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려령 金呂玲

1971년 서울 출생.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이 있음.

 

 

 

장편연재 1

일주일

 

 

1

 

“맛있네요. 고맙습니다.”

도연이 이 고장 특산차를 마시며 답례 인사를 했다. 탕약처럼 여기저기 몸에 좋다는 설명이 붙은 맑고 구수한 뽕잎차였다. 차를 내준 직원과 김해공항으로 마중 나온 지식정보과 윤계장이 만족하며 환하게 웃었다. 윤계장은 이날 도연의 의전을 맡았다. 그는 공항에서 만난 순간부터 이날 행사의 취지와 의미를 거푸 설명했다. 행사로 들뜬 긴장감이 역력했다. ○○시 올해의 책 선포식. 벌써 3회째 맞는 행사였다. 1부 선포식과 2부 북콘서트로 구성된 행사는 두어시간가량 소요될 예정이었다. 윤계장이 앞서 선정된 두 작가를 소개하고, 그들 덕에 올해 도서 선정 과정에서도 주민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다고 자찬했다. 더불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도연의 책은 지역 도서관 곳곳에 우선 천부 배포될 예정이며, 차후 반응에 따라 더 구입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의 말에 도연과 동행한 편집자 시정이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 시장님이 이 행사는 특히 애정으로 챙기시는데요, 독서문화가 없는 도시는 잔바람에도 휘날린다 안 합니까. 오늘 많이 기대하고 계십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에.”

흠…… 도연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앞의 두 작가는 도연도 익히 아는 선배와 후배였다. 선배는 다방면에서 다식한 것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아는 만큼 말도 잘했다. 후배는 잠언 같은 자신만의 어록을 남기며 차분차분 말하는 사람이었다. 왜 하필 저 두 사람이었을까. 입으로 말하는 기술과 글로 말하는 기술이 일치하지 않는 도연이었다. 말을 오래 하면 쉽게 지치는지라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도연에게 행사나 강연은 고역이었다. 도연이 워낙 이런 행사를 기피하니 한 선배가 혹시 너희 집에도 금괴 200톤이 있는 거 아니냐고까지 했었다. 도연이 못해서 못하는 겁니다, 했다가 굶어 죽는 법도 가지가지다,라는 핀잔만 들었다. 도연은 굶어 죽는 것도 싫고 이런 행사로 피가 마르는 것도 싫었다. 이미 글로 다 말했는데 입으로 또 무슨 말을 하나. 게다가 무대에만 오르면 쉬운 단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행사의 질의에 대해 나중에 서면보고하면 안 될까. 도연은 현실성 없는 기대를 하며 가만히 차를 마셨다. 여하튼, 도연과 시정이 윤계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시립도서관장이 접견실을 찾았다. 오십대 후반 여성으로 화사한 꽃분홍색 정장 차림이었다. 이날 행사의 총 진행을 시립도서관 측에서 맡았다. 관장이 도연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계숙. 도연이 명함을 한번 보고 지갑에 챙겨 넣었다.

“작가님 스케줄이 안 될까봐 걱정했습니다.”

“배려해주신 덕에 조정이 잘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장님께서 행사 전에 잠깐 뵈었으면 하세요. 괜찮을까요?”

“네.”

도연과 시정이 도서관장을 따라 접견실을 나갔다. 시장실은 접견실과 같은 3층이었다. 도연이 도서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자치행정과 사무실로 들어섰다. 시장은 기존 시장실 대신 행정과 사무실 안쪽 빈 공간에 새 방을 마련했다. 직원과 격 없이 친구처럼 일하는 시장. 권위를 내려놓고 직원들과 지근거리에서 바지런히 일하는 모습은 좋지만 행정과 직원들은 무슨 죄인가. 시장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었다. 도연은 자신이 시장과 격 없는 사이라면 그런 충고를 해주고 싶었다. 하늘 아래 친구 같은 상사는 없습니다. 기존 시장실이 사치스럽다면 칸막이로 공간을 줄이고 당장 돌아가십시오. 친구도 상사가 되면 피곤한 법일진대 상사가 친구인 양 자리하고 있으면 오죽하겠습니까. 선한 마음은 알겠으나 깊은 처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도연이 사무실을 둘러보니 다닥다닥 붙은 직원들 책상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류가 쌓였다. 시장만 기존 시장실로 올라가면 지금의 공간을 터서 좀더 여유로운 작업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과연 직원들 중 누가 그런 의견을 낼 수 있을까. 함부로 총대 멨다가 역으로 총질당할까 두려울 것이었다. 도연과 시정이 도서관장을 따라 벽과 책상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걸었다. 도연이 지나가는 동안 직원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 인사를 했다. 눈이 마주치면 웃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도연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도서관장이 시장 사무실 문에 노크하고 바로 문을 열었다.

