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은영 崔恩榮

1984년 경기 광명 출생.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이 있음. euni153@naver.com

 

 

 

일년

 

 

처음 사흘은 날이 맑았다. 창밖으로는 멀리 고가도로와 고가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보였다. 고가도로 앞으로 아파트와 상가건물, 다세대주택,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있었고 가끔 새들이 푸른 하늘을 무리 지어 날았다. 그녀는 피와 진물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몸에 달고 링거를 맞으며 병실 침대에 누워 그 풍경을 바라봤다. 겨울이었다.

사흘 뒤부터 그녀는 바퀴가 달린 링거 지지대를 끌고 병동 복도를 걸었다. 누워만 있으면 회복이 더디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부터였다. 그녀는 천천히 걷다, 중간에 휴게실 의자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봤다. 텔레비전을 건성으로 보면서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 방문객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종종 문병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멀리 사는 이모가 수술 전 입원부터 수술 직후까지 곁에 있어줬고, 그후로는 간간이 아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녀와 별다른 정이 없는 큰아버지 부부가 찾아와 통성기도를 해주고, 찬송가를 불러줬다. 회사 동료들 몇몇이 찾아와서 안부를 물어주기도 했다.

그녀에게 그런 방문들은 뜻밖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다정했고, 그녀가 겪은 고통을 위로했다. 그녀는 잠시였지만 그들에게 정성껏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은 수술 후 그녀의 혈관을 흐르던 모르핀처럼 부드럽고 달았고, 그녀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그들이 한때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다희를 만난 건 수술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8층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그 여자가 다희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다희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선배.

다희씨.

여기 왜……

다희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수술받았어요. 다희씨는 왜……

엄마가 입원해서요.

다희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스스하게 머리를 묶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어디 잠시 앉을까요? 다희가 물었다.

그럴까요?

둘은 휴게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희를 우연히라도 다시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조금 당혹한 채로, 휴게실 의자에 앉았다. 조도가 낮은 휴게실에서 다희는 어머니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어머니가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오늘 입원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사이 복도의 조명이 몇개 더 꺼졌다. 그녀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슬리퍼를 신은 다희의 발에 시선을 뒀다.

그녀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을 알게 되고,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을 짧게 정리해 말했다. 다희는 그녀의 말 중간중간에 네, 그렇죠, 그랬어요?라고 응답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다희와 대화하는 동안 그녀는 익숙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둘은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금 어두운 조명 아래로 다희의 긴 눈썹이 보였다. 다희가 말할 때면 이리저리로 움직이던 눈썹. 미간을 찌푸리며 웃고 있는 다희의 얼굴 위로 긴 눈썹이 곡선을 그렸다.

 

*

 

그녀가 다희를 만난 건 스물일곱, 지금으로부터 팔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입사한 지 삼년 차 사원이었고, 다희는 일년 계약 인턴이었다.

풍력발전기 공사가 막바지에 다다른 무렵이었다. 공사 시일이 빠듯해 현장에서 늘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현장 사무실과 현장 감독이 따로 있었지만 현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본사 직원이 직접 가서 확인하고 본사에 보고하는 일이 필요했다.

다희가 인턴으로 입사하기 몇달 전부터 그녀는 그 일을 했다. 매일 공사장에 들러 발생하는 문제와 민원을 수집했고, 팀장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현장에 머물기만 할 때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몇번은 본사에 가서 보고하고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이런 번거롭고 고된 일을 선호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녀가 일을 맡기 전에도 몇번이나 직원이 바뀌었다. 그런 일에 그녀가 지원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자주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혼자서 하기에는 많은 양의 일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자기 존재를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시기였다.

일을 끝내고 운전해서 집으로 갈 때면 스물일곱밖에 되지 않은 자신이 다 늙어버린 노파처럼 느껴졌다. 입사하기 전의 기억은 아주 멀리 있었고, 그때의 자신은 온전한 남처럼 기억됐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그 많은 시험에 통과해서, 그렇게 노력해서 도착한 곳이 간척지 공사장, 자신에게 소리치는 사람들 앞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간척지 위에서 커다란 풍력발전기 세대만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척지를 오갈 때, 그녀는 인안대교를 건너야 했다.

