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남희 金南希

다다서재 편집장.

book@dadalibro.com

 

신용목 愼鏞穆

시인.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의 끝 거창』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등이 있음.

97889788@daum.net

 

최진석 崔眞碩

문학평론가. 저서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감응의 정치학』 『불가능성의 인문학』 『사건의 시학』 『사건과 형식』 등이 있음.

vizario@gmail.com

 

 

 

 

왼쪽부터 신용목 최진석 김남희 Ⓒ 김준연

왼쪽부터 신용목 최진석 김남희 Ⓒ 김준연

 

신용목(사회)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 신용목입니다. 가을호 문학초점 자리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는 책들이 서로 비슷한 구석 없이 다채로워서 시너지를 느끼며 읽었습니다. 오늘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 평론가 최진석 선생님, 편집자 김남희 선생님과 같이 이야기 나누면 그로부터 생기는 시너지도 크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간단히 인사말씀 해주시겠어요.

 

최진석 반갑습니다. 평론 쓰는 최진석입니다. 두분과 만난다는 즐거운 기대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는 독서를 했지만 그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망라해 이야기 나누어야 하는지라 걱정도 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김남희 저는 다다서재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 김남희라고 합니다. 『창작과비평』이나 문학을 이제 막 읽기 시작한 독자분들도 계실 테니 두분께서 깊이있는 말씀 해주시면 저는 편집자의 눈으로 짚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보태고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조정 『그라시재라』(이소노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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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그럼 조정 시집 『그라시재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1960년대 전남 영암에 살던 여성들의 실화를 담은 시집입니다. 저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2년 전부터 시집의 배경이 되는 도시 근처에 살고 있는데, 걸쭉한 전라도 말로 되어 있는 이 책을 쭉 따라 읽기가 마냥 쉽지는 않았어요. 또 식민지시대, 한국전쟁 등 현대사를 거치면서 참혹한 삶을 살아왔던 여성들의 모습이 생생한 증언처럼 전해져서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단지 고난을 통과하는 삶을 보는 데서 오는 숙연함이 아니라, 이념이 남긴 참혹을 사람으로 이겨내는 ‘말하기’ 혹은 ‘이야기의 순간’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김남희 시집의 마지막 문장 “오메 내가 야그 듣니라 넋 빠졌네”(「엄마, 왜 이렇게 날이 안 밝아요」)가 딱 제 감상이었어요. 지역 언어로 쓴 여성서사라는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소수자의 소수자, 변방의 변방이죠. 이 시집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름이 없어요. 누구 어매, 누구 각시 이렇게 불리고 있죠. 출신지를 뜻하는 ‘어디 댁’이라는 말도 보통 아버지의 고향이잖아요. 이렇게 아버지, 남편, 자식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자들이 모여서 옆집 뒷집 흉도 보고 속상한 일 털어놓으며 속풀이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그 안에 양민학살, 한국전쟁, 영아살해 등 비극적인 경험들이 녹아 있어요. 이처럼 이름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며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워 쓴 그림일기를 묶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 2019)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뒤에 나오는 ‘편집후기’를 보면 “이런 시집은 시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대형 출판사에서 펴내야”(200면) 한다는 마음에 시인에게 조언을 했는데, 대형 출판사에서 원고를 알아보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고 하죠.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원고가 좋은 만큼 더 큰 출판사를 통해 주목받길 바라는 마음에 반려를 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되거든요. 그런 원고가 다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속상했을까, 또 얼마나 기뻤을까 싶었습니다.

 

신용목 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다소 협소하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도 있어 보여요. 보통 ‘시’라고 하면 서정성이 작동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노동시나 서사시는 그 하위 장르처럼 느끼잖아요. 그래서 이런 시편들에 별도의 장르적 지위를 부여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시의 주변이 아니라 스스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어떤 장치 말이지요. 저도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고민을 통해서라도 이런 시를 더 자주 접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여성서사에 대한 말씀도 해주셨는데 최진석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최진석 김남희 선생님 말씀에 십분 동의합니다. 여성의 몫이라는 것 자체가 따져지지 않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그들의 언어가, 문학이라는 근대적 제도 안에서 미학적·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지 않나 싶어요. 흥미로운 점은 앞부분에서는 일제강점기 이래 한국의 비극적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60년대를 지나 후반부로 갈수록 지역사회나 그 속의 소소한 일상들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현대사의 통념은, 특히 전라도에 관해 떠올릴 때는 억압받고 탄압받아왔던 역사를 환기하며 저도 모르게 엄숙해지고 숙연해지곤 하는데, 이 시집에 나타난 할머니들의 모습에서는 역사의 어두운 그늘에 장악되지 않는 천진성이랄까, 낙천성 같은 게 보였거든요. 만일 민중적 낙관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역사관이 주로 중앙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던 것이라면, 그 바깥에서 여성들이 살아가던 쾌활하고 꿋꿋한 일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의 힘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민중에 대한 추상적 관념, 역사에 대한 섣부른 단언 이상으로 삶이 얼마나 풍요롭게 펼쳐질 수 있는지 정확히 예시해준 셈이죠.

