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자본주의의 기원과 위기

 

 

로버트 브레너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역사학 rbrenner@ucla.edu

정성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원장 seongjin@nongae.gsnu.ac.kr

 

 

때: 2001년 2월 7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장성진  먼저 바쁘신 중에도 방한하여 대담에 임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1 선생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맑스주의 역사학자로서, 특히 1970년대 말에 재개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논쟁의 주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76년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지에 발표된 선생의 논문 「공업화 이전 유럽에서의 농촌의 계급구조와 경제발전」(Agrarian Class Structure and Economic Development in Pre-Industrial Europe)이 바로 제2차 이행논쟁을 야기했지요. 그 논문에서 선생은 자본주의의 발흥에 계급투쟁이 수행한 역할을 강조했는데, 1950년대에 벌어진 돕(M. Dobb)과 스위지(P. Sweezy) 사이의 제1차 이행논쟁에서 돕도 영주와 농민 간의 투쟁을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원동력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행논쟁에서 선생과 돕의 입장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행논쟁에서 돕과 구별되는 선생의 독자적 기여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비자본주의적인 농민의 속성

 

브레너  우선 돕은 매우 독창적인 학자이며, 그의 저작은 분명히 나의 작업에서 기본적 원천의 하나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돕 이전의 맑스주의 전통에서도 아담 스미스(Adam Smith) 식으로 이행과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방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도시와 상업은 본질적으로 초기 자본주의적이라고 간주되고, 농민과 영주는 시장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존지향적이라고 가정되었죠. 그러나 농민과 영주가 일단 상업을 하고, 상업에서 이득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면, 그들도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인 행위자로 전환되거나 스스로를 그렇게 전환한다고 주장되었습니다.

 

Robert Brenner 1943년 뉴욕 출생. 캘리포니아대학(UCLA) 역사학과 교수 및 ‘사회이론과 비교역사 연구소’ 소장. 미국 좌파 정치조직 ‘연대’에서 활동. 주요 저서로 『농업계급 구조와 경제발전』 『상인과 혁명』 『세계경제위기의 경제학』 등이 있음. 오늘날의 디지털혁명이 자본주의의 게임룰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거나, 이윤창출 조건을 변혁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Robert Brenner
1943년 뉴욕 출생. 캘리포니아대학(UCLA) 역사학과 교수 및 ‘사회이론과 비교역사 연구소’ 소장. 미국 좌파 정치조직 ‘연대’에서 활동. 주요 저서로 『농업계급 구조와 경제발전』 『상인과 혁명』 『세계경제위기의 경제학』 등이 있음.
오늘날의 디지털혁명이 자본주의의 게임룰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거나, 이윤창출 조건을 변혁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돕의 기여는 사회적 생산관계 혹은 계급관계를 논의의 중심에 위치지은 것인데, 이는 커다란 함의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돕은 이를 위해 『자본론』 제3권 중 상인자본, 이자를 낳는 자본, 자본주의적 지대의 기원등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장들에서 이루어진 맑스의 논의를 전면에 부각시켰습니다. 돕의 주된 논지는 지배적인 사회적 생산관계 혹은 계급관계가 개인과 계급의 행동을 규정하기 때문에 봉건경제는 자본주의 경제를 비롯한 다른 모든 생산양식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발전유형을 갖는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가져온 하나의 근본적 결과는, 돕 자신은 이에 대해 오히려 약간 애매하지만, 봉건제하에서의 도시와 상업의 의미 자체와 의의는 자본주의하에서의 그것과 아주 다르다는 사실이 이해된 것입니다. 실제로 상업과 도시는 봉건제와 전적으로 양립가능했고, 상인들은 봉건질서에 속박되어 있었죠. 돕은 상업의 발흥이 동유럽에서는 봉건제의 강화와 병행된 반면, 서유럽에서는 봉건제의 약화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돕과 맑스의 이러한 관점은 나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나의 견해가 돕과 어떻게 다르냐고요? 우선 나는 돕의 접근을, 그의 전제와 양립한다고 보지만, 돕 자신은 수용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즉, 봉건제와 자본주의 그리고 모든 생산양식에 대해 사회적 생산관계 개념을 확장하여, 착취자와 피착취자 간의 수직적 관계뿐만 아니라 착취자들 상호간, 피착취자들 상호간 또는 직접적 생산자들 상호간의 수평적 관계도 포함시켰습니다. 특히 봉건제에 대해, 봉건영주들이 완전한 생존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농민들을 경제외적 강제를 통해 착취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분권적인 집단들로 조직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요점은 이들 봉건영주 집단이 서로 수평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서로 부와 소득을 재분배하는 수평적인 정치군사적 경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것을 ‘정치적 축적’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봉건제의 진화, 예컨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대규모화한 영주집단들 혹은 봉건국가가 출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丁聲鎭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원장. 주요 논문으로 「세계경제위기와 맑스주의 공황론」 「부패의 정치경제학」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운동의 전망」, 저서로 『한국경제에서의 마르크스비율의 분석』 등이 있음. 선생의 주장에서 자본주의의 발생이 유럽적 사실, 더 정확하게는 영국 농촌의 사실로 간주되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듯합니다.

