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나영 金娜詠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통감하는 주체, 유무의 경계 너머의 말들: 최근 시의 주체에 덧붙여」 등이 있음. kfbs4@naver.com

 

노태훈 盧泰勳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나’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문학사: 최근 한국 소설의 징후」 등이 있음. dacapolife@gmail.com

 

박연준 朴蓮浚

시인.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등이 있음. gkwlan@hanmail.net

 

 

왼쪽부터 박연준 김나영 노태훈 ⓒ 김준연

왼쪽부터 박연준 김나영 노태훈 ⓒ 김준연

 

 

김나영 안녕하세요. 지난 계절에 이어 박연준 시인과 함께 문학초점을 진행하게 된 문학평론가 김나영입니다.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을 따라 읽으니 어쩐지 계절의 변화를 좀더 명확하게 감각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이번 계절에는 노태훈 문학평론가를 초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노태훈 문학초점 코너를 챙겨보던 독자인지라 초대해주신 게 기쁘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렇지만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박연준 지난 대담 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착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벌써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되었네요.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 계절도, 두분도 반갑습니다.

 

 

정소현 『품위 있는 삶』(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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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품위 있는 삶』 이야기를 먼저 나눠볼까요. 정소현이 7년 만에 묶은 두번째 소설집입니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주제를 다루는 6편의 작품이 실렸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나요.

 

박연준 저는 이 책으로 정소현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았어요. 첫 소설집도 찾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작가가 이야기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이 흥미로웠어요. 진실은 켜켜이 드리운 베일처럼 알기 어려운데, 정소현은 정보들을 들추어 보여주거나 부러 가리면서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가요. 인물의 관점에 따라 행불행이 갈리기도 하고, 진실의 내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진실의 경계는 모호하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어제의 일들」에선 용서를 구하려는 자와 용서를 해야 하는 자 사이, 그들의 관점 차이가 흥미롭게 그려져요. “나는 인생이란 것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쉽게 망쳐지도록 생겨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줘봐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84면)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가해자들은 어떤 인물을 망가뜨린 후, 자기들 관점에서 그의 ‘인생을 망쳤다’고 판단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흥망을 평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편견과 무지’가 작동하기에 폭력적이지요. 누군가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용서가 쉽게 이루어지지도 않고요.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게 가능한지, 용서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노태훈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에 죽음이 예정되어 있거나 이미 죽은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죽고 나서 다시 살았던 기억을 되짚어가는 방식으로 꾸려진 이야기가 많았는데, 결국 진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지점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서사 속에 담긴 거짓말이나 비밀이 사실 이런 것이었다고 말해주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의 기억을 따라가보니 이러한데 이게 정말 진실인지는 독자가 직접 판단해보라고 말하는 방식이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김나영 정소현 소설의 남다른 지점은 세상을 지극히도 현실적으로 그린다는 데 있습니다. 죽은 인물을 등장시켜서 환상적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그 역시 이 소설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이나 삶과 죽음을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소문이나 거짓말의 형태로, 우리가 쉽게 주고받는 말의 방식으로 그려진다는 점이 놀라워요. 다시 말해 가장 현실적인 지점이 가장 무서운 세계의 속성을 노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언어에 대한 작가의 불신이 커진 것 같아 오랜 독자로서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고통받는 이유가 소문, 거짓말, 그리고 그런 말들이 만들어낸 서로 다른 기억들 때문이에요. 결국 말이 우리 삶을 쥐락펴락하는 것이죠. 과연 말이 어떻게 진실을 전달할 수 있고 얼마나 매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의심이 더 짙어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연준 그럼에도 저는 이 소설들이 편안하게 읽혔는데, 아마도 문장 때문인 것 같아요. 좋은 문장은 독자를 피로하게 하지 않아요. 좋은 문장을 읽을 때면 좋은 배를 탄 듯한 기분이 드는데, 이 책은 너무 편해서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푹 빠져 읽었습니다.(웃음) 이상하고도 모호한 이야기, 환상적인 서사, 형이상학적 깊이까지 녹아 있는 건 작가의 단단한 상상력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태훈 저는 읽으면서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질문이 떠올랐는데, 만약 삶이 지옥이라면 당신은 죽음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계속 묻는 것 같았어요. 특히 가장 최근에 쓰인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이 그랬습니다. 주인공은 보험상품에 가입하면서 만약 자신이 치매에 걸려 온전치 못한 상태가 된다면 단호히 안락사로 처리해달라고 서약합니다. 여기에 할머니의 뜻을 존중해서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민기’와, 그래도 할머니가 행복해하는 순간이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하준’의 대립을 보여줘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가 이 소설집을 읽는 내내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 이쁜 내 새끼들아”(46면)라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작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고 대답을 주는 게 아니고, 여운을 길게 남긴 채 고민하게 합니다.

