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이산적 정체성과 한국계 미국작가의 문학

 

 

박진영 朴眞暎

미국 워싱턴 소재 아메리칸대학 철학과 교수. 편저로 Buddhisms and Deconstructions, 논문으로 “Postmodernism: the End game of Literature?” “Zen Hermeneutics via Heideggerian and Derridean Detours” 등이 있음. jypark@american.edu

 

 

1. 들어가는 말

 

2003년으로 한국인의 미주 이민이 백년을 맞았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백여명의 한국인이 1903년 처음으로 이주한 후 한 세기가 지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그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민족, 국가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 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오늘의 한국과 ‘우리’를 이해하는 데 그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국제화·세계화라는 지난 수년간의 한국사회 진언(眞言)을 생각해보아도 이러한 작업은 의미있을 것이다. 한국내 외국인노동자의 법적 문제, 중국 조선족의 국적문제, 최근 송두율 교수 사건이 가지고 있는 명암 등을 통해서 볼 때도 한국사회가 더이상 닫힌 민족주의를 기존 체제의 유지나 사회화합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사용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한국문학과 미국문학에서 그 의미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또한 이들과의 만남은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단상이다.

 

 

2. 역사, 전제 그리고 흔적

 

한 작가 혹은 한 문학작품의 정체성이란 문자 그대로 그 작가와 문학작품의 참모습을 말한다. 정체성의 영어표현인 아이덴티티(identity) 역시 그러하다. 아이덴티티라는 단어가 “한 개인을 타인들과 구분짓는 특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 역시, 한 개인을 타인과 구분짓는 ‘다름’이 그 개인이 스스로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그것과 ‘같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이를 ‘바른(正) 몸체(體)’라고 하여 ‘정체(正體)’라고 부르고 영어는 이를 ‘같음’이라 한다. 이는 서양의 사고에서 최고의 존재인 신을 ‘진리’나 ‘바름’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기와 동일한 자”(I am who I am)라고 규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서양철학에서 오랜 동안 진리를 주체(마음)와 객체의 동일화, 혹은 주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객체의 사실의 동일화로 규정해온 것과 유사한 양상이기도 하다.1 동일성이 바로 진리의 모습이며 한 개인의 참모습이라면, 정체성에 연자부호(連字符號, 즉 하이픈)를 가지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의 문학이란, 그리고 그 문학의 정체성이란 바로 정체성에 대한 반란이다.‘동일성’을 참진리로 따지는 논리에서 진리란 연자부호로 연결될 수 없다. 그러한 정체성은 정체성의 불가능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를 따라가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분열된 자아의 시초이다. 정체성의 불가능성, 분열된 자아의 정체성은 곧 그들이 있는 사회에서의 위치 즉 주변인이라는 모습으로 현실화된다.

인천항을 떠나 최초로 한국계 미국인이 된 한인들은 한국사회의 주류에 있던 사람들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한반도의 북부를 휩쓴 기근으로 먹을 것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며, 유교사회의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떠난 여성들이다.2 그들은 한국땅에서 ‘한국인’으로서의 한계를 안고 떠났지만, 결코 쉽게 ‘미국인’이 되지는 못했다.3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이 되지도 못한 이들은 결국 ‘아무도 아닌 자’가 된다. 이민자들의 존재에 관한 명상인 『우리 안의 이방인』이라는 저서에서 쥘리아 크리스떼바는 묻는다.“분열된 정체성, 정체성의 만화경(萬華鏡): 미쳤다거나, 거짓말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우리 이방인들의 전설을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4

정체성의 무정체성화(無正體性化) 현상은 한국계 미국작가의 문학 형성과 그 문학 읽기의 전제조건이다. 정체성의 무정체성화는 그러나 한국계 미국인 자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무정체성화는 기존 가치의 내재화와 내재화된 가치의 잔재 혹은 흔적을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그러므로 정체성 문제는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주요주제일 뿐 아니라 정체성에 ‘연자부호’를 가진 작가들의 공통된 현상으로 나타난다.5 한국계 미국문학 형성의 문턱에서 강용흘(Younghill Kang, 1898~1972)은 『동양이 서양으로 가다』(East Goes to West, 1937)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이미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문학에서의 정체성 분열이 반복적인 주제일 것임을 보여주었다. 강용흘의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김은국(Richard E. Kim, 1932~ )의 작품은 강용흘과 달리 전적으로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역시 정체성, 특히 잃어버린 정체성은 『잃어버린 이름』(Lost Names, 1970)이라는 그의 작품제목이 암시하듯이 그의 문학의 주요주제가 된다. 김은국은 말한다.

 

나는 ‘잃어버린’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이는 나의 세대에 대한 나의 이해와 많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며, 또 현재의 나와 같기도 하다. 나는 소속된 곳이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만주로 이주하고 다시 북한으로 그리고 남한으로.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 세대의 한국인들은 다른 시대들 사이에 존재했다. 일본의 점령…… 그 얼마 지나서는…… 조국의 분단…… 그리고 이주(移住)…… 다시 길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황량한 슈츠베리 같은 곳에서 리차드 같은 이름을 가진 신세가 되었다.(…) 나는 잃어버렸다. 두 문화 사이에서, 두 세계 사이에서,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6. Kathleen Woods Masalski, “History As Literature, Literature as His

  1. 마르틴 하이데거는 특히 그의 후기 철학에서 이러한 ‘veritas’에 근거한 진리의 동어반복성과 무근거성을 비판하고 존재와의 만남의 진리 즉 ‘aletheia’를 주장한다. Martin Heidegger, “The Anaximander Fragment”(1946), Early Greek Thinking, trans. David Farrell Krell and Frank A. Capuzzi, HarperSanFrancisco1975, 13~38면; “The Origin of the Work of Art,” Poetry, Language, Thought, trans. Albert Hofstadter, New York: Harper & Row 1971, 15~87면 참조.
  2. 신성려 「하와이 사탕밭에 세월을 묻고: 한국여성 북미 초기이민 실화」, 『창작과비평』 1979년 봄호 269~97면.
  3. 같은 글 참조; 더불어 Daisy Chun Rhodes, Passages to Paradise: Early Korean Immigrant Narratives from Hawai’i, Los Angeles, CA: Keimyung University Press 1998; Wayne Patterson, The Korean Frontier in America: Immigration to Hawaii, 1896~1910,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5; Wayne Patterson, The Ilse: First Generation Korean Immigratns in Hawai’i, 1903~1973,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0 참조.
  4. Julia Kristeva, Étrangers à nousmêmes, Paris: Gallimard 1988, 25면; 영어번역본은 Strangers to Ourselves, trans. Leon S. Roudiez,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1, 14면.
  5. 아프리카계 미국문학의 형성기에 나타난 흑인 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리차드 라이트(Richard Wright)의 Native Son(1940), 랠프 엘리슨(Ralph Ellison)의 Invisible Man(1952) 등이 그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