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개혁문화, 이렇게 만들자

 

재벌개혁, 어디까지 가야 하나

 

 

김진방 金鎭邦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공저로 『한국 5대 재벌 백서: 1995~1997』 『미국 자본주의 해부』 『유럽 자본주의 해부』 등이 있음. jkim@inha.ac.kr

 

 

재벌은 한국경제의 중심이다. 경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정치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의 대부분이 재벌로부터 나온다. 재벌의 돈은 광고를 통해 언론에도 들어간다. 재벌은 대학도 움직인다. 한국에서 재벌이 없는 곳은 없다. 그러기에 재벌은 정책의 대상이고 운동의 대상이다.

경제위기 이후 개혁은 흐름이 되었다. 재벌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재벌에 관한 논의는 곧 재벌개혁에 관한 논의가 되었다. 재벌개혁이 정책과 운동의 목표가 되었다. 지양해야 할 것과 지향해야 할 것에 대한 주장이 무성했고 일부는 실행되었다. 그러나 논의와 주장은 종종 과학보다 이념을 앞세웠고, 실증보다 예단에 의존했으며, 논리보다 수사(修辭)에 치우쳤다. 좀더 차분하고 냉정한 분석이 요구되며 객관적이고 정량(定量)적인 검증이 요구된다.

분석은 평가를 동반하며 평가에는 기준이 있다. 실증적 분석도 다르지 않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기준이 언급된다. 첫째 기준은 효율성이다. 기업은 자본과 노동이 결합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조직이며, 그 효율성은 부가가치로 측정된다. 기업지배구조와 그것을 규정하는 제도와 법규는 이러한 기업의 존재이유에 부합해야 하고, 한 기업의 효율성이 아니라 전체 기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기준은 안정성이다. 소득과 고용의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동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소득과 고용의 갑작스런 축소가 가져오는 파괴적 결과를 경험했다. 마지막 기준은 경제력 집중이다.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으나 소수의 개인이나 가족이 한 사회가 가진 자산의 대부분을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운용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함께 밝혀둘 게 있다. 재벌이란 용어는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때로는 총수 혹은 회장이라고 불리는 자연인과 그의 친인척을 가리킨다. 때로는 총수가 지배하는 기업들을 가리킨다. 때로는 한 개인 혹은 가족이 적은 소유로 많은 기업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재벌·재벌기업·재벌체제로 구분해서 쓰기도 한다.1 사실 ‘재벌개혁’도 ‘재벌체제개혁’으로 바꿔 쓰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재벌개혁’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한국경제의 성장과 위기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종종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의 성공사례로 거론된다.2국가는 노동자를 억압해 기업의 노동비용을 낮췄고, 은행을 통해 국민의 저축을 자의적으로 기업에 배분했으며,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들여온 해외차관도 같은 방식으로 기업에 배분했다. 기업은 국가로부터 자금과 규율을 함께 받았다. 수출 실적을 올려야 했고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도 이뤄야 했다. 이윤은 다시 투자해야 했고, 할 사업과 하지 않을 사업은 국가가 결정했다. 부실기업 처리도 국가가 주도했고 그 비용을 부담했다. 재벌이 커지면서 경제력이 집중되었고 정경유착의 폐단이 심해졌으나 고도성장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급증하고 규모의 경제가 작동했으며 필요한 기술은 외국에서 도입할 수 있었다.3

그러나 발전국가의 성공은 계속될 수 없었다.41970년대부터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국가 주도의 자원배분은 효력을 잃어갔다. 투입 위주의 성장도 선진국의 기술과 시장을 넘겨받을 수 있던 시기에나 가능했다.1980년대에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가의 노동억압이 어려워졌고 임금상승은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국가는 재벌을 규제할 힘을 잃었는데, 제2금융권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재벌 스스로 국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에 길들여진 은행은 재벌을 통제할 의사조차 없었다. 외국 금융기관도 다르지 않았다. 재벌의 부도는 금융시장의 마비로 이어질 것이기에 정부가 막아주리라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재벌의 차입이 급증하고 과잉 중복투자는 기업부실과 금융부실로 이어졌으나 숨겨져 있었다.

새로운 규칙과 질서가 요구되었으나 마련되지 않았다. 국가의 강제도 사회적 합의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오히려 재벌과 국제금융자본에 떠밀린 정부는 금융의 자유화와 세계화를 무분별하게 추진하면서 금융감독마저 느슨하게 했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게 된 일부 금융기관은 무모한 해외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은 금융개혁과 노사개혁을 시도했으나 대립과 갈등만 심화시켰고, 한보와 기아의 부도와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를 목격하면서도 손을 놓고만 있었다. 마침내 외국의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단기성 외채가 쌓여 있어서 자금회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외환이 바닥나고 환율이 상승하면서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은 마비되었고 한국경제는 순식간에 공황에 휩싸였다.

 

 

국민과 노동자 부담의 구조조정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IMF의 관리를 받으면서 과거의 부실을 처리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개혁을 주도했는데, 우선 금융부실 처리작업에 착수했다. 일부는 부실 금융기관을 폐쇄하거나 매각하면서 그 빚을 국가가 갚고, 일부는 부실 금융기관에 국가가 출자해 지배주주가 되는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돈은 대부분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빌렸다.1998년 5월에 64조원의 채권을 발행했고,2000년 12월에 추가로 40조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공공차관이나 국유재산

  1. 김기원 「재벌체제의 발전과 모순」, 『동향과전망』 2001년 가을호.
  2. Meredith Woo-Cumings(ed.), The Developmental State,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9.
  3. Alice H.Amsden, Asia’s Next Giant: South Korea and Late Industrializ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4. 이병천·김균 엮음 『위기, 그리고 대전환』, 당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