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진영 崔眞英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일주일』,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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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쓸모

 

 

컨디션 최상의 난자와 정자를 안전하게 결합시키기 위해 모부는 섹스 없이 안나를 만들었다. 당시 유전자 편집의 기본 옵션은 ‘-3 +2’였다. 모부는 안나의 배아에서 비만, 주의력 결핍, 알코올중독의 가능성을 없앴고 XX의 눈동자와 XY의 코를 선택했다. 디자인의 마지막 단계에서 모부는 성인이 된 안나를 3D 모델링으로 확인했다. 모부는 자기들이 확인한 그대로 안나가 성장하리라 믿고 비용을 지불했다. 이제는 옵션에 제한 없이 디자인하는 만큼 돈을 더 내는 추세다. 유전자 편집의 부작용 사례가 다양하게 밝혀진 만큼 안전이 확보된 편집 또한 증가했으므로. 물론 신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배아 디자인을 반대하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주 먼 옛날 피임이나 인공수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유전자 편집이 불법이던 시대에는 분위기, 향기, 말투, 태도, 소지품, 명성 그리고 사는 곳이나 자동차 종류 등으로 부자와 빈민을 구분했다. 이제는 외모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갤럭시존 인간은 외모와 체형이 대체로 비슷하다. 최고급 디자인을 거친 그들은 건강하고, 키 크고, 날씬하다. 유행에 따라 그들의 외모에도 미묘한 세대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통틀어 세련되다. 타운존 인간은 갤럭시존 인간을 바로 알아본다. 하지만 그들 개개인을 분간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목소리, 눈동자, 개별적 특징 등을 눈여겨볼 시간. 물론 갤럭시존 인간끼리는 서로를 바로 구분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교류한 그들은 각자의 차이를 모를 수 없다.

갤럭시존, 타운존, 노고존 또한 외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고층 빌딩과 정돈된 저택,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쾌적하고 안전한 공원, 곳곳에 조성된 울창한 숲과 지하에 설계된 대규모 벙커, 일정 구획마다 대형 공기청정기를 갖춘 갤럭시존에는 전신주가 없다. 그곳의 새들은 전신주가 아닌 높은 나무에 집을 짓는다.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만이 그곳의 도로를 사용할 수 있다. 도로는 겨울에도 얼지 않고 홍수에도 잠기지 않는다. 타운존은 갤럭시존 외곽을 울타리처럼 둘러싸며 빼곡하고 넓게 포진되어 있다. 그곳의 대중교통은 뛰어나고 편리하다. 인구밀도는 높고 대기질은 나쁘다. 외식, 유흥, 쇼핑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은 포화상태다. 자녀 없이 성인으로만 구성된 가구가 많은 한편 자녀가 있는 경우 모부들의 교육열은 높다. 갤럭시존 인간들은 관광을 목적으로, 일부는 불법을 합법적으로 저지르기 위해 타운존을 드나든다. 그들은 타운존에서 각종 레저를 즐긴다. EX-AI 투어로 불편을 체험하고 레트로 감성을 경험한다. 캠핑이나 암벽등반, 낚시처럼 고전적인 취미생활도 즐긴다. 타운존에 대규모로 조성된 각종 거리(까페거리, 클럽거리, 도넛거리, 마라탕거리, 야시장거리 등등)에서는 탄소와 쓰레기를 배출하며 ‘인간적인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타운존 인간들도 갤럭시존에 돈을 쓰러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고급을 체험한다. 한편 노고존은 지방에 산발적으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노고존에 사는 사람만이 그곳을 제대로 알 것이다.

 

*

 

타운존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비교와 평가. 그것이 있기에 타운존 인간들은 행복하고 불행하다. 따돌리고 협력한다. 숭배하고 혐오한다. 목표를 세우고 자살한다. 타운존에 사는 이상 누군가보다 부족한 인간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안나의 이웃은 안나가 또래에 비해 통통한 편이라는 말을 집요할 정도로 자주 했다. 튜터는 세밀하게 작성한 그래프를 제시하며 안나가 평균에 비해 집중력이 부족하고 주의가 산만하므로 지속적인 악기 레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모부는 안나가 카페인음료에 중독될까봐 걱정이 많다.

안나는 어릴 때부터 피부질환을 달고 살았다. 만약 자기를 직접 디자인할 수 있었다면 비만 대신 피부질환을 없앴을 것이라고 안나는 생각했다. 안나의 모부는 종종 후회하는 소리를 했다.

안나를 좀더 늦게 가질걸. 그랬다면 훨씬 다양하게 디자인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너무 성급했어.