“작가님 오셨습니다!”

 

시장의 방은 듣던 대로 권위적이지 않고 아담했다. 시장은 명패가 놓인 책상이 아닌 중앙 원탁에서 다른 세 사람과 함께 있었다. 도연이 방에 들어서자 원탁에 앉았던 시장과 그 일행이 서둘러 일어났다. 시장은 원체 유명한 사람이어서 도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남자. 당신이 왜…… 도연은 얼마나 놀랐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스륵 주저앉을 뻔했다. 심지어 그는 양복 깃에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고 있었다. 도연이 잠시 주춤한 사이 시장이 다가와 시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가님, 책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은 이분이십니다.”

시장도 당황하고 시정도 당황해 악수하는 손이 민망했다.

시장이 허허 웃고 다시 도연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작가처럼 안 생기셔서 실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알아보지 못한 것이 실례일까, 작가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한 것이 실례일까. 어떻게 생겨야 작가처럼 생긴 것일까. 중성적인 이름으로 남자로 착각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작가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도연이 워낙 외부 행사를 하지 않아 실물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신문기사에 실린 사진과 실제 모습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시장이 같이 서 있는 나머지 일행을 소개했다. 한 사람은 구청장, 제복을 입은 남자는 경찰서장, 그리고 그는 이 도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도연이 시장의 소개에 따라 차례차례 악수를 했다. 마지막으로 그와도 손을 잡았다.

“진유철입니다.”

“하도연입니다.”

도연과 시정이 시장 일행과 함께 원탁에 앉았다. 행사까지 시간이 빠듯한데 도연 앞에 다시 뽕잎차가 놓였다. 찻잔 옆으로 도연의 책 네권도 놓였다. 도서관장이 그 와중에 네 사람을 위해 사인을 부탁했다. 도연은 최대한 태연하게 시장의 것과 다른 두 사람의 책에 먼저 사인했다. 그리고 유철의 책에도 사인했다. 반갑습니다. 진유철 의원님께. 하도연 드림. 도연이 사인한 책을 유철에게 내밀었다.

“제가 오늘 행사에 참석하길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철의 인사에 도연은 마땅히 응대할 말이 없어 그저 살짝 웃었다. 사인을 마치자 시청 직원이 들어와 기념촬영을 했다. 시장과 도연이 가운데 섰다. 시장 옆으로는 경찰서장과 구청장이, 도연 옆으로는 유철과 도서관장이 섰다. 시청 직원이 촬영을 마치자 이번에는 유철을 보좌하는 김보좌관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그러더니 도연에게 유철과 한장만 더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네, 하고 도연이 유철과 나란히 섰다.

“의원님하고 작가님하고 잘 어울리십니다. 허허허.”

사진은 유철의 페이스북에 곧장 올려졌다. 이제 행사를 위해 모두 강당으로 내려가야 했다.

 

1층 강당으로 가는 동안 시장과 도연이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시민들이 직접 투표로 선정했더니 반응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네. 우리 시에는 따로 오신 적이 있으십니까? 처음입니다. 이제 자주 오십시오. 예. 그러나 도연은 뒤에서 걷고 있는 유철이 신경 쓰여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 남자가 국회의원이었다니. 안 그래도 심란한 행사에서 유철의 등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지금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랜만입니다, 유철씨. 반면 유철은 도연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뒤따르고 있었다. 유철은 도연이 나타난 것에도 놀랐지만, 시정이 작가님은 이분이세요, 하고 그녀를 가리킬 때는 더욱 놀랐다. 흠. 당신 작가였군요. 어쨌거나 잘 오셨습니다. 유철은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급히 비행기로 날아왔다. 마침 이날 옆도시에서 경전철사업 간담회 일정이 잡혀 있었다. 조금 서두르면 두곳 모두 참석할 수 있었다. 오는 비행기에서 김보좌관에게 선포식에 관한 간단한 브리핑을 받았다. 이번이 3회째로 선정 작가를 초대해 북콘서트를 한다, 유철은 사전 소개 시에 간단한 인사말만 하면 된다, 정도였다. 오늘 주요 일정은 간담회였으므로 그뒤에는 간담회 자료를 살폈다. 시장실에서도 서로 안부를 묻고 사담을 나누느라 정작 도연의 책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새가 없었다. 전국에 이와 비슷비슷한 행사가 많아 의례적인 참석 인사만 하면 되는 거였다. 기실 목적은 지역구 주민들에게 저도 왔습니다, 얼굴 내미는 것이었다. 그렇게 참석한 행사의 주인공이 도연이었다. 도연이 사인해준 책을 받으면서도 실감 나지 않았다. 도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심장은 왜 그렇게 뛰는지, 말하면 속마음을 들킬까봐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저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날도 도연 옆에 가만히 서 있거나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400여석쯤 되는 시청 강당에는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도연의 북콘서트만 있었다면 태반 비었을 테지만, 올해의 책 선포식을 겸하다보니 관계자가 많이 참석했다. 자리는 앞줄 지정석만 비어 있었다. 시장이 먼저 강당에 들어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시장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함께 입장한 일행도 등받이에 붙은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며 의자에 앉았다. 누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시장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순으로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 바람에 도연과 유철이 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유철이 앉으면서 도연을 보고 살짝 웃었다. 도연도 희미하게 웃었다. 도연과 유철 바로 뒷줄에는 중학생들이 죽 앉아 있었다. 이 친구들이 자꾸 도연 얘기를 하는 바람에 결국 도연이 풋 웃어버렸다. 작가님이다. 누구는 작가님, 하고 작게 부르기도 했다. 도연이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웃어버렸는데, 학생들은 또 그걸 가지고 떠들었다. 니 때메 작가님 웃잖아. 작가님 얘 때메 웃는 거 맞지요? 못살겠네, 하하하. 결국 도연이 웃음을 터뜨리며 돌아보았다.

