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종훈 金鍾勳

문학평론가. 저서로 『한국 근대 서정시의 기원과 형성』 『미래의 서정에게』 『정밀한 시 읽기』 등이 있음.

splive@daum.net

 

신샛별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절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두가지 행로」 등이 있음.

venus860510@naver.com

 

최진영 崔眞英

소설가.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소설집 『팽이』 등이 있음.

metaphor81@naver.com

 

왼쪽부터 김종훈, 최진영, 신샛별 Ⓒ 신나라

왼쪽부터 김종훈, 최진영, 신샛별 Ⓒ 신나라

 

 

김종훈 안녕하세요. 2018년 여름호 문학초점 사회를 맡은 김종훈입니다. 신샛별 평론가와 최진영 소설가가 함께 자리해주셨습니다. 오늘 오전에 남북 정상 간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이 있었죠. 전 국민적인 관심이 모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꿈같다고 여겼던 비핵화와 종전선언 이후 벌어질 일을 상상하겠죠. 오늘 함께 읽은 책과 우리의 대화도 인식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샛별 특별한 날에 반가운 분들과 이야기 나누게 돼 기쁩니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느꼈어요. 오늘 대화를 통해 남과 북은 세계가 놀랄 만한 미래로, 우리는 작품들과 더불어 다양한 해석들의 난장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최진영 안녕하세요. 저도 아침에 생중계를 보다 나왔는데요, 남북관계를 그린 어떤 영화나 소설에서도 오늘 판문점에서 있었던 한걸음의 넘나듦이 주는 감동을 느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역시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여태껏 남북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그려온 제 상상력이 무척 협소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두분과 이야기 나누다보면 혼자 읽으면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테고 다른 상상을 해볼 수도 있겠지요.

 

 

강연화 『우중산책』(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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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처음으로 다룰 책은 강연화의 소설집 『우중산책』입니다. 제목을 보고 ‘한가로운 산책’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소설’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표제작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상처와 기억에 관한 소설이었어요. 모두가 가진 공통의 상처, 그것을 되새겨주는 이야기죠. 다른 소설에도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계속 읽다보니 ‘편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차례로 배반당하더라고요.

 

신샛별 이 책은 2006년 등단한 작가가 12년 만에 선보인 첫 소설집입니다. ‘문학초점’ 준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놓칠 뻔했는데 읽게 돼서 다행이에요. 저는 「어쩔 수 없이」와 「소주」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입사시험에 거듭 낙방하고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어쩔 수 없이」의 청년과 알코올중독으로 어머니에게 불효를 저지른 「소주」의 사내는 자신과 꼭 닮은 누군가를 만납니다. 작가는 도플갱어 모티프를 활용해 그들 내면에 들끓는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란성 쌍둥이처럼 보이는 상대방과 어울리면서 주인공은 일시적으로 모종의 동류의식을 느끼는데, 이는 상대방에게 의존하면서 동시에 살의를 느끼는 모순적 감정과 얽혀 있어서 불안정하죠. 이러한 의식은 세상에서 배제되고 격리돼 자폐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떨쳐지지 않는 자괴감과 자기 파괴의 상상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지, 또 그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타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불행한지를 가늠하게 해줘요. 이른바 ‘ N포세대’는 인간관계에도 관심을 끊는다는데, 두 소설은 극심한 좌절에 빠져 있는 청년들이 자신을 돌보는 일만 해도 힘에 부친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최진영 저도 첫 소설집이 늦게 나온 편인데요, 그걸 엮으려고 등단작을 꺼내 읽었을 때의 미묘한 감정이 다시 떠올랐어요. 강연화의 등단작 「카나페」가 맨 마지막에 배치돼 있는데, 다른 작품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있어요. 「카나페」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의식하고 쓴 작품 같다면 다른 소설은 마치 자기 이야기를 하듯 자연스럽거든요. 소설과 작가가 더 가깝게 달라붙은 느낌이랄까요. 등단작을 쓴 이후에 자기에게 잘 맞는 화법과 소재를 찾은 것 같아요. 그 온도차가 느껴습니다. 작가가 정말 쓰고 싶었던 건 「어쩔 수 없이」 같은 작품 아닐까 싶었어요. 대화가 혼잣말처럼 읽히기도 했고, 엔딩도 인상적이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외로움을 툭 내던지듯 과감하게 끝내면서 독자를 더 외롭게 한달까요. 소설을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외롭다’ ‘쓸쓸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였어요. 내가 너무 외로울 땐 이 책을 펼쳐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요.

