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인터뷰

 

전교조, 우리 교육의 대안세력인가

 

 

하승수 河昇秀

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저서로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 등이 있음. haha9601@dreamwiz.com

장혜옥 張惠玉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경북 영주중 교사.

 

사진ⓒ이영균

사진ⓒ이영균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교육문제와 학생·아동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왔다.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인권교육도 해보고, 아동·청소년 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도움이 되고자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은 지도 2년이 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는지 묻는다. 날로 치열해져가는 경쟁, 여전한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 등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 첨예한 쟁점인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는 시민사회 내에서도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교육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다른편에서는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논쟁과 갈등은 철저히 어른들의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 들의 ‘현재의 행복’은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지 않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비인간적이고, 학교는 여전히 폐쇄적인 공간이다. 도대체 지난 20여년간의 민주화과정에서 학교는 무엇이 변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학교현장을 보면 아직도 체벌이 가해지고 있다.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무종교의 자유를 포함한—는 여전히 억압되고,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참여권은 말 꺼내기도 힘들 정도이다. 학교의 의사결정은 학생들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료적 조직과 교육외적 판단들이 교육을 둘러싼 의사결정을 좌우하고 있다.

장혜옥

장혜옥

이런 교육현실의 한가운데 있는 주체 중 하나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다. 1989년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내걸고 출범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전교조가 우리 교육의 문제를 풀 주체가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17년이 흐른 지금 전교조에 대해 우려와 실망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과연 전교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전교조의 현실과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보고 싶었다.

 

 

하승수•교육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 자기 아이만 아니라 우리 교육과 전체 아이를 생각하는 분들이 전교조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위원장님의 개인적 이력, 특히 어떻게 전교조 활동을 시작해서 위원장까지 맡게 됐는지, 살아오신 얘기도 여쭈어보고 싶군요.

하승수

하승수

장혜옥•1977년 경북 안동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 굉장히 강압적인 입시교육이 시작되죠. 예컨대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이 전면화되면서 학생들이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입시지옥을 앓게 된 거예요. 그때 학교의 상징은 밤 11시까지 환하게 불켜져 있는 모습이었죠. 그리고 당시 1년에 2백명 가까운 학생이 입시부담을 못 이겨서 자살했어요. 저 자신도 10시,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강압적으로 시켜야 했지요. 체벌이 없으면 안되었고요. 그런 문제들에 대해 분노가 싹트기 시작했죠. 그런 문제의식이 여러가지 형식으로 나타나다가 모인 것이 ‘전국교사협의회’였어요. 우리 학교도 선생님들 중에 80% 가까이가 모여서 교사협의회를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노조로 전환하자마자 정부의 탄압을 받고 탈퇴를 강요당했어요. 결국 저 혼자 남았죠.(웃음) 1989년에 해직되었고 그후 지금까지 전교조와 함께 한길로 온 거죠.

하승수•그러다가 90년대에 복직되신 건가요?

장혜옥•94년에 복직이 됐죠. 지금까지 대의원도 하고 지부, 지회 단위 집행부 활동도 하고, 해직기간에는 경북지부와 본부에서도 일했어요. 그러다가 전교조 위원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하승수•전교조 본부에 상근하시는 분들이 많죠?

장혜옥•전임자, 상근자 포함해서 60명 정도 있어요.

하승수•지금 전교조 조합원이 9만명은 되는 것 같은데요.

장혜옥•2002년에 9만 2천까지 갔다가 지금은 8만 7천 정도예요.

하승수•그러면 그 5천명이 감소한 건 언제쯤인가요?

장혜옥•조금씩 줄어들었어요. 2006년 3월까지 줄어들었는데, 5월부터는 안 줄어드네요.(웃음)

하승수•제 아내도 인문계 고교 교사이고, 전교조 조합원인데 93년에 교직생활을 시작했죠. 그때 조합원 숫자가 제 기억으로는 2, 3만도 안됐던 것 같은데요?

장혜옥•당시 신분을 드러낸 조합원은 해직교사밖에 없었고, 드러내지 않은 조합원까지 치면 7, 8천으로 추정하고요. 후원회원이 2, 3만명 있었어요. 워낙 탄압을 받다보니까 89년부터 10여년 동안 그 정도 선이었어요. 그러다가 99년에 합법화되자마자 조합원이 6만명으로 늘어난 거예요. 그리고 매해 1만명씩 늘었지요. 이렇다보니 10년 동안 탄압을 받으면서 조직을 지켜온 약 8천명의 대오와 그 뒤에 들어온 8만명의 조합원 사이에 기대 차이가 있죠. 대의원대회를 하거나 사업을 진행하는 데서 내부갈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은 그런 지형 때문이에요.

