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소연 金素延
시인.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있음. catjuice@empas.com
김영찬 金永贊
문학평론가. 저서로 『근대의 불안과 모더니즘』 『비평극장의 유령들』『비평의 우울』,역서 『성관계는 없다』』(공역)『근대성과 페미니즘』(공역) 등이 있음. youngcritic@kmu.ac.kr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백지연 이번호 문학초점 좌담에서는 평론가 김영찬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예리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작품에 직핍하는 선생님의 평문을 평소 좋아해온 독자인데요. 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김영찬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작품들 읽고 격의 없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로 생각하고 왔어요. 한편으론 시집을 읽고 이야기하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이 끌리기도 했고요. 어릴 때부터 나름 시를 즐겨 읽고 좋아했는데 정작 등단 후로는 오랫동안 시의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입장이 된 것 같아요.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열심히 따라읽지 않던 입장이라서 걱정도 되고 김소연 시인 앞에서 시 이야기를 하려니까 떨리기도 합니다.(웃음)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김소연 저도 책 읽는 과정은 즐거운데 정색하고 좌담을 나누는 게 어렵습니다. 특히 평론가 앞에서……(웃음) 이번 계절에는 책 한권 한권이 모두 강렬해서 독서만으로도 버거웠습니다. 지난호에는 김정환(金正煥) 시인께 기대면서 자유롭게 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김영찬 선생님 믿고 편하게 소설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왼쪽부터 김소연, 김영찬, 백지연. Ⓒ 이영균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기록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백지연 그동안 문학초점에서는 시와 소설만을 다뤘는데 이번에는 구술서사를 함께 다뤄보려고 합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육성을 기록한 구술기록집입니다. 세월호 관련하여 최근에도 『엄마, 나야』(문학동네 2015),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 2016), 『4월이구나, 수영아』(서해문집 2016) 등이 출간되었지요. 문학의 범주를 넓게 본다면 구술기록 및 르뽀르따주는 서사의 중요한 갈래이자 자원인데요. 문학사에서는 이것이 기록문학이라는 범주 속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고요. 특히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청소년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김영찬 사건 자체를 기록하고 고발하는 것과는 다른 책이었는데요. 참담한 사건을 겪은 후 남는 감정의 흔적, 삶의 파장들, 힘겹지만 그 자리를 딛고 일어서려는 다양한 몸짓들, 목소리들이 담겨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개인적으론 세월호사건과 관련된 여러 증언과 기록을 읽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어요. 이 책도 세월호사건으로 친구와 형제를 잃은 아이들의 생생한 트라우마가 때론 담담하고 때론 천진한 어조를 뚫고 고스란히 전해져와 여러번 멈칫하고 책을 덮었다 다시 읽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렇게 힘겹게 읽으면서, 의외로 나 스스로 용기랄까 그런 걸 가질 수 있게 되더라고요. 어떤 측면에서는 읽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적극적인 응답의 행위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경험을 했습니다. 희생당한 친구와 형제자매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고통과 자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학생이자 남아 있는 자로서 뭔가 해야겠다는 애틋한 의지, 용기 같은 것들을 드러내고 있어요.
김소연 세월호 관련 책들을 여러권 읽었는데 같은 사건을 다룬 기록인데도 읽을 때마다 이건 내가 몰랐던 이야기구나 합니다. 이 책은 십대 청소년들에게 시각이 잘 정돈된 어른 청자가 귀를 기울여주는 기획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자의 문학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존학생과 그 형제자매 들이 지금까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개개인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어 곁에서 지낸 듯한 실감도 납니다. 세월호사건 이후 이런 얘기는 처음 해본다고 고백하는 친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 아이들도 친구의 발화에 귀 기울이는 청자가 되겠지요. 물론 이 책을 읽는 우리도 드넓은 청자이고요. 저는 이 책을 통해 문학에서 청자의 세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도 됐던 것 같아요.
백지연 구술기록의 경우에는 특히 청자와 화자 간의 정서적 몰입이 굉장히 섬세하고 깊게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표현 하나하나에서 기록작가의 깊은 고민이 와닿았어요.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이름을 쓸 때도 구술자의 요구에 따라 실명과 가명을 자유롭게 쓴 대목이라든가 생존학생을 대체할 단어를 쉽게 찾지 못하여 긴장 속에서 이 표현을 쓴다고 설명하는 대목이요. 더불어 이 책에는 현실적으로 발화할 수 없는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스며 있는데요. 친구들, 형제자매들의 고백을 통해서 오히려 발화가 불가능한 희생학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상상됩니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을 때 가슴이 더 쿵쿵 뛰며 깊은 울림이 느껴졌고요.
