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려령 金呂玲
1971년 서울 출생.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이 있음.
장편연재 3
일주일
도연의 어머니가 그녀의 집을 찾았다. 반찬거리 핑계가 있었지만 결국 도연과 유철의 결혼이 궁금한 거였다. 나이가 있으니 서둘렀으면 좋겠는데 영 소식이 없었다. 분명 결혼을 원치 않는 도연 때문일 거였다. 이번 생애에 결혼은 끝났어. 그러면서도 연애는 곧잘 하기에 참짝을 아직 못 만나서 저러지, 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 도연의 공개연애로 자연 기대가 커지고 말았다. 게다가 사진만 놓고 보면 둘은 영락없이 부부였다. 이것이 무슨 조화인고. 그런 생각을 했는데 보는 눈이 비슷한지 친구들도 그러한 말을 했다. 얘들은 누가 봐도 부부다. 아니면 전생의 부부였든지.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둘의 인연이 그러하다면 애초부터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며 아쉬워했다.
“그 사람은 뭘 잘 먹니?”
“이런 나물 같은 거 잘 먹어.”
“그러면 좀 갖다줘라.”
“알아서 먹겠지.”
“무슨 애가 그러니. 바쁜 양반 니가 좀 챙겨야지.”
“나도 바빠. 그 나이에 뭘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면 안 만나.”
“둘 다 바빠서 결혼하면 어떻게 살지 몰라.”
“지금도 따로 바쁘게 잘 사는데 결혼하면 왜 못 살아?”
“그래도 결혼하면 누구 하나는 옆에서 챙겨야지, 둘 다 바쁘면 그게 되겠니?”
“작가하고 국회의원이 서로 챙겨줄 게 뭐가 있어? 우리는 서로 가만히 있는 게 챙겨주는 거야.”
“가만히 있는 거 너 잘하니까 얼른 결혼해라.”
“싫어, 안 해.”
도연이 어찌나 단호한지 역시 결혼은 아닌가보다, 그래 니들 마음대로 해라, 하고 어머니가 물러섰다. 참인연이면 떨어져 살아도 다른 사람한테 마음 못 줄 것이다. 부모는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자식 때문에 늙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큰 말썽 한번 없이 자란 애가 다 커서 결혼이라는 중대한 일로 속을 썩였다. 어머니는 뻐근한 가슴으로 도연의 집을 나왔다.
도연이 어머니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렇다고 효도가 목적인 결혼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하고 싶을 때가 오면 하겠지. 도연이 정리하던 반찬들을 가만히 보았다. 냉장고에 들어가면 맛이 덜해질 거였다. 이날은 인영의 학원수업도 없는 날이었다. 같이 먹으면 되겠네. 도연이 유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저녁 약속 있어요? 없어요. 우리 집에서 먹을래요? 좋지요. 출발하기 전에 문자할게요. 네. 그다음은 인영이었다. 오늘 학교 끝나고 어디 가니? 아니. 오늘 저녁 아저씨하고 같이 먹자. 어디서? 집에서. 집에서? 불편하면 취소할게. 됐어. 안 섹시하기만 해봐라. 어쩔 건데? 퇴진운동할 거야. 그러세요. 도연이 탕거리를 마련하느라 서둘러 마트에 다녀왔다. 미나리 대구탕을 끓일 생각이었다. 도연이 멸치육수를 먼저 올리고 대구를 막 씻을 때, 유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인영이도 있지요?”
“네.”
“인영이는 뭘 좋아해요?”
“슈트. 오로지 무조건 슈틉니다.”
“알았어요. 삼십분 뒤에 출발할게요.”
인영이 집에 오자마자 교복을 벗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틴트를 이것저것 발라보는 것이 저도 긴장한 듯했다. 도연이 집으로 초대한 첫 남자였다. 아파트 근처나 주차장까지 온 남자는 있었어도 집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혹여 결혼 관련한 식사 자리는 아닐지. 도연이 그냥 만나는 남자와 느낌부터 달랐다. 엄마가 결혼을 한다? 못할 것도 없지만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제가 결혼에 방해되는 것은 아닐지 괜한 걱정도 했다. 그런 양가적 감정으로 조금 씁쓸했지만, 도연이 만나는 남자가 궁금하기도 해서 겉으로 표시 내지는 않았다.
