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려령 金呂玲

1971년 서울 출생.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이 있음.

 

 

 

장편연재 4

일주일

 

 

4

 

유철에 이어 도연도 사과성명을 내고 절필선언을 했다. 이별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잘못은 인정하되 인연은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정희는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페이스북에 제 휴대전화 번호를 올렸다. 하도연씨, 나한테 직접 사과하세요. 전화 기다립니다. 정희의 글을 확인한 유철이 책상을 검지로 톡톡 쳤다.

우연히 저녁식사 자리에 동석한 정희였다. 그녀가 마침 대학원 진학을 고심하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만남도 잦아졌다. 주로 정희가 먼저 연락했는데 진로 상담 위주여서 유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정희가 유철의 권유로 대학원을 등록한 모양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희는 대학원을 중도에 그만두었다. 유철은 연인이 되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느 조교수의 끈질긴 구애 때문이었다고. 왜 안 받아줬는데? 너 때문에. 정희는 지적 욕구가 강했고 실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 때문에 포기했다는 말이 미안하면서도 듣기에는 좋았다. 결혼 뒤 정희는 자신의 욕망을 유철로 이어갔다. 유철은 그것이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해석에 따라 헌신적 내조일 수도 있고, 능률적으로 일을 공유하는 부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조에도 자중자애가 필요했다. 때로는 기다리고 침묵하고 물러나 있는 것이 더 현명한 내조라는 것을 정희는 알지 못했다. 무엇이든 제 눈으로 보고 제 손이 닿아야 했다. 남들 보기에 행복한 중에 유철이 우울한 이유였다. 너는 내가 가장 잘 알아. 그녀에게 결혼은 배우자의 모든 것을 관할할 자격을 얻는 행위였다. 유철은 이혼으로 겨우 그녀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정희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도연도 정희가 올린 글을 확인했을 것이다. 피할 성격이 아니었다. 유철은 도연을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도연입니다. 늦었습니다.”

“애 아빠하고 만난 첫날부터 잤다면서요?”

“잤습니다.”

“내 남편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헤어지세요.”

“그렇게는 못합니다.”

곧 정희의 악담이 이어졌다. 도연은 듣기만 했다. 결국 너의 천박한 행동에 나의 남편이 당했다, 식의 진부한 남편 감싸기였다. 왜 아직도 그를 감싸십니까. 우리가 그때 잔 것이 문제입니까, 지금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까. 정희는 오래전에 끝나버린 부부관계를 도연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현재의 여자를 과거에 앉혀놓고 그때 잡지 못한 머리채를 지금 잡았다. 과거로 돌아가 그 일주일을 삭제한다면 당신과 그가 여전히 부부겠습니까. 사랑이 원체 이기적이어서 나는 당신과 헤어진 그에게 안도합니다.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만큼 나도 당신이 싫습니다. 당신이 나를 저주하듯 나도 당신을 저주합니다. 하필 당신이 이 남자의 전처라는 것이 끔찍합니다. 전처의 자격으로 그 일주일을 따지는 것은 받아들이겠으나 이별 요구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불행이 당신의 행복이면 모를까, 타인의 불행을 기원하며 스스로 불행해지지는 마십시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더러운 꼴 보기 싫으면 교양있게 처신하세요.”

“끊겠습니다.”

도연이 휴대전화를 옆으로 치우고 노트북을 켰다. 곧 윈도우 바탕화면이 떴다. 도연이 노트북 복구 솔루션을 작동시켰다. 복구 수준 공장 출시 상태. 하드디스크 포맷. 모니터에 경과를 나타내는 막대그래프가 떴다. 당신은 사랑을 교양으로 합니까. 지금의 행동은 당신의 이혼을 기만으로 보이게 합니다. 당신이 내민 이혼서류에 진정성이 없어 보입니다. 나를 핑계로 그와의 인연을 연명하고 싶으십니까. 그것이 당신의 지독한 사랑일지라도 내 눈엔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남자가 당신을 동정하거나 연민한다면 그때는 내가 버리겠습니다. 내 남자도 당신의 남자도 아닌 까닭입니다. 나는 당신을 어르고 달랠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고개 숙일 생각도 없습니다. 이별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이 나는 싫습니다. 도연의 노트북이 절반의 포맷을 마쳤다. 부지런히 도연의 개인 자료와 이제껏 해온, 앞으로 할 예정이었던 작업 파일들을 지웠다. 현재가 불행한 과거는 부질없다. 불행한 현재는 행복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연은 완벽하게 텅 빈 노트북에 새로운 지금을 저장하고 싶었다. 도연이 포맷 경과를 지켜보며 유철에게 전화했다.

