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인권운동, 그 위기와 기회

 

 

김형태 金亨泰

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1. 혼돈의 시대

 

인권이 ‘운동’ 차원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 10년 사이의 일이다. 1789년 프랑스인권선언은 이미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지 아니하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국가란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로크(J. Locke)와 루쏘(J.J. Rousseau)의 생각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국가에서는 국가 부문과 별도로 사회나 개인이 인권보장을 목적으로 운동을 벌일 필요가 없다.

우리의 경우도 헌법상으로는 국가의 목적이 국민의 인권보장에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1948년 정부수립 이래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국가야말로 인권침해의 장본인이었으니, 이 시기 우리 사회에서 인권운동이란 곧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운동을 뜻했다. 그후 1987년 6월 민주화투쟁, 노동자대투쟁을 전후한 10년 동안 인권운동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변혁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93년과 98년 이른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변혁운동이 퇴조하고 시민운동이 급성장함에 따라 인권운동은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참여연대·환경연합 등 시민단체가 각광을 받고 시민운동은 제5의 권력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총선시민연대의 기자회견이 TV에 생중계되는 상황이니 2000년대는 가히 시민운동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처럼 시민운동이 급성장한 데 반해, 그 일부문인 인권운동은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다. 총선시민연대가 한창 주목을 받던 지난 3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인권운동단체로 손꼽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내에서는 「민변의 위기, 그 원인과 대책」이라는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뒤쫓아가지도 못하고, 사회적 관심은 점점 줄어들며, 회원수는 폭증하는데 활동회원은 감소하고, 무엇보다도 시국사건 변론이 줄어들면서 자기정체성조차 상실해간다는 것이 요지였다.

방현석의 소설 「겨울 미포만」(『창작과비평』 1997년 가을호)은 현재 인권운동이 맞고 있는 위기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왜 우리만 이 짓을 하고 싸워야 하죠? 2만 2천명 중에 2만 1750명이 가만히 팔짱끼고 앉았는데.(…)자기만 잘살겠다고, 성과급 타서 아반떼에서 쏘나타로 바꾸겠다고 설치는데 우린 뭐죠?”(90면) 10년 전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는 투쟁을 벌인 현대중공업노조는 지난 97년 1월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전국적 파업에 2만 2천명 조합원 중 겨우 250명만이 참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방현석은 변혁이니 공동선이니 하는 목표를 내던지고 개인의 이익에 매몰되어가는 노조원들의 행태에 대해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대처한 ‘최이현’을 비판하며 “박을 때 다 같이 박는 집단주의, 그것 없이 무엇으로 우리가 사람 구실 한번 해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어?”(102〜103면)라고 물음으로써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감옥에 장기수가 없고 공안수사기관에서 행해지던 고문이 현저히 줄었으며 변론해줄 시국사건이 없어져간다 해서 정체성의 위기마저 겪는 민변이나, 오로지 개인의 경제적 이익에 매몰되어가는 노조 모두 인권운동의 혼돈시대를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과연 인권운동이 방향성을 잃고 혼돈에 빠져 있어도 좋을 만큼 우리의 인권 현실은 개선된 것인가. 인권운동의 상황은 어떠하며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 전망과 대안은 있는가.

 

 

2. 민주화의 진전과 인권 현실

 

생명권, 신체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등은 UN이 분류한 자유권에 속하고, 노동의 권리, 노동단체권,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건강, 교육권 등은 사회권의 영역이다.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최소한의 형식적 합법성을 얻은 노태우정권이나 민간 출신의 김영삼정권을 거치면서 과거의 폭압적 국가권력 행사방식이 점차 개선되어 예전에 비해 자유권이 신장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다음 들어선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대 목표로 내세웠다. 인권은 민주주의의 핵심과제이므로 양심수가 석방되고 고문이나 용공조작사건이 점차 줄어들어 자유권의 영역에서는 분명한 진전이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정권이 내세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근본에서부터 양립 불가능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자원의 최적 배분이라는 효율성을 유일한 목표로 하는 시장은 근본적으로 복지와는 상충한다. 김영삼정권에서 시작된 세계화 주장은 월러스틴(I. Wallerstein)이 말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편입을 더 확실히 하자는 말에 다름아니고, 김대중정권 역시 IMF체제의 극복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더욱 거세게 추진했다. 수량적 유연성, 기능적 유연성, 임금의 유연성을 구체적 내용으로 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결국 해고제한 규정을 완화한 정리해고제 법제화로 이어졌다. 사회안전망이 전혀 확보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종의 사회보장 구실을 하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기본생존권 자체가 위협받게 되었다.

구제금융 한파와 맞물린 정리해고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1998년 7월 현재 실업자가 165만명에 이르고, 실업률은 7.6%에 달했다. 노동조합의 조직율 역시 95년 13.8%에서 97년 12.2%로 낮아지고, 조합원수도 148만 4194명으로 계속 줄어들어, 사회권의 핵심이라 할 노동권이 후퇴했다.1 최근 들어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함으로써 이제까지 빈민의 최저생활에 대한 보장을 일종의 시혜로 여기던 태도에서 벗어나, 국가에 대한 권리 개념을 도입했다. 또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도입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보완하려 하지만, 자본자유화에 따른 국제금융자본의 대규모 이동, 기간산업의 해외매각 등으로 전체적으로는 사회권보장에 적신호가 켜져 있는 상태다.

금년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기기는 했지만 2000년대까지 분단체제가 지속됨으로써 냉전논리를 기반으로 한 국가보안법의 시대는 끝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국가보안법을 남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영남위원회사건을 비롯해 이른바 조직사건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99년 한 해 동안의 국가보안법 구속자만 해도 374명에 달한다.2 국가보안법은

  1. 도재형 「노동자의 권리」, 『1998년 인권보고서』, 대한변호사협회 1999, 96면.
  2.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1999년 인권실태 보고서』,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