유철이 도연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곧장 누르지는 않았다. 어디 구겨진 데는 없는지, 와이셔츠 소매는 적당하게 잘 빠져나왔는지부터 살폈다. 유철은 도연과 통화한 뒤 옷장 앞에서 한참 망설였었다. 인영이 자신의 직업을 썩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아 더욱 신경 쓰였다. 회색 슈트를 꺼냈다가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 같아 도로 넣었고, 검정색 슈트를 꺼냈다가 식사 초대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다시 넣었다. 그렇게 고민하다 입은 옷이 짙은 남색 슈트였다. 지역주민들과의 만남 행사 때 도연에게 잘 보이려고 산 옷이었다. 도연을 우연히 만난 ○○시 올해의 책 선포식 날 하필 품이 큰 정장을 입고 있었다. 도연은 근사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저는 동네 마실 나온 아저씨 차림인 것 같아 속상했었다. 그 때문에 만남 행사 때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백화점까지 가서 직원의 조언대로 정장을 맞췄다. 몸 치수를 다시 정확히 쟀고 옷도 몸에 딱 들어맞게 했다. 잠깐 한 치수 큰 것으로 살까 고민도 했지만, 직원이 좋은 핏을 옷으로 숨기지 마세요, 하는 바람에 그가 추천한 와이셔츠와 넥타이까지 사버렸다. 그랬는데 도연과 함께 온 편집자가 얼마나 뚫어지게 보는지 재킷을 벗고 있을 때에는 배에 힘을 주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시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도연이 이 슈트 잘 어울려요,라고 말해 내내 기분 좋았었다. 그 뒤로 아껴서 입을 생각에 잘 넣어뒀는데 그것을 다시 입은 것이다. 유철이 후! 짧게 숨을 내쉬고 초인종을 눌렀다. 도연이 문을 열었다. 일찍 도착했네요, 들어와요. 그러나 유철은 들어와서도 구두를 곧장 벗지 못했다. 인영이 현관 앞에서 전의 편집자보다 더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왜 도연 옆에는 이토록 뚫어지게 보는 사람만 있는 것일까. 유철이 바짝 긴장했다. 인영이 보안검색요원처럼 그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체크했다. 그런 뒤에야 비장하게 한발 물러섰다. 유철도 그제야 준비해온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여러가지 섞어서 샀어요.”
“고맙습니다.”
인영이 아이스크림을 받은 뒤 실내슬리퍼를 내밀었다. 통과였다. 인영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유철이 도연에게 눈으로 물었다. 됐어요? 도연도 눈으로 답했다. 네. 도연은 재킷을 입고 있는 유철이 너무 손님 같아 보여 편하게 벗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받아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인영의 눈이 다시 유철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유철이 배에 슬쩍 힘을 주고 넥타이 매듭을 바로 했다. 빗살무늬가 있는 청색 넥타이었다.
“그 넥타이 잘 어울려요.”
“엄마가 사준 거예요.”
“아마 세일할 때 샀을 거예요.”
“그랬대요. 하하하.”
“근데요, 저한테 반말하셔도 돼요.”
“예에, 이제 그럴게요.”
도연이 식탁 가운데에 대구탕을 놓는 것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살이 잘 오른 황태구이와 색색 나물과 각종 밑반찬으로 차려진 식탁이었다. 준비 많이 했구나. 유철이 종일 저를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었을 도연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숟가락을 들었다.
“이 반찬들은 오늘 다 한 거예요? 힘들었겠네요.”
“아저씨, 그런 거 묻지 마세요. 엄마도 할머니가 가져오면 그냥 먹어요.”
“아, 할머님이…… 맛있다.”
“밥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엄마가 했어요.”
“난 진밥도 괜찮아.”
“그럼 더 드세요.”
“다른 것도 먹어야지. 황태 맛있다.”
유철과 인영은 생각보다 쉽게 어울렸고 그럭저럭 말도 잘 통했다. 유철은 인영에게 시선을 맞추려 노력했고, 인영은 어른스럽게 엄마의 남자를 인정했다. 인영은 슈트로 예의를 갖춘 유철이 마음에 들었다. 첫 방문부터 저를 아이라고 얕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유철씨, 대구탕 이거 우리 엄마 비법으로 끓인 거예요. 맛있네요. 인영이 미나리를 피해 국물만 살짝 떠먹었다. 할머니는 저렇게 미나리를 숭덩숭덩 썰어 넣지 않았다. 손질한 미나리를 가지런히 올렸다. 그래도 유철은 맛있게 먹었다. 은근히 건성건성인 도연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둘의 결혼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단순한 남자친구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유철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었다.
