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장은영 長恩暎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평론집 『슬픔의 연대와 비평의 몫』 등이 있음.

pome01@hanmail.net

 

최민우 崔旻宇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 장편소설 『점선의 영역』 『발목 깊이의 바다』 등이 있음.

daftsounds@gmail.com

 

황인찬 黃仁燦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이 있음.

mirion1@naver.com

 

 

황인찬 안녕하세요. 가을호에 이어 겨울호 문학초점 사회를 맡은 시인 황인찬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자리해주신 선생님 두분께 모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호는 아쉽게도 비대면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직접 뵙고 말씀 나누게 되어 더욱 기대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민우 안녕하세요. 최민우라고 하고, 소설을 씁니다. 문학초점에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장은영 저는 평론을 쓰고 있는 장은영이라고 합니다. 시와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분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감각을 공유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왼쪽부터 장은영 최민우 황인찬.

왼쪽부터 장은영 최민우 황인찬.

 

 

조해진 『완벽한 생애』(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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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첫번째로 이야기 나눌 작품은 조해진의 소설 『완벽한 생애』입니다. 2020년 1~2월 그리고 2021년 4~5월이라고 하는 두개의 시간을 축으로 삼아 직장을 그만둔 뒤 영등포의 집을 에어비앤비로 내놓고 제주로 떠난 윤주, 윤주의 집에 한달간 머물게 된 시징 그리고 윤주의 친구 미정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서로 교차하고 엇갈리는 궤적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모두 자기 집 없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띄어요.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시대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흥미롭게 엮어냈습니다.

 

최민우 작가가 그간 집중해온 윤리라는 문제가 이번 작품에서도 섬세하게 형상화되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윤주는 이른바 ‘낙하산’으로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 자리에 들어갔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생계를 농담거리로 삼는 걸 듣고 충동적으로 직장을 그만둡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활동을 하고 있는 미정은 자신보다 훨씬 치열한 다른 활동가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신념에 대해 고민하는 한편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의 과거를 용서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시징은 2014년과 2019년 홍콩시위 현장에 있던 인물이고요. 이들이 집 없이 떠돌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집뿐만 아니라 윤리를 찾아서 돌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태도나 입장을 찾아 헤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 작품에서 ‘집’이란 정착할 수 있는 윤리의 은유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은영 집 찾기와 새로운 윤리에 대한 탐색을 연결시켜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거주와 노동의 형태가 ‘정박’ ‘정주’에서 ‘유목’ ‘유랑’으로 전환된 사회체제에서 불안정한 노동에 종사하는 계층은 늘 집을 찾아다녀야 하는 비자발적 유목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필연적이기보다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이동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을 만나게 돼요. 타인을 만나 관계를 맺는 방식이 유목적 삶에서 비롯하는 거죠. 그런 점에 주목하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던지는 문제 중 하나는 떠나고 이별하기를 반복하는 삶의 현실에서 요청되는 관계의 윤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에요. 삶의 배경이 되는 몇몇 사건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하면서 하나의 서사로 존재할 수 없는, 동시대라는 장을 보여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선과 악을 명확히 판단하거나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부름에 응답하는 책임과 관계의 윤리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해요.

 

최민우 ‘내가 왜 이렇게 살까’보다는 ‘내가 과연 이래도 될까’ 하는, 답을 내리기보다는 꼬리에 꼬리를 물듯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작가의 전작들과 연결되는 치열한 질문이 반가웠습니다. 분량은 짧은데도 영등포와 제주, 홍콩과 베트남 등 다양한 공간을 작품에 끌어들여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장은영 작가는 전작들에서 역사적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삶을 밀도있게 서사화한 바 있지요. 『로기완을 만났다』(창비 2011)도 그렇지만, 『단순한 진심』(민음사 2019)의 경우도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해외로 입양됐던 주인공이 자기 이름의 기원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추체험하는데, 개인의 삶과 역사적 상황이 만나는 지점들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어요. 그에 비하면 『완벽한 생애』는 비정규직 문제, 난개발 문제, 국가권력과 시민의 자유 등 현재의 사회적 의제들과 그 안에서 갈등을 겪는 개인의 삶을 공시적으로 다루는 데 집중한 작품이라고 보았습니다.

