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남상욱 南相旭
일본문학 연구자. 공저 『지금, 여기 극우주의』 『일본, 상실의 시대를 넘어서』 등이 있음.
indimina@hotmail.com
이영광 李永光
시인.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아픈 천국』 『나무는 간다』 『끝없는 사람』 등이 있음.
leeglor@hanmail.net
황정아 黃靜雅
문학평론가. 저서 『개념 비평의 인문학』, 편서 『다시 소설이론을 읽는다』 등이 있음.
jhwang612@hanmail.net

왼쪽부터 이영광, 남상욱, 황정아 Ⓒ김준연
황정아 더운 날씨에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2018년 하반기 문학초점을 이영광 시인과 함께 진행하게 된 문학평론가 황정아입니다. 가을호에는 일본문학 연구자이신 남상욱 교수를 초대손님으로 모셔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지난호에 비하면 진행자들의 평균 연령이 ‘다소’ 올라간 것 때문에라도 좌담 분위기에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이영광 반갑습니다. 한꺼번에 여러권을 읽어서 공부가 많이 됐습니다. 독서 중에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털어놓고, 또 배우고 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상욱 일본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는 저에게 본격적으로 한국문학을 읽고 두분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동시대 한국문학에 대해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 설레면서도 두렵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정영선 『생각하는 사람들』(산지니)
황정아 소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볼까요. 이번호에는 유난히 다양한 성격의 세권을 고르게 되었는데요, 먼저 정영선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1997년에 등단해서 주로 부산을 기반으로 꾸준히 활동 중인 작가예요. 이번 작품은 ‘탈북자’ 서사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죠. 작가가 하나원(통일부 소속의 북한이탈주민 교육기관. 정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의 교사로 자원해서 직접 취재했다는 인터뷰를 읽었어요. 그간 탈북자 소설은 대체로 국경을 넘나드는 월경서사나, 난민 혹은 디아스포라 같은 범주에 속했죠. 이제는 탈북자들의 자전적 서사까지 더해져 다양한 ‘탈북문학’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탈북자들의 북한에서의 삶, 탈북 경위 등 과거를 구구절절 들여오지 않고 탈북자들의 현재 삶만으로도 장편서사가 가능해졌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영광 탈북자들이 한국이라는 낯선 체제에 힘겹게 적응해가는 과정에 더해,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 또한 잘 짚어낸 작품이에요. 한국사회에 비판적 시각을 지닌 인물인 병욱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나 황금만능주의 등 남한사회의 부패상을 드러내는 데서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주영의 가족사가 곧 분단의 비극적 현재인 만큼 결말에서 암시된 분단극복의 실마리 또한 인상적이었고요. 체제에 소속된 기관원인 ‘코’ 같은 인물을 통해 과도한 민족주의적 접근을 자제하고 탈북자들의 실태를 개연성 있게 그려보려 한 점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남상욱 뭔가 꿈틀대면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남조선은 공화국에 비하면 천국이긴 했다. 그런데 불쑥불쑥 화가 났다. 왕궁 같은 백화점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그랬다. 공화국에 있을 때와는 다른 공포였다. (…) 한국은 사람을 쓸쓸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67면) 같은 대목을 읽으면 ‘탈북자를 어떻게 관리할까’만 생각하는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탈북자들도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서울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지하철이었다. 어디를 가든 한 시간 안에 닿을 수 있었다. (…) 미로였다. 남조선은 이 교통망만큼 미로였다. 무질서하다 싶다가도, 질서가 있고 다들 돈독이 올라 눈이 뒤집혔다고 생각되는데 또 자본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었다”(119면) 같은 대목도 ‘그들’ 눈에 비친 한국사회를 생각하게 합니다. 탈북자들이 ‘이 체제에 적응할지’ ‘다시 돌아갈지’라는 선택지에서 늘 고민한다는 게 정말인지 궁금하네요.

황정아
황정아 기본적으로 탈북자를 이해하고, 편견과 차별을 완화하려는 문제의식이 담긴 소설로 보입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북한혐오 정서도 표면적으로는 줄어드는 듯하지만, 그 변화가 얼마나 실제적인지 보여주는 시금석이 탈북자들의 한국생활이겠지요. 이 소설은 그들의 삶이 여전히 어떤 틀에 갇혀 있고 탈북자라는 분류가 하나의 계층처럼 작용한다는 걸 일러줍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려는 의도가 다소 단면적인 서사로 흘러버린 감이 있습니다. 인물 개개인에 대한 섬세하고 분석적인 접근이 안 된 것 같아요. 물론 개별 고통을 천착하는 것도 그것대로 상투화될 가능성이 있지만요. 이만큼 촘촘한 스토리를 구성해낸 건 돋보이지만 아쉬운 묘사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수지 같은 캐릭터요.