 

김종훈 문장이 짧은 것도 특징이에요. 단단한 단문이 외로움의 감정과 대비되어서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신샛별 단문과 함께 구어체도 특징이죠. 「우중산책」의 남도 사투리는 읽은 후 오랫동안 귓가에 쟁쟁하게 남더라고요. 그런데 이 소설집의 문장들은 거의 환상 속 청자에게 건네는 혼잣말이거나, 내용과 목적을 잃어버린 장광설이에요. 일차적으로는 심각하게 고장 난 인물들의 고독한 내면,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겠으나, 한편으로는 진정한 소통에 실패한 관계가 부려놓은 잔여물처럼 보이기도 해요. 예컨대 「여기, 중마루」에서 주인공을 포함해 ‘중마루’에 모여 끝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 말을 해야 했을까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해야 할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 그들은 중마루에 ‘먼저’ 들른 것 같아요. 긴 침묵 뒤의 한마디가 진실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장황한 수다 끝에 튀어나온 예사의 한마디가 내면의 감옥에서 이제 막 해방된 진심일 수도 있다는 거죠. 소통의 아이러니가 이 소설집의 일관된 주제라고 본다면, 이런 문체적 특징은 캐릭터 형상화만이 아니라 주제의 차원에도 관여하는 것 같아요. 최진영 소설가 말씀대로 이런 점에서도 「카나페」는 좀 외따로 보여요. 작가가 말의 장식적 측면, 즉 과잉이나 잉여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폭로하는 데 흥미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카나페’가 장식이 핵심인 음식이라는 점에 주목이 되기는 하지만요.

 

김종훈 「카나페」는 등단작임에도 어쩌면 첫 소설집에 실리지 못할 뻔했네요.(웃음) 아이러니의 구도가 굉장히 선명한 게 「카나페」예요. 다른 작품은 아이러니를 이루는 두 축이 마주 보기보다는 어긋나 있어 자그마한 틈이 보입니다. 그 틈에서 여운이나 의미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최진영 그래서 다른 작품의 인물이 작가의 분신처럼 느껴진다면, 「카나페」의 인물은 작가와 동떨어진 듯 보여요. 아주 잘 만들어진 인물과 이야기인데, 잘 만들어져서 오히려 친밀감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다른 작품의 인물들보다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면이 있어요. 중심인물이 남성이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나 「소주」의 화자도 남성이고,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그들의 정서와 행동에 여지없이 빨려들었거든요.

 

신샛별 어쩌면 중년의 기혼 여성이 등장하는 표제작 「우중산책」이나 「택시」 같은 소설이 별다른 장치 없이 담담하게 흘러가면서도 깊이를 가지는 것은 그와 관련이 있겠네요. 작가의 연배에서 진솔하게 들려줄 수 있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이 두 작품에 아쉬움이 남았어요. 「우중산책」에는 죽은 오빠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엄마에 대한 딸의 애증과, 그 딸이 결혼 후 전라도 출신의 고졸 여성으로서 시댁에서 당했던 모욕적 상황이 묘사돼요. 딸이 엄마를 용서하고 모녀가 화해에 이르는 여정이 액자 바깥에서 진행된다면, 액자 안에서는 딸이 자신을 포용하지 못하는 남편을 이해하고 아이가 있는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펼쳐지죠. 결국 두 과제가 소설 말미에서 한꺼번에 해결되고 “집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54면)면서 끝나는데, 이런 플롯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딸의 내적 성숙에 오롯이 달려 있어요. 여성의 삶을 둘러싼 부조리와 모순은 하나도 해소되지 않은 채 불행한 운명의 해결이 여성의 자기극복에 내맡겨지는 셈이죠. 「택시」가 기혼 여성의 일탈 또는 파괴의 욕망을 총알택시를 타려는 충동과 강간을 당하는 환상으로 적절히 그려 보이면서도, 그 욕망의 순간성과 수동성을 손쉽게 인정해버리는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적이에요.

 

김종훈 기존의 질서가 바뀔 기미나 체제의 변화를 암시하는 작은 행동이라도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들이 여전히 전제된 채로 있는 거죠.

 

신샛별 ‘마음을 바꿔먹으면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다’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렇지만 이런 논평 자체가 소설과 비슷한 상황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한가로운 이야기이겠지요. 자기가 살아가는 세계를 전복하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자기파괴를 각오해야 하는 괴로운 경험일 테니까요. 하지만 소설에서는 얼마든지 더 전개돼도 좋지 않을까요. 때로 과하다 싶을 만큼 앞서나간 상상이 굼뜬 현실의 우리를 아주 조금 바꾸는 것 같거든요.

 

김종훈 「택시」에서 주인공이 새벽 한시에 남편이 자는 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잖아요. 중요한 것은 이게 일시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거죠. 기존의 완고한 체제를 어쩌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자기를 살아남게 하는 방편을 지속적으로 찾으려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최진영

최진영

최진영 어떤 인물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서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인물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붉은 립스틱을 꺼내 천천히 바른다. 콤팩트로 양쪽 뺨을 가볍게 두드린다”(「택시」 102면) 같은 장면은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듯해요. 파격적인 변화나 기존 질서의 파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조금씩 천천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방식이 저처럼 소심한 사람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적극적 변화나 진전이 없더라도, 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겪을 것을 제대로 겪고 충돌하는 과정을 진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정서적 진동을 느낄 거예요. 그러면서 받아들이거나 체념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지금보다 도약하거나 최소한 지금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몸을 조금 틀어버릴 수도 있고요. 저는 강연화 소설의 인물들이 어느 정도는 신경증을 겪고 있다고 봐서 혼자 있을 때의 저를 자주 떠올렸어요. 아무도 모르고 오직 나만 알고 있는 나. 혼자 중얼거리고 작은 소리나 불빛에도 예민해지고 과대망상에 빠져 불안해하는 나. 그럴 때의 저는 소설 속 인물과 별로 다르지 않거든요. 그래서 소설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유미 『홀딩, 턴』(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