“뭐 해요?”

“혼자 놀고 있어요.”

“심심한데 같이 놀아요.”

 

유철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에도 포맷은 끝나지 않았다. 도연은 그 상태로 두고 집을 나왔다. 유철이 아파트 정문 옆에서 차에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연이 차에 탔다. 내비게이션 목적지가 남한산성이었다. 남한산성? 산성 안에 걷기 좋은 길이 있어요. 네에. 유철의 차가 시내를 벗어나 곧 강변도로로 진입했다. 도연이 문에 기대어 차창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보았다. 유철은 마치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듯 곧장 달려왔다. 분명 자신이 정희에게 전화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였다. 그럼에도 모르는 척했다. 도연이 차창에 호오 입김을 불었다. 전화했어요. 뭐라고 해요? 헤어지라고요. 뭐라고 했어요? 당장 그러겠다고 했죠. 잘했어요. 유철이 옆으로 팔을 뻗어 도연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더니 문득 토닥임을 멈추고 도연아, 하고 불렀다. 이상할 것은 없지만 처음 듣는 호칭이어서 도연이 살짝 놀랐다.

“방금 뭐라고 불렀어요?”

“그렇게 부르면 안 되나?”

“안 될 게 뭐 있어요.”

“나는 깍듯한 도연씨보다 그냥 도연이가 더 좋다. 괜찮지?”

“네. 나도 바꿔야지. 유철아, 강변대로를 경운기처럼 달리면 진로방해다.”

“가스나가 말을 놓는 거하고 구박을 구별 못하네. 니 동생이야?”

하하하. 가스나라니. 도연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도연은 유철이 성품상 반말을 잘 못하는 줄로 알았다. 중저음 목소리에 존댓말이 잘 맞기도 했다. 그 목소리로 도연아, 하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잘 어울렸다. 가스나라고 할 때는 유철이 더 바짝 다가온 느낌이었다. 니는 내가 좋아 죽겠지? 네. 고만 좀 좋아해라. 유철이 도연의 머리를 마구 흩뜨려놓고 기분 좋게 달려갔다. 미안해서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었다. 정희가 도연을 정면에 두고 자신의 불행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불행의 원인이 도연인 듯 몰아갔다. 이혼은 정희에게도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혼서류로 유철을 확인해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남은 감정이 전혀 없는지. 국회의원이었으므로 유철도 사생활을 특히 신경 써야 할 때였다. 그런 염려로 결정을 미루는 유철을 예상했을지도 몰랐다. 정희 나름의 계산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내민 이혼서류였다. 유철도 잠시 고민했었다. 곧 치를 선거가 신경 쓰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혼을 미루면 빌미를 남길 수 있었다. 네가 안 했잖아. 네 안위를 위해서. 다시없을 기회였다. 유철은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다만, 네 의사를 존중했으니 너도 나의 사정을 들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바로 있을 국정감사 준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준의 신속하고 조용한 이혼. 이혼조정기간 동안 유철이 오피스텔을 얻어 짐을 옮겼다. 그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합의한 내용에 모두 동의하십니까. 네. 법정 판결을 받고 유철이 이혼신고를 마쳤다. 그것으로 드디어 남이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꿈꾼 이혼이었다. 만일 유철이 먼저 이혼을 요구했다면 정희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꾀에 넘어간 이혼. 정희는 지금 그것을 화풀이 하는 중이었다.

 

유철이 산성 안 야외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그러고는 곧장 행궁길로 들어섰다. 행궁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주위로 난 길이 좋아서 발 닿는 대로 걸었다. 곳곳에 놓인 조각상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유철은 도연씨를 도연아,로 바꾸더니 곧 더 가까운 애칭으로 연아, 하고 불렀다. 바뀜이 자연스러워 도연도 늘 그렇게 들었던 듯 그러려니 했다. 연아, 여기 괜찮지? 응, 좋네요. 좋게만 지내고 싶은데 덜컥덜컥 일이 터졌다. 도연은 묵묵히 감수했다. 왜냐고 물으면 당신이 예뻐서,라고 했다. 단순한 이유가 오히려 유철을 안심시켰다.

