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박소란 朴笑蘭

시인.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이 있음. noisepark510@hanmail.net

 

하재연 河在姸

시인. 시집 『라디오 데이즈』『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등이 있음. hahayoun@hanmail.net

 

한영인 韓永仁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문학과 정치’에 대한 단상」 「세계의 불안을 견디는 두가지 방식」 등이 있음. jwhyi@naver.com

 

 

왼쪽부터 박소란, 한영인, 하재연.  Ⓒ 김준연

왼쪽부터 박소란, 한영인, 하재연. Ⓒ 김준연

 

 

한영인 안녕하세요. 박소란 시인과 함께 2017년 하반기 문학초점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하재연 시인을 모시고 이 계절에 주목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박소란 이번 계절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집이 많이 나와서 대상 도서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고른 책들인 만큼, 각각의 특장을 면밀히 소개해드릴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재연 최근에 나온 작품들을 풍성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애란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177_410한영인  김애란(金愛爛)의 네번째 작품집 『바깥은 여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2003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한국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김애란이 등단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등단작 「노크하지 않는 집」을 굉장히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저 그 소설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하숙집에서 엄청난 생경함을 느끼며 막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김애란의 소설을 읽을 때면 함께 나이 먹어가는 누군가를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애틋함을 느끼게 됩니다. 한편 이번 작품집은 김애란이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서사의 외연을 넓혀온 동시에 세계와 대상을 탐구하는 눈의 깊이를 키워왔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데요, 소중한 대상의 상실을 경험하고 그 고통을 감내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도 자주 있었습니다.

 

하재연 김애란 소설이 그려내는 세대감각과 독자들을 공감하게 하는 능력은 탁월한 것 같아요. 신형철 평론가가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라고 했는데, 저는 약간 바꿔서 “김애란 소설의 인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가?”라고 묻고 싶어요. 이는 작가의 문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디테일을 살려내는 솜씨가 뛰어나죠. 「입동」을 보면 작중인물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가는 구조인데, 벽지에서 아이의 글씨를 발견하는 장면에 이르면 독자들이 인물의 내면과 조우하고 동화될 수밖에 없어요. 디테일을 통해 세대의 공통감각을 예민하고 적확하게 묘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박소란 저 역시 같은 세대로서 김애란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작가는 이른바 ‘88만원세대’의 삶과 고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해왔는데, 이제 그 세대의 ‘성장담’을 넘어 삶 일반에 대해 진중하게 접근해간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시선이 깊어진 만큼 현실과 일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도 훨씬 첨예해졌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입동」에서 “우리가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 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33면) 같은 부분에서 그러한 인식이 두드러집니다. 상실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리운 작품 중에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마지막 부분,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266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애도, 나아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아픔을 위무하려는 작가적 태도가 엿보였는데, 이 또한 한층 깊어진 시선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어요.

 

한영인 저는 이번 작품집에서 「건너편」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보면서 「성탄특선」(『침이 고인다』, 문학과지성사 2007)이 떠올랐어요. 「건너편」을 「성탄특선」의 후일담으로 읽었거든요. 모텔을 전전하던 20대 인물들이 이제 10년의 시간이 흘러 제 나이대가 된 거죠. 근데 “우리는 웬만한 일엔 크게 들뜨거나 실망하지 않는 삼십대 중반”(「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245면)이라는 표현이나 “바야흐로 ‘풀 먹으면’ 속 편하고, ‘나이 먹으며’ 털 빠지는 시기”(「건너편」 87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견뎌 도달한 30대라는 게 별 볼 일 없어요. 오빠와 함께 살던 단칸방에서는 벗어나 둘만의 전셋집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사실 삶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죠. 「성탄특선」이 그나마 축제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1224일을 배경으로 했다면 「건너편」에서는 그 흥분마저 다 가셔버린 1226일이 시작되며 소설이 끝나요. 이것이 30대의 삶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소설의 배경인 노량진이 현재를 희생하는 댓가로 미래의 안정과 행복을 도모하는 공간의 은유라고 했을 때 그렇게 도달한 미래 역시 또다시 희생되고 유예되어야 하는 현실에 불과하다는 서늘한 통찰이 작가에게 있는 것 같아요.

 

박소란 성찰과 반성의 기미가 매 작품마다 배어 있어요. “인생의 작은 우연과 돌이킬 수 없는 결과, 교훈 따위 없는 실패를 떠올렸다. 지난 십 년간 자기 삶에 남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이 뭘까 생각했다”(「건너편」 93면) 같은 구절에서 잘 나타나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같은 작가의 ‘성숙’이 우리가 흔히 김애란 고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온 따뜻하고 엉뚱한 상상력, 위트 같은 것을 감쇠하게 만든 듯해 조금은 아쉬워요. 정색하고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다분하니까요.

 

하 재 연

하재연

하재연 세대와 계층의 문제는 김애란 소설에서 계속되어온 테마였습니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공무원시험 준비생의 노량진 생활(「건너편」), 사회에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학교 주변을 배회하는 시간강사의 삶(「풍경의 쓸모」), 한국에서 새롭게 형성 중인 국제결혼가정(「가리는 손」) 등 시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세대와 계층이 나오죠. 그러나 말씀하셨듯이 위트나 아이러니가 많이 빠졌습니다. 「물속 골리앗」(『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같은 작품은 현재적이면서도 동시에 징후적인 느낌 또한 강했습니다. 집이라는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세대의 모습이 잘 드러나면서도 세기말적인 결말의 풍경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징후적이거나 미래에 관한 상징적 메타포의 느낌보다는, ‘이후’에 대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저는 세월호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동」 또한 집과 거주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물속 골리앗」과 연속되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 같은 인물 간의 대화나,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36~37면)라는 묘사는 명백히 세월호사건을 환기시킵니다. 문체에 위트나 유머가 빠질 수밖에 없었던 건 ‘겸손하게 귀 기울이고 듣겠다’는 자세가 강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커다란 슬픔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더 듣고 더 보고 그 슬픔이 가리키는 의미가 무엇인지 끝까지 함께 알아내겠다는 의식’ 아닐까 싶어요. 이 죄의식과도 연관됩니다. 「노찬성과 에반」은 가장 강하게 죄의식에 집중하고 있요. 사실 여기서 죄의식을 가져야 할 사람은 노찬성이라는 아이가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일 텐데, 아이만이 죄의식을 갖는 모습에서 우리에게 작가가 던지는 강한 의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의문에 대한 추궁이 세월호사건 이후 작가의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한영인 맞아요. 세월호를 빼놓고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우울의 정서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위트와 유머가 사라진 자리를 목울대를 울리는 울컥함이 채우고 있지요. 엉엉 소리 내어 울거나 분노하는 대신,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데 꾹 참아버리게 되는, 그런 꽉 막힌 슬픔이 보입니다. 이건 세월호사건을 자신의 내면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인물들이 겪는 곤경과도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해요. 「침묵의 미래」에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132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읽으며 뜨끔했어요. 김애란은 단순히 세월호를 성공적으로 애도한 후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자기 안에서 여전히 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김애란의 ‘우울’은 그런 점에서 작가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윤리적 결과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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