디자인센터를 잘못 골랐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진 게 아무것도 없잖아? 뭐든 가격 대비인 거야. 무리를 해서라도 갤럭시존 센터로 갔어야 했어.

 

안나는 어릴 때 다음과 같은 상상을 했다.

디자인이 없었다면 나는 어떤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디자인이 없었다면 안나는 없다.

 

노고존에서는 배아를 디자인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 내분비장애나 심혈관질환처럼 기본적인 기저질환조차 제거하지 않는다고. 안나는 그들의 용기 또는 무지가 두려웠다. 그들은 운명에 맞서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안나는 타운존 생활에 불만이 많았지만 노고존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인터넷에는 안나의 영상이 많다. 모두 모부가 찍어 올린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 일상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업로드하는 현상은 늘 있었다. 유행하는 플랫폼이 달라질 뿐이었다. 소셜미디어는 타운존의 특색인 비교와 평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안나의 모부는 돈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채널을 운영하진 않았다. 안나를 사랑해서, 안나의 모든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 싶어서, 어쨌든 남들도 다 하니까,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보일까봐 했다. 모부는 주로 안나의 처음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안나의 탄생, 첫 목욕, 첫 분유, 첫 옹알이, 첫 감기, 첫 병원 진료, 첫 이유식, 첫 생일, 첫 훈육, 첫 직립보행, 첫 배변 연습, 첫 달리기, 첫 자전거…… 인간들은 추천을 누르고 댓글을 남겼다. 그중에는 안나를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는 인간도 있었다.

—사정이 안 돼서 아이를 만들지 못했는데 안나를 보면 꼭 내 아이 같아요.

—안나를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너무 허전하고 쓸쓸해요.

—안나를 보고 있으면 아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안나 예방주사 맞을 때 되지 않았나요?

—아이 이마에 상처는 뭔가요? 조심했어야죠.

—이유식을 프리미엄으로 바꿔야 할 듯.

안나를 온라인에서 키우는 캐릭터처럼 생각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들은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댓글로 남겼다.

—아이돌댄스 따라 하는 영상은 없나요?

—잠꼬대하는 모습 보여주세요.

—캐릭터 점프슈트 입혀줄 수 있어요? 안나는 토끼 슈트 진짜 잘 어울릴 텐데!

—아이에게 청양고추 먹여보세요.

그들은 질문했다.

—안나 디자인은 얼마나 들었나요?

—안나 신발 브랜드 뭔가요?

—안나 공부는 언제부터 시킬 건가요?

안나는 다섯살 때부터 글자를 읽었다. 그러나 댓글에 담긴 자세한 의미까지 이해하진 못했다. 특정 댓글이 자기를 공격하고 깔보는 것만 같다고 느꼈을 때 안나는 모부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야? 모부는 대답했다. 네가 예쁘다는 뜻이야. 거짓말이라는 걸 알기까지 오년 걸렸다. 클래스의 남자아이가 댓글과 똑같은 말을 안나에게 했고, 다른 애들이 웃으면서 기분 나쁜 제스처를 취했고, 안나 옆에 있던 친구가 그 말의 속뜻을 알려줬다. 그날 안나는 동영상의 댓글을 모두 찾아봤고 모부에게 따져 물었다. 모부는 그 또한 관심이라고, 관심을 천박하게 표현한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안나는 촬영을 거부했다. 모부가 영상을 찍으려고 하면 도망갔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기 방을 보여주기 싫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모부는 안나가 거부하는 모습을 찍어서 ‘첫 촬영 거부’라는 제목으로 업로드했다. 안나가 말대꾸하는 장면, 소리 지르는 장면,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장면, 마침내 서럽게 우는 장면. 그 영상을 사람들이 좋아했다. 조회수가 수십만이었다. 덩달아 다른 영상 조회수도 늘었다. 모부는 당분간 영상을 찍지 않겠다고 안나를 달랬다. 거짓말이었다. 모부는 카메라를 감추고 몰래 안나의 일상을 찍었다. 안나의 자연스러운 거짓말, 애교, 질투, 투정을 업로드했다. 모부는 안나의 촬영 거부가 치기 어린 어리광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영상을 남겨준 자기들에게 분명히 고마워할 거라고 믿었다. 모부는 안나를 사랑했다.

 

*

 

이제 안나는 열다섯살. 모부는 건강한 정자와 난자를 만들기 위해 식단 조절과 운동을 시작했다. 둘째아이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타운존에서 둘째까지 낳는 건 흔치 않은 일. 그들의 결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몇년간의 일을 간략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회계봇 관리자였던 부는 삼년 전 직장을 잃었다. 부의 자리마저 AI로 대체된 것이다. 회사에는 AI 관리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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