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86년 『문학사상』에 시로 등단. 1995년부터 소설 창작. 소설집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등과 장편 『순정』 등이 있음. ssje@paran.com

 

 

 

잃어버린 인간

 

 

“아빠, 전화!”

거실에서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던 아이가 끈질기게 울어대는 전화를 마지못해 받았다가 마침 방에서 나오던 그에게 전화기를 집어던지듯 하며 말했다. 십여년 전부터 자신의 방에 전화를 따로 두고 주로 그 전화를 쓰다보니 삼십년 가까이 써온 거실 전화는 아내와 아이들 앞으로 걸려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는 집에 있어도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 전화로 그를 찾는다면 나이든 친척들이거나, 전화 명의자이면서 두해 전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와 관련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는 다소 조심스러운 어조로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상대는 “아, 이선대 작가십니까?” 하고 물어왔다. 그는 순간 방에 있는 전화로 걸려올 전화가 잘못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남들한테서 작가로 불리기 전부터 자신 명의의 전화를 따로 써왔고 그를 작가라고 호칭할 만한 사람에게는 그 전화나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주었더랬다.

“그런데요. 누구십니까.”

“아, 나는 이선대 작가의 형님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 요새 많이 바쁘십니까.”

그는 형님이라는 단어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존댓말에 곧 거실의 오래된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적어도 십년 이상 만나지 못한 친구 중 하나가 장난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누구냐. 나 지금 피곤하니까 빨리 누군지 말해.”

“이작가 형님 되는 사람이라니까요. 이작가 집안에서는 형님한테 반말을 쓰십니까.”

“어떤 자식이 끝까지 형님, 형님 하는 거야. 너 어떤 놈이야.”

“허허, 백주대낮부터 웬 욕을…… 제가 이선대 작가의 진짜 형님입니다, 형님.”

“지랄하고 자빠졌네. 전화 끊어, 짜샤.”

“이런 무지막지한 인사가 있나. 그래 선대 이놈아, 나다. 까막골 행님이다. 영제 애비라.”

그는 재종형의 갑자기 커진 목소리와 달라진 억양에 놀라 전화기를 놓칠 뻔했다.

“아이쿠, 명대 형님, 죄송합니다. 저는 친구놈이 장난치는 줄 알고.”

“야가 쪼매 유명해지더이마 나이를 스무살이나 더 잡순 형님하고 친구하자카나, 우얘 된 기라. 내가 노름판에서 환갑 진갑 딴 거 아이데이.”

재종형은 칠년 전 그의 아버지의 장례에 와서는 세번째 소설책을 낸 그를 붙들고 “네가 작가가 된 데는 다 내력이 있니라. 네 할부지, 그랜깨 우리 할부지의 막내아우님이 울마나 이야기를 좋아했는지, 저녁만 되마 아들을 방에다 모다놓고 그러키 이야기를 하고 또 해주고 했던 기라. 그때 이야기가 또 얼매나 재미있었는동 아직 한개도 잊아뿌린 기 없다”고 하면서 그 이야기들을 시시콜콜 주워섬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조부의 핏줄을 이은 사람이 재종형이기라도 하듯 무슨 이야기를 하든 시종이 없고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와 나이가 비슷한 조카 영제가 학교에 가기도 전에 윗목에서 무릎 꿇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가 무릎에 굳은살이 다 박였는데, 군대에 가서야 그 굳은살이 없어지더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뭐라 디릴 말씀이 없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어느새 그는 재종형의 말투를 따라 고향 사투리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 까잇거 알마 됐고. 너도 나가 쉰 다 됐을 틴께 같이 늙어가는데 쪼만한 아맨쿠로 나무랄 수만 있나. 그런데 야이, 너는 왜 우리 집안 이야기는 안 쓰는 기냐. 맨 남의 집안 사람, 남의 이야기만 쓰는 거 겉은데 사람이 근본을 잘 알아야 된다. 네 우리 십대조 부사공 만우당 할부지가 양양 겉은 데 목민관으로 가시서 얼매나 선정을 베푸싰는가 잘 알제. 그 어른 앞으로 된 송덕비가 여덟이나 된다. 그 아드님은 또 해동징자(海東曾子)라고, 지극하신 효도로 영조대왕이 직접 한양 도성으로 불러가이고……”

그는 전화기를 귀에서 슬쩍 뗐다. 수화기 안에서는 계속 재종형의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마루에다 발을 굴러 여전히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던 아이를 돌아보게 한 뒤 입시늉으로 끄라고 하면서 눈을 한껏 부라렸다. 아이가 골이 난 얼굴로 컴퓨터를 끄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 전화기를 다시 귀에 가져다 댔다. 때마침 “안 그렇나?”라는 물음이 들려왔다.

“그게 아이고요, 형님. 지가 무슨 족보 쓰는 사람도 아이고 남사스럽게 집안어른 이야기를 우째 하겠습니까. 그거는 조상 빛내는 게 아이고 욕보여드리는 일입니다.”