“아저씨 직업이 조금 마음에 안 들지?”
“꼭 그런 건 아닌데요, 전에 어떤 국회의원이 팬한테 꽃다발 받는 동영상을 봤거든요. 그 아저씨가 꽃다발 받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제 아내가 좋아하겠네요. 그 아줌마가 아내 생각하면서 꽃다발 준비했겠어요? 왜 팬 앞에서 아내를 챙기고 난리야. 그거 보고 국회의원들이 좀 그래 보였어요. 옆에서 다 박수치면서 웃었거든요. 누구도 그 아줌마 생각은 안 한 거죠. 괜히 꽃다발 들고 와서 되게 쪽팔렸을 거예요. 아니, 국회의원들은 원래 그렇게 생각이 없어요?”
세다, 내 딸. 도연이 식탁에 이마를 대고 웃었다. 그런 거였다. 팔불출도 내 사람일 때나 예쁘지 다른 사람의 팔불출은 꼴불견이었다. 대중을 염두에 둔 직업인이라면 팔불출 등극은 신중해야 했다. 알겠어요. 백년해로하세요. 좋은 부부관계는 보기에도 참 좋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부부애를 강조하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예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과도한 스킨십은 불편한 것과 같다. 대중 앞에 선 순간만큼은 그들의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지자에 대한 예의다. 꽃다발을 아내에게 전달하겠다는 남편의 행동에 토는 달지 못해도, 제 성의를 타인에게 양도당한 지지자의 낙심은 자괴감을 부른다. 그럼 제 남편은 싫어하겠네요. 도로 주세요. 그런 반감으로 좋아는 해도 더이상 호명은 하지 않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미온적 관심으로 변모되기 쉽고, 심하면 안티로 돌변한다. 인영이 그런 비슷한 이유로 안티가 된 경우다. 초등학생 때 밤새 구운 쿠키를 들고 좋아하는 가수의 사인회에 갔었다. 겨우 만난 그에게 그 쿠키를 건넸는데 그가 대뜸 동생이 좋아하는 초코칩 쿠키네요, 하면서 쇼핑백에 넣어버렸다. 제아무리 동생 바보로 소문났어도 그러면 안 됐다. 좋은 오빠는 동생 앞에서 하고, 팬 앞에서는 좋은 가수여야 했다. 그날 인영은 그의 사인을 찢어버렸고 벽에 붙인 사진도 떼어냈다. 내가 지 동생 좋으라고 밤새 고생한 줄 알아! 그런 맘 상한 경험이 있던 차에 비슷한 행동을 한 국회의원을 봤으니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아마 쑥스러워서 그랬을 텐데, 나도 조심해야겠다.”
“네. 진짜 별로예요. 어쨌든, 전 이제 숙제하러 가요.”
인영이 아이스크림을 챙겨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인영이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유철이 후우, 숨을 내쉬었다.
“불편했어요?”
“긴장을 좀 했어요. 하하하.”
“방에 가 있어요, 커피 타서 갈게요.”
도연의 집에서 그녀의 딸과 함께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유철을 한결 안정시켰다. 이제는 길에서 우연히 인영을 만난대도 반갑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대면의 쭈뼛함을 길에서 경험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도연이 작업하는 의자에 앉아 그녀의 방을 둘러보는 것도 좋았다. 방 한구석의 책 무덤을 빼면 여느 안방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벽지 무늬까지 살피며 둘러보았다. 공개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러할 일이 없을 공간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거였다. 자신에게만 허락된 것 같은 특별함이 있었다. 그런 특별함 때문인지 별것도 아닌 봉지커피가 다 맛있게 느껴졌다. 책상에 내 사진 놓을 생각 없어요? 인영이 사진도 안 놓습니다. 왜 그래요? 딸 사진 두고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죽이지 마요, 그럼. 아직 죽일 사람이 좀 남았어요. 유철씨 사진 놓고 죽일까요? 확실하게 죽여줄게요. 내장을 돌돌 말아서. 왜 그래요 무섭게. 죽이는 게 무서운 거예요, 죽는 게 무서운 거예요? 둘 다. 도연씨는 어때요? 죽이는 거요. 거기에는 연속성이 있어요. 실패한 살인은 성공을 위해, 성공한 살인은 성공했으므로 또, 또, 또. 저기, 연쇄 살인 집필 작가님? 좋은 말로 할 때 해독제 내놓으세요. 무슨 말이에요? 커피에 독이 들었을 거 같아요. 그러자 도연이 유철을 꼭 안고 입을 맞췄다.
