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태선 金兌宣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불가능과 공동체」 「밀레니얼 세대 작가의 삶」 등이 있음.

kimloup@naver.com

 

오연경 吳姸鏡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쓰는 기계의 존재론」 「김수영, 신화인가 현재인가」 등이 있음.

korin2@hanmail.net

 

전기화 田己和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황정은 다시」 「부풀어 오르는 모녀서사」 등이 있음.

octobervoice@naver.com

 

 

왼쪽부터 오연경 김태선 전기화 Ⓒ 신나라

왼쪽부터 오연경 김태선 전기화 Ⓒ 신나라

 

 

전기화 안녕하세요. 지난 계절에 이어 오연경 평론가와 함께 인사드리게 된 전기화입니다. 초대손님으로 김태선 평론가를 모셨습니다.

 

김태선 문학평론가 김태선입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왔는데 대화에 잘 참여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네요. 이번에 좋은 책들을 많이 읽게 되어서 한편으로는 참 즐거운 경험을 한 계절이었습니다.

 

오연경 이번 계절도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기다리던 작품들을 읽게 되어 즐거웠고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박서련 『더 셜리 클럽』(민음사)

 

190_372

전기화 먼저 박서련 소설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 2018)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역사적 인물 강주룡의 생애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입혀 소설로 복원해낸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소설은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호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과연 박서련이라면 이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을지 호기심을 품고 읽게 되었습니다. 워킹홀리데이가 청년들의 버킷리스트이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탈낭만화된 이야기도 제법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니까요.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요.

 

오연경 우선 문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말랑말랑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스타일에 맞추어서 변신을 잘해내는구나,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작가구나 싶더라고요. 가독성과 흡인력도 좋았습니다.

 

김태선 스토리텔링에 참 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설정해놓고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강한 힘이 느껴져요. 전작 『마르타의 일』(한겨레출판 2019)에서도 동생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과 임용고시 준비같이 일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대비하면서 서사를 이끄는 점이 돋보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사랑을 찾아 모험을 하는 여정이 다이내믹하게 그려지는 동시에 그 안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오연경 형식적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보여요. SIDE A, SIDE B라는 이름으로 부를 나누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길목에 일시정지 버튼, 플레이 버튼을 두고 문체를 다르게 구사했습니다. 카세트테이프 형식을 차용한 것인데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서술자가 현실에서 겪는 사건들이 재생되고,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면 사건 전개를 잠시 멈춘 채 S를 향한 혼잣말을 진술하는 식입니다. 이 두가지 모드가 적절하게 섞이면서 1인칭 서술의 매력이 배가되는 것 같았어요. 일시정지 버튼에서 서술자가 “이건 진짜 비밀인데”(113면) 하고 말을 걸 때면 정말 옆에서 다정하게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김태선 마지막에는 테이프를 빼는 ‘꺼내기’ 버튼까지 등장해서 재미있었습니다. ‘더 셜리 클럽’도 호주에 실제 존재하는 클럽이라고 해요. 작가가 축제에서 그 클럽을 보고 자기도 영어 이름이 셜리라고 외치고 싶었다고요. 그런 경험이 담겨 ‘설희(셜리)’라는 인물이 나온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더 셜리 클럽’ 실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았더니 보라색과 분홍색으로 꾸며져 있어 “보라색 목소리”(28면 외)로 묘사된 S가 바로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전기화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밝고 명랑한 분위기이고 지금 세대의 감수성에 맞는 문체와 형식을 도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소설에서 설희가 호주에서 받는 환대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짝사랑 상대인 S의 호의는 물론이고 ‘더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도 아낌없는 환대를 보여줍니다.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면서도 독자들에게 이 따뜻함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는 일종의 판타지소설이구나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설희가 특별한 기여를 증명해 보이지 않고서도 ‘더 셜리 클럽’에 임시 명예 회원으로 편입되어,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다정함과 권리를 누리는 장면들은 시민권에 대한 이상화된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오연경 주인공이 받는 환대가 판타지로 느껴지는 면이 있죠. 분홍색 표지나 전반적인 만듦새가 예쁘게 포장된 선물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품 안에는 이민자와 ‘혼혈인’이 받는 부당한 대우 등 현실의 일면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도라’라는 인물은 “너 같은 부류(your kind) 내가 알지. 잘 알아”(58면)라고 설희를 비웃으며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내요. 부류를 가르고 차별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 셜리 클럽’이라는 커뮤니티가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지요. 작가는 국적, 세대, 인종 같은 부류를 떠나 ‘이름’이라는 우연성만으로도 무조건적인 연대와 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 같았다”(32~33면)라고 묘사되는 S 역시 성별이나 인종이나 국적이 아닌 ‘보라색 목소리’와 같은 그만의 독특함으로 식별되는데, 개별적인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어요.

