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주선 金周仙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이토록 따뜻할 수 있는 세상, 따뜻해야 할 세상: 2010년대 감정 교육 방식의 한 경향」 등이 있음.
rangrang9908@naver.com
전성태 全成太
소설가. 소설집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두번의 자화상』,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이 있음.
jstroot@hanmail.net
조경선 曺京仙
국어 교사, 이음학교 교장, 전(前) 전남국어교사모임 회장, 저서로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등이 있음.
jksksh1018@hanmail.net

왼쪽부터 조경선 김주선 전성태 Ⓒ 신나라
전성태(사회) 봄호 문학초점 사회를 맡은 소설가 전성태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곳은 전남 순천의 골목책방 ‘서성이다’인데요, 문학초점 좌담을 주로 서울 창비 사옥에서 하다가 서울이 아닌 곳에서 하는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상황도 길어지고 있는데 『창작과비평』 독자들께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는 소풍 같은 지면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작년 봄부터 이곳의 순천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책 중에 호남 지역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있고, 작가들이 작품에서 지역 이야기를 다루고도 있어요. 지역이라는 화두도 곁들이며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아 대화가 기대됩니다. 초대손님으로 가까운 곳에 계신 두분을 모셨는데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주선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평론가 김주선이라고 합니다. 조선대학교의 재난인문학 연구사업단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고, 광주 문예지 『문학들』의 편집위원으로 있습니다. 두분 선생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경선 저는 전남 광양 이음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조경선입니다. 이음학교는 전라남도교육청 공립 위탁형 대안중학교인데요, 학교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아이들을 위탁받은 치유성장학교라는 기조로 개교한 지 1년 반 됐습니다. 그전에는 참여·실천문학, 계급문학에 관심을 갖고 영등포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하다 농민운동 하려고 고흥으로 와서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했습니다. 평소 동료 교사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교실에서 함께 읽을 수 있는 좋은 문학작품에 대한 고민도 나눠보고자 합니다.
최백규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창비)
전성태 최백규의 첫 시집으로 시작해볼까요. 시인이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시집 전체의 키워드 중 하나는 ‘여름’입니다. 여름은 가장 예민한 성장기, 어린 시절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여름이라는 맹렬한 이미지하고 달리 시들이 전체적으로 죽음으로 채색돼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요. 8년 만의 첫 시집이니 시인에게는 궁리하고 모색하는 시간이 꽤 길었을 텐데, 시집이 고유한 색채로 단단히 묶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경선 저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두분이 깊이를 더해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읽으며 시인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첫 시(「향」)부터 부모님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금호강 너머가 보이는 대구를 배경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영’과 만삭의 어머니 ‘선’의 이야기가 나오죠. ‘나’는 아직 어머니의 배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씻어도 빈손에서 향냄새가 가시지 않는”다고 말해요. 시집을 읽어나가면 젊은 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죽는 것까지 천천히 그려지는데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하는 내용의 시가 처음에 등장하니 강렬하기도 하면서 시집을 열기에 정말 알맞았던 것 같습니다. 또 우울한 시대상 역시 시 안에 잘 담겨 있어요. 시인이 1992년생이니까 2010년대의 시대상이라 생각돼요. 특히 이명박정부 시절에 이십대 청년들은 맹렬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보수정치와 극심한 경쟁, 실업난을 겪었는데, 당시의 보편적 정서가 시집 전반에서 느껴져요. 학교현장에서 보면 아이들은 스물 이후의 삶에 대해 오히려 잘 상상하지 못해요. 어른들은 스무살만 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말하지만 실제 이십대의 삶은 이 시집에서 볼 수 있듯 “열병”(「치유」)이나 “열꽃”(「열꽃」)처럼, 뜨거운 갈망과 열정이 있어 막 달아오르기도 하지만 관계나 사회, 우주 속에서 굉장히 막막하거든요. 영화 「버닝」에서 유아인이 연기했던 인물의 모습처럼요. 사랑과 인생에 대해 갈망하지만 아직 경험이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상실과 어려움이 시에서 느껴져서, 또 이것을 지금 한국사회의 젊은 청년들은 보편적으로 다 겪고 있겠구나 싶어서 말하자면 ‘이십대의 초상’을 두루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성태