“그라마 거 여 웃동네 고령 출신 장석철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뭐라. 그 사람은 자기 대고조 할무이 이야기를 잘도 썼더마. 내가 시골 산다고 눈코귀도 없는 줄 아나.”

“형님, 그분은 장씨가 아이고 성씹니다. 친가도 아닌 외가 조상 이야기를 좋게 쓰고도 문중 어른들한테 불려가서 혼구멍이 났답니다. 소설은 사실하고 다른 거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야가 우째 이래 아래우 동서남북이 꽉 막힜을꼬. 어릴 때는 안 그래 비더마. 하이튼 긴 이야기는 얼굴 보고 하기로 하고 얼른 니리와라. 오늘 봉대 아지미 올라가싰응께.”

“봉대 아지미…… 봉대 아즈마이가 어데를 가셨습니까.”

“야가, 야가, 작가라는 기 우째…… 개떡겉이 말해도 찰떡겉이 알아들어야지. 극락 천당으로 가싰다 이 말이야. 퍼뜩 챙기입고 니리오라카이.”

그러고 나서 재종형은 그에게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주었다. 그는 필기구를 찾아 전화번호를 받아적으면서 봉대 아주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연세는 얼마며 자손들은 어떻고 시신은 어디에 안치되어 있는지 등등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재종형은 고향에 도착하면 곧바로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방으로 들어와 가방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가게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향에 초상이 나서 다녀오겠다, 돌아가신 분이 재당숙모라고 말했다. 그가 아내에게 언급한 재당숙은 한 사람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아내는 그 재당숙이 독립유공자임을 기억해냈다. 그는 아내의 말을 받아 재당숙모가 독립유공자 가족이니 정부에서도 무슨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하나마나한 말을 하면서 ‘옛날 같으면 아무리 재당숙모라도 부고가 오면 무조건 가봐야 하는 게 도리’라는 고리타분한 말이 목까지 치밀어올라오는 것을 꿀꺽 삼켰다.

현관을 나서면서부터 그는 재당숙모에 대해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칠촌이라는 촌수는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는 촌수이다. 그는 재당숙모를 언제 봤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왔을 수도 있지만 그는 그 당시 왔던 재당숙이며 재당숙모의 숫자가 얼마인지도 잘 몰랐다. 기억할 게 별로 없고 희미한만큼 정리는 간단하게 되지 않았다. 그는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탔으며 고속버스에 오르기 전 주간신문을 샀고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먹었다. 그러는 틈틈이, 깜박 졸다 깨다 하는 사이 정리는 계속되었다.

그가 재당숙을 의식하게 된 것은 사십년쯤 전 어린시절부터였다. 철들고 난 뒤 재당숙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고 재당숙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전해들은 것이었다. 어린시절 재당숙에 관한 말이 나올라치면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문외(門外)의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눈빛이 되었다. 재당숙에 대해서는 “하던 일이사 우쨌든동 가가 그래도 성정은 괜찮았다” 같은 식으로 함축적이고 추상적인 언급만으로 그쳤다. 그러므로 재당숙이나 재당숙모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없었고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결국 그가 집에서 세 시간 가량 걸리는 고향에 닿을 때까지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나이 쉰이 다 돼가면서 집안 일가며 친구가 부쩍 더 중요해지는 것 같은데 그게 확실히 나이들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덤으로, 갈수록 감정의 껍질이 점점 박약해져서 슬픔이 생겨나고 노여움이 드러나는 게 사춘기 소년이나 다를 바 없는 듯하다는 전날 술자리의 잡담도 기억해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서야 그는 재종형의 전화번호를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일반전화와 달리 휴대전화의 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듯했다. 그렇다고 다른 친척들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그가 나가자마자 다시 컴퓨터에 달라붙었을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방 책상으로 가서 메모지를 찾으라고 하고, 못 찾겠다고 하는 대답에 벌컥 화를 내며 컴퓨터를 없애버리겠다는 위협까지 하는 법석을 떤 끝에 재종형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형님, 저 선댑니다. 지금 내려왔습니다.”

“어데라?”

“터미널인데요. 고속터미널입니다.”

“그마 거서 한 삼십분만 기다리라. 아 참, 식사는 했는가? 안했으마 터미나루에서 구 소방서 자리로 한 오분쯤 니리가다 오른쪽에 삼수갑산집이라고 닭개장 잘하는 식당이 있응께 거 가서 한그릇 먹고 나서 만내든동. 병원 영안실이 아직 준비가 안돼가이고 가봐야 아무도 없을 기라. 나도 여 있는 아제들하고 이야기 마치고 병원으로 갈 낀께네.”

숨쉴 틈도 없이 시간을 보낼 때 할 일이며 식단까지 알려준 재종형은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전화 빨리 끊기 내기라도 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잠시 난감한 기분으로 터미널 구내에 서 있었다. 어쩌다가 몇년 만에 걸려온 재종형의 전화 한통에 덜컥 꺼둘려 왔는지, 마치 초상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상가에서 준비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왔는지 후회되기도 했다.

