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정아 金正雅

소설가. 소설집 『가시』 등이 있음.

padosoridul@gmail.com

 

선우은실 鮮于銀實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나를 망친 것, 내가 망쳐야만 했던 것, 그리고 나: 이주란론」 등이 있음.

eunsil_official@naver.com

 

신철규 愼哲圭

시인.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등이 있음.

12340158@hanmail.net

 

 

왼쪽부터 김정아 신철규 선우은실 Ⓒ 신나라

왼쪽부터 김정아 신철규 선우은실 Ⓒ 신나라

 

 

신철규 안녕하세요. 지난호에 이어 문학초점 사회를 맡은 신철규입니다. 초대손님으로 김정아 소설가와 선우은실 평론가를 모셨습니다. 마침 꽃의 계절에서 잎의 계절로 넘어가는 시기인데, 생명력 움트는 따뜻한 시기에 만나 뵙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김정아 네, 날씨가 참 좋아요. 막 돋아난 잎의 여리여리한 연두색을 좋아하고, 그 연두색의 채도가 하루하루 덧입혀지는 것이 느껴지는 이 계절도 정말 좋아합니다. 한편으론 이 화려한 봄날에 황사와 미세먼지가 사람들을 암울하게 하고,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고, 4·16과 5·18이 있어 마냥 즐거워할 수만도 없지요. 복합적인 생각을 하며 왔습니다.

 

선우은실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평론을 하는 선우은실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일이 좀처럼 없는데, 오늘 초대해주신 덕분에 계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문학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돼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혜경 『사소한 그늘』(민음사)

 

192_331

신철규 좌담을 열 소설은 이혜경 장편 『사소한 그늘』입니다. 몇년 전 연재되었다가 이번에 출간됐습니다. 오랫동안 에꽈도르에 살던 작가가 한국에 돌아왔음을 알리는 기념작이자 복귀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 작품은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지배하는 가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세 자매를 그립니다. 각자의 성격과 선택에 따라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면서, ‘그늘’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삶이 또다른 그늘로 이행되는 것을 드러냅니다. 언뜻 도스또옙스끼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구성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정아 바흐의 음악이 수백년 동안 변주되듯이 페미니즘 문학도 이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커다란 장르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 소설은 특히 저하고 멀지 않은 세대의 이야기라 친숙하게 읽혔습니다. 저희 세대와 바로 윗세대는 페미니즘을 처음으로 학습한 경우입니다. 열심히 공부했으나 그것이 자기 삶의 결정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지는 못했다고 고백할 수 있어요. 반면 우리 다음 세대는 페미니즘 유전자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세대갈등도 나타나죠. 엄마 세대에 대해 딸들은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혹은 ‘알면서 왜 저래?’ 생각하거든요.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살지는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작품이 그래서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선우은실 서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막내 지선은 대략 70년대 초반 생으로 짐작됩니다. 저로서는 60~70년대 생 어머니 세대 이야기로 생각되는데요, 세 자매를 통해 어머니 세대의 ‘K-장녀’가 그려지고 그걸 바라보는 ‘K-장녀’로서의 제가 있다보니 사실 읽으면서는 괴로웠습니다. 꼭 페미니즘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폭력이라는 걸 알 만한 일들이 그려지니까요.

 

신철규 틀이 잘 짜인 소설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만 해도 그런데, 경-영-지가 사실 예전에 시골에서 여자 이름 붙이는 방식이거든요. 큰 딸은 기쁘다는 뜻에서 경(慶), 둘째나 셋째 딸은 꽃다울 영(英), 막내는 다할 지(至)나 멈출 지(止)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물들이 어떤 틀 안에서 그려지는지도 흥미로웠습니다. 경선은 아버지에 맞서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과 물질을 중시하는 차가운 인물로서 ‘머리’에 가깝고, 냉정한 사리분별과 현실적인 선택이 돋보이죠. 경선의 머리를 “맹렬하게 쪼아”대는 새(296면)가 중요한 이미지로 나오기도 합니다. 반면 영선은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거나 차라리 그에 순응하면서 긍정성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배’에 가까운, 본능과 육체적인 충동에 충실한 인물로서 “집 안에 그늘이 드리워질 기미만 보이면 영선은 쏟아지는 비를 맞기가 무서워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298면)라는 묘사가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지요. 막내 지선은 그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며 현실적인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따뜻함과 차가움, 무름과 단단함, 무심함과 경계심이 공존하며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고 그러면서도 행동하기는 주저하는 ‘가슴’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렇듯 인물이 정형에 들어 있다보니 다소 평면적이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들이 각각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선택과 노력을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정아 무엇보다 주목된 것은 세 자매가 희한할 정도로 결혼 상대를 함부로 정한다는 점입니다. 영화 「미시시피 버닝」(1988)에 나오는 진 해크먼의 대사, “이런 동네에서 여자들이 누구랑 결혼하느냐 하면, 고등학교 졸업 댄스파티에서 자기를 제일 먼저 웃기는 머저리랑 한다”가 떠올랐어요. 억압적인 가족에게서 떠나는 유일한 방법이 결혼이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그런 선택을 한 세 자매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 결혼에도 가정과 사랑에 대한 가부장적 낭만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매 맞는 엄마를 보며 자랐지만 내가 꾸리는 가정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는 환상과 낭만이 작동하고 있지요.