丁聲鎭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원장. 주요 논문으로 「세계경제위기와 맑스주의 공황론」 「부패의 정치경제학」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운동의 전망」, 저서로 『한국경제에서의 마르크스비율의 분석』 등이 있음.
선생의 주장에서 자본주의의 발생이 유럽적 사실, 더 정확하게는 영국 농촌의 사실로 간주되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듯합니다.

 

선생이 지적했듯이, 나는 계급투쟁이 봉건제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돕과 나의 해석은 근본에서 아주 다릅니다. 돕의 경우,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농민이 봉건영주를 타도하고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을 확보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는 이것이 일단 이루어지면 상업의 충격이 농민층을 분해하여 농민층으로부터 농업자본가와 농업임금노동자가 성립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상업과 도시의 충격이 농민경제를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시킨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러한 돕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설명이 역설적으로 스미스주의를 뒷문으로 다시 불러들이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돕은 농민소유의 사회적 소유관계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돕과 달리 나는 농민은 영주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비자본주의적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나는 상업과 도시가 존재하게 되면 농민이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전환된다는, 완전히 스미스적인 견해를 부정합니다. 농민들이 비자본주의적인 것은 그들이 생산수단뿐만 아니라 완전한 생존수단, 즉 자신들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소유해 시장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존수단의 소유’라는 사회적 소유관계는 근본적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농민들을 시장, 특히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농민들이 상업의 기회를 갖고 있으며 스스로 시장에 포섭됨으로써(involving) 생기는 이득의 일부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들은 시장에 의존하고(dependent) 있지 않으므로, 특화를 해야 할 강제(imperative)하에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구별은 한편으로는 시장기회와 시장포섭,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존과 시장강제(경쟁)입니다.

농민들은 경쟁으로부터 보호되어 있기 때문에, 상업으로부터 이득을 극대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적인 선택 이외의 다른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농민들은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하다면 상업에서 충분한 이득을 얻으려 할 테지만,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댓가, 즉 완전히 특화하는 것의 댓가가 너무 큽니다. 일단 특화하게 되면 농민들은 경쟁의 압력에 종속되기 때문이죠. 농민들은 경쟁의 강제에 종속되면 이윤을 극대화해야만 하며, 다른 우선적인 것들을 성취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자신의 잉여를 상품화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재화와 써비스의 생산에 자신의 토지와 노동 및 도구를 바침으로써 ‘안전 우선’을 추구합니다.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농민들은 그렇게 행동합니다. 농민들은 불확실한 수확에 좌우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식량가격이 급등하고 기아에 직면하기 때문이죠. 또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이는 농민들이 사회경제적 생활에서 경쟁에 좌우되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관련됩니다. 농민들은 병들거나 늙었을 때 성인으로 살아남은 자녀들에 의지할 수 있기 위해 대가족을 원합니다. 그런데 대가족이 반드시 ‘경제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경쟁에 노출되었을 때 이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농민들이 자신의 자식들이 각각 가정을 형성할 수 있도록 상속시 자신들의 보유지를 세분하는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보유지의 세분화 역시 비경제적이며 경쟁적 생산과는 양립하기 힘듭니다. 보유지의 세분화에 의존하는 조혼 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점은 상업이 존재하게 되었을 때, 농민들은 그들의 처지와 목표라는 견지에서 보면 아주 의미있는 일련의 선택, 즉 시장으로부터의 보호와 완전 특화의 기피라는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제 전체의 기초에 대해 갖는 함의는 상업의 기회와 도시가 존재하게 되었을 때 농민들이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특화하지 않는 데 따른 생산력의 느린 성장, 점점 축소되는 보유지 규모, 인구증가, 노동생산성의 저하, 이주지역의 확대 등 분명히 비자본주의적인 발전경로를 걷는 농민경제로 귀결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일반적으로 전(前)자본주의적 행위자들, 특히 농민들이 자신을 현재 상태대로 재생산하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행에서 핵심적인 것은 맑스가 이른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부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행에서 하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영주들이 경제외적 강제를 통해 농민들로부터 잉여를 수탈하는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며, 이는 농민의 저항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는 돕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또하나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이는 농민이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시장의존적’으로 되어야만 자본주의가 출현할 수 있습니다. 즉, 농민들이 경쟁에 노출되어야만 합니다. 방금 농민들이 그들의 생존수단에서 분리된다고 말했는데, 생존수단에서 핵심적인 것은 농민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토지입니다. 왜냐하면 토지는 농민들이 시장에 가지 않고도 투입재(inputs)를 구할 수 있게 해주며, 그들이 생존을 위해서 이윤을 극대화할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선다면, 우리는 농민들이 생존수단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들이 시장의존적으로 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돕의 잘못은, 상업의 기회가 농민들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근본적으로 실현시킴으로써, 특화된 자본가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을 가져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른바 자본의 원시적 축적에서 결정적인 부분은 농민들이 그들의 생존수단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농민들은 일단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면 차지농이 됩니다. 그들은 여전히 도구와 같은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만, 주요한 투입재의 하나인 토지는 시장에서 구매해야만 합니다. 즉 임차해야만 합니다. 이제 농민들은 생산물을 경쟁적으로 판매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이제 경쟁에 종속되며, 더이상 안전 우선으로 선택을 할 수 없고, 대가족을 가질 수도 없으며, 보유지를 세분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고, 상업 이득의 극대화를 추구해야만 합니다.