“왜요? 왜 자꾸 불러요?”

“사인 좀 해주세요!”

“이따가 해줄게요. 행사 마치고. 괜찮죠?”

“사진은 찍어도 되지예?”

“예에. 하하하.”

소란한 장내를 행사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가 정리했다. 그는 정식 행사 전에 참석한 내빈들부터 차례로 소개했다. 아나운서의 호명에 따라 내빈들의 축하인사가 이어졌고, 결국 유철의 순서까지 왔다.

“다음 소개해드릴 분은 오늘 선포식을 위해 열일 제치고 오신 진유철 의원님입니다.”

아나운서의 소개와 동시에 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도연이 어지간한 국회의원들은 각종 매체로 접했지만 그중 유철은 없었다. 전국구 스타 의원이 아니면 대개 몰랐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니까 유철이 그 정도 급의 의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역에서 그의 인기는 상당했다. 유철이 인사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진유철입니다. 우리 시는 대체로 지역문화 발전에 공을 많이 들이는 도시입니다. 지난번 강변음악제도 그렇고요, 오늘 북콘서트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시민 여러분과 문화예술인이 직접 만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목소리, 이 억양, 무척 오랜만이었다. 경남 사람이 쓰는 서울말. 유철의 말투가 꼭 그랬다.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이 한 문장만으로 단박에 도연을 사로잡은 유철이었다.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사투리 운율과 잘 어울렸고, 그럼에도 표준어를 사용했기에 도연이 알아듣기에도 좋았다. 서울 출생으로 서울에서만 자란 도연은 사투리 쓰는 사람에게 유독 호감을 가졌다. 옆 동네 처녀 총각으로 만나 결혼한 부모님 탓에 도연의 친가 외가가 모두 서울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도연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독특한 어감에 무작정 끌렸다. 그런데 한국도 아닌 이스탄불에서 그런 남자가 다가왔다. 처음부터 좋았고 같이 있어보니 더 좋았다. 헤어질 때에도 나쁘지 않았다. 먼저 가서 미안해요. 네. 도연은 유철을 그렇게 배웅했다. 배웅했으므로 끝난 남자라고 생각했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모습으로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사말을 마친 유철이 위로 올라간 접이식 의자를 내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이렇게 다시 만났나. 도연은 낯선 도시에서 유철이 자신 옆에 있어 좋았고, 또 그렇게 있어서 씁쓸했다. 아나운서가 내빈 소개를 마치고 정식 식순을 이어갔다. 식순에 따른 국기에 대한 경례와 시장의 모두연설이 이어졌다. 그런 중에도 김보좌관은 강당 출입문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유철을 찍는 것일 테지만 도연도 함께 찍힐 거였다. 도연은 김보좌관의 카메라가 내내 신경 쓰였다. 이스탄불에서도 사진 한장 남기지 않았는데, 고국에서 만난 지 고작 몇분 동안 엄청난 사진들을 남겨버렸다.

 

“전업주부예요.”

“대학에서 시간강의 하고 있습니다.”

