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나영 金娜詠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통감하는 주체, 유무의 경계 너머의 말들: 최근 시의 주체에 덧붙여」 등이 있음. kfbs4@naver.com

 

김봉곤 金蓬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 등이 있음. writeroom@naver.com

 

박연준 朴蓮浚

시인.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등이 있음. gkwlan@hanmail.net

 

 

 

박연준 안녕하세요. 이번호부터 김나영 평론가와 문학초점을 맡게 된 박연준입니다. 오늘 초대손님으로 김봉곤 소설가를 모시고 이 계절에 주목할 만한 소설 세권과 시집 세권을 골라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요. 우리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짚어보고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김나영 안녕하세요. 앞으로 두 계절 동안 박연준 시인과 함께 이 코너를 진행하게 되어 기쁩니다. 가을을 준비하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여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김봉곤 소설가와 함께하게 되었네요. 시작도 하기 전에 모든 것이 갖춰진 느낌입니다.(웃음)

 

김봉곤 안녕하세요. 그저 뵙기만 해도 좋을 두분과 문학초점에서 만나 더욱 기쁘고 반갑습니다.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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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먼저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첫번째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 2018)를 낸 지 일년도 안 되어 두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김봉곤 저는 연작소설집이라는 네이밍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책이 있었나 싶어요. 네 계절에 걸쳐 발표된 네편의 중단편을 모았는데, 이야기들의 아귀가 잘 들어맞고, 그러면서도 살짝살짝 틀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 자체뿐 아니라 소설 밖에서도 독서행위를 불러일으키고 또 이어지게 하는 것이 유의미한 전략이자 흥미로운 ‘빅픽처’로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김나영 들어가는 소설인 「재희」에서 던지는 “우리 왜 이렇게 태어났냐./모르지 나도”(46면) 같은 가벼운 물음과 응답은 마지막 소설 「늦은 우기의 바캉스」에서 계속 반복되는 말인 “그는 도대체 나를 왜 이곳에 부른 것일까” “나는 지금 도대체 왜 이곳에 와 있는 걸까”(300면)로 무겁게 이어져요. 이 두쌍의 질문이 거울상처럼 짝을 이뤄서 이 소설집을 감싸고 있어요. 질문과 질문 사이사이에 삽입된 아름다운 연애담은 마치 이 책의 형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연작소설이라는 형식에 맞춘 작품의 배치 순서 역시 탁월했다는 생각입니다. 질문의 의미와 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흔한 방식이 아니라 거듭 질문하는 일이 무용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연출은 박상영 소설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최근 소설의 주목할 만한 한 경향 같아요.

 

박연준 분절된 이야기 같으면서도 장편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죠.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제 이십대 초반의 ‘격정적인 찌질함’과 자기파멸적인 감정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읽는 도중에 그 시절의 저를 이해하게 됐어요. 특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는데요, 이십대는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에 대한 간절함’으로 사랑의 중심을 관통하는 시기잖아요. 박상영은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미숙하고 치기어리고 열정적이고, 무엇보다 아름다웠는지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저는 ‘재희’라는 인물에 무척 몰입했는데, 그래서인지 영이 재희와 친하게 지내다 나중에 헤어지는 게 마음이 아팠어요.

 

김봉곤 오히려 연애했던 상대들이랑 헤어질 때는 괜찮았는데 재희는 인생에 다시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또다른 남자는 있겠지만 재희 같은 친구는 다시없을 것 같은. 그래서 더 슬펐어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어요. 퀴어이기 때문에 겪는 고충이 있고, 또 ‘슈퍼 을’로 살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새내기의 애환이 있고요. 사랑의 초년생이자 사회의 초년생인 거예요. 소설을 한번 읽기로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마음 붙일 곳을 찾게 되잖아요. 많은 독자들이 이 두가지 요소에 이입했을 것 같아요.

