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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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연 吳受姸

1964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장편공모에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이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빈집』 『부엌』, 산문집 『아부 알리, 죽지 마』 등이 있음. sohoj71@hotmail.com

 

 

 

재칼과 바다의 장(章)

 

 

옛날에

재칼 두마리가 살았습니다. 한마리의 이름은 칼릴라였고 다른 한마리의 이름은 딤나였습니다. 두마리 모두 지혜와 지식과 교양을 겸비했습니다.1 어느날 딤나가 칼릴라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진실을 말할게.”

“이제?”

칼릴라는 피식 웃었습니다. 딤나는 말했습니다.

“입은 비뚤어져도 바른말을 할 때가 급기야 도래했다. 봐라, 이 부서지고 깨진 기왓장들을!”

어디선가 기왓장이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두마리는 흠칫 떨었습니다. 딤나는 침통하게 읊조렸습니다.

“아, 또 한장의 기왓장이 지붕에서 떨어져, 찍 소리도 못하고 짹 소리도 못하고, 엄마 나 가요 한마디 남기지도 못하고, 박살이 나고 말았구나!”

“저런!”

칼릴라는 속삭였습니다. 딤나가 말했습니다.

“침략자는 나쁘다!”

“계속해.”

칼릴라는 마지못해 속삭였습니다. 딤나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나쁜 침략자는 망하고 마침내 만사가 잘될 것이다!”

“늘 하는 말이잖아.”

칼릴라가 눈살을 찌푸리고 항의했습니다. 딤나가 드디어 새로운 말을 하겠다는 시늉을 하고는 목청을 돋우어 외쳤습니다.

“나 같은 인재를 이다지도 함부로 썩히는 건 국력 손실이다!”

칼릴라는 아무 대꾸 없이 뒷발로 등을 긁었습니다. 딤나가 으르렁거렸습니다.

“이번엔 달라!”

“뭐가?”

“내가. 이 말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하지만 대단원이 있으면 그전에 위기가, 위기 전에 전개가, 전개 전에 발단이 있었던 것 아냐. 괴로워도 누군가는 이 언어도단의 사태를 수습하여 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어디선가 기왓장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바닥에 하얗게 깔렸던 꽃잎들이 날아올라 규칙 없이 무질서하게, 또 규칙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떠돌았습니다. 칼릴라는 코끝을 스치고 동동 떠가는 꽃잎 한점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습니다.

“맘대로 해. 네 입이 괜히 비뚤어졌겠니. 토끼마을의 돼지처럼 아래턱과 위턱이 아예 어긋나버린다고 해도 네 인생이지.”

“뭐, 뭐?”하고 딤나가 묻자 칼릴라는 등을 실컷 긁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받는 이 인터넷잡지 경리담당

제목 해명서

첨부파일 해명서.hwp(0.01MB)

방금 은행직원하고 통화를 했는데, 그 사람도 잘 모르더군요. ‘뉴욕은행’에서 짧은 통보만 받았답니다. 그 직원 말로는 자기 은행을 통해 잡지사가 돈을 보낸 ‘서쪽은행’의 본사가 뉴욕은행이므로 (그런 줄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원래 돈이 동쪽 태평양 건너 지구를 반바퀴 돌아가게 돼 있답니다. 하지만 자기도 고객이 송금한 돈이 ‘테러자금’이라고 걸린 경우는 처음이라, 뉴욕은행이나 서쪽은행에서 왜 그 돈이 테러자금이라는 혐의가 있다고 하는지, 그리고 테러자금 혐의가 있는 돈을 은행이 다섯달이나 묵혀두었다가 왜 이제 와서 통보를 하고 오늘 안에 송금자가 해명하지 못하면 국가가 몰수하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답니다. 30만원이 테러자금이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제가 그 돈을 몰수한다는 국가가 어느 나라냐고 묻자, 그 직원은 서쪽자치지구로 송금한 돈이니 당연히 서쪽자치정부가 아니겠느냐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올초 서쪽자치지구 총선에서 점령에 저항하는 급진정당이 집권했는데, 자기 시민한테 송금된 돈을 테러자금이라고 몰수할 리가 없습니다. 아마 미국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점령국이 몰수하겠다는 말일 겁니다. 서쪽은행인지 뉴욕은행인지, 국가인지에 제출할 영어 해명서를 첨부합니다. 하지만 은행이나 국가나 하필 그 돈에서 테러자금 냄새를 맡은 이유를 알려줘야 제가 해명을 해도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그 돈을 받을 사람은 문인이고 돈은 원고료다, 이것밖에 쓸 말이 없습니다. 이게 사실이고 전부이니까요.

