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 테러, 전쟁 그리고 그후

 

이슬람 이해, 테러 해결의 출발점

 

 

이원삼 李元三

선문대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저서로 『이슬람법사상』 『이슬람: 이슬람문명 올바로 이해하기』(공저) 등이 있음. ismail@hanmail.net

 

 

미국이 보복공격을 시작함으로써 이번 테러사태가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문명충돌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태가 문명충돌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면서 이를 증빙하기 위해 여러 사례를 나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문명의 공존과 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나 단체 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문명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과정에서 종종 이슬람권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해하거나 서구적 시각으로 이슬람권을 해석하여 대화가 다시 충돌로 이어지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이슬람교가 정교일치(正敎一致)의 원칙 아래 믿음과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곧 이슬람법(샤리아Shari’ah)과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둘은 그 영역이 서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즉, 믿음은 샤리아를 포함하며, 샤리아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따라서 샤리아는 다른 문화권의 실정법보다 좀더 광범위한 역할을 하며, 법인 동시에 믿음이며 사상이다. 샤리아는 무슬림들의 모든 언행을 규범화해냄으로써, 이슬람권에서는 이 샤리아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리아는 이슬람 초기부터 발전되고 정리되어 여러 시대를 거쳐서 이슬람 규범을 도출하였다. 이것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타프시르(tafsir, 꾸란Koran 해설)와 하디스(hadith, 마호메트 언행록) 연구에 필수적이기 때문인데, 오늘날에도 샤리아 연구는 비단 이슬람법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이슬람 연구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이슬람문화권에서는 법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근원이 꾸란과 하디스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학뿐만 아니라 철학·사회학·정치학·인류학·역사학·심리학 등 다른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법현상을 학문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들 여러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이슬람법의 방법론들이 응용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56개국 13억 인구인 이슬람문화권의 사상과 철학은 물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샤리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샤리아의 목적은 인간의 언행에 대해 규범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샤리아는 판사가 판결할 때, 무프티(Mufti, 샤리아 해석의 최고 권위자)가 종교적 사안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선포할 때,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에 대한 선악을 판단할 때, 정치가들이 정치적 판단을 할 때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권의 행동양식은 샤리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테러사건에 대한 무슬림들의 대응자세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범인이라면 이슬람법정에 세워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것은 샤리아 해석상 불법이므로 이슬람국가들이 미국의 공격에 협조해서는 안된다는 무프티들의 견해가 발표됨으로써, 미국에 협조적인 정권들은 국민들의 심각한 반정부시위에 직면해 있다.

이번 테러의 배후로 미국이 지목한 이슬람권의 무장세력은 이른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라고 불리는 단체들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아랍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부 이슬람 학자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일종의 허구라고까지 말한다.