이영광 수지는 북한사회의 눈으로 보면 체제를 부정한 배신자죠. 북한체제에 강한 반발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미숙하고 순진합니다. 병욱이 한국사회와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반면에, 수지는 그 자본주의를 자유로 착각하는 상태죠. 인물을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자꾸 울게 만드는 데 그친 것 같아 아쉬웠어요. 입체성이 떨어지는 것은 코나 주영도 비슷해요. 개연성 측면에서 코는 좀더 악랄해야 할 것 같고, 주영도 좀더 영악해야 할 것 같아요. 코와 주영은 애정선이 흐르는 관계인데, 주영이 코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수동적일 이유가 있을까요. 유니원(탈북자 교육시설) 소속이면서 탈북자들한테 보이는 일방적인 연민도 좀 걸리는 대목입니다.
황정아 국정원 댓글알바까지 했던 주영이 마지막에는 정말 선생님다운 면모를 보여주죠. 코가 간첩으로 엮으려는 수지를 지켜주려고 하고요. 그 변모가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수지와는 코를 매개로 한 일종의 삼각관계였으니까 더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법도 한데, 대뜸 “말을 찾아 날아온 한 마리 파랑새”(216면)라며 선생이자 언니 자세로 바뀌는 게 좀 어색했어요. 수지는 씩씩하고 강단있지만 또 순종적이고 ‘여성적’이기도 하다는, 북한 여성에 대한 기본 이미지를 응축해놓은 느낌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순진한 팜므파탈’인데다 애초에 출신을 숨기고 심사를 통과할 정도로 대담한데 그런 면모를 세밀하게 조명하지는 않았어요. 반면에 유니원 안에서의 몇가지 에피소드들은 굉장히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남상욱 두분께서는 이 작품의 인물에 불만이 많은 듯하지만 저는 하나원이라는 수용소의 안팎을 이런 형태로라도 연결 지었다는 것을 좋게 평가합니다. 무라까미 류우(村上龍)가 『반도에서 나가라』(2005)를 쓸 때 100회 이상 탈북자 인터뷰를 했다고 해요. 경제적 위기를 겪는 북한이 일본의 일부를 점령한다는 내용의 미래소설인데요, 일본을 점령하러 온 군인들의 내면 묘사에 탈북자 인터뷰를 이용한 거죠. 다양한 탈북서사를 참조하기도 했고요. 사실 그 이야기들에는 전형성이 있죠. ‘고난의 행군’ 시절에 자기 아이를 잡아먹었다든가 하는 괴담까지 포함해서요. 그런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습니다.
황정아 인육 먹는 이야기가 주영의 하나원 수업시간에도 등장하는데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실은 탈북자들한테도 도시괴담 같은 풍문인 거죠.
이영광 할머니의 삶에서 나아가 그 후손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서사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과 북을 잇는 고리라는 생각이 들고, 현실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유의미한 상상을 하게 해요.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서술도 좀더 실감나게 이루어졌으면 좋았겠지요. 후손들이 만나는 과정이 다소 치밀하지 못한 느낌이에요. 소설의 제목이 ‘생각하는 사람’인 것도 흥미로워요. 국적도 감정도 다 인간의 증거지만, ‘생각’을 가장 전면에 내세운 거잖아요. 탈북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인간으로서 어떤 반응을 하며 사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암시적인 제목이었어요. ‘같은 인간’이라는 주제를 담아내고자 한 듯합니다.
황정아 저는 가족서사로 흘러버린 게 못내 아쉽습니다. 할머니의 남아선호도 그렇고, 결국 또 가족에 의지해서 풀어가야만 하는 걸까요. 이때의 가족이 ‘민족’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겠고, 혈연적 관계를 포함해 민족이라는 범주가 그간 너무 억압되어온 면이 있기는 합니다. 남북의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게 되는 요즘에는 민족이라는 개념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 소설이 가족서사로 수렴되는 양상은 익숙한 것의 반복으로 느껴졌습니다.
남상욱 결말이 아쉽기는 하죠. 다른 대안들을 조금 열어놨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수지나 창주의 미래를 좀더 그려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병욱이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 아닌 진짜 혁명을 어떻게 할지 한번만 더 고민해봤다면 정말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고요. 저는 그 인물들과 조금 더 함께 고민하고 갈등하고 싶거든요.
김봉곤 『여름, 스피드』(문학동네)
황정아 김봉곤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는 퀴어서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작품의 성격을 규정해버리면 독서 방식이 제한될 우려가 있지만, 그럼에도 최근 퀴어서사가 부쩍 많이 창작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것 같아요. 등단작이면서 자전소설을 표방한 「Auto」를 보면 김봉곤은 퀴어적 주체성을 글쓰기의 중심에 놓겠다는 의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