 

검색   서쪽자치정부

한참 지난 뉴스

특히 미국이 서쪽자치지구의 은행들에 대해 미국의 제재를 받지 않으려면 자치정부와 거래하지 말라고 경고함에 따라 새 내각의 곤경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로 집권한 정당이 점령국에 반대하며 싸워온 역사 때문에 워싱턴에 의해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서쪽지역에 기반을 둔 ‘서쪽은행’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서쪽자치정부의 모든 계좌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은행들도 이같은 조치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2

 

보낸 이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기 전 서쪽 문인

보낸 날짜 5개월 전

받는 이 동쪽 친구

제목 Re: 친구로부터

나는 괜찮습니다. 사람은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걱정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스트레스는 여기서 내가 받는 걸로 충분하니까 당신까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봄을 감사히 여기고 즐기십시오. 편지 쓸 때마다 내가 언짢은 소식을 전하나 봅니다. 나도 제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요.

윤회라는 게 있다면, 나는 내생에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내 뿌리로 물을 긷고 내 잎으로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때가 되면 보는 이 없어도 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꽃이 지더라도 소리없이 웃고 싶습니다.

-그 며칠 전 동쪽 친구 wrote:

지금은 밤입니다. 검은 장막 안에 갇힌 듯 답답하군요. 당신의 아파트 작은 정원에 서 있는 아몬드나무에는 아직도 꽃이 피어 있는지요. 내가 그쪽에 잠깐 들렀을 때는 아직 점령국의 장벽이 완성되기 전이라, 나중에 장벽 사진을 보고 나는 그 크기와 높이에 질렸습니다. 자기들이 수천년 동안 천대받고 학살당했다고 떠드는 점령국이, 그런 고난에서 남을 천대하고 학살하는 기술 말고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그 장벽 때문에 노을을 볼 수 없게 됐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조금은, 장벽이 실감났습니다. 장벽이란 그런 것이군요. 노을마저 막는 것.

당신의 시도 그렇지만 특히 산문을 읽어보면 당신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칠 때면 광야로 나가 바위 위에 눕는다는 구절도 생각나네요. 이제 당신은 아무리 지쳐도 광야로 나갈 수가 없겠군요.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이 창문을 열고 단 한그루 아몬드나무의 꽃잎을 만져보았다는 답장을 받고, 나는 여기에 온갖 꽃이 만발했다고 자랑한 이전 편지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말에 꽃이 서로 다투어 벌어지는 모양을 ‘폭죽 터지듯 피어난다’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금 실제로 뭔가 터지는 것 같습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바람 불 때마다 위로 솟구치며 흩날리는 꽃잎들이, 폭발음 같습니다. 꽃잎들이 소리의 파편이 되어 내게 들립니다. 봄새가 웁니다. 저 새는 늦은 봄에, 그리고 주로 밤에 슬프게 웁니다. 그러나 내게는 새가 온 힘을 다해 어둠에 구멍을 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새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로 울 때마다 어둠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 하얀 이면이 보입니다. 내게 흩날리는 꽃잎이 들리고, 새 울음소리가 보입니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네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네요.

추신: 당신의 글을 실은 인터넷잡지사에서 원고료를 보냈다고 합니다.