“너는 혜승엄마가 이해되니?”

“나는 나 싫다는 사람 나도 싫고, 다른 여자 보는 남자, 남자로 안 보여요.”

불행했던 결혼과 이혼이 원통한 전처가 있다. 전처는 억울하고 전남편은 다행인 이 기묘한 상황. 도연은 맞지 않는 배우자와 사는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인내와 희생과 포기로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이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더한 집들도 그냥 살아. 그 잔인했던 폭언들. 보편화된 불행은 불행이 아닙니까. 남들은 다 견디는 고통을 자신만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몰린 듯했다. 그래도 떠나는 그의 마지막은 근사했다. 나 그만 싫어하고 행복해라. 그의 재혼을 진심으로 축하한 이유다. 유철 부부의 결혼생활이 어떠했는지 도연은 알 수 없다. 어쨌든 함께 사는 것이 힘들 때 헤어졌을 것이다. 그랬기에 유철의 합의이혼을 다행으로 여겼다. 어느 쪽의 희생은 있었겠으나 끝내는 이별이라는 결론에 합의를 봤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전처가 합의한 이별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에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던 여자가 있었다. 유철 입장에서는 이스탄불에서 헤어진 여자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겠으나, 정희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면 억울할 일이었다. 그랬기에 도연도 공식사과와 절필 요구를 받아들였다. 일주일의 댓가였다. 더이상은 안 됐다. 원통함은 알겠으나 분노에도 적정선이 있었다. 그녀가 전남편의 연인관계에 손댈 권한은 없었다. 그러면 분노가 역류한다. 조강지처의 폭로는 모두 참인가. 조강지처는 취하거나 누린 것이 전혀 없는가. 남편의 희생은 없었는가. 지켜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는지.

“아무래도 우리는 놀아야 같이 있을 팔잔가봐.”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잖아.”

“누가 먼저 푸는지 내기해볼까요?”

“나는 버티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야.”

“나는 노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에요. 유철씨가 먼저 일한다,에 내 전부를 겁니다.”

“진짜? 좋아, 내가 일 시작하면 니 다 내 거다. 알았지?”

“저기 혹시 박사과정 그만둔 거, 독해력 부족 때문은 아니었어요? 말의 함의를 이해 못하네. 박사 되기에는 좀 달리는 거 같애. 석사는 확실해요? 학력위조 같은데……”

유철이 우뚝 서서 도연을 빤히 보았다. 도연이 슬그머니 유철을 피했다. 저 풀은 이름이 뭐지? 예쁘다. 너 이리 와봐라. 시골 사람들은 이런 거 이름 잘 알죠? 여 와보라고. 어머, 거북이가 있었네? 이 가스나! 도연이 재빨리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

 

유철과 도연은 햇살이 침대로 쏟아져도 잠에서 깰 줄을 몰랐다. 전날 산성을 다녀온 김에 그와 관련한 영화를 보고, 영화와 관련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입이 심심해 소맥을 만들어 마셨다. 거기에 야참을 곁들여 배부르고 정신 나갈 때까지 웃고 떠들다 새벽녘에 잠들었다. 햇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둘이 수면 경쟁이라도 하듯 숙면 중이었다. 놀랍게도 잠 많은 도연이 겨우 먼저 눈을 떴는데 머리맡에서 붕붕 울린 진동 때문이었다. 침대머리와 베개 사이에 유철의 휴대전화가 있었다. 김보좌관한테서 온 전화였다. 여전히 비몽사몽인 도연이 유철을 깨웠다. 전화 왔어요. 꺼지라고 해. 보좌관님. 하아. 유철이 그대로 누워 전화를 받았다.

“예, 보좌관님.”

“혜승엄마 페이스북에 작가님 통화녹음 파일이 올라왔습니다.”

“예에.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혜승엄마 이대로 둘 생각이십니까?”

“어떻게 안 되는 사람이잖습니까. 그냥 두십시오.”

통화를 마친 유철이 전화기를 베개 뒤로 던졌다.

“이번에는 뭐예요?”

“어제 통화한 거 녹음해서 올렸나보다.”