99년 당시 정부가 특별법으로 합법화해주겠다고 한 데는 정치적 저의가 깔려 있었지요. 그중의 하나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확실하게 실시하겠다는 것이었어요. 합법화 이후 정부가 7차교육과정부터 밀어붙이기 시작해서 99년부터 계속 투쟁할 일이 생겼고, 그러다보니 격렬한 투쟁을 싫어하는 분들이 조직에서 나가고, 자기 이익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한 분들도 나가고, 승진에 신경쓰는 사람들도 떨어져나갔죠. 그래서 몇백명씩 계속 감소했어요. 지금은 8만 7천명까지 내려갔어요.

하승수•교대나 사범대를 졸업해 새로 교사가 되신 분들은 최근에 가입을 많이 하나요?

장혜옥•올해도 필요한 신규교사 수가 5만명인데, 정부가 채용하겠다는 인원은 3천명이에요. 저희 조직률이 25%에 못 미치는데, 3천명의 25%라면 몇백명 수준이잖아요. 전국적으로 몇백명이라면 너무나 미미한 거죠. 신규교사 자체가 부족합니다. 지금 교사의 노령화가 매우 심각하거든요. 경기도 이외에는 신규교사가 없다시피 해요. 웬만한 지방에는 가장 젊은 교사가 30대 후반이에요. 20대는 가물에 콩 나듯 하죠.

 

참교육운동이냐 노동운동이냐

 

하승수•아까 말씀하신 대로 99년 합법화 이후에 주로 반대투쟁을 많이 해왔잖습니까? 네이스(NEIS)나 교원평가제 같은 굵직굵직한 사안이 떠오르는데요, 합법화 이후 7년의 전교조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전교조는 왜 늘 반대만 할까 하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시민운동 하는 분들에게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요. 합법화 이후에 대체적인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장혜옥•여전히 갈등중이죠. 그래서 전교조 내부 선거 때만 되면 정책논쟁이 불거지죠. 한쪽은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다른쪽에서는 정치투쟁보다는 학교현장의 일상활동을 하자, 이런 충돌들이 2년에 한번씩 벌어져요. 저희가 2년에 한번씩 선거해서 대의원, 지회장, 지부장, 위원장을 다 뽑거든요. 이걸 두고 보수언론은 PD니 NL이니 하는 표현을 쓰는데 그건 정말 웃긴 구도고요.(웃음)

하승수•대략 어떤 입장 차이가 있죠?

장혜옥•크게 봤을 때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막아내야 한다, 그러자면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우리는 교사니까 학교활동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러다보면 조금씩 진전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한때는 투쟁이냐 ‘참실(참교육실천)’이냐, 반신자유주의냐 통일운동이냐 하는 논쟁도 있었죠. 노동운동이냐 교육운동이냐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국사회 성격과 정부정책이 신자유주의냐 아니냐를 두고 갈등이 매우 심해졌어요. 이 논쟁이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지금은 정리가 되어가요. 참여정부 들어설 때만 해도 상당히 대립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참여정부가 하도 세게 밀어붙이는 걸 보니 이제는 신자유주의 정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투쟁방식에 대한 방법론에서는 이견들이 있죠. 특히 지난 대선·총선을 거치면서 교육정책에서도 민주노동당 정책이냐 열린우리당 정책이냐에 대해 굉장히 심각한 내부대립이 있었어요. 그런 속에서 정치적 색깔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사업방식에서 여러가지 차이가 나타나게 된 거죠.

하승수•전교조의 근본적인 출발은 참교육인데 이후 노동운동적인 성격이 계속 강화되어온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교조가 자기정체성을 노동운동에서 찾는다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혜옥•노동운동과 교육운동이 분리되는 것은 아니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란 이름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노조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해요. 노조운동이라고 해서 사회적 이슈와 결별할 수는 없어요. 제조업 공장에서도 사회적 의제와 결합된 노동운동을 해야 하는데, 하물며 교사단체가 교육이라는 중대한 사회적 이슈를 노동운동에 접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면에서 교사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는 결국 교육의 지위와 권리하고 일치할 수밖에 없어요.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이 사회의 공공성을 지켜낼 수 있는 커다란 토대라면 그런 토대를 구축할 수 있는 운동성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교원평가제와 성과급제 논란의 쟁점

 

하승수•저 역시 교육운동과 노동운동이 분리되고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