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화

 

전지구적 경제위기 속의 한국과 동아시아

브루스 커밍스와 백낙청의 대화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미국 시카고대 교수.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등이 있음.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저서로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백낙청 회화록』 등이 있음.

 

ⓒ이영균

ⓒ이영균

 

  • 본 대담은 2008년 12월 17일 세교연구소에서 진행되었다. 영어로 진행된 이 대화의 녹취록은 변재미씨가 작성했으며 두 대담자의 확인을 거친 후, 유희석 전남대 교수가 우리말로 번역했다. 지면사정상 번역과정에서 약간의 축약을 했으며, 영어 전문은 창비 영문 홈페이지(www.changbi.com/english)에서 볼 수 있다. ⓒ 창비 2009

 

백낙청 선생의 이번 서울 방문이 주로 연세대 국학연구원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의 발표문 「한국의 민주주의와 미국의 세력」(Korean Democracy and American Power)은 대부분 1945년 이후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역사적으로 개괄하는 데 집중했지요. 오늘 우리의 대화는 요즘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태와 관련하여 그 발표문에 일종의 후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커밍스 저는 발표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래로부터 이룩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 배후에 있는 원동력 또는 진정한 힘은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이나 전두환정권에 대항한 87년의 6월항쟁 같은 가두의 군중시위였습니다. 그러한 분기점을 형성한 사건이 젊은이들과 노동자집단에 기초한 매우 강력한 시민사회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많은 측면에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미국의 시민사회보다 강합니다. 시민도 더 많이 참여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더 크지요. 게다가 요즈음 젊은이들은 특히 인터넷에 능하지요.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주제로 삼을라치면, 특히 워싱턴의 정치가들은 그건 중산계급을 육성하는 문제이고 중산계급이 더 강해지면서 한국은 민주화되었고 미국은 언제나 그 뒷배를 봐줬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사실 발표문에서 저는 중산계급이 자신의 권리를 획득하면 대개는 거기서 멈추기를 원하지 그런 권리를 확장하지 않으며, 한국 민주화의 많은 부분은 한국에 존재하는 미국의 권력, 특히 계속된 독재권력을 지원한 미국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곳의 민주주의와 비슷합니다. 즉 매우 불만족스럽지만 다른 대안들보다는 낫다는 겁니다. 윈스턴 처칠(W. Churchill)은 이를 다른 방식으로 말한 바 있지요. 민주주의는 형편없는 제도일지 몰라도 다른 모든 제도보다는 좋다고요. 한국이나 미국처럼 고도로 복잡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종종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투표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반면에 미국에서 있었던 부시의‘당선’은 분명히 개인적인 불행이었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도 그렇게까지 실망할 일은 아니겠지요. 지난 10년간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자유주의 정부가 있었으니까요. 민주주의를 공고히하고 화해에 기반하여 북한과 관계를 트는 데에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지난 10년이 전체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민주주의는 그 일상적인 내용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지만 싸움에서 이기는 일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 하나는 1998년이고 다른 하나가 2002년입니다. 세번째 승리는 미국에서의 오바마 당선이지요. 매우 결정적이었던 오바마의 당선으로 인해 저는 미국정치에 대한 낙관주의를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직면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행정부와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우파, 특히 근본주의 기독교가 미국정치의 숨통을 조이던 장악력이 깨졌기 때문이지요. 이런 것들이 현재 상황에 대한 몇가지 생각인데, 결국 저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했고 20년 전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2의 부시인가

 

백낙청 미국정치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이야기를 나누죠. 종합해보면 남한 민주주의의 발전이 미국 민주주의의 전개보다 더 고무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작년까지 말이지요. 선생이 언급하다시피 미국에서 오바마가 압승을 했는데 한국에서 2007년에 역시 압승을 거둔 이는 이명박씨였고 2008년초에 새 행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이명박을 반대했던 많은 이들조차 그의 승리에 좋은 점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즉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또다시 권력이 이양된 것은 어쨌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말해준다는 것이었고, 이는 또한 남한의 민주 또는 진보세력이 쇄신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일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현 대통령이 일련의 파멸적인 정책을 실행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정말 또다른 조지 부시를 뽑은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런 걱정을 과장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커밍스 과장된 건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의 이번 선거는 2000년 미국선거와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하에서 10년 세월을 거쳤고 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 아래서 8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양국 정부는 수많은 성취를 이뤘지만 유권자들은 똑같은 집권당 또는 똑같은 얼굴에 싫증을 내지요.

