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소용돌이 속의 동아시아

 

일본의 ‘철의 삼각구조’

 

 

개번 머코맥 Gavan McCormack

1974년 런던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받음. 현재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아시아태평양사학과 교수. 오스트레일리아 학술원 회원. 1962년 이래 일본을 꾸준히 방문하였고 쿄오또대·코오베대·리쯔메이깐대 객원교수 역임. 본지에 「일본사회의 심층구조와 ‘국제화’」(84호) 「일본 ‘자유주의사관’의 정체」(98호) 등의 글을 발표한 바 있음. 그의 저서 중 『일본, 허울뿐인 풍요』(The Emptiness of Japanese Affluence, 창작과비평사 1998)가 번역되어 소개됨.

ⓒ Gavan McCormack 2002 / 한국어판 ⓒ 창작과비평사 2002

 

* 이 글은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 13호(2002년 1-2월호)에 실린 “Breaking the Iron Triangle”을 일부 축약하여 옮긴 것으로, 생략한 부분은 표시를 해두고 영어로 번역된 일본 관련 어휘들은 일본어로 되돌려놓는다.–––옮긴이

 

 

9·11 사태 직후 급히 워싱턴으로 달려간 일본 총리는 부시와 그 보좌진의 관심사가 테러와의 전쟁과는 아주 먼 데 있음을 알고 당황했다.1 자위대를 파병하겠다는 코이즈미(小泉)의 제안은 제쳐놓고, 대통령 자문위원들은 곧장 핵심문제로 들어갔다.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일본이 심각한 부채를 언제 해결할 작정인가 하는 점이었다. 80년대의 거품이 꺼진 이후 10여년 동안 일본은 세계자본주의의 환자 격이 되어왔지만, 지금도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질병은 금융과 재정 부문에서 체제 전체로 번져나가며 한때 자신감과 위용을 자랑하던 경제에서 활력을 앗아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2년 3월까지 1년 사이에 국내총생산(GDP)이 0.9% 줄어들고 그다음 1년 사이에는 1.3%가 더 떨어질 것이라 예고했는데, 이는 50년대 이후 일본이 겪은 경기하강 중 가장 지속적인 것이다.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손댈 수 없는 규모에 이르렀다. 암울해지는 국제상황에다 국내적으로는 물러갈 줄 모르는 ‘거품 후 불황’에 직면한 미국에 오늘날 진정으로 위협적인 것은 한줌의 와하비(Wahabi) 광신도가 아니라 일본의 경제위축이다. 이제 가속도가 붙어가는 쇠락의 과정은 지구 전체는 아니라도 이 지역 전체를 빨아들일 수 있는 내파(內破)를 촉발할 위험이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일본은 부와 생산성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지도적 위치를 바라볼 수 있었다. 21세기 초엽인 지금 일본은 1등 채무국이다. 빛은 물론 서서히 스러져간다. 1990년대에 일본의 GDP 증가율은 평균 1.3%로 높지는 않았지만 총량으로는 여전히 엄청난 규모로 미국 다음이며, 1인당 GDP는 16% 높아졌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부국으로, 일본의 높은 저축률과 과소소비(過少消費)는 낮은 저축률에 높은 부채비율의 미국 체제를 떠받쳐주고 있다. 일본의 상품은 아직도 세계시장에서 높게 평가되며 무역수지도 줄어들고는 있으나 아직 흑자다.2 그러나 이런 정상적인 겉모습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일본은 전후 시기에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겪은 유일한 산업국가다. 닛께이(日經, 日本經濟新聞社가 산출·발표하는 주가지수—옮긴이)—1989년에는 3만 8천 포인트까지 치솟았지만 코이즈미 내각이 집권한 2001년 4월에는 그것은 이미 먼 기억이 되어버린—는 일시적일지는 몰라도 1만 포인트 저지선이 무너졌다. 거품이 꺼진 이래로 1364조엔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국가 자산에서 날아가버린 것이다. 1989년 이래 토지 자산이 775조엔, 채권이 589조엔 감소하여 각기 1989년 수준의 약 1/3 정도로 줄어들었는데, 그러고도 여전히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3