 

선우은실 결혼이 이들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고 볼 때, 막내 지선은 언니들과 다르게 ‘이혼’을 두고 고민하며 조금은 길에서 비껴나 있는 인물입니다. 남자친구도 아니던 사람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 시대의 맥락을 받아들이되 ‘계속 그 자장 안에서 살기’를 거부하며 장년에 이르러 이혼을 선택하는 지선의 모습은 다른 세대의 삶을 이해하는 단서가 됩니다. 다만 조금 의문스러운 점도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경선, 영선, 지선 각각의 삶에 번갈아 초점을 맞추면서 내포작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유독 아버지에게 초점이 할애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컨대 아버지 자신도 많이 맞고 자랐다는 식의 서술입니다. 반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완전히 삭제되어 있죠.

 

신철규 어머니에게 초점을 둔 장면이 없다는 점은 저도 아쉽습니다. 주로 단편적으로만 등장하는데다가 어머니가 방 안에 갇혔던 모습이 회고되는 결말부에서도 얼마나 원초적 폭력에 놓여 있었는지를 암시적으로만 드러낼 뿐이죠. 어머니는 정신적·육체적으로 방 안에 갇혀 있으며 내면의 목소리 또한 드러나지 않습니다.

 

김정아 와이셔츠 얼룩 때문에 아버지가 크게 호통을 치는 장면을 보면, 어머니는 말없이 손으로 방바닥만 쓸어요. “엄마가 문대는 건 방바닥이 아니라 엄마 자신인 것 같았다. 옷장 구석에서 흔적도 없이 조금씩 줄어드는 나프탈렌처럼, 엄마가 졸아붙고 있었다”(269면)라는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즉 어머니는 학대 속에서 계속 쪼그라들다가 사라져버리는 인물이고, 그래서 목소리도 지워질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봐요. 한편 여기서 폭군 같은 아버지를 잇는 것이 첫째 딸 경선이에요. 못산다고 동생 영선을 무시하고, 지선의 이혼을 반대하고, 자기 딸을 억압하는 모습입니다. 껍데기일 뿐일지라도 가장 중요한 준거는 가족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 집안에 아들도 둘 있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들을 희미하게 처리하고 아버지에게서 장녀 경선에게로 이어지는 가부장성을 그립니다.

 

선우은실 그런데 이처럼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소설을 읽을 때 드는 고민은, 그 폭력이 실재할지언정 작품에서 그걸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과연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에요. 경선이나 어머니를 묘사할 때 이들을 헤아리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개입이 좀더 있었어도 좋았지 않을까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소설 속 사건들은 가스라이팅(gaslighting), 젠더폭력, 스토킹 등 가부장적 폭력에 다름 아니거든요.

 

신철규 재현의 비중과 윤리의 문제를 제기해주셨습니다. 작가는 지선의 이혼을 둘러싼 자매들 간의 담론 대결을 통해 이 문제를 드러내려 했던 듯합니다. “다들 그런다고 나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305면)라고 물으면서 삶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입장과, “다들 그러고 사는 거야”(301면)라며 무마하고 억누르려는 보수적·유화적 입장의 충돌이죠. 지선은 “사람마다 아킬레스건”(305면), 즉 고통의 역치와 부위가 다르다며 이를 보기 위해선 고통의 공통감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사실적인 부딪침인데 다만 충분히 발화되지는 못한 느낌입니다. 성장과정에 대한 비중이 크다보니 삼십대에 이른 이들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간소하게 처리되어 있어요.

 

김정아 이 작품의 작은 구멍은 여성 연대가 없다는 점이에요. 딸들, 특히 첫째 경선과 어머니가 직접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거의 없어요. 모녀지간만 아니라 자매들끼리도 소통이 일방적이고 각자도생을 하고 있죠. 바흐의 음악이 우리에게 선물 같은 의미를 띠는 것은 연주자마다 새로이 재해석되기 때문일 텐데요, 다시 말해 창작에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사이를 벌리고 틈을 만들어내려는 노력과 시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여성주의적 글쓰기에 있어서도 적나라한 현실 폭로의 한편에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어요.

 

신철규

신철규

신철규 결말에서 “서로에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곳으로”(319면) 향해야 한다며 희망의 여지를 드러냅니다. 제목 ‘사소한 그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가정과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존재는 사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삶의 굴곡이라는 의미에서 ‘사소하다’고 명명된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러나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외부적으로 형성된 것이기에 지워지지 않는 그늘이며, 이러한 부조리에 더 가까이 관여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 대다수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거대한 그늘’이기도 하지요.

 

선우은실 작가는 어쩌면 이들의 그늘을 ‘사소한’ 것으로 바꿔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개인적 차원에서는 너무 압도적인 것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점점 명시화하고 사회적 문제로 만듦으로써 작아질 수 있게 하자는, 어떤 지향성으로 읽어볼 수 있을 듯해요. 좀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요.

 

김정아 가공된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 많이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야 했기에 작가로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지 고민되었을 텐데, 실감 있게 와닿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지아 『자본주의의 적』(창비)

 

192_336

신철규 다음은 정지아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입니다. 오랜만에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