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인류는 녹아내리고 있다
마이크 데이비스 Mike Davis
1946년 캘리포니아주 출생. 민권운동·반전운동에 참여한 사회비평가. UC어바인 역사학과 교수 역임.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 『조류독감』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 『슬럼, 지구를 뒤덮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등이 있음. ⓒ Mike Davis 2008 / 한국어판 ⓒ (주)창비 2008
*이 글은 미국의 진보적 독립언론 탐 디스패치(www.tomdispatch.com) 2008년 6월 26일자에 게재된 “Living on the Ice Shelf: Humanity’s Meltdown”을 번역한 것이며, 각주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붙였다-편집자.
1. 홀로세여 안녕
우리의 세계, 지금까지 1만 2천년 동안 거주했던 우리의 구(舊)세계는 끝이 났다. 북미나 유럽의 어떤 신문도 아직껏 그에 대한 과학적인 부음을 지면에 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올 2월, 고공크레인이 두바이타워-곧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두배 높이가 될-의 141층에 클래딩(cladding, 건물 바깥부분을 둘러싸는 단열재)을 끌어올리는 동안 런던 지질학회의 지층학위원회는 지질학 기고란에 강도 높은 최신 소식을 덧붙이고 있었다.
런던 학회는 1807년에 창립된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지구과학자들의 연합이고, 그 위원회는 지질학적 시기구분을 판결하는 데 추기경 모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지층학자들은 침적층에 보존된 지구의 역사를 잘라내어 차례대로 누대(eon), 대(era), 기(period), 세(epoch)의 네 단위로 나누는데, 이는 대량 멸종이나 종(種) 분화 사건 그리고 대기화학의 갑작스러운 변화라는‘황금 스파이크’(golden spikes)1에 따라 지정된다.
생물학이나 역사에서처럼 지질학에서도 시기구분은 복잡하고도 논란이 많은 기술이어서, 19세기 영국 과학계에서 가장 치열했던 논쟁-아직도‘데본기를 둘러싼 대논쟁’으로 알려져 있는-은 대단할 것 없는 웨일즈 지방의 경사암(硬沙巖)과 영국의 구적색사암(舊赤色沙巖)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최근에는 지난 280만년에 걸친 빙하기의 변동을 지층학적으로 어떻게 시기구분을 할 것인가를 두고 지질학자들이 격렬히 싸운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온난한 간빙기-홀로세(Holocene, 충적세沖積世)-가 문명의 역사를 포괄하므로 그 자체를 하나의‘세’(epoch)로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일부에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지층학자들은 어떤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구분을 최종적으로 판결하는 데 유난히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았다.‘인류세’(Anthropocene)-지질학상의 변수가 되는 도시 산업사회의 출현으로 정의되는 세-라는 개념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음에도 지층학자들은 그 출현을 증명하는 설득력있는 증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런던 학회만큼은 이제 그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인류세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21명의 위원회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홀로세-이례적으로 안정된 기후를 보여서 농업과 도시문명의 빠른 진화가 가능했던 간빙기-가 이제 끝나고, 지구가 “지난 수백만년 동안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지층학적 기간”에 들어섰다는 확고한 증거를 든다. 지층학자들이 드는 증거는 온실가스의 축적을 비롯하여 “규모 면에서 이제 〔연간〕 자연 침전물 생산을 능가하는” 인간환경의 변화와 대양의 불길한 산성화, 생물군의 무자비한 파괴이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새로운 시대는 온난화 경향(이에 비견할 가장 가까운 예는 5600만년 전 팔레오세-에오세 최대온도Paleocene Eocene Thermal Maximum라고 알려진 재난일 것이다)과 예상할 수 있는 미래 환경의 극단적인 불안정으로 정의된다. “멸종, 종의 전지구적 이주, 식물의 자연스런 성장이 농업이라는 단일재배에 의해 전면적으로 대체된 사실 등이 어우러져 현재 아주 분명한 생물층서학적(biostratigraphic)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후의 진화는 거기서 생존하는(그리고 종종 인류 작용에 의해 재배치된) 군체로부터 일어날 것이므로 그 영향은 영원히 지속되는 셈”이라고 그들은 암울한 말투로 경고한다. 다시 말해 진화 자체가 새로운 궤도에 들어서게끔 강제되었다는 것이다.
2. 자발적인 탄소 제거?
위원회가 인류세를 즉위시킨 일은 작년에 발행된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의 4차 평가보고서를 둘러싸고 점증된 과학적 논쟁과 시기상 일치한다. IPCC는 지구온난화 완화 노력을 국제적으로 벌여나가기 위한 과학적 기본정책을 수립하는 임무를 띠지만, 지금 그 분야의 몇몇 탁월한 연구자들은 그 기본 씨나리오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아예 그림의 떡과 같은 생각이라며 그에 도전하고 있다.
현재의 씨나리오는 과학기술적·경제적 발전을 비롯하여 인구증가와 관련된 서로 다른 “내용전개”를 근거로 미래의 전지구적 배출의 기본 입안을 마련하기 위해 2000년 IPCC가 채택한 것이다. IPCC의 주요 씨나리오 중 일부는 정책 입안자들과 온실효과 활동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전문연구자집단의 외부에서 이 훌륭한 청사진, 특히 미래에 경제가 발전하면 그에 따라 더 큰 에너지 효율성이 “자동적으로” 생겨날 것이라는 IPCC의 확신을 실제로 읽어
- 지질학적 시기의 시작과 끝은 연속된 퇴적물 이후 특정 생물의 화석이 나오기 시작하는 층으로 정해지는데, 이 지점을‘황금 스파이크’라고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