 

 

천국으로부터의 전락

 

매년 약 1%씩 물가가 하락하고, 기업들의 파산이나 해외 이전으로 실직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본이 극심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과정에 빠져들 위험이 심각하게 존재한다. 완전 ‘평생’고용이 한 세대도 안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고 실직자 수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중략—옮긴이] 한때 막강하던 일본이 어찌하다 이 지경으로 전락했는가? 이 나라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은 세계경제와 관련된 전지구적 차원과 국지적 차원을 모두 지닌다. 후자의 핵심 면모는 ‘토건국가’(土建國家)라는 독특한 체제에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이어 일본의 사적·공적 부문의 부채 규모 및 그 심각성이 상세한 수치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옮긴이 요약]

 

 

토건국가의 기초

 

이런 심각한 사실들은 일본에서 비밀이 아니어서, 경제학자들이 이 나라가 파산했다거나 파산 직전이라고 선언한 지도 이미 여러 해 되었으며, 임박한 파멸에 관한 논의가 늘어나고 있다. 방심한 순간에 한 말이겠지만, 베테랑급 재무장관 미야자와 키이찌(宮澤喜一) 자신도 2001년 3월 이 나라가 “거의 파산지경”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합창단에 합류했다.4 1990년대 중반에 재무장관을 지낸 타께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에 따르면 “나라가 망했다”. 일본이 이처럼 절망적인 재정궁핍에 시달린 것은 전쟁이라는 비상시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악어의 눈물이다. 재무성의 자금운용 부는 수십년 동안 공공토목사업에 기반한 토건국가체제라는, 일본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된 핵심고리인 그 독특한 체제의 주역을 맡아왔던 것이다.

토건국가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일본 제조업자들이 아니라 정치인 및 관료, 금융기관, 건설업체로 구성된 ‘철의 삼각구조’(Iron Triangle)를 중심으로 한다. 그 작동방식은 불투명하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며 따라서 개혁하기도 힘들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이 나라의 힘센 관료들로 하여금 국민의 노후자금을 빚투성이인 광범위한 공공단체들—이를테면 간선도로·교량건설·댐과 개발발의권을 담당하는 기구들—에 돌릴 수 있도록 해주며, 바로 이 관료 중 많은 사람은 은퇴 후 이런 기구에서 높은 보수의 한직(閑職)을 차지하기를 기대한다. 지역 정치인들에게 토건국가란 선거구에 새로운 공공토목사업계획—가능한 것이든 아니든—을 약속하고 그대신 자금과 표를 얻어낼 수 있음을 뜻한다.

이 체제에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이제 일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다. 그러나 대개의 정치인들, 많은 관료들, 수천의 기업체와 수백만의 사람들이 얼마간이든 거기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공공토목사업부문은 영국·미국·독일보다 3배 큰 규모까지 늘어나, 매년 40조엔에서 50조엔—GDP의 8% 내지 다른 산업국가들의 2배 내지 3배—에 해당

  1. 霍見芳浩 「米國から見た‘對米7つの協力’」, 『週刊金曜日』 2001년 10월 5일자. 충고와 비판, 제언을 준 Jennifer Amyx, Aoki Hidekazu, Kaneko Masaru, Mark Selden, Andrew Glyn에게 감사한다.
  2. “낙천적인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것보다 4〜5% 더 소비한다면, 조심스런 일본인들은 생산한 것보다 2〜3% 적게 소비하고 태평양 너머로 저금을 보냄으로써 미국의 호황을 유지해주는 소비자 부채를 뒷받침할 수 있게 도와준다.”Ronald Dore,“Will Global Capitalism be Anglo-Saxon Capitalism?”New Left Review6호(2000년 11-12월호)112면.
  3. Hideo Tsuchiya, “Time for Industry to Cede to Intellect,”Nikkei Weekly2000년 1월 17일자.
  4. 미야자와의 표현은 “破局に近い”였다. “Japan Nearly Bankrupt,” Sydney Morning Herald 2001년 3월 9일자; “To Grieve Over the Fiscal Deficit?” Asahi Shimbun 1999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