 

김태선 S는 “한국인으로도 독일인으로도 영국인으로도 내가 충분하지 않은 느낌”(102면)이라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인물인데, 여기서도 ‘더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이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선주민 혼혈인인 쌍둥이 할머니들이 설희에게 보내는 엽서에서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리고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해 줄 거다”(199면)라고 해요. 서로를 완성하게 해주는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롯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만남과 연대를 작가가 그리려 했던 것 같습니다.

 

전기화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더러 있었는데요, 일단 형식적으로 보면 대화 곳곳에 영어가 괄호로 병기되어 있어요. 호주가 배경이니만큼 대화의 뉘앙스를 살리고 싶었던 거겠지만, 어느 곳은 문장 전체를 영어로 병기하고 어느 곳은 특정 단어만 병기하는 식이라서 독자에 따라 이런 비일관성이 거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연락이 두절된 S를 설희가 찾아 나서는 전개가 저한테는 너무 일방적으로 느껴졌어요. S의 의중을 알지 못한 채 설희가 그 동선을 추적하고 쫓아가는 서사의 흐름에 갸웃하기도 했습니다.

 

김태선 『마르타의 일』에서도 그런 맹목성이 드러나죠. 동생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특히 전도사라고 하는 남성의 조력에 의존하는 면이 없지 않고, 복수의 과정이 매끄럽게 걸림돌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작위적인 느낌도 듭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할머니들의 조력이 그때그때 짜인 각본처럼 등장하고 사건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풀리기 때문에, 갈등을 손쉽게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오연경 그런데 저한테는 그런 요소들이 일종의 유머로 다가왔어요. 독자에게 윙크를 보내면서 ‘다 알지? 우리 이렇게 하기로 하자’라고 짜고 치는 판을 벌이는 것처럼요. 이미 ‘더 셜리 클럽’의 무슨무슨 지부를 나열할 때부터 코믹한 기분이 들잖아요. 후반부에 서사를 끌어가는 것은 S의 행방을 쫓는 절박한 사건이지만, 그 상황을 통해 “셜리를 돕는 게 우리를 돕는 거니까”(141면)라고 연대의 축제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거죠. 다만 작가의 메시지가 어떤 대목에선 너무 도드라져서 그런 유머가 반감되는 면이 있었어요. 쌍둥이 할머니의 엽서도 주제를 너무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정답을 보는 것 같았고요. 그럼에도 호주라는 배경과 여행이라는 장치를 통해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는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명랑한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 그것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능성을 선사해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전기화 저도 호주라는 이국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환대가 가득한 소설을 읽으니 기분이 환기되어 좋았습니다. 장기화된 코로나 시국에 필요한 소설이 나와주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박서련 작가는 온라인 문학 플랫폼 ‘던전’의 운영진이기도 한데요, 그 자신이 창작자이면서 창작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문학장의 조건에 대해 메타적으로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로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플랫폼을 출현시켰습니다. 동시대 문학장을 역동적으로 구성해내는 작가라는 점에서도 박서련이 ‘하는’ 문학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네요.

 

 

김금희 『복자에게』(문학동네)

 

190_377

전기화 『경애의 마음』(창비 2018) 이후 김금희의 두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제주로 좌천된 판사 이영초롱이라는 인물이 그곳에서 과거의 기억과 인물들을 만나고, 현재의 삶을 마주하는 이야기인데요, 다양한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는 풍부한 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태선 김금희의 소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마음’ 같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다양한 마음의 형상들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특히 유년 시절의 아픈 상처를 공유한 이영초롱과 복자가 삼십대에, 조금 성숙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성장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다시 만나면 어떠한 모습일까 작가 스스로 궁금해하며 써내려간 소설 같아요. 그러한 만남이 빚어내는, 두 마음이 오고 가는 독특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애의 마음』이나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문학동네 2016)의 경우에는 마음을 다룰 때 상실에서 출발했던 것 같거든요.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이 상징하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들, 어제는 있었다가 오늘은 없다는 ‘사라짐’의 관점에서 마음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엔 좀 다른 결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걷기 시작한 그애와 내가 그날의 해변 길에 있다. (…) 그해 그 섬에서의 시작이 있었다”(21면)라는 도입부에서부터 달라진 인상을 받았어요.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있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출발한 이야기 같습니다.

&n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