 

신용목

신용목

신용목 이분들의 이야기 속에는 희극과 비극, 삶과 죽음 혹은 가족과 가족 아닌 것에 대한 구분 자체가 거의 없어 보여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역사적 고난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다루더라도 그것을 삶의 영속성 속에서, 말하자면 삶과 죽음이 연결된 어떤 테두리 안에서 발화한다고 할까요. 말씀하셨듯 시대적 비극을 보던 관점을, 삶의 저변에 깃든 어떤 순간을 통해 오히려 폭넓게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이 이 언어 속에 있습니다. “나가 먼저 가먼 자네가 내 생에다가 연꽃 한 송이 곱게 달어줄랑가? 냇갈 앞이서 생엣꾼들 다리 쉴 때 나 듣게 잔 울어줄랑가?/그라재 꽃도 달어주고 울기도 울어주재”(「혼불」) 같은 대목에서는, 이 세계에 저 ‘꽃’과 ‘울음’보다 더 크고 귀한 것이 없다는 느낌마저 주더라고요.

 

김남희 저 역시 시집이 초반에 해학을 보여주다 서서히 비극으로 안내하는 흔한 스토리텔링 공식을 따르지 않는 점에 주목했어요. 5부로 이루어진 시집에서 비극은 2부에 가장 많이 몰려 있거든요. 그러다가 “일찍 죽은 사램이 더 박복허다고 보네 죽어불면 앙꿋도 아니여 (…) 그래도 나는 사는 것이 좋네”(「누가 더 박복한고」)라는 구절을 읽고, 시집의 구성도 시인의 의도를 담은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일상은 슬픔을 이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비극을 넘어서는 것이구나 하는.

 

최진석

최진석

최진석 표지에 ‘서남 전라도 서사시’라고 적혀 있는 게 이채롭더군요. 문학사에서 서사시는 대개 국가나 민족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로 정의되잖아요. 위대한 개인에게 바쳐지는 역사적 비극이라는 식으로요. 이름 없는 민중의 삶이 끼어들 틈이 없는 거죠. 물론 60년대 신동엽의 「금강」 같은 작품은 하층 민중의 이야기가 역사와 겹쳐지는 순간들을 잘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역시 엄숙하고 비극적으로 채색되었다는 점에서 낙관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그라시재라』는 한권의 재미있는 이야기책 같은 모습으로 짜인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서사시에 관한 서구 중심적인 정의를 넘어서는 작품을, 한국어로 쓰인 실물로 만나게 됐다는 점에서 반가웠습니다. “우리 함마니 이야기를 풀어노먼 소설이여”(「흰 가마 타고 시집 온 배녕 아씨」)라는 대목은 학교에서 배웠던 장르의 구분 같은 걸 넘어, 그 규정성 바깥으로 이탈하고 있는 삶의 힘, 활달한 문학적 활력 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신용목 시집의 주인공을 뽑자면 사투리, 지역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들이 역사를 포착하는 방식, 어떤 동력이나 바탕 등을 애초에 간직하고 있던 것이라고 보여요. 그만큼 표준어 정책이 어리석고 폭력적이란 생각도 들고요. 요새는 지역어 정책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죠? 제가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오래 일했는데요, 시집에 친절하게 지역어 색인이 달려 있으니 이 책을 가져가서 낱말 좀 추려야 할 것 같아요.(웃음) ‘시난고난하다’(병이 심하지는 않으나 오래 앓다)처럼 표준어지만 생소한 단어들이나 “무르막음날 소리 하지 마야”(「홋집 남자」)에서처럼 문맥 안에서 유추해 뜻을 알 수 있는 단어들도 풍성하고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런 책의 편집은 역시 힘들겠죠?

 

김남희

김남희

김남희 모든 말을 표준어 규정에 따라 ‘바로잡는’ 편집자로서 이런 원고를 받으면 일단 막막하겠죠. 표준어가 아니니까요. ‘편집후기’에도 나오지만 이 원고의 어떤 글자는 편집 프로그램의 서체가 인식하지도 못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나 자유로운 서남 전라도 말에 표준말이 함부로 개입하면 쓸데없는 중력이 생길 것 같았”(202면)다는 말에서, 정답을 찾으셨구나 싶었습니다.

 

신용목 우리의 생활뿐 아니라 정서 자체도 어떤 규범이나 제도 속에 묶여 있었던 듯합니다. 저도 읽으면서 자꾸 내가 알고 있는 시적 규율 속에서 시편들을 포착하려고 애쓰고 있더라고요.

 

최진석 「옹기 째 떨이해서 동네잔치」라는 시는 동네 사람들이 음식을 가지고 모여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그리는데요, “상다리 잔 받쳐라 까딱허먼 뿌서지겄다야”라며 잔치에 음식이 잔뜩이라는 말에 한 여성이 “송쿨네 아짐이 사불것 이고” 와서 그렇다는 대답을 하죠. ‘사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