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위기의 한국, 무엇을 해야 하나
‘적’을 만드는 정부와 시민사회 연대의 재건
이태호 李泰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공저서로 『촛불 이후 사회운동의 과제 및 전망』 『변혁적 중도론』 등이 있음.
gaemy@pspd.org
1. 들어가며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9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윤석열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말하고, 그보다 더 자주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상식보다는 몰상식에 가까우며, 그동안 구축해온 것은 공정이라기보다는 배제와 혐오였다. 그가 16분간의 취임사에서 35번이나 언급한 자유는 사람과 자연을 살리고 조화롭고 다양하게 공존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거나 고립시키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자유였다. 그는 나라 안팎에서 ‘적’을 찾아내고 적의와 혐오를 고취시키는 것으로 정치와 협치를 대신하고 있다. 지난 8개월간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몇 안 되는 측근들은 권력의 칼자루를 잡고 있는 자가 그들 자신이라는 것만큼은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법과 원칙이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형해화하고 위협할 수 있는지도 넉넉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지수가 8계단이나 하락한 것 역시 이를 잘 드러낸다.1 이제 한층 줄어든 지지자들조차 이 정부에 공정이나 상식 따위를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윤대통령과 측근들의 몰상식이 추가로 만들어낼 ‘리스크’를 걱정하고, 정권탈환을 위해 가까스로 형성했던 보수세력의 연합이 더이상 침식되지 않기만을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들이 동원해낸 혐오와 차별로 인해, 그리고 더욱 위태롭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게 될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정권과 정치의 위기가 만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만성적 위기가 자동으로 더 나은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2. 윤석열정부 이후의 한국사회
수구보수연합과 혐오의 정치
보수진영은 정권교체를 위한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 나름의 뼈를 깎는 재편 작업을 강행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형성된 촛불-탄핵 연합으로 인해 존망의 기로에 놓인 구(舊)여권의 생존을 위한 고육지계였으며, 촛불정부 2기가 들어서서 개혁을 가속화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수구세력의 기득권수호 의지의 표출이기도 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을 독점한 것은 위축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과 수구세력에 위기와 더불어 기회를 제공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30대를 당대표로 세우는 한편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하여 당을 존폐의 위기에 이르게 한 담당 검사를 대통령 후보로 영입했다. 대선 막바지에는 안철수를 비롯해 중도 개혁보수를 표방한 정치세력과 연합했다. 그 결과 전통적 보수세력 및 수구기득권 계급과 주관적 정치성향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이대남’, 그리고 중도보수를 연결하는 3축체계가 구축됐다. 일부에서는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시민들에게는 쇄신의 진통 또는 정치적 역동으로 읽힐 수도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대선까지는 갈등 속의 통합을 유지했다. 당시 윤석열 캠프가 보수층 결집의 접착제로 동원한 것은 ‘공정’을 앞세운 혐오와 낙인찍기였다. ‘여성가족부 폐지’ ‘시민단체 부당이익 환수’ 등을 주요 공약으로 띄워 여성과 시민단체들을 공공의 적처럼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2 또한 ‘집권 시 문재인정부 적폐청산 수사’와 같은 언급으로 은근슬쩍 문재인정부를 박근혜정부와 동일한 특권집단으로 등치시키는가 하면 ‘대북 선제공격’ 발언, 난데없는 ‘멸콩’ 캠페인 참여 등으로 진영논리를 부추겼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퇴행으로만 읽으면 상황의 일면만 보는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20대 여성과 남성이 스스로를 조직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으며, 의제를 형성하고 각 선본을 움직였다. 이들이 기득권정치의 들러리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 형성의 신호탄인지는 이후의 한국정치가 답할 것이다. 한편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막바지 ‘정치교체’라는 의제를 제시해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등 일련의 정치개혁을 약속한 것도 의미가 크다. 정치개혁 논의는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했으나 점점 현안으로 재등장하는 중이다.