대교 양옆으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멀게는 작은 섬들의 군락이 보였다. 대교의 바닥은 포장이 잘되어 있어서 진입할 때면 바퀴가 바닥에 부드럽게 닿아 미끄러져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럴 때면 차체의 소음이 조금 감소했고, 바퀴가 부드러운 표면을 달리는 일정한 소리가 났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기도 하고, 가끔은 공중에 걸린 기다란 길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일몰 전후의 대교는 아름다웠다. 대교에 달린 전구와 가로등 불빛이 때로는 붉은빛으로, 때로는 보랏빛으로 물든 부드러운 하늘 속에 길을 내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멀리 이어진 대교를 볼 때면 자동차들이 허공 위를 달리는 것 같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어릴 때 그녀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발명될 미래에 대해 들었다. 하늘은 구름과 새의 집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어지러운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어린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완성된 풍력발전기가, 그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도살 기계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인안대교를 건널 때면 그녀는 늘 그런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반쯤은 몽롱하고 반쯤은 또렷한 정신이 이리저리 섞이며 그녀가 마주한 현실에서 그녀를 몰아냈다.

 

다희는 인턴생활 한달 만에 그녀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다. 중국어에 상당히 능통해서 중국인 기술자와 협력업체 직원들 지원 명목으로 현장에 파견됐다. 그러나 다희는 운전을 하지 못했고, 공사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수석에 인턴을 태우고 달리는 길이 온전한 쉼이 될 수 없어서 처음에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으로 카풀을 한 날, 숱이 많은 단발머리를 잘 정돈한 다희는 재질이 좋은 얇은 코트를 입고 깨끗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차에 타서는 검은색 백팩을 무릎에 얹고 전에도 타던 차를 타는 것처럼 자연스레 앉았다.

고마워요, 선배님. 제가 운전을 배웠어야 했는데.

다희는 백팩에서 귤을 꺼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차내에 금세 귤 향기가 퍼져나갔다. 다희는 그릇 모양으로 벗긴 껍질 위에 귤 알맹이를 하나하나 올려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귤 몇개를 집어 입에 넣고, 괜찮으니 자기에게 더는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다희는 백팩에서 계속 귤을 꺼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인턴 교육을 받을 때의 일, 그녀와 같이 일을 하게 된 사정, 회사 밥이 맛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건 꽤나 특이한 경험이었다. 아무리 낯가림이 없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하더라도 회사 선배와 처음으로 단둘이 가는 길에서, 그렇게 귤을 까먹으며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다희를 보며 그녀는 입사 초기의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회사 사람들에게 애써서 최선을 다하려 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 뒤의 낙담을.

그렇게 입고 가면 추울 거예요. 허허벌판에 바람도 많이 불어서.

저, 중학교 때 중국 선양에서 지내서, 웬만하면 추위 안 타요.

그래도 바람은 달라요. 머리 울리고 아파요.

그럼 어쩌죠.

저기, 차 뒷좌석에 얇은 침낭 있어요. 이따 힘들면 그거라도 둘러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그녀는 양모로 뜬 털모자를 쓰고, 다희는 파란색 얇은 침낭을 어깨에 두르고 차에서 내려 걸었다.

아무것도 없는 간척지와 커다란 풍력발전기는 언제나 그녀를 압도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 살아 있는 존재들 같았다. 땅도, 발전기도, 바람도 그랬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그 소리가 사람 목소리로 들렸고, 퇴근하고서도 환청으로 들리곤 했다. 하얀 발전기는 바람개비를 높이 든, 흰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였다.

다희는 별말 없이 발전기를 올려다봤다. 흥미있는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얼굴이었다. 1호기부터 3호기까지 발전기를 둘러보는 내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처음 간 곳에서 현장 관계자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다희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사이로 잘 섞여 들어갔다. 큰 눈에 감정이 그대로 비쳤고, 말할 때면 긴 눈썹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짧은 시간에도 여러 표정을 지었고, 웃음소리가 아이 같았다.

다희는 스스로를 낮추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실수를 해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깨끗하게 사과할 뿐, 자학하듯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매사에 눈치를 보고 저자세로 일관하는 그녀에게 다희의 그런 태도는 그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 스스로를 질책하고 과도하게 몰아세우던 자기 모습을. 이상하게도 다희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자기 자신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는 회식 자리에서 처음으로 다희와 인사를 나눴다. 가볍게 맥주 몇잔을 마시는 자리였는데 다희의 얼굴이며 목이 온통 울긋불긋했다.

억지로 안 마셔도 돼요.

그녀의 말에 다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다희가 그녀와 같은 나이라는 것, 오래 방송국 피디 시험을 준비했으나 잘되지 않아서 작년에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후로도 여러 기업에 원서를 냈지만, 끝까지 통과한 건 이 기업의 인턴 자리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런 정보를 스스럼없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다희를 보면서 그녀는 다희가 솔직하지만 아직 미숙하여 경솔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곳에서 상대에게 미리 자기가 지닌 패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다희는 인턴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들었고, 여자였다. 그런 경솔한 행동이 득이 될 리 없는 위치였다. 술을 마셔 나른해진 얼굴로 말하는 다희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