 

최민우

최민우

최민우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이 소설은 동명의 단편을 확장한 것이라고 하죠. 소설의 시간축이 모두 동시대에 머물러 있다보니, 인물들이 가진 문제의 입체적인 측면, 과거나 역사적 맥락을 거슬러 짚어낼 수도 있었을 측면은 충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쉽다기보다 그 이야기를 더 읽고 싶은 쪽입니다. 단편의 주인공이었던 윤주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분명한 궤적을 그리는데 시징과 미정의 이야기는 여전히 길 위에 있는 것 같아요.

 

황인찬 그런데 소설의 시작점 자체가 ‘거할 곳 없음’이잖아요. 거할 곳이 없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불안하게 여기는 인물들이 종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축을 제대로 의식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시징은 홍콩시위의 복판에 있던 인물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자신의 삶에 아주 가깝다고 의식하지 못하고 “정의와 자유의 실체가 무엇인지”(69면) 알 수 없다고 여깁니다. 기계적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시징은 그 속에서 은철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고 나서야 시간 혹은 역사로, 자신의 이전에 있던 일과 자신 앞의 다른 것들로 고개를 돌릴 수 있게 됩니다. 미정 역시 아버지의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다 마지막에야 가까스로 아주 작은 이해에 도달하게 되고요. 요컨대 이 소설은 말씀하신 시간적인 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바로 그 자리까지 인물들을 도달시키는 데 주력한 듯합니다.

 

장은영

장은영

장은영 동시대의 사건들을 통해 역사적 진실과 개인의 진실이 과연 일치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건 아닐까 해요. 예를 들어 미정은 정의와 신념을 중시하는 법학도로서 베트남 양민학살에 가담했던 한국 군대의 폭력성과 비윤리성에 대한 증오를 아버지에게 그대로 투영합니다. 미정에게 아버지는 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 군대로 환원된 셈이죠. 그런데 제주에서 만난 보경 언니로 인해 그 생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요. 미정은 활동가인 보경 언니가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마음마저 가지기도 했지만, 그녀가 부실공사 사고로 자식을 잃은 고통을 계기로 활동가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한 개인의 진실이 가진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죠.

 

최민우 과거를 캐묻는 미정에게 아버지가 “나는 사람은 안 죽였다”(123면)고 말하는 대목에서 실은 좀 짓궂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미정의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윤리적으로는 정당화할 수 없을지 몰라도 전쟁이니 생존을 위해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럼 미정은 계속 고뇌의 무간지옥을 헤맸을까요. 그 장면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모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 말은 이 소설의 치열한 윤리적 고민이 어찌 보면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단련되기보다 인물의 내면을 맴돌고 있지는 않은가 싶은 거죠. 스스로를 회의하고, 단죄하고, 심판하면서요. 그런 면에서 저는 시징이라는 인물에 유난히 끌렸습니다. 시징은 은철과의 관계를 통해 퀴어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됐고, 만나지 못할 걸 각오하면서도 그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 바다 건너 영등포까지 왔죠. 다른 인물들이 상황에 떠밀리듯 이동한 것과는 달라요.

 

황인찬

황인찬

황인찬 한편 윤주가 시징에게 보내는 편지는 소설에서 중요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메모를 완성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방 어딘가에 두고 나왔지만, 윤주는 끊임없이 시징에게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그 말들이 그대로 시징에게 전달되는 듯해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시징과 윤주는 이 편지들을 통해 접점을 만들어갑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윤주가 시징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에 소설 전체가 성립되고 모양을 갖추게 된 셈인데, 관계의 윤리를 고민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변화의 시작을 만드는 이 소설이 편지 쓰기, 타인에게 말 걸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촉발되었다는 점이 또 재미있기도 합니다.

 

최민우 소설 마지막 장 ‘편지들’은 독자들에게 ‘우리의 대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인물들이 정말로 만나게 되건 그렇지 않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듯 끝나거든요. 꼭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마주 보는 것, 대화를 시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