 

옛날에

돼지 한마리가 토끼마을에 가서 택시를 탔어. 택시는 새로 지어진 멋들어진 건물을 지나쳤어. 돼지가 묻기도 전에 운전사는 친절하게, 그 건물 이름이 토끼영웅의 이름을 딴 거라고 설명해주었어. 그리고 영웅의 이름이 안 좋다고 투덜거리는 거야. 성씨도 어머니 성까지 붙여 잡다하게 만드는 시대에 이름이 좋고 나쁜 게 어디 있겠느냐며 돼지는 껄껄 웃었어. 운전사는 양해를 구하고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물더니 털어놓았어.

“어차피 주행거리가 꽤 되니 말씀드리지요. 저는 그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려요. 아마 그 토끼는 이 동네 나타나면 몰매 맞을걸요? 자기가 영웅된 거 말고 그 토끼가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하나 있긴 있지요. 자기 동네에 도로 낸 것. 차라리 우리가 다른 편을 들었다면 나을 뻔했어요.”

“영웅의 경쟁자 토끼요?”

돼지는 고지식하게 물었어. 운전사는 담배연기를 내뿜고 담담히 말했어.

“검은토끼요.”

“네?”

돼지는 어이가 없었어. 왜냐하면 그 흰토끼들은 오랫동안 검은토끼들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영웅의 지도 아래 용감히 싸워 가까스로 숨통을 텄거든.

“우리 동네가 검은토끼 편을 들었더라면, 검은토끼와 영웅 측이 서로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우리에게 더 많은 이득을 주었을 거예요. 우리는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흰토끼영웅은 다른 동네에서 나와봤자 소용없어요. 우리 동네에서 나와야 해요. 다음부터 우리는 우리 동네 본토박이만 믿을 거예요.”

“실망스럽군요! 당신들이 맨몸으로 검은토끼들의 군홧발과 쇠사슬, 회칼에 맞설 때 나는 깊이 감동받았어요. 그런데 그게 자기 동네 이득을 위해서였다구요? 그렇다면 자기 이득 때문에 당신들을 짓밟은 검은토끼들하고 뭐가 다릅니까? 할 수가 없어서 못할 뿐이지 당신들도 할 수만 있다면 남을 얼마든지 짓밟겠네요. 내 못 들은 걸로 하지요. 필시 당신은 예외적인 경우일 게요. 나는 당신들을 믿어요. 왜냐하면 당신들은 약자고, 강자가 나쁜데 약자까지 이상하다면 도무지 말이 안되기 때문이오.”

돼지가 근엄하게 말했어. 운전사는 한숨과 함께 대꾸했어.

“그래도 우리 동네하고 옆 동네는 영판 다른걸요.”

돼지는 입술을 비죽이며 한껏 고개를 저었어.

“도대체 여긴 왜 이래요? 산보삼아 넘기 좋은 언덕이라도 하나 있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라도 있으면 그 이쪽저쪽이 죄다 원수지간이요, 동네끼리 패싸움에 골목마다 골목다툼, 신물나지도 않아요? 같은 골목 안에서 번지수끼리 이득이 갈리면 번지수끼리 싸울 거요? 같은 번지수 안에서 또 홋수끼리 이득이 갈리면요?”

“희한하게 외부인들은 정치이야기만 해요. 자기 마을에서도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한테 충고할 때는 자기가 우리 영웅 입장이 되어 영웅처럼 말한다니까요. 아니 검은토끼들하고 아주 비슷하게 말해요. 검은토끼들도 늑대들한테 지배당할 때 우리가 뭉쳐야 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늑대들도 힘을 합쳐 사자한테 대항하자고 말했죠. 사자들도 어떤 사자들은 우리한테 늑대에게 저항하라고 부추기고 다른 사자들은 늑대들을 부드럽게 달래려면 토끼들은 잠자코 엎드려 있어야 한다고…… 손님, 손님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우선……”

돼지는 말을 잇지 못했어. 왜냐하면 자기가 토끼라면 이민 갈 것 같았거든. 운전사는 잠시 기다렸다가 말했어.