원리주의는 영어단어 Fundamentalism의 번역어로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의 한 기독교 교파인 프로테스탄트 내에서 일어난 보수주의 종교운동을 의미한다. 반면에 ‘이슬람 원리주의’는 호전성과 폭력성이 동반되는 것이 기독교 원리주의와 비슷하다 하여 서구인들이 붙여준 것이다. 서구인들은 이른바 이슬람 원리주의가 전통 고수를 표방하는 보수주의이며, 이 용어는 폭력성 때문에 차용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를 원리주의로 보는 것은 기독교적 해석일 뿐이다. 왜냐하면 서구인들의 개념대로라면 이슬람 원리주의에 의당 보수사상만이 있어야 하지만, 이슬람 원리주의는 보수주의뿐만 아니라 개혁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행동주의, 즉 혁신사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은 무슬림사회가 부패·무능하여 쇠퇴·몰락하자 전통 이슬람을 재생·부흥해야 되겠다는 개혁 차원에서 18세기 중엽에 무슬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중동진출 이후 외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무슬림국가 대부분이 서구열강의 식민지화되거나 그 영향권에 들어가 사회적 파탄을 맞게 되자 이 운동은 더욱 강화되었다. 물론 그 구호는 원래의 이슬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구체적으로는 이슬람의 원점이며 법원(法源)인 꾸란과 하디스, 이즈마(합의), 끼야스(유추) 등에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원들에 입각하여 해석상 하자가 없으면 이슬람적인 것이므로 수용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슬람 원리주의는 이슬람 역사상 그와 유사한 운동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것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지만, 시대적 상황의 요청에 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또한 그 현상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흥주의, 개혁주의 및 급진주의적 특성을 지니며, 시대적으로는 18세기 이후에 등장하여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부흥주의자들은 비이슬람권 세계와는 무관하게 이슬람사회를 분석 비판하여 사회모순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이슬람이 가장 완벽하다는 인식을 지녔기 때문에 사회 모든 곳에 이슬람정신을 구현하려 했으며, 특히 그 종교적 정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개혁주의자들은 이슬람사회가 많은 분야에서 비이슬람국가들보다 낙후되어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국제적 시각에서 이슬람공동체의 단점을 보완 개혁하려 했다. 이들은 이슬람정신에 유럽의 앞선 기술을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다. 한편 급진주의자들은 부흥주의자와 개혁주의자 들이 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부흥주의와 개혁주의를 혼합한 급진주의는 지하드〔聖戰〕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개혁에 대한 가장 중요한 압력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에서 비롯되고 있다. 개혁의 욕구가 증가하는 원인은 의료시설의 확충으로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젊은층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며,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해 정부의 정보통제가 불가능해지면서 정부의 권력남용과 부정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불만은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한 것으로, 실업자가 증가 추세를 보이는 나라들에서 국민들의 불만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서구가 지목한 문제의 원리주의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급진주의적 원리주의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원리주의집단은 극소수에 불과하므로, 이슬람 정신을 강조하는 모든 단체들을 급진주의적 원리주의 단체로 오인하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거나 서구식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다.

급진적 원리주의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무슬림들이 미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타락하고 퇴폐한 국가로 간주하여 배척하는 경향이 심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무슬림들의 이러한 반감은 사실상 역사적 뿌리가 그리 길지 않다. 물론 현대 미국의 퇴폐적인 성문화나 극단적인 물질주의 문명에 대한 반감이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뿌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얽힌 문제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중동지역은 제국주의 시기에 대부분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식민통치를 맛보았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당했음에도 그 이후에 이 지역에 진출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영국과 프랑스보다 커진 것은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얽힌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면서부터이다.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은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그 역사적 관계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그런데 기원 후 2세기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의해 쫓겨나거나 스스로 고향을 떠난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이 십자군 원정기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의 주인으로 있었다.

한데 19세기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이른바 ‘안티쎄미티즘’(반反유대주의)을 국내 통치수단의 하나로 도입하여 사용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같은 박해는 유대인으로 하여금 ‘시온주의’라는 자구책을 강구하게 하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 내 아랍연방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성서에 기록된 약속의 땅인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정착촌을 건설하는 방법으로 국가건설을 위한 준비를 해나간 것이다.

영국은 1차대전을 치르면서 이 지역에서 반(反)투르크운동을 촉발시키면서 전쟁후 승리할 경우 투르크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비밀약속을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이중으로 하는 부도덕한 행위를 하였다.

전쟁 후 이를 이행할 수 없었던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통치령으로 편입하였다. 이후 유대인이 이 지역에 대규모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두 진영간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대전 후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의결하였으며, 아랍인들은 이러한 과정이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할이 유대인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져 이 지역 올리브농장과 곡창지대의 80%, 아랍인 공장의 40%가 유대인에게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이 난민 지위로 전락하자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는 심각한 분쟁이 발생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한 다음날 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승리를 하게 되며, 그후 발생한 4차 전쟁 때까지 아랍진영은 여지없이 그들의 자존심을 구기게 된다.