터미널 바깥의 공중전화 곁에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져내렸다. 그게 무슨 먹을 것이라도 되는 듯 찢어진 보자기 같은 날개를 접으며 비둘기들이 내려앉았다. 터미널에서 사방 삼백 미터 아무데로나 걸어가도 논밭이 나오는, 시골도 도회도 아닌 어정쩡한 곳에 살고 있는 비둘기의 몰골은 노숙자처럼 추레했다. 그는 사람이 다가가도 느긋하게 몇걸음을 옮길 뿐 날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비둘기 사이를 지나 예전에는 중심가였던 시내 관통도로로 되도록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재종형이 말한 식당이 나타나자 그는 허기를 느끼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는 고향 장안시의 특산인 닭개장, 예전에는 초상이나 혼례 같은 큰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오던 음식으로 ‘닭개장 없으면 초상(혼례)집에도 안 간다’는 말을 낳은 그 닭개장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대학생으로 보이는 처녀가 고개를 갸웃하고 갈 정도로 근래에는 닭개장은 흔치 않은 음식이 된 듯했고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는 기다리는 동안 재당숙과 재당숙모 사이에 난 쌍둥이 아들을 떠올렸다.

촌수가 팔촌, 곧 삼종형제인 그들은 그보다 한살 위였다. 그가 열살 남짓 먹었을 때 서로 닮은 데라고는 별로 없는 이란성 쌍둥이가 그가 동경해 마지않던 대도시에서 왔다. 대도시에서 오는 친척들은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케이크나 고급과자, 쇠고기 몇근과 조부 몫의 담배를 사오곤 했다. 그래서 대도시 손님이 왔다는 말을 들은 즉시 다른 식구들이 케이크와 과자를 다 먹어치우기 전 집으로 달려오는 게 가마골 이씨 집안 아들딸들의 생활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란성 쌍둥이들은 그냥 왔다. 열살 남짓 먹은 사내아이 둘이 그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멀고 먼, 어쩌면 위험한 길을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또 걸어서 왔던 것이다. 쌍둥이는 둘 다 키가 그보다 작았고 얼굴은 타서 거무데데했다. 대도시에 사는 아이들 같지 않게 몸에서 물비린내 같은 냄새가 났고 촌스럽게 눈만 댕그랗게 컸다. 그는 실망하다 못해 화가 나기까지 했다. 선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쌍둥이에게서는 그가 선망해온 대도시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어떤 것, 또는 문명과 과학의 흔적을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그들을 처음 봤을 때 둘은 커다란 양푼에 보리밥과 솎은 열무, 고추장을 넣고 벌겋게 비빈 것을 머리통과 숟가락을 부딪쳐가며 각자의 입에 퍼넣고 있었다. 식은 된장국을 가져다주면서 그의 어머니는 혀를 찼다. 그런데 그날 저녁, 오랜만에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건너온 그의 조부는 무릎 꿇고 앉은 쌍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 먼 길을 용케도 잘 왔다며 칭찬했다. 그러고 나서 식구들에게 그들이 당분간 집에 머물 것이라고 하고는 느닷없이 그만을 따로 호명하면서 “앞으로 잘 데리고 다니되 형님이라고 불러라”고 명령했다. 그는 당혹스러웠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뒤에 쌍둥이를 형님이라고 부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쌍둥이는 언제나 붙어다녔다. 변소를 갈 때도 한 사람이 안에 들어가면 한 사람은 바깥에서 지키고 있었다. “다 눴나?” “안 눴다.” “거 있나?” “나 있다.” 밖에서는 안에 들어가 있는 쌍둥이가 변소 안에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거듭 물었고 안에 있는 쌍둥이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질문이 정상적인 주기에서 벗어나면 즉시 소리를 질러서 바깥의 다른 쌍둥이가 잘 있는지 가버리지나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게 재미있지도 않았으며 되도록 그런 이상한 꼴을 안 보았으면 했다. 그렇지만 쌍둥이는 집안의 그 누구보다도 그를 쫓아다녔다. 심지어 방학중에 학교에서 학생을 소집하는 날, 쌍둥이도 그를 따라 읍내 학교까지 이십리 길을 오갔다. 학교에 가는 동안 그는 쌍둥이에게 학교 안에서 그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경고했고 학교에서 나온 뒤에는 다른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 절대 알은체하지 말라고도 했다. 쌍둥이는 아무런 이의 없이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강아지처럼 온순했다.

“너들은 어데 사나. 언제까지 여게 있을 끼가. 너들 아부지는 뭐하나.”

그날 그들이 그의 말에 잘 순종했다고 판단한 그는 보상이라도 해주듯 그들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다. 동네 어귀의 까막고개〔玄峙〕에서였다. 쌍둥이는 서로를 마주보며 좋아하다가 다음 질문에는 똑같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고 곧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다시 서로 마주보았다. 그는 그들이 이란성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