사실(fact) 자체’부터 달리 보고 있는 측면이 크다. 한쪽에서는‘의료민영화’를 말하는데, 다른쪽에서는‘건강보험 민영화’를 얘기하니 접점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의료민영화와 건강보험 민영화, 둘은 서로 다른 뜻이다. 마치 한쪽에선 빵이라고 하는데, 다른쪽에선 밥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의료민영화란 개념을 두고서도 양측이 서로 달리 이해하거나 숫제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의료민영화’를 영리의료법인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포괄하는 일련의‘의료영리화’흐름으로 이해한다. 이에 견주어 정부 쪽에서는 이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오히려 이들 흐름은‘의료선진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5월 21일 복지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이런 정부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정부는 당시 자료에서 “정부가 공보험인 건강보험을 민영화하여 미국형 의료보장씨스템을 도입하려 한다는 과장 왜곡된 정보가 유통되고 있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건강보험의 민영화는 검토한 바도 없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이 발표대로라면,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터무니없이 정부를 공박해온 셈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논하겠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법이다. 이명박정부는 출범 이후 건강보험 민영화를 안한다고 밝혔지만, 기실 출범 이전부터 의구심을 살 일을 벌였다. 안한다고 한‘건강보험 민영화’도 추진했다가 반대여론이 비등하자 접었고, 영리병원 도입도 제주도에 사실상 시범적으로 해보려 한 바이며,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정책도 착착 추진해왔다.
그 증거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백서인 『성공과 나눔』을 보면, 135면 「능동적 복지」 편‘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계 구축’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요양기관(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그동안 사유재산제도의 침해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향후 국민에게 불편함이 없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는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인수위의‘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개정’2이란 언급은 곧‘폐지 또는 완화’방침으로 이해되기에 충분하다.
언론보도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저지운동이 들불처럼 일
-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해온 제주도가 지난 7월 24~25일 도민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반대 39.9%, 찬성 38.2%가 나왔다.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도민의 뜻에 따라 관련법 개정안에 영리병원 도입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여건이 성숙되면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혀, 이 논란은 현 정부가 도입 불가방침을 공식 천명하지 않는 한 좀체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
- 의료기관 당연지정제는 국민건강보험을 지탱하는 보루로서 건강보험법 제40조 1항에 명시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개설된 모든 의료기관은 당연히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써비스 제공 계약을 맺도록 한 제도다. 즉 국내 모든 병·의원, 약국 등 의료써비스 공급기관이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서는‘요양기관’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함을 뜻한다. 건강보험 환자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연지정제 폐지는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는 병원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는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뿌리를 뒤흔드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