전성태 시작이 아니라 기승전, 마무리까지 하시는군요.(웃음) 따지고 보면 젊다는 게 슬픈 건데 최백규 시집을 요즘 세대의 초상으로 읽으니 더 창백한 이미지로 떠올라요. 구체적인 시어를 선택해서 그것으로 비롯되는 상징을 만들어내는 힘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예컨대 ‘장마’라는 시어가 ‘물바닥’이라든가 ‘여름방학’ ‘식지 않은 이마’와 같은 이웃 말들을 거느리며 시집에 산재해요. 이 시어가 발화되는 걸 보면 “문득 이 계절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덫」)라거나 “왜 비가 그쳐도 우리의 장마철은 끝나지 않는가”(「장마철」)라고 하며 아픈 시절을 훑기도 하고, “비를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미래”(「숲」)라며 같이 젖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죠.
김주선 처음에는 시인의 나이를 모르고 읽었습니다. 시집 전체에 죽고 아프고 다치는 이야기들이 일관되게 등장하더라고요. 보통 그런 일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겪게 되곤 하잖아요. 그래서 시인을 막연히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으로 상상했던 거예요. 또 시집이 아날로그라고 할까요, 옛날 분위기도 좀 나잖아요. 옛날 사물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그러다보니 어렴풋이 학생운동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근데 읽다보니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승화나 달관의 태도보다 강렬한 에너지, 일종의 열정이 느껴졌어요.
전성태 대결의 밀도 같은 것 말이지요? 「애프터글로우」같이 신에 대해 말하는 시편에서 저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신을 배운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보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다” 같은 구절 말이죠.
김주선 또 여름밤에 대해서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라고 하는 대목은 어떤 결연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말씀하신 대결의 밀도가 정확한 표현인 듯합니다. 달관이나 깨달음을 통한 해탈보다는 여전히 세상과 대결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구나 싶었던 거죠.
전성태 시집에서 주요 시어들을 추출해보면, ‘화분’ ‘여름’ ‘장마’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시인이 상징적으로 쓰는 건 장마인데, 그 위에 가난과 죽음, 병실과 같은 이미지가 더해지고 아버지와 친구의 죽음, 또 어머니의 병환까지 연결됩니다. 자칫 감상주의로 빠지기 쉬운 흐름인데 시인이 고독한 화자를 잘 구축해낸 것 같아요. 이 시편들이 현재 시인의 나이보다 더 어린 시절, 성장기로 구부러져 있어서 노스탤지어에 잠식될 수도 있을 텐데 그 위험에서도 벗어나 있는 것 같고요. 역시 ‘대결’을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설에 나오는 ‘레트로’ 감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든 시인들이 거쳐온 통과의례 같은 첫 시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시를 구성하는 화소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요즘 시와는 조금 다른 듯하죠. 저는 이러한 감성이 다소간 선배 시인들에 대한 경도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겁고 유려한 호흡, 고전적 어투, 사라져가는 삶의 풍경 재현이라든가 고독한 화자의 이미지가 이 시집을 친근하고 가깝게 느끼게 하는 동시에, 회상에서 길러진 우울한 정조, 가난과 상실감, 시인이 시를 대하는 태도는 한국 서정시의 익숙함 가운데 있어요. 박상수 시인도 해설에서 신대철 이성복에서 기형도 조연호 박준으로 이어진 그 계보를 이야기해놓기도 했죠.

김주선
김주선 노동을 이야기할 때 조금 다르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본인 노동에 대해서는 시 쓰는 것 말고는 거의 언급이 없다시피한데, 그 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올라가 이야기합니다. 요즘 노동을 말하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회사생활을 다루고, 또 그것을 다루는 태도 역시 ‘쿨’하거나 명랑하게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공장이나 일용직이 나오다보니까 다르다고 느낀 것 같아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을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연장해서 감각하는 것도 말씀하신 레트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요소인 듯싶습니다. 언뜻 일종의 제스처처럼 읽힐 여지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체로는 시집 안에서 잘 버무려진 듯해요.

조경선
조경선 어렵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