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은형 韓銀炯
1979년 경기 수원 출생.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장편소설 『거짓말』 등이 있음. holypool@gmail.com
인간의 기쁨
이 사람을 보라. 여자는 남자를 보았을 때, 이 수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 누가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야자수가 요동쳤으므로 더 극적으로 느껴졌다. 남자는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공포영화에서의 점프컷처럼 남자가 돌연 여자의 눈앞에 솟아났기에.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골몰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끝없이 솟아나는 낙타의 혹과 닮은 굴곡진 지형 때문이기도 했다. 오르막길인가 하면 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내리막길인가 하면 어느새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주 오는 서로를 볼 수 없었던 거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출몰이라고 해야 하나? 여자는 단어를 고르는 데 신중했다. 시인이기 때문이었다. 정식으로 등단했다는 의미에서의 시인은 아니었다. 여자가 다니는 시창작교실의 선생은, 꽤나 알려진 시인인데다 누군가에게는 미남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그 남자는, 그 어느 누구라도 시를 쓰기 시작한 순간 이미 시인이라고 말했다. 여자는 그 말을 들었을 때 픽 하고 웃어버렸는데, 시창작교실의 다른 멍청한 여자들도 시인이라는 게 기분 나빠서기도 했고, 그 말이 수강생들의 환심을 끌기 위한 그러니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같기도 해서 그랬다. 하지만 그 말은 그녀도 모르게 그녀의 안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여자는 변했다. 전체를 보기 전에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각하자 별것도 아닌 것들이 별것이 되었다. 그날 남자와의 만남은 여자의 그 감각적 훈련에 어떤 전기를 마련해주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의 손이 먼저 보였다. 정확히 말한다면, 손끝에서 흔들리는 뭔가를 보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윽고 여자는 남자의 하반신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남자가 생각보다 키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끝에서 흔들리고 있던 게 나비넥타이임을 알게 된 것도,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남자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흔들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거의 동시였다. 남자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나비넥타이를 흔들지 않는 손으로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아주 천천히 풀었기 때문에 여자는 단추가 하나씩 풀리면서 남자의 가슴이 점점 더 드러나는 것을 이렇게 숫자를 세며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랬다. 여자는 감상하고 있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여자보다도 더 자기 자신에게 몰두해 있었고, 여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가 알고 있음을 여자에게 표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그러고 있는 게 여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여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그 남자가 자신을 위해서 나타난 사람 같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의 머리, 애초에 숱이 많지 않았던데다 급격히 빠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머리는 뒤로 빗어 넘겨져 부풀려 있었다. 얼마나 단단하게 고정시켰는지 바람이 부는데도 꼼짝하지 않았다. 뭔가 예술적인 일을 하는 사람 같았다. 성악간가? 나비넥타이를 했으니까 틀림없어. 여자는 확신해버렸다. 여자가 스스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꼭 예술가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술가라고 해서 그녀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가 찾고 있던 그런 사람이었다.
“위로 가면 뭐가 있나요?”
그래서 여자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신라호텔이 있다는 것은 여자도 알고 있었다. 여자의 숙소였고, 제주에 올 때 이곳에 묵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그의 표현법이 궁금했다. 이 길에서, 더욱이 저런 차림을 했다면 남자는 신라호텔에서 오고 있는 것이 확실했기에, 그 이상이 궁금했다.
“네?”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런 상태를 보면서도 길 같은 걸 물을 수 있다니. 못 배웠다, 거칠다, 촌스럽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는 근시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봤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자. 카메라를 목에 매달고 다니면서 뭔가 심오한 생각에 빠져 있다는 표정을 연출하고 그런 자신에게 ‘예술하시는 분이신가봐요’라며 누군가가 말 걸어주기를 원하는 시간이라면 많고 많은 여자. 외롭고 불쌍한 여자. 남자는 그런 여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었다.
“저 길 위에요.”
남자가 속마음을 표정에 다 드러낸 것은 아니었지만 여자는 기분이 상했고,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며 또 이렇게 말했다. 다시 묻지 않는다면, 그래서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않는다면, 기분이 더 나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오기’라고 부르는 그런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이렇게 말하고 보폭을 크게 해서 걷기 시작한 남자를, 여자는 보고 있었다. 기분이 나쁜 와중에도 듣기 좋은 목소리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또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와중에도 성악가가 틀림없을 거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여자는 그 자리에 서서 남자가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길의 굴곡에 남자는 또다시 파묻혀버렸다. 그래서 남자를 만난 건지 아닌 건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여자의 몽상 속에서 벌어진 일인지 여자는 확신할 수 없었고, 그 모호함에 여자는 가슴이 뛰었다.
이국적이고, 환상적이라는 느낌에 여자는 사로잡혔다. 바람은 더 세게 불기 시작했다. 가로수로 심긴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웅장하다고 생각했고, 이 세계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거대한 신전(神殿) 안에 있는 것 같다고도. 초현실적이야!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기특해하면서 수첩을 꺼내 방금 느낀 감상들을 적었다. 여자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그렇게 여자의 스물세번째 사람이 되었다. 여자가 시창작교실에 나가기 전에 수업을 들었던 가죽공방에서 만든 염소가죽으로 된 여자의 보라색 수첩에는 스물두명의 사람이 들어 있었다. 옷차림을 묘사하는 건 기본이었고, 전화 통화를 받아 적기도 했으며(여자가 들을 수 없는 상대의 전화는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스쳐 지나가는 척하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가장 대담한 짓은, 뒤를 밟은 것이었다. 열아홉번째 사람이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소리를 냈으므로 그 사람을 따라 자신의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여자는 심장도 함께 옮겨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쓸 소재를 얻기 위해서 탐정 일을 하는, 어느 무명 소설가가 주인공인 미국 드라마를 보고 나서였다. 소설가의 책상에는 커트 보니것과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미국적이라고 여겨지는 소설가들의 책이 널려 있었는데, 여자는 그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게으르거나 무신경해서는 아니었다. 탐정소설을, 탐정소설이라고 여겨지는 그 소설들을, 읽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런 것들은 여자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여자는 시를 쓰고 싶었다.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가 하고 다니는 일은 시보다는 소설 쓰기에 적절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걸 잘 몰랐고, 자기 방식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시창작교실에 등록한 수강생들에게 첫 수업에서 인상 좋은 그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가정을 버리세요. 강의실에는 동요가 일었고, 어느 정숙한 여자는 손수건을 꺼내 인중에 가져다 댄 후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나가기도 했다. 여자는 ‘가정을 버리라’라는 그 말을 들으며 강사가 제법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말대로 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여자에게는 버릴 가정이 없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시인은 말했다. 가정을 버릴 수 없다면,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그도 아니라면 감정을 깊게 느껴야 하고. 여자는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깊이 느끼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