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손택수 孫宅洙

시인.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이 있음. ststo700@hanmail.net

 

윤성희 尹成姬

소설가.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장편소설 『구경꾼들』 등이 있음. hitchike@hanmail.net

 

정주아 鄭珠娥

문학평론가. 저서로 『서북문학과 로컬리티』 등이 있음. jjua@kangwon.ac.kr

 

다같이

왼쪽부터 손택수, 윤성희, 정주아.

 

 

정주아 『창작과비평』 2017년 여름호 문학초점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윤성희 소설가를 게스트로 모셨습니다. 손택수 시인도 봄호에 이어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손택수 네, 지난 봄호의 좌담에 관해 동료 작가들로부터 이런저런 응원과 고언을 함께 들었는데요, 여름호도 많은 관심이 있길 기대합니다.

 

윤성희 안녕하세요. 두분 모두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늘 저는 두 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인휘 『건너간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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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아 첫번째로 살펴볼 이인휘(李仁徽)의 『건너간다』는 작년 『폐허를 보다』(실천문학사 2016) 이후 출간된 자전적 장편소설이죠. 시기상 나중에 출간되긴 했지만, 『폐허를 보다』 집필 전후의 상황 등이 담겨 있어 내용상으로는 앞섰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인휘는 소설가이자 노동운동가로, 이번 작품에는 특히 90년대 이후 노동운동 환경의 변화를 바라보는 작가의 심경이 녹아 있습니다. 독특한 점이라면, 가수 정태춘이 작중에서 하태산이라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의 노래들이 중간중간 서사의 틈을 메운다는 것입니다.

 

손택수 읽으면서 많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통과해온 세대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저릿저릿했어요. 동시에 1980년대 노동소설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지 참 궁금했어요.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읽어봤는데 굉장히 새롭게 받아들이는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김남주를 모르는 세대가 송경동을 읽으면서 노동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후에 김남주를 만나는 경우랄까요. 젊은 독자들이 노동소설과 닿기 쉽지 않은데, 익숙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흐릿해져버린 렌즈를 통해 당대 현실을 다시 바라보는 감각을 벼리는 계기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실제 인물과 허구적 인물이 뒤섞여서인지 작가의 생애를 직접 듣는 것 같았어요. 특히 고문 장면은 제가 직접 당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날카로운 성찰력 때문이겠지만 당위적인 목소리, 웅변조나 논설조의 진술마저 계몽에 포획된 태도만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경험이 그저 나열된다는 느낌이 덜한 것도 작가의 진정성, 그리고 자전적 소설이라는 형식이 가진 힘 때문 아닌가 싶었고요.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소설이 너무나도 희귀해져버린 저간의 사정과도 관계가 있겠죠.

 

윤성희 최근에 저는 장편소설을 단번에 읽은 적이 거의 없어요. 읽다 자주 쉬게 되더라고요. 도중에 멈춘 적도 많고요. 그런데 『건너간다』는 그렇지 않았어요. 굉장히 몰입도 있는 소설이더라고요. 역시 장편은 이렇게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읽으면서 이런 반성도 했습니다. 만약 이번 좌담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 하며 읽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언제부터인가 저는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선별하고, 또 게으른 독서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 소설에서 예전에 읽었던 노동소설과는 다른 결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렇게 판단할 만큼 노동소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라 함부로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요. 자기 연대기에 대한 리얼한 재현을 넘어서는 지점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수긍하게 되는 곳이 많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술에 취하면 분노에 사로잡힌다고 자기고백을 하는 장면에서 저는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오더라고요. 소소한 재미도 많았습니다. 호떡공장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호떡공장의 풍경과 공장 아주머니들의 대화가 정말 생생했어요. 그런데 사실 경험한다고 생생하게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경험과 상상을 동반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이 소설에는 잘 담겨 있어요. 그런 점이 좋았고 독서의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반면 마지막 촛불집회 장면은 그렇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왜일까 생각해봤어요. 그 장면에서 하태산이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이 터져야 하는데 그 전에 소설 안에서 충분히 감정이 폭발했다가 정리된 느낌이 들었거든요. 오히려 마지막 장면이 소설의 일부가 아니라 작가의 말처럼 들렸습니다. 작가가 이 말을 꼭 하고 싶었구나, 그런 느낌이랄까요. ‘이 장면이 꼭 들어갔어야 했을까’ 싶어 아쉽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하며 이내 수긍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손택수 유년시절 극장에서 상하이 트위스트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주 흥이 넘치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요. 그 흥이 교육제도, 노동현장, 월남전, 광주항쟁, 이런 국가기구의 폭력에 의해 사라졌다가 다시 노동운동을 하면서 되살아납니다. 그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노동운동도 축제 같은 측면이 있구나 하고요. 이런 면이 좀더 강조됐다면 읽는 재미가 훨씬 탄력적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가령 노동문화운동 현장에 있었을 법한 신명이라든가, 소설의 한 축인 호떡공장 노동자들과 나누는 신명 같은 것 말이죠. 이런 장치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요약적이거나 조금 표피적인 느낌이었어요. 분노하고 저항하고 싸우면서도 유머와 해학과 신명이 넘쳐나는 노동소설을 찾아 읽고 싶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정주아 어린 학생들이 이 소설을 잘 받아들였다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건너간다』는 이인휘 본인의 경험을 썼음에도 한국 노동소설이 걸어온 궤적이나 같죠. 작가의 자전적 이력이 한국 노동문학의 역사가 된다고나 할까요. 이 소설에는 『전태일평전』이 어떤 식으로 충격을 줬는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당시 신동엽이나 김지하의 시가 노동현장의 문학청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등이 잘 기록돼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는 생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독자가 노동문학에 다가갈 매개로 삼을 만하다는 건, 작가가 서사에서 힘을 많이 뺐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 윤성희 소설가 말씀처럼 이 소설을 쓰게 한 힘은 내면의 분노일 텐데,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분노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느꼈어요. 특히나 하태산의 노래가 왜 군데군데 들어가야만 했을까, 왜 글이 아니라 노래라는 장치가 필요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존 노동소설의 문법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사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 싶어요. 대의에서 나오는 분노나 결기가 아니라 본인 안의 공허를 표현하길 꺼린다는 뜻입니다. 『건너간다』에는 이인휘 본인의 삶을 향한 회한이나 대중의 무관심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어요. 그리고 그간 돌보지 못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있죠. 이런 사적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한 결과가 하태산의 노래 아닐까 싶었어요. 저는 이런 노동소설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패배의식의 발현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차원에서 본인의 감정으로 채워진 작품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정주아

정주아

손택수 분노가 서사를 밀어가는 역할을 맡고, 비애의 정서가 감성적인 부분을 맡은 것 같습니다. 이 덕분에 개인뿐만 아니라 시대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소설이 나아간다고 봅니다.

 

정주아 작중에서는 노동현장에서 지치고 무기력해진 작가가 다시 소설을 쓰면서 그간의 무의미한 삶에서 활기를 되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기쁨은 시간이 지나며 엄청난 고통을 몰고 옵니다. 소설을 쓰면서 바라본 세계가 여전히 끔찍했기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