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평

 

일본의 사회현실과 『게 공선』의 부활

 

 

노마 필드 Norma Field

미군 점령기 일본에서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시카고대 일본문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으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가 있으며, 최근 일본에서 『코바야시 타끼지: 21세기에 어떻게 읽을까(小林多喜二: 21世紀にどう讀むか)』(岩波書店 2009)를 출간했다.

* 이 글은 필자가 본지의 청탁을 받아 집필한 글로서, 원제는 “Commercial Appetite and Human Need: The Accidental and Fated Revival of Kobayashi Takiji’s Cannery Ship”이다. 이 글의 원문은 창비 영문 홈페이지(www.changbi.com/english)에서 볼 수 있다. ⓒ Norma Field 2009 / 한국어판 ⓒ 창비 2009

 

 

창비 독자들은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프롤레타리아소설, 코바야시 타끼지(小林多喜二, 1903~33)의 『게 공선(蟹工船)』이 2008년 뜻밖에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전 노동인구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추정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층의 빈곤 심화에서 이 소설이 부활한 원인을 찾고 있다는 점도 알 것이다. 이들 비정규직층 대부분은 연간 수입이 2백만엔(당시 환율로는 약 2천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점점 더 두드러져가는 그들의 존재 때문에‘격차사회(格差社會)’나‘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 그리고 더 최근에 이르러‘상실의 세대(로스제네)’같은 용어들은 일상적이며 친근한 것이 되었다.

그렇다 해도 “1929년에 출판된 소설이 부활한 이유가 중대한 사회경제적 변화 때문”이라고 정식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남는다. 현대소설을 통해 현대 상황을 파악하면 안된단 말인가? 어떻게 80년 전 소설이 오늘날,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을 밝혀주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붐’이 일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을 넘어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서로 맞물려 있다.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건 간에 그것은 우리가 현재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표현, 다시 말해 우리 의식의 표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왜 뜻밖의 현상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뜻밖의 ‘붐’

 

개인적 경험을 짧게 이야기하겠다. 대략 5년간 나는 코바야시 타끼지를 중심으로 이른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을 연구해왔다. 나는 이 작가가 성장한 일본 최북단의 섬 홋까이도오의 항구도시 오따루(小樽)에 장기간 체류한 적이 있다. 내가 그를 연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적어도 그의 이름쯤은 들어보았을 그곳 사람들조차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대개 호의를 담은 놀라움이었지만, 회의적 태도로 바뀌기도 했고, 특히 지식인들의 경우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비록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아니 특히 그렇게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왜 지금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거요?”라는 비난을 읽을 수 있었다.

코바야시

코바야시 타끼지

일본에서‘정치의 계절’은 1960년에 체결된 미일안보조약의 재개정에 반대해 벌어졌던 대중투쟁이 궤멸한 뒤, 그리고 1960년 공표된‘소득배가’계획의 결과로 생성된 관료적·경쟁적·소비자중심적 사회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했던 1968~70년 학생투쟁이 패배감만 널리 확산시킨 채 막을 내린 뒤인 1970년대초에 끝났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코바야시 타끼지 같은 작가가 남긴 유산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질까? 29세의 나이에 특무고등경찰에게 고문당해 숨졌을 당시 그는 불법단체이던 일본공산당 당원이었다. 60~70년대 좌파지식인들은 그에게 다소 공감했을 법도 하지만, 그가 지식인들을 통제하고자 했던 당의 당원이었다는 점 때문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이데올로기에 침윤된 또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계급에 기반한 혁명운동 과정에서 생산된 작품들이란 그저 웃음거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중년이 된 좌파들이 보여주는 이 적대감에는 분명 당원 여부나 지적 진영의 차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타끼지라는 이름은 (자신들이) 타협적으로 정치에서 물러섰다는 까맣게 잊혀져가던 과거를 일깨웠고, 그것은 둔탁하지만 성가신 질책이었다.

젊은이들에게 그는 단지 알려지지 않은 존재 또는 기껏해야 일본 현대작가 목록에 들어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의 이름일 따름이었다.

 

 

‘붐’은 만들어진 것이자 실체가 있는 것이었다

 

‘붐’이 시작되기 전 5년 동안 여러가지 상황이 벌어진 덕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