아랍인들은 이러한 결과가 미국의 대 이스라엘 원조 때문이라고 여기며 그 반감을 키워나갔다. 아랍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랍세력은 15세기 정도까지는 유럽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군림하다 그후 유럽에 역전되기 시작하여 18,19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최악의 상태인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지금의 나라들로 독립하고 자신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여러 개혁사상들이 나왔으나, 이 모든 것들이 제대로 성공하여 정착되지 못했다. 서구의 정치·경제에 예속된 데 대한 분노와 한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대표성을 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당한 것에 아랍세력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는 자연히 반정부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집권세력들과 갈등을 빚으며 탄압을 받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혹독하게 탄압이 진행되자, 자연히 원리주의단체들은 지하로 숨어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행동방법으로 게릴라식의 테러를 자행하기 시작하였다. 누르는 힘이 세면 셀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세어지듯이, 이 지역에서 그들에 대한 탄압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이들의 반발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이번 미국 테러사건을 바라보는 무슬림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테러로 인하여 수천명의 무고한 인명이 살해된 것은 이슬람법상으로 명백한 죄악이다. 그러므로 빈 라덴의 행위가 확실하다는 증거가 있을 경우 이슬람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미국이 당했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환호하는 그들의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번 사태를 미국이 그동안 중동에서 힘의 논리를 펼친 결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의 눈물은 왜 우리의 언론에만 보도되는가? 우리의 피는 싸구려가 아니다! 그들은 왜 우리가 우는 것처럼 울지 않는가?’라며 울분을 토로한다. 즉, 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은 이번 테러보다 몇배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세계언론에서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번의 테러는 그 범위와 질적인 면에서 기존의 테러와는 차이가 있다. 기존의 테러는 그들의 억울한 처지를 알리기 위해 자행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테러는 이제 더이상의 대화는 필요없고 같이 죽자고 하는 성격을 짙게 내포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이번 미국에서의 테러를 비난하고 진심으로 테러가 종식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세계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아프간에 대한 공격은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는 해결방법은 아니다.

미국이 이슬람의 급진주의적 원리주의자의 테러로부터 안전해지려면, 첫째 대외정책을 재평가하는 등 인식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그동안 미국은 이 지역에서 미사일이나 핵무기만 억제하면 큰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하에 힘의 논리로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이번 테러는 이러한 믿음을 여지없이 깨트리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핵무기나 미사일 없이도 이번 테러처럼 엄청나고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힘에 의해 세계평화가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자각해야 한다. 미국은 테러를 근절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보복공격을 시작했지만, 이는 테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분쟁과 갈등, 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욱더 테러와 보복이 극심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제는 미국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세계평화를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평화를 위해 인내하고 희생함으로써 이슬람권이 그동안의 한을 털어버리고 미국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둘째, 빈 라덴으로 대표되는 급진주의자들을 샤리아, 즉 이슬람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지금 이슬람권에서는 라덴을 영웅으로 만들지 말라고 미국에 주문하고 있다. 만일 라덴이 이번 테러를 자행했다면 범법자가 분명한데도 무슬림들에게 영웅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랍 각국의 정권들이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서구에 정치·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고 한번도 국민들의 감정을 대변해준 적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라덴에 군사적 대응을 함으로써, 그동안 그들의 정부도 하지 못한 것을 라덴 혼자서 해내고 있는 형국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힘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테러는 샤리아 해석상 명백한 불법이므로 라덴을 이슬람법정에 세워 그의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확신하게 함으로써 제2, 제3의 라덴이 나오는 것을 근원적으로 막아야 한다.

만일 이번 테러의 배후자가 빈 라덴이고 그가 지하드, 즉 성전(聖戰)의 대상으로 미국을 선정했다면, 이것은 라덴이 파놓은 함정이며 미국이 여기에 빠져서는 안된다. 이는 빈 라덴이 타락한 이슬람 정부하에서 고통받는 무슬림들의 감정을 이용하여 이슬람과 서구 사이에 전쟁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