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이혜미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글항아리 2021

MZ세대는 이렇게 삽니다

 

 

성은애 成銀愛

단국대 영미인문학과 교수 easung@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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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기저기서 MZ세대 얘기를 많이 한다. 주로 ‘얘네들이 어떤 애들인가’라는 내용이지만, 결국엔 어떻게 하면 이들한테 뭐를 어떻게 팔아먹을 수 있을까,로 귀결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을 때 10대였던 ‘X세대’ 이후로, 모든 ‘~세대’는 대부분 마케팅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마케팅 목적이 아닌 사회과학적인 관점의 ‘세대론’—사실은 계급론—으로 기억나는 것은 2007년, 그러니까 1988년생들이 막 성인이 되었을 때 나왔던 ‘88만원 세대’론이다. 95퍼센트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당시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정작 그 책을 쓴 사람들은 소위 ‘86세대’와 ‘X세대’였다. 필자들은 88만원 세대에게 ‘짱돌을 들라’고 독려했지만, 88만원 세대는 싸우기는커녕 조용히 ‘희생자’가 되었고 기껏해야 86세대가 만든 「기생충」 같은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제 MZ세대가 조금씩 나서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조용하게 이긴다 우아하게 바꾼다’라는 책의 제목은 얼핏 보면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자식뻘 되는 MZ세대 스스로가 ‘나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조곤조곤 알려주는 내용이라 기성세대로서 구미가 당긴다. 저자는 자신이 MZ세대의 ‘대표’라고 할 수는 없음을 의식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이 새로운 세대의 특이점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도 알고 있다. 자신의 개별성과 대표성을 동시에 의식하고 있어서, 저자가 보여주는 개인사는 신기하면서도 흡인력이 있다.

이 책과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필자는 30대 초반의 한국일보 기자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글 쓰는 여성’으로 규정한다. 소위 ‘명문’ 대학을 나온 정규직 기자로서 ‘구매력 있는’ MZ세대에 속한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저자는 어릴 때부터 월세방과 친척집을 전전하는 ‘주거 난민’이었고, 고등학교 때에야 원룸 비슷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하여 엄마와 둘이 살았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치안이 불안한 대학가 원룸을 전전하며 알바와 장학금으로 힘들게 학업을 마쳤다.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창비 2021)의 주인공들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처지인 것이다. 서울은 고향보다 가난을 숨기기가 쉬웠지만, 주거 불안은 여기서도 가장 큰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몇년 전에 그야말로 ‘영끌’해서 서울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를 산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느니 은행에 대출금 이자를 내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내 집 마련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무리하여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쪽방촌이나 고시원 등 ‘가난의 공간’을 취재하여 책까지 내는 기자정신을 발휘했으니, ‘주거 불안’은 저자의 핵심 주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저자는 ‘아파트 공화국’의 트렌드에 또래보다 빨리 올라탄 ‘자본주의 키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저자는 자본주의 키즈로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저자가 시시콜콜 공유하는 일상생활에 따르면, 그는 소비를 줄이고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며, 고체 비누와 면 생리대를 쓰고, 몸치장은 최소화하고, 요가와 명상으로 ‘비움’을 실천하는 ‘반자본주의적’ 삶을 지향한다. 자본주의가 주입하는 욕망에 저항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금융 관련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커피값을 아껴 ‘투자’를 하는 등 얼핏 보면 모순된 측면들이 있지만, 이게 이른바 ‘MZ세대’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MZ세대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키즈’고, 따라서 ‘자본주의체제’를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래, 다른 ‘체제’를 상상하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므로. 이들은 심지어 정권을 바꾸는 데도 큰 관심이 없다. 군부독재 시절도 아닌데 굳이 ‘짱돌’을 들 이유가 없다. 투표로 의사표시를 하면 되고, 심지어 ‘탄핵’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학습했으니까. MZ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저항하여 그들을 타도하고 그 자리를 쟁취하는 대신, 각자 알아서 (가능하다면 86세대 ‘부모 찬스’도 활용하여!)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해나가는 길을 택한다. ‘86꼰대’들이 너무 드세서 물리적·정신적 공간을 차지하고 내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런 ‘게릴라전’이 그나마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선 ‘반체제적’이지만, 저항도 투쟁도 정치도 아니기에, 저자는 이를 ‘분투’라는 말로 겸손하게 낮춘다. 이들이 요가와 명상을 하고, 각자의 새벽 루틴을 ‘미라클 모닝’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하며, 아주 사소한 일상의 습관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브이로그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면서 활력을 충전하는 것은, 자본이 선호하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이것은 나의 삶’이라는 작고 단단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이다.

‘조용하게 이기고 우아하게 바꾼다’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저자에 의하면) 이 세대는 체제와 ‘싸울’ 생각이 없다. 이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매일의 싸움을 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저자의 경우 특히나 ‘젊은 여성’으로서 언론계의 ‘꼰대들’과 싸우는 일이 그리 간단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 ‘본업’을 해야 먹고살 수 있으므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일이 자신의 전부는 아니므로 자기만의 시공간을 확보하여 이것저것 해보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것’이 모이고 모여 이 세상을 바꾸어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대신 싸워주는 시민단체에 ‘자본주의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맘에 드는 물건을 만드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며, 선의를 베푼 치킨집 사장님은 ‘돈쭐’내준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이기는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가려고 한다.

여기까지가 이 책에서 드러난 MZ세대의 초상이다. ‘설탕에 막 굴려 내놓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좀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냉철하게 자신의 시대를 조망하는 목소리를 원한다면 1994년생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사이드웨이 2021)가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그리고 두 책을 같이 읽으면 이제 막 사회적 발언권을 얻기 시작한 MZ세대의 생각을 대략이나마 파악해볼 수도 있다.

다만 기성세대 독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렇듯 구매력과 발언권을 동시에 갖춘 저자가 이 세대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점이다. 이 또래 모두가 저자처럼 ‘건전한’ 생각만 한다면야 무슨 걱정이겠는가. 개개인의 선의와 상관없이 체제의 불평등과 혐오의 일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권 교체나 그 어떤 정책으로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저자 정도의 기본 자산과 발언권을 소유하지 못한, 즉 ‘계급이 다른’ 대다수의 젊은이가 이 책에 묘사된 MZ세대의 초상에 얼마나 공감할지도 미지수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 우리는 흔히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비슷한 것을 저자도 이미 의식하고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안전한 삶’을 가지게 될 때까지는 누구의 삶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면, ‘조용하고 우아하게’가 잘될지 모르겠다. 시끄럽고 비루하더라도 기어이 이겨서 바꾸기를.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