김소연 선장이 사형선고를 받아야 한다는 서명에 자기 이름을 적을 때 손이 벌벌 떨렸다고 고백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명백한 죄인이지만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단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더군요. 문학이 자주 던져온 질문과 같은 선상에 서 있구나 했습니다.
김영찬 희생과 위로에 대한 통념적인 서사가 묻어왔고 억압해왔던 목소리들, 미세하게 요동치는 아이들의 내면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더라고요. 한편으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이들 수준에서의 윤리감각까지도 아주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도저히 발화할 수 없었던 주체의 목소리, 억압되었던 목소리,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생각하게 만들고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억눌려왔던 아이들의 아픔과 그걸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안간힘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겹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저 자신이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책과 함께 김소연 시인도 참여하신 『엄마, 나야』도 읽었는데요. 이 시집도 ‘말하기’와 ‘듣기’라는 행위 자체를 적극적으로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좋은 사례로 다가와요. 그런 듣기와 말하기가 치유나 위로, 연대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백지연 저도 『엄마, 나야』를 읽으며 문학과 증언은 어떻게 만나는가를 생각해봤는데요. 육성시의 경우 참여한 시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엄마에게 들려주는 시를 쓰지만, 그 바탕에는 시인 각자의 고유한 세계와 언어가 있고요.
김소연 『엄마, 나야』 출간 전에 ‘생일시(生日詩)’ 쓰기에 참여한 시인들 몇몇이 좌담을 했습니다. 시인들은 문학한다는 자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그 아이와 내가 분리되어 그 아이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한계와 번번이 만났고, 그럴 때 갈등 없이 기꺼이 몸에 밴 문학적 자의식을 내려놓고 생일을 맞는 그 아이가 되려고 했다는 겁니다. 뭐라도 하고 싶다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욕구가 그 시작이었고요. 근데 쓰고 난 후에 저마다 아팠대요. 저도 쓰고 나서 한 이틀 몸살을 앓았거든요.
김영찬 문학적인 영매로서 자기를 내놓았던 시인들이 겪었을 책임감과 고통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듣기와 쓰기와 읽기의 행위가 겹쳐지는 그런 복합적 과정이 고통에 대한 이입을 위로와 치유로 전환하는 걸 가능하게 했다고도 할 수 있겠죠.
김소연 『엄마, 나야』 작업을 하고 유가족 농성 현장에 찾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위로라는 것이 희한한 방향성을 가진다는 겁니다.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거든요. 위로한다고 다가왔던 사람들한테 아이들이 상처받는 장면도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 많잖아요. 위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도 이 책을 통해 세세히 배웠네요.
백지연 책을 읽고 나면 세월호참사가 우리 사회의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학생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깊게 와닿습니다. 기록서사의 미학은 결국 ‘관점’에 있다는 말도 있는데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관습적인 형상화에 가두지 않고 복합적인 시야에서 드러내려는 시도가 필요하죠. 주제를 공론장으로 확장하고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허구적 서사의 형식 못지않게 글쓰기의 형식이 다채롭고 도전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김영찬 이 구술기록집이 그런 시도의 소중한 성과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참사 이후 어른들의 서사가 얼마나 무능했는가를, 그리고 한편에서는 이 “허락받지 못한 애통함”(345면)의 목소리들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억압해왔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이 점은 사실 우리 문학에도 중요한 문제제기가 될 것 같아요. 기성 문학의 언어와 상상력이 낭패와 무력감에 빠져 있을 때 그게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을 보란 듯이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거든요. 고통과 피해의 서사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의 결들과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내일의 ‘동료시민’으로서 아이들의 서사와 윤리감각 같은 것들 말이죠. 이 모든 성과는 아무래도 구술기록의 출발점인 ‘듣기’에서 비롯되는 거겠죠. 그 점에서 이 책은 ‘나’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몸을 낮춰 귀 기울여 들어주는 행위가 문학적 행위의 출발점일 수 있다는 잊기 쉬운 진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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