“됐죠?”
“인영이 오면 어쩌려고 이래요?”
“숙제한다잖아요.”
“혹시 모르는 게 있으면……”
“걔가 모르는 건 나도 몰라요.”
유철이 도연을 꼭 안았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감당이 되는 그런 여자였다. 그대로 느끼면 되는 여자, 도연이 꼭 그랬다.
*
찬바람이 불면서 유철은 더욱 자주 지역을 방문했다. 이 사람이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보면 지역 어딘가에서 주민들과 함께 있었다. 추위는 추운 사람을 더 춥게,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했다. 접수된 민원은 지역 사무실 직원들이 우선 응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유철이 직접 얼굴 내밀어야 할 곳이 많았다. 유철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관련자를 찾아 의견을 전달했다. 할 수 있는 일이면 최대한 빨리 해결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바지런함 때문인지 우리 의원님은 부르면 온다,는 신뢰도 생겼다. 곧 봄 온다 하고 지내야지요. 오히려 유철을 위로해주는 주민까지 생겼다. 그의 성실함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바쁜 일정을 수행하다보면 하루가 너무 길다 싶다가도 돌아보면 벌써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일이 생겼다. 계절은 늘 새로운 일감을 몰고 왔다. 사정이 이러하니 둘이 함께하려면 도연이 유철에게 시간을 맞추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짤막짤막한 동영상으로 확인한 유철은 늘 피곤해 보였다. 눈동자는 퀭했고 허허 웃음마저 힘겨워 보였다. 눈에 밟히는 일이 생기면 제 몸이 괴롭더라도 요령 없이 집중하는 성격 탓이었다. 그 때문에 도연은 자신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지 못하는 유철을 안심시켰다. 서두르지 않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철이 내 지금 보고 싶어 죽겠는데요, 하면 도연이 변신한 모습으로 국회 앞에서 퇴근하는 그를 기다렸다. 도연씨 머리…… 예쁘죠? 뽀글뽀글 잘 나왔네요. 크리스마스트리용 머리예요. 어떻게 이렇게 머리가 커지지? 그런 성긴 만남에도 둘의 밀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연말에도 유철은 자원봉사를 하며 지역주민들과 함께했다. 도연은 연말연시에 몰린 송년회나 시상식에 참석해 오랜만에 선후배들을 만났다. 1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때가 아니면 따로 만날 자리가 거의 없었다. 다들 그런 만남에 익숙해 몇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양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저 보통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을 뿐이다. 어디냐고 몇시에 끝나느냐고 닦달하지 않았고, 졸졸 따라다니며 서로의 자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가만히 두어서 더 듬직했다.
추위가 정점에 달한 2월에는 도연이 돌연 사라져 유철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휴대전화가 며칠이나 꺼져 있었고 문자도 확인하지 않았다. 도연이 전화기 꺼두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한번쯤 문자 정도는 확인했는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사흘을 넘기자 끝내 도연의 집을 찾고 말았다. 그리고 유철을 도연의 어머니가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의원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담근 유자청으로 차를 끓여 유철을 대접했다. 마셔 봐요, 맛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차를 마시는 유철을 가만히 보았다. 도연도 없는 집에 왜 온 걸까. 도연이 가보라고 한 걸까. 혹시 도연을 피해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유철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유철이 도연의 소식을 물었다. 그 바람에 어머니가 적이 당황했다. 얘가 말도 안 하고 갔어요? 하고 되물었다.
“급한 일이 생겼나보네요. 그래도 혹시 해서 와봤습니다.”
“뭘 좀 알아보러 간다고 나갔어요. 한 일주일 걸릴 거라던데.”
“예에. 작업하고 관련된 일인가요?”
“그런 거 같아요. 어디 작은 섬으로 취재 간다고 했어요.”
도연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참견이나 간섭을 싫어했다. 저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다가 마음에 들면 웃고 그렇지 않으면 그러려니 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차분히 들어봐야지. 조언하고 참견도 구분 못할까봐? 조언은 품위고 참견은 주책이야. 그래서 참견꾼의 십중팔구가 여보란 듯 주책이고. 잘한다 잘한다, 공치사하면 더 심해져. 참견거리 찾아 기웃기웃거리고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방언처럼 떠들어대. 주책은 멈추지 않아. 날로 진화해. 희한한 형태로 쉴 틈 없이 떨어. 주책중독자. 그런 사람들은 아예 상종하지 않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