몇가지 이유로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와 같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먼저 이명박씨는 순전하게 선거로만 당선된 반면, 부시는 첫 임기 때 대법원의 지명을 받아 대통령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부시는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했으리라는 점에서 김정일과 더 유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2000년에 부시가 대통령으로 (선출이 아니라) 지명된 것도 귀족체제 내지 군주제적인 면모라는 공통점을 지녔지요. 어쨌든 이명박씨는 박정희시대에 성년이 되어 출세한 사람이고 독재 이후 시대에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온갖 문제에서 시계를 뒤로 돌리려고 합니다. 가령 북한에 대해 강경하게 나온다든가 말이지요. 북한을 강경하게 몰아붙인 과거 경험을 보면, 그런 전략이 전반적으로 먹히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북한은 자기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의 상황에 너무나 익숙하고 늘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지요.

또한 우리가 민주화시대에서 배운 모든 중요한 역사를 바꾸려는 교과서 개정문제는 정말 어리석다고 봅니다. 그것은 튜브에서 짜낸 치약을 다시 튜브로 넣으려는 짓과 같습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한국에는 해방 이후 한국사의 불행한 측면을 밝혀낸 많은 학자와 희생자, 시민사회단체가 있어요. 그리고 제가 역사학자로서 보건대 이는 온갖 새로운 종류의 정보를 동반한 매우 긍정적인 발전입니다. 그런 발전은 해방후 한국사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식적인 이야기와 희생자 또는 비판자들의 이야기 사이에서 모종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인데,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해방 이후 전개된 한국사 전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건 남한에서의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었지요.

독재가 은폐해온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좌익’으로 볼 일은 아닙니다. 저는 이대통령이 어떤 종류의 조언을 받고 있는지가 때때로 궁금해지는데, 왜냐하면 그는 부시가 강경노선에서 선회하여 북한과의 관계를 재개하는 바로 그 시점에 강경노선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과서 논쟁은 그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모으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가지가 이대통령에게는 일종의 재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부시와는 달리 이명박씨가 합법적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미국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돋보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이 이명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임기 바로 첫해부터 무모한 일방주의를 채택하도록 부추긴 것 같아요. 부시가 그런 일방주의를 취하는 데는 9·11테러가 필요했는데요.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주의자로 정평이 난 것은 분명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저는 그가 단기적 실리 챙기기를 제외하고는 어떤 확고한 원칙이 없다는 의미에서나 실용주의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실용주의자는 짜낸 치약을 다시 튜브에 넣으려고 하지 않지요. 그리고 전지구적 경제위기가 터진 것이 그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가 선거기간에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7%를 성장을 공언했을 때 미국에서는 이미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써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시작되어서 한창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부실한 판단력, 상황을 분석하고 적절한 조언을 귀담아듣지 못하는 무능은 그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선진화 원년과 ‘잃어버린 20년’

 

커밍스 제 생각에 동아시아에서 일정한 성장률을 토대로 정통성을 획득하려고 하는 정부는 둘이 있어요. 중국은 연평균 9~10%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7%를 제시했는데, 물론 그런 생각의 모델은 끊임없이 정통성 문제에 직면해서 매년 고도성장을 보여줘야 했던 박정희입니다. 이명박씨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박정희가 대통령이던 시대가 멋진 시대였고 그는 현대기업에서 승승장구했는데 1998년에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전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

반면에 저나 대다수 사람들은 야당이 처음으로 제대로 권력을 잡고 한국정치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1998년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생각합니다. 노동계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얻었고 정치체제의 긴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또한 북한과의 관계를 터서 햇볕정책으로 엄청난 성과를 냈지요. 따라서 그건 잃어버린 10년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즉 한국에서 이룩된 가장 커다란 성취 가운데 하나는 군부가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겁니다. 이명박씨는 대통령이 됐고 5년 동안만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임기 초반부터 서두르는지 몰라요.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의 사고의 핵심에는 전후 역사에 대해 선생이나 저와는 아주 다른 생각이 놓여 있는 게 분명해요.