요컨대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영국에서 일어났는데, 그때 농민들은 경제외적 강제를 통한 영주의 잉여착취 체제를 붕괴시켰으나, 자신들의 생존수단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획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도리어 영주들은 농민들이 완전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을 저지하고 그들을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시켜 시장의존적으로 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출현한 차지농들은 생존을 위해 자본가들처럼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이윤을 극대화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특화를 해나가고, 자본을 축적하고, 최신의 기술혁신을 이뤄내야만 했죠. 그 결과 영국 농촌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도 농민은 농노제를 패퇴시켰지만, 영국 농민과는 달리 프랑스 농민은 생존수단을 완전하게 획득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상업이 존재했지만 자본주의의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중세와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생산, 느린 생산력 성장, 보유지의 세분화, 인구증가, 이주지역의 확대, 노동생산성의 정체 등이 계속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생은 계급투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장성진  선생은 방금 자본주의 이행에서 직접생산자가 생산수단이 아니라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맑스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직접생산자가 생산수단에서 분리되는 과정으로 정의했습니다. 선생이 생산수단 대신 생존수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브레너  내가 직접생산자의 생존수단─이는 직접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으로서,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하거나 그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들을 가리킵니다─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생존수단의 소유로부터 생존수단으로부터의 분리로의 전환, 즉 직접생산자의 시장의존으로의 전환이 결정적인 전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도 농기구·가축·건물 등과 같은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존수단을 완전히 소유─이는 토지소유를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의 일부를 시장에서 구매해야만 하며(예컨대 토지의 임차), 그러므로 생존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판매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발생에서 핵심적인 것은 경쟁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위자들이 자본가들처럼 행동하도록 하는 데, 즉 특화·기술혁신·축적에 의해 행위자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강제되는 데 핵심적인 것은 경쟁에 종속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자본의 원시적 축적에서 흔히 강조되는 측면은 임금노동자의 형성입니다. 그러나 이 측면은 중요하기는 해도, 생산자들이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경쟁에 종속된다는 측면보다는 덜 본질적입니다. 생산자들이 일단 경쟁에 종속되어야 비로소 임금노동자로 구성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이 출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봉건제하에서는 자본주의 없이도 임금노동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임금노동은 봉건제하에서도 농민들이 자신의 보유지를 과도하게 세분하여 급기야 생존수단과 생산수단을 모두 결여하게 될 경우 흔히 존재했습니다.

장성진  그렇다면 임금노동이 자본주의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브레너  그렇습니다. 물론 임금노동은 근대자본주의에 중심적이고 규정적인 특징이기는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자본주의를 실제로 형성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직접생산자의 생존수단으로부터의 분리와 시장의존이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경쟁에 종속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일단 그렇게 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장성진  선생은 전(前)자본주의 사회 내부에는 그 어떠한 내재적인 고유한 경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또 선생은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생한 것을 봉건제하에서 이루어진 계급투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설명합니다. 선생은 세계사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한 것을 역사적 필연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의 논리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출현은 하나의 우연적 사건입니까?

브레너  내가 봉건제하에서 자본주의로 향하는 내재적 경향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는, 내가 스미스주의를 거부하고 그것을 사회적 소유관계에 대한 접근으로 대체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스미스주의는 자본주의가 봉건제에 내재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상업과 도시는 그 자체 자본주의적이며, 봉건영주와 농민을 자본가로 전환시킨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나의 견해는 앞서 강조했듯이 이것과 아주 다릅니다. 영주의 잉여착취와 농민소유자들에 기초를 둔 경제가 존재한다면, 특정한 진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소유관계가 유지되는 한, 영주들은 정치적 축적에 매달릴 것이며, 농민들은 생존을 위한 생산과 안전우선주의를 선택하고 보유지를 세분하며 대가족을 가질 것입니다. 영주와 농민이 영주적 잉여착취와 농민소유의 결과로 이러한 ‘재생산 규칙’(rules for reproduction)을 선택하는 한, 무기와 사치재에 대한 영주들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점점 대규모화하는 국가와 도시, 농촌에 무거운 부담이 되는 도시에서의 비생산적 노동의 증가, 보유지의 세분화, 인구증가, 노동생산성의 저하와 느린 생산력 발전─이들은 결국 봉건위기를 가져옵니다─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봉건제의 장기적 발전유형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봉건위기를 돌파하는 사회적 소유관계의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경제외적 강제에 의한 영주착취와 농민소유 체제가 유지될 것이며 이전과 동일한 장기적 발전유형이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1. 이 대담은 대표적 맑스주의 역사학자 로버트 브레너가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초청으로 올 2월 3〜10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성진 교수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여기 번역된 내용은 2월 7일 대담과 그후 전자우편으로 이루어진 추가 질문과 답변을 10월 중순 로버트 브레너 교수가 직접 요약 정리한 것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