“그럴 것 같더라.”

도연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햇살을 가렸다. 이제 정희를 좀 알 것 같았다. 권리를 징글맞게 누리는 사람이었다. 당연한 권리도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미덕이고 염치다. 은폐한 불륜. 나는 괴롭혀도 돼. 피해자로서 전처의 권리를 여봐란듯이 사용하기에 이보다 좋은 사유가 없었다. 정희는 신이 났다. 코앞의 쾌감으로 옆을 볼 줄 몰랐다. 남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모욕을 줄까. 싫었다. 도연이 이불을 걷어내고 후우 숨을 내쉬었다.

“배고파요.”

“육개장 컵라면 있다.”

유철이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컵라면을 미리 뜯었다. 도연이 담배에 불을 붙여 유철에게 물려주고 저도 하나 피우면서 냉장고를 살폈다. 김치 벌써 다 먹었네. 우리는 거의 그대로 남았는데. 니 밥 잘 챙겨 먹지? 예에. 도연이 작은 밀폐용기를 꺼내 김치통에 남은 김치를 옮겼다. 유철과 도연은 컵라면으로 끼니와 숙취를 해결했다. 유철이 김치를 컵라면에 넣고 잠시 뚜껑을 닫아놓으면 볶음김치 맛이 난다고 해서 도연이 한번 해보았다. 그냥 라면 국물에 담근 김치 맛인데요? 물이 식은 뒤에 넣어서 그래. 다시 해볼까요? 유철이 새 컵라면을 뜯어 자신의 제조법으로 볶음김치 컵라면을 만들었다. 그것을 도연이 먹어보고는 그저 웃기만 했다. 맞지? 볶음김치 맛 나지? 하하하. 웃지만 말고 말해봐라, 나지? 볶음김치도 아니고 김칫국도 아니야. 육개장이 김치라면이 됐어요. 나는 볶음김치 맛 나는데…… 물을 조금 덜 넣을 걸 그랬다. 그럼 짜서 어떻게 먹어요? 어떻게 해도 웃긴 라면이었다. 한참 웃던 도연이 슬슬 식탁을 정리했다. 어제 컴퓨터 작업하다 말고 나왔어요. 유철이 오피스텔을 청소했다. 간밤에 먹다 남은 치킨과 감자튀김이 탁자에 그대로 있었고, 빈 맥주캔과 소주병도 바닥에 아무렇게 놓여 있었다. 도연은 밤새 쌓인 설거지를 했다. 술 취한 중에도 뭘 그렇게 먹었는지 개수대에 설거지거리가 수북했다. 유철이 이불을 훌훌 털어 침대 정리도 마쳤다.

“대충 됐으면 나가자. 바래다줄게.”

 

유철의 차가 도연의 아파트에 다다랐다. 아파트 정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도연이 몸을 숙여 정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정문 옆 표지석에 붉은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글귀를 보았다. 하도연과 진유철은 지옥으로! 심한 욕설과 성관계를 묘사한 그림도 함께였다. 유철과 도연이 서둘러 주차하고 표지석 앞으로 갔다. 도연과 유철을 알아본 경비원이 멋쩍게 그들을 맞았다. 인터폰을 해도 받지 않아 한참 기다렸다고. 예에, 하고 도연이 붉은 낙서로 뒤덮인 표지석을 보았다. 끔찍했다. 스스로 만든 지옥인지 세상이 만든 지옥인지 몰랐다. 웅성웅성 키득키득. 표지석 낙서는 이미 다 사진 찍었을 거였다. 그럼에도 몇몇은 도연과 유철을 주인공으로 한 사진을 다시 찍었다. 경비원이 이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녀가 새벽에 낙서하고 도망가는 모습이 정문 CCTV에 찍혔다고 했다. 관리실에서 확인해보라고. 고맙습니다. 가보겠습니다. 도연과 유철이 모인 사람들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굳이 관리실에서 무엇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그랬겠지, 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온 도연이 그대로 현관 신발장에 등을 기댔다. 힘들어 죽겠네…… 그동안 도연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그런 도연이 그제야 심정을 토로했다. 정희의 폭로로 도연이 가장 먼저 잃은 것은 딸 인영이었다. 인영은 말없이 짐을 챙겨 외가로 떠났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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