백낙청 글쎄요, 독재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과 실제로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겠지요.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뭘 원하는지 모르지만, 그가 설혹 원한다 한들 독재자가 되는 데 성공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선생의 지적처럼 우리는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성취한 국민이고, 누구든 시계를 되돌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언급하신 것처럼 그는‘잃어버린 10년’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 자체도 얼토당토않은 명제지요. 그런데 역시 선생이 지적하셨다시피 그는 실제로 잃어버린 20년을 생각하지 않나 싶을 때가 많아요. 1987년 이전의 좋았던 옛날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커밍스 맞아요. 그의 관점과 워싱턴에서 한국의 정책에 대해 후견인으로 자처하는 정치가들의 관점에는 묘한 합치점이 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노무현보다 김대중을 선호하지만, 그중 많은 이들은 좋았던 옛날의 한미관계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미국과 한국이 서로를 이해했던, 미국으로부터의 독자성을 말하거나 용산기지에서 미군을 빼내는 것 등을 언급하는 대통령이 한국에 없던 시대 말이지요. 이명박씨는 처음 취임했을 때 자신이 한 언사들에 대해 여기 한국보다 워싱턴에서 더 많은 지지를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아주 단견입니다. 왜냐하면 워싱턴에 있는 그런 사람들 대다수는 이젠 나이가 꽤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할 테니까요. 그들이 오바마 행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이명박씨가 캠프 데이비드(미국 대통령의 별장-옮긴이)나 다른 곳에서도 어쩌면 그토록 부시한테 잘 보이려고 했는지 궁금했어요.

백낙청 그건 전혀 실용적이지 않았지요!(웃음)

커밍스 그렇습니다. 부시는 이미 미국 역사상 가장 지지도가 낮은데다, 설사 그런 점을 무시한다 해도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대통령이었거든요. 그러니 그건 아주 근시안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글쎄, 공화당이 2008년 선거에서 다시 승리해서 한미관계가 아주 좋아지고 긴밀해질 거라 생각하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요.

백낙청 선생은 정부 지도자들이 정치적 정통성을 위해 경제성장을 달성해야만 했던 두 사례로 중국과 한국을 거론했습니다만, 딱한 것은 남한에서는 대통령이 더이상 자신의 정통성을 위해서 7%나 6% 성장을 달성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거든요.

커밍스 정말 그래요. 바로 그래서 이대통령이 언제나 그런 성장률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려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요. 하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그게 바로 박정희가 언제나 주장하는 바였지요. 자기가 고도성장을 이끌었다고 말이지요.

백낙청 그건 박정희가 헌법적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요인은 중국과 한국 모두 빈부격차가 커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스러기라도 던져주려면 매우 높은 성장률을 지향해야만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씨는 그런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달성하기 불가능하고 아마도 장기적으로 유해한 성장률을 설정해야만 하지요.

사실‘잃어버린 10년’은 새 정부의 공식적인 모토라기보다는 선거구호였습니다. 공식적인 모토는‘선진화 원년’이지요. 이 주장은 우리가 산업화를 이뤘고 민주화를 달성했으니까 이젠 선진국에 합류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액면대로 받아들이면,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실을 모두 포용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한층 선진화된 경제로 발전해가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대통령이 실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선진화가 아니라‘잃어버린 10년’내지는 심지어‘잃어버린 20년’이라는 구호지요.

