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 미술에 관한 평론들을 모은 책이지만 펼치는 순간 유가의 귀신론에서 고조선 단군신화를 비롯한 북방 샤머니즘과 동학의 개벽담론을 종횡으로 누비는 저자의 독특한 문명적 사유가 900여면의 방대한 분량에 걸쳐 자못 활달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서구 또는 근대적 의미의 분과학문적 체질에 깊숙이 젖은 오늘날의 지식사회에서 얼마나 반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계사에서 사라졌고 개별 민족사에서조차 잊혔지만, 민족의 무의식에 남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는 옛 문명의 신화”(32면)나 수운 최제우 이래의 한반도 개벽사상과 같은 정신사적 유산들을 한물간 민족주의적 우상처럼 취급하는 낡은 통념이 여전히 그리고 완강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개벽담론에 민족주의·국수주의 성향의 ‘종교’사상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도 큰 제약이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