“제가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돼지는 몇시인지 알면서도 손목시계로 확인하며 “그러시든지” 하고 대답을 흘렸어. 토끼 운전사는 이야기를 시작했어.

옛날에

숲속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집에서 벌들이 행복하게 살았대요. 그런데 어느날 인간들이 숲을 불태워 마을을 세우고 밭을 개간해나가기 시작하니, 나무와 꽃들이 줄어들어 벌들은 굶주리게 되었대요. 여왕벌이 불평하는 벌들을 다독였대요.

“한마리당 배급량을 반으로 줄여 나눠먹고 올해만 견딥시다. 내년에는 햇살이 쨍쨍 나서 꽃술마다 젖과 꿀이 흘러 우리가 부른 배를 두드리며 격양가를 부르리오.”

그러나 다음해에 숲은 더욱 줄어들었대요.

“한해만 더 참읍시다. 배급량을 또 반으로 줄여 만방에 우리의 저력을 보여줍시다.”

그러나 다음해에도 숲이 줄어들어 벌들의 배급량은 또 반으로 줄었대요. 그 다음해에도 마찬가지였대요. 그런 식으로 7년이 지나니 배급이 일절 끊겨 벌들은 벌집의 밀랍 벽을 뜯어먹고, 이슬 먹고 솔잎도 맛보고, 그러다가 도가 트든지 아니면 굶어죽어갔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간이 와서 연기를 피우고 작대기로 벌집을 들쑤셨대요. 벌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사력을 다해 날아올라 인간을 공격했대요. 뜻밖에 벌들의 저항이 거세자 인간은 도망갔으나 다음날 더 많은 장비를 갖고 들이닥쳤대요. 이번에도 벌들은 인간의 콧잔등에 벌침을 빽빽이 박아주긴 했지만 기진맥진했대요.

“내일 인간이 더 많은 장비를 갖고 쳐들어오면,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여왕벌이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대요.

“여러분들의 수고와 희생을 생각하매 짐의 가슴이 찢어지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포기하면 조상을 뵐 낯이 없지 않겠소? 우리에게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세상에 둘도 없는 우리의 보금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소.”

벌들은 수군거렸대요.

“그래, 둘도 없는 벌집에서 우리가 행복하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다는 단 한마디밖에는 할 수가 없잖아. 말이 많아서 ‘덜’ 행복하다든지 ‘조금’ 행복하다고 수식어를 붙인 벌들, 혀가 짧아 행복을 잘못 발음한 벌들마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잖아. 먹을 것을 달라고 입을 오물거리는 애벌레들도 그 작은 입 모양은 ‘행복’‘행복’이고, 개똥이 굴러가는데 느닷없이 우리 눈에서 행복의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이 지나치게 짠 것 같아서 얼른 침 섞고, 행복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우면 너무나 행복해서 이대로 영영 눈을 뜨고 싶지가 않잖아.”

여왕벌은 침착하게 말했대요.

“서로 존중하고 합의를 중시한다는 큰 짐승들이 작은 짐승들은 얼마나 무자비하게 잡아먹소? 우리 같은 작은 짐승들을 짐승만도 못하게 볶고 찌고 난도질하여 비계는 쓰레기통에 버린 덕분에,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격식을 차릴 수 있는 것이오. 그들이 남녀노소 차별 없이 다함께 팝콘을 먹는 선거축제와 우는 노인 떡 주고 바람난 여편네도 신사적으로 북어 주는 복지를 구가하는 한, 우리는 우리끼리 절실하고도 기본적인 삼강오륜조차 지킬 여유가 없소. 천지가 뒤집어져 음지가 양지 되고 가장 작은 우리가 세계 최강으로 등극하

  1. 아랍 동물우화 『칼릴라와 딤나』(바이다바 지음, 이동은 옮김, 도서출판 강 1998)의 두 주인공과 그들에 대한 설명. 이 소설은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나오는 이 우화집의 형식을 빌렸다.
  2. 『프레시안』 2006년 4월 17일 기사 「투쟁인가 투항인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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