지지율 하락과 보수연합의 이완
네거티브 전략으로 집권한 윤석열정부는 급격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반대보다도 대통령 개인의 실책과 집권세력 내부의 균열로 인한 것이다. 우선 내각과 대통령실에 대한 첫 인사부터 공정성, 투명성, 적절성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뚜렷한 이유나 필요성이 설명되지 않은 무리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도 구설수와 더불어 연쇄적인 부작용을 유발했다. 그중에는 10·29 이태원참사도 포함된다. 대통령의 잦은 말실수, 무개념한 발언, 부적절한 언행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외교 무대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를 야기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영부인 김건희 리스크도 더 부각됐다. 윤석열정부가 문재인정부를 ‘내로남불’로 비난해왔기에 새 정권에 대한 실망과 냉소가 확산되는 속도와 폭은 빠르고 깊다.
각종 혐오를 동원하면서 가까스로 형성했던 보수연합은 대선 승리 이후 균열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이준석 당대표의 성상납 의혹과 당대표직 박탈 논란으로 시작해 최근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에 대한 대통령실의 공개 반대 논란까지 파열음이 지속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선거기간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20대 남성의 변화다. 임기 초반인 2022년 6월에 20대 남성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율은 60%에 달했지만 12월에는 28%로 급락했다. 국민의힘 지지율 역시 48%에서 33%로 낮아졌다. 이러한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 곡선은 전체 평균보다 더 가파르고 결과값도 더 낮다.3 한편 ‘윤핵관’ 중심으로 정부 및 정당 리더십을 교체하려는 시도는 이전의 역동성을 퇴색시키며 선거용 연합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부에서 ‘모셔온’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여당 통제 시도가 강화될수록 연합의 균열이 가속화되는 딜레마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복합위기의 본격화
한국사회가 마주한 복합적인 위기에 대한 윤석열정부의 대응은 우려스럽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는 세계적 수준의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윤석열정부는 ‘규제 완화’와 ‘민간·기업·시장 주도의 경제 활성화’를 내세운다. 자산가·기업 대상의 감세와 재정 긴축, 금융 및 부동산에 관한 규제 완화, 민영화,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인상 통제 등의 경제정책은 친자본-반노동, 친부자-반서민 경향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러나 철 지난 신자유주의의 유행가 같은 이러한 정책 방향이 ‘경제 활성화’나 ‘투자 의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최
-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민주주의지수 보고에 따르면 한국의 순위는 작년 16위에서 올해 24위로 하락했다. 「한국 민주주의 순위 ‘16위→24위’, 1년 만에 8계단 하락」, MBC 2023.2.3. ↩
- 이에 대해서는 정희진의 다음과 같은 논평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선거에서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변질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젠더를 모르는 힘’ 때문이다. 사회 구조로서 젠더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여성들 사이의 차이, 남성들 사이의 차이를 남녀 차이로 환원할 수 있었다. 즉 ‘극히 일부인 중상층 20대 여성의 과잉 재현’과 ‘현역 징병 대상인 흙수저 20대 남성’을 남녀 일반으로 대립시켜 착시 현상을 만든 것이다. 계급 문제를 성별 갈등으로 조작한 것이다. 기득권 양당에 묻는다. 왜 50대 가난한 여성과 50대 중산층 남성은 비교하지 않는가. 장애 여성과 비장애 남성은 왜 비교하지 않는가? ‘서울 남성’과 ‘지역 여성’의 지위는 왜 비교하지 않는가. (…) 이들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 있는가.” 정희진 「여성을 덜 모욕하는 사회에 투표하자」, 한겨레 2022.3.8. ↩
- 같은 기간 전체 평균을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은 49%→33%, 국민의힘 지지율은 43%→36%로 낮아졌다. 20대 여성의 경우에는 각각 34%→16%, 18%→16%로 변화했다.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478~524호 2022년 월별·연간 통합 집계표」, 2022.12.23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