그때, 도연과 유철은 그렇게 자신들을 소개했었다. 서로 의심 없이 받아들였는데 소개한 모습이 마침 어울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유철은 비례대표를 거쳐 지역구에서 당선된 재선의원이고, 도연은 꼬박 십년간 글을 쓴 작가였다. 그러니까 처음 만난 그때도 유철은 국회의원이었고, 도연은 작가였다. 도연과 유철은 상대의 거짓말에 대한 황당함과 어쨌든 서로 몰라봤다는 민망함에 적이 당혹스러웠다. 비례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한 유철은 올해 마흔셋, 스물일곱에 등단한 도연은 이제 서른일곱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이년 전에 만났고, 서로 처음부터 호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귀국할 때에는 연락처 하나 묻지 않고 깔끔하게 헤어졌다. 두 사람 다 쉬러 왔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유철은 사람이 너무 없는 것도 싫었고 너무 많은 것도 싫었다. 적당한 인파 속에서 무명의 행인이 되어 쉴 수 있는 곳. 유철은 그곳을 이스탄불로 정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도연을 만났다. 도연은 유철보다 이주일 먼저 와 있었다. 쉬러 왔어요. 둘 다 상대가 무엇으로부터 쉬려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무엇에든 지쳤을 테고 그것을 피해 같은 곳으로 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두 사람은 같이한 일주일에 충분히 만족했다. 사정상 일정이 급한 유철이 먼저 귀국했다. 도연은 일주일을 더 머물며 꼬박 한달을 채우고 귀국했다. 누가 먼저 왔든 돌아와서는 각자의 일에 충실했다. 귀국과 동시에 두 사람 다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에 그곳에서의 일주일은 가슴에만 간직했다. 유철은 지난해 총선에서 경남 ○○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오로지 선거에만 집중했다. 도연은 한 계간지에 장편소설을 연재하며 꼬박 일년을 매달렸다. 그 와중에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몇개의 단편까지 소화했다. 결과는 모두 좋았다. 유철은 재선에 성공했고 도연은 일년간의 연재를 무사히 마쳤다. 도연의 원고는 책으로도 출간돼 이번에 ○○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반갑습니다. 네. 도연이 한국에서 유철이 알게 되면 어쩌나, 전혀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일부를 대중에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유철이라면 그랬구나, 하고 가만히 웃어줄 것 같았다. 이스탄불에서의 그라면 분명 그럴 거라고 기대했다. 조근조근 부드러웠다.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말하는 남자였고 으음, 예에, 하며 가만히 듣는 남자였다. 크게 웃기도 했지만 대개는 환한 미소를 지어서 가만히 따뜻했다. 그런 남자였기에 혹여 자신을 알아본다 해도 꼭 그런 미소를 지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우연히 스치면 나도 그렇게 웃어줘야지. 다시 스친 찰나마저 좋은 추억이 될 사이이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유철을 보자마자 얼마나 놀랐는지 웃음이 쑥 들어가버렸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 유철은 그때와 비슷한 미소를 지어줬지만 도연은 도무지 웃어지지가 않았다. 세상에 정치인이라니. 도연이 정치인을 딱히 저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의 유철에게서는 정치인이 읽히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 새로움이 나쁘지는 않았다. 괜찮았다. 그것은 이스탄불에서와는 또다른 매력이었다.

 

선포식을 마치고 곧 북콘서트가 이어졌다. 도연이 무대에 마련된 테이블 앞에 앉아 아나운서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을 유철이 무대 아래 객석에서 지켜보았다. 도연이 윗니를 드러내며 킥킥 웃을 때는 이스탄불의 그녀가 분명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네. 똑똑 떨어지는 말투가 낯설었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혹시 내 생각 했습니까? 나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유철 역시 도연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유철이 생각하는 작가는 대쪽 같은 강단이 먼저였다. 다른 작가들에게서 조도 낮은 조명이 떠오른다면, 도연은 필라멘트 빛나는 유리전구를 떠오르게 했다. 빛나면서도 어쩐지 깨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있었다. 함께 있는 동안만이라도 지켜줘야지, 하고 유철은 도연 곁에 있었다. 헤어지고도 잊지 않았다. 문득 간절하게 보고 싶기도 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니요, 지름길은 없습니다. 미련해 보여도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서두르면 놓치는 게 있기 마련이고, 조급하면 건너뛰게 마련입니다. 그런 도연이 홀연 나타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는 아이 둘 키우는 엄마입니다. 이런 자리에는 처음 와보는데요, 와보니까 시장님도 계시고 의원님도 계시네요. 작가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애들 급식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뽑아놓은 사람이 중단한다니까 그냥 믿고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그건 아니라고 지적해야 하는지, 정치인과 시민 간의 거리를 어느 선까지 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경남 급식 문제는 저도 들었습니다. 돈 있는 집 애들은 돈 내고 먹어라, 이건데요. 학교는 교우의 장소입니다. 친구를 부자와 가난으로 나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