 

김나영 삶과 죽음을 다루는 소설은 많지만 그 주제를 뻔하게 다루지 않는 것이 정소현 소설의 힘입니다. 기본적으로 삶의 편에서 죽음을 사유하는 것이 우리가 자주 봐온 방식인데, 정소현은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사유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뒤집어놓아요. 죽은 자가 ‘죽은 채로 살아가는 일’로써 삶을 질문하고 죽음을 다시 묻는 것이 이 소설집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그후에 따라오는 기억과 망각 같은 소설의 다른 굵직한 주제들도 완전히 새로워지지요. 기억과 망각을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흔한 방식이 아니라 망자 혹은 죽음의 입장에서, 삶에서만 말할 수 있는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지, 망각된 부분을 허상으로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를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특히 연작소설로도 읽히는 「어제의 일들」과 「지옥의 형태」를 보면 삶은 기억하는 것들로만 이뤄지고, 죽음 역시 기억된 삶의 재생(再生)으로 그려지는데요, 이 소설들은 결국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자기 삶의 형식과 내용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모든 기억은 사후(事後)의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지금과 이후를 살아가기도 하잖아요. 이 소설집을 통해서 모든 좋은 소설은 새로운 질문으로 쓰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다만 삶과 죽음의 경계, 혹은 그 둘이 나눠지지 않는 지경을 묘사하는 일에서 자주 환상적 장면이 도입되는데, 「그 밑, 바로 옆」 같은 소설에서는 죽은 자가 말하고 산 자가 듣는 이야기의 핵심적인 기획과 구상이 너무 단순하게 묘사돼 아쉽기도 했습니다.

 

박연준

박연준

박연준 「엔터 샌드맨」에서 지수와 지훈이 겪는 사고의 후유증이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사건사고와 다르지 않은, ‘사고의 원형’처럼 보였어요. 세월호참사,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대입해도 무리 없이 읽힙니다. 살아남은 자인 ‘지수’는 현실이 괴로우니까 홈페이지를 만들고 거기서 활동하잖아요. 상처를 간직한 자들이 살기 위해 찾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괴로워하고, 더불어 진실도 모호해져요. “당신이 죽은 거 아니었나요? 혹은 그가 죽었어요? 아니면 나는 살아 있는 게 맞나요? 이 모든 게 꿈인가요?”(188면) 지수가 혼란스러워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하죠.

 

김나영 무거운 주제와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유머러스한 게 정소현 소설의 또다른 강점이자 미덕이지요. 「꾸꾸루 삼촌」의 나와 삼촌처럼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비루한 삶을 그릴 때도 어느 틈에선가 희망을 잃지 않는, 그 때문에 일말의 여유와 농담을 간직한 인물이 등장해요. 이들을 통해 삶이든 사람이든 통째로 비관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를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이번 소설집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생각해봤는데요, ‘품위 있는 삶’이라는 제목에서 힌트를 얻자면 작가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를 계속 질문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자신을 잃어가는 인물이 처한 곤경과 공포를 그린 작품이 표제작이 된 것 같고요.

 

노태훈 이 소설집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의 소설 다섯편과 4년 정도의 휴지기 후 올봄에 발표한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을 함께 실었는데, 그 시차가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오륙년 전에 쓰인 소설들에 등장하는,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인물과 사건들이 지금의 감각으로는 과잉처럼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고, 최근작은 다소 단순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치매에 걸린 노인이 ‘신뢰할 수 없는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사실 새롭다고 보기는 어렵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