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강인철 姜仁哲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한국전쟁 50주년에 즈음하여

 

 

1. 50주년을 기념하기

 

한국전쟁 발발 50주년과 휴전 47주년이 되는 금년 6월에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적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지난 반세기의 불화와 갈등을 화해와 협력으로 바꿔놓을 역사적 회담을 갖는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한국 정부는 대대적인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을 시작한다. 이 기념사업은 전쟁 발발 50주년인 2000년 6월 25일부터 휴전협정 조인 50주년이 되는 2003년 7월 27일까지 3년 동안 계속되며, 이 기간중에 무려 52개의 크고작은 사업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행사들을 주관하는 범정부적인 ‘6·25전쟁 기념사업단’과 민간부문까지 포괄하는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50주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하고 있다. “(1)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참전용사들은 노령으로 그들에 대한 명예 고양이 필요하고, (2) 70% 이상의 전쟁 미경험 세대에게 6·25전쟁의 교훈을 상기시켜, 안보의식을 고취시켜야 하는 한편, (3) 참전국을 포함, 망각되어가는 6·25전쟁의 의의를 새롭게 하여 평화 제고 및 우의 증진을 도모해야 한다. (4) 즉, 세계의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에 대한 공감대 확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전쟁 미경험 세대에게 6·25전쟁의 교훈을 ‘상기’시킨다든지, ‘망각되어가는’ 6·25전쟁의 의의를 새롭게 한다든지 하는 표현에서 잘 확인할 수 있듯이, 이 기념사업의 촛점은 ‘망각과의 투쟁’ 혹은 ‘기억의 재생’에 맞추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쟁의 기억’ 자체와 무관하거나 타자의 편집과 해석을 거친 간접적 기억만을 갖고 있는 전후세대를 위해, 기념사업단은 특별히 완전군장 행군, 6·25전쟁시 음식 재연 시식, 전적지 및 기념관 순례, 휴전선 방문 및 탈북자 강연, 전쟁관련 독후감·글짓기·그리기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준비해두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3년 동안 전쟁관련 자료들의 추가적인 발굴과 편찬, 참전용사들의 체험담을 토대로 한 증언록 편찬사업 등 전쟁과 관련된 ‘기억의 창고’를 확장하는 일에도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몇가지 지역적인 차원의 기념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예컨대 경상북도와 칠곡군은 이 지역이 ‘세계 전쟁사상 최대의 격전지’였음을 내세워, 금년 6월 23일부터 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까지 제전의 정화(첫째날), 한국전쟁 희생자의 위령·진혼·천도(둘째날), 인류평화를 축원하는 어울림 한마당(셋째날)으로 구성되는 ‘낙동강 세계평화대제전’을 준비하고 있다. 또 강원도와 원주시, 제1야전군사령부는 강원도가 6·25로 인해 ‘세계 유일한 분단국의 유일한 분단도’가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한국전쟁 참가국의 군악대들을 초청하여 금년 10월 3일부터 10일까지 8일간 ‘2000 세계평화팡파르’라고 명명된 일련의 행사를 열 예정이다. 아마도 금년 현충일은 전국 여러 곳에서 어느 때보다 뜻깊은 기념행사들이 이어질 것이다. 또 한국전 개전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50년째를 맞는 유엔군 참전, 낙동강 반격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장진호 전투 등 전쟁의 주요 고비들도 전례없이 화려한 조명 아래 놓일 것이다.

이런 일들을 보면, 이미 반세기가 지난 전쟁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것 같다.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그로부터 미래지향적 교훈을 이끌어내는 데 필수적이다. 망각이 개인적·집단적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망각에서 역사적 교훈이 나오는 법은 없으며, 더욱이 망각에 기초한 화해는 깨지기 쉽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반세기 전의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이며,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것인가? 무엇보다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많은 일들이 폭넓은 사회적 합의 위에서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거의 같은 시기에 진행되는 남북정상회담과 전쟁 50주년 기념사업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노근리사건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과도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노근리사건 대책 자문위원회’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의 위원장이 동일 인물(백선엽)이라는 사실도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중앙정부의 행보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경상북도나 강원도와는 대조적으로, 광주시와 전라남도는 한국전쟁 50주년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올해로 20년이 되는 광주민중항쟁의 기념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도 비슷하다. 제주도 사람들은 재작년에 4·3 50주년 기념행사들을 치른 후, 금년 1월 12일에 제정 공포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의 후속작업에 진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자치부장관 명의로 공고된 4·3특별법 시행령 입법예고에 의하면, 이 법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 일원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로 인하여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희생당한 주민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하여” 제정되었다. 다시 말해 제주도민들의 희생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에는 전쟁기간중의 한국군에 의한 범죄행위 또한 그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광주항쟁 2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이른바 ‘광주정신’ 혹은 ‘5·18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이나, 제주도에서 금년 5월부터 본격화된 희생자와 유족 신고 및 조사·확인, 진상조사, 명예회복과 보상, 4·3위령공원 조성 등의 작업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이 그 성과 중 하나로써 추구하는 ‘국군의 존재이유와 정당성’을 오히려 잠식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베트남전에서의 양민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캠페인이 확산되는 것도 국군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미군의 양민학살을 추궁하는 노근리사건의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위한 노력도 ‘우리편의 정당성’을 실추시키는 것으로, 안보의식의 고취에는 별 도움이 안될 것이다.

이런 몇가지 사실들의 대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주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한국전쟁에 대해 동질적이고 지배적인 기억(혹은 일련의 기억들)을 보존하고 유포하는 데 일차적인 관심이 있는 사회집단(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집단(들)은 국가권력을 동원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그러나 이들과 정부의 행동에도 상당한 모순과 불균형이 내재되어 있다. 한편 동질적인 지배적 기억을 보존·유포하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거나, 나아가 이에 저항하는 이들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단수가 아닌 ‘복수’이며, 적어도 집단적 기억 속에서는 여러 개의 ‘한국전쟁들’이 실재한다. 메모리칩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경쟁이 ‘기억의 경제학’을 지탱한다면, 여기에는 동질적인 지배적 기억을 창출하고 유지하려는 측과 그에 저항하려는 측의 경쟁으로 구성되는, 일종의 ‘기억의 정치학’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2. 기억의 정치학

 

단순화하자면, 기억의 정치학은 ‘기억들의 투쟁→기억의 정형화→망각 및 무기억과의 투쟁→지배적 기억의 균열과 위기’라는 일련의, 때로는 중첩적인 과정들로 구성된다. 앞에서도 암시했지만, 우리는 현재 이 가운데 ‘지배적 기억의 균열과 위기’ 국면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상쟁하는 기억들

기억의 정치학은 ‘상쟁하는 기억들’의 존재에서 출발된다.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은 그것이 전개되는 영토 내의 주민들 모두에게 강렬하고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기억들을 낳기 마련이다. 그 기억들은 과장된 무용담일 수도 있고 한 맺힌 사연일 수도 있는 수백만 가지의 체험담을 통해 살아 숨쉰다. 전쟁에 참여한 동기와 강도, 가담한 편, 전쟁으로 입은 피해 혹은 이득의 정도 등에 따라 전쟁에 대한 기억의 내용이나 선명도 등에도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양한’ 기억들이 반드시 ‘상쟁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은 단편적이고 때때로 충돌하는 기억들을 하나 혹은 소수의 ‘거대담론’으로 인위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바로 여기서 기억의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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