 

김나영 그렇게 보니까 제목이 절묘하네요. 계속해서 속하고 싶어하지만 안정된 자리를 얻지 못하고 거듭 배척당하는 공간은 ‘대도시’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해요. 그곳에 잠시라도 소속되기 위해서 화자는 수동적인 삶의 방식을 자발적으로 취하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하지요. 여기에 ‘법’이라는 말을 붙여서 아이러니의 힘이 증폭되는 것 같아요. 법이 어떤 고정된 틀이나 약속이라면, 그 속에 밀어넣을 수 없는 게 사랑이라는 감정이기도 하잖아요. 더군다나 이 대도시가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함의할 때 저 법과 퀴어의 사랑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말들인지 우리는 최근 많이 경험해서 알고 있지요. 나를 밀어내는 곳으로 거듭 투신하려는 개인의 고투를 보편과 일반을 지시하는 ‘법’이라는 말로 감싸둔 데에서 박상영 소설 특유의 풍자를 발견하게 돼요.

 

김봉곤 표제작인 「대도시의 사랑법」은 정말 용감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외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오히려 에이즈 서사가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80년대로 돌아가요. 그 질병에 무지하던 시기, 그 질병이 죽음을 가져오는 스펙터클이 있던 시대로 되돌아가 뻔한 신파에 그치는데, 박상영은 지금, 한국에서 이 이야기를 이토록 담백하게 써냈어요.

 

김나영 저도 ‘카일리’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서 이렇게 산뜻하게 에이즈 문제를 쓸 수도 있구나 싶었고, 이것이 박상영의 강점이라 생각했어요. 김건형 평론가가 박상영의 첫 책을 두고 ‘농담하는 퀴어라는 신인류의 등장’이라고 말한 것이 계속 회자되리라 생각하는데, 소설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여유며,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 역시 작가로서의 용기와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이 한국소설의 새로운 풍자를 주도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왼쪽부터 박연준 김봉곤 김나영 Ⓒ 김준연

왼쪽부터 박연준 김봉곤 김나영 Ⓒ 김준연

 

박연준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 해도 겁을 간직한 채로 용감해지기 마련인데, 박상영의 화자들은 빈정거리거나 우스갯소리를 해서 고통을 희석하려는 태도가 엿보여요. 재희와 영이 시시덕거리는 것도 사실은 본인들 안에 약하고 상처 입은 자아가 많아서일 텐데요, 유머가 방어기제인 거죠. 저는 쌜린저(J. D. Salinger) 소설이 떠오르더라고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가 변주되는 느낌도 받았어요. 시니컬하지만 웃기고, 투덜대면서도 인류애가 느껴지기도 하고요.(웃음)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서 나를 미치게 하는 애인이나 운동권 출신의 새로운 꼰대상을 보여주는 방식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와 영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정체성 문제가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영은 어머니에게 사과받고 싶어하지만 어머니도 영에게서 상처를 받잖아요. 이 대립구도가 팽팽하게 맞서는데, 결국엔 나의 정체성을 인정받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은 결국 정체성의 문제잖아요. 알랭 바디우(A. Badiou)는 『사랑 예찬』에서 사랑을 ‘선언’하는 것이 진리를 구축하는 시작단계로 이행하는 것이어서 중요하다고 말해요. 선언을 통해 정체성을 인정받은 사랑이라야 나아갈 수 있거든요. 모든 사랑이 고비를 겪지만 동성애의 사랑은 내 안의 혼란과 상대방의 혼란, 밖에서 보는 시선과 판단 때문에 그 혼란이 가중될 텐데, 이 소설에서 그걸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곤

김봉곤

김봉곤 저는 이 소설을 세번 읽었거든요. 두번째까지도 이 소설의 마지막이 위악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181면) 그런데 세번째 읽으니까 이 마지막 문장이 너무 슬픈 기원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박연준 저는 마지막에 독자의 몫을 남겨주지 않고 왜 다 설명해줬을까 아쉬웠어요. “그를 안고 있는 동안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마치 우주를 안고 있는 것처럼”(180면) 같은 대목에서 같이 눈물 날 것 같았는데, 갑자기 정돈을 해줘서 화가 났거든요.(웃음)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