커밍스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인 1996년, 그러니까 한국이 OECD에 가입하려고 했을 때 한국의 선진국화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일이 기억나는군요. 그건 어떤 면에서 열등의식일 수 있는데 한국경제, 특히 인적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선진국입니다. 때때로 한국인들은 이를 외부 사람들만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명박씨는 한국이 충분히 선진화되어 있지 않고 더 선진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간 이룩된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저는 사실 그가 정치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기업인이고 대기업 경영자였지요.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긴 싸움과 항거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잃어버린 10년’이야기가 어느 쪽에 호소하는 건지, 그런 담론으로 어떤 지지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대통령은 실용주의자인가 보수세력의 인질인가

 

백낙청 그 구호는 매우 상이한 두 집단에 동시에 호소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이명박씨가 선거에서 승리한 거지요. 하나는, 지난 10년간 정치적 권력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아무것도 잃은 게 없는 사람들, 즉 부자와 특권층입니다. 그의 내각과 동료들 이력에서 알 수 있다시피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꽤나 부자고 대다수가 지난 10년 동안 부를 늘렸습니다. 단지 정치적 권력을 상실했었고, 자신들의 천부의 지배권을 잃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 대단했지요. 취임 이후에 권력이 얼마나 무모하게 남용되고 있는지를 보면, 그들이 권력의 상실을 얼마나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던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호소력을 발휘한 또 하나의 대상은 1997년 IMF구제금융 이후 삶의 조건이 급격히 나빠져온 수많은 보통사람들입니다. 김대중정부하에서 한국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했고 노무현정부 때는 거시경제지표들이, 즉 무시 못할 성장률, 높은 주식시세, 경상수지 흑자 등의 관점에서 상당히 좋았지만, 일반시민의 생활은 실제로 궁핍해졌습니다. 그 결과‘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가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전혀 다른 이유로 공명을 일으켰지요. 일종의 거대한 국민연대, 당시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연합이 형성된 거지요. 그러나 이제 이명박정권은 전부가 이명박씨 잘못 때문은 아니지만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없을뿐더러, 서민의 삶을 개선할 생각도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가 추진하는 모든 경제조치들은 부자와 강자를 위한 겁니다.

커밍스 이명박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그런 연합이 제게 아주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부시 연합과 직접적인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생계가 막연해진 많은 사람들이 부시에게 표를 던졌어요. 그러나 미국의 경우 그중 많은 것이 낙태나 종교대립, 동성간 결혼 반대 같은 문화적·사회적 쟁점으로 설명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에 반해서 투표하도록 하는 문화적·사회적 쟁점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백낙청 글쎄요…… 이곳의 일반적인 인식은, 이명박씨는 실용주의자이고 그 점에서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싫증이 났을 때 박근혜가 아닌 이명박을 선택한 것이 현명했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제 생각에 최근에는 사람들이 그가 진정한 실용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 어쨌든 실용적으로 행동할 능력을 갖춘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고 있다고 봅니다. 나는 이명박씨가 성공적인 CEO라는 또다른 이미지도 의심스럽다고 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현대그룹에서 정주영(鄭周永) 회장 밑에 진짜 CEO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공식적인 직함이 뭐든 그들은 모두 오직 한명의 슈퍼CEO휘하에 있는 총괄운영자(COO)일 뿐이었습니다. 이명박씨는 불도저(bulldozer)라는 자기 별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에 그는 정주영씨가 운전하는 불도저였고 그런 운전자가 없어진 지금 그는 영어 표현으로 bull in a china shop, 즉‘도자기 가게에 들어간 황소’같은 인물이지요.(웃음)

커밍스 북한 사람들도 똑같이 품을 법한 의문이라서 한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현대의 간부로서 이명박씨는 실제로 북한과의 관계, 정주영이 그랬던 것처럼 주로 경제적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더군요.

백낙청 나는 남한을 선진사회로 만들겠다는 이명박씨의 선거공약에 대해서는 환상이 전혀 없었습니다만, 그가 최소한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실용적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게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전 정권들보다 더 과감하게 주도해나가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그가 보수진영에서 나왔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력에서 더 자신있게 행동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사뭇 딴판임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내가 실용주의자라는 그의 이미지를 재고하게 된 또다른 이유지요.

커밍스 북한에 대한 이명박식 정책으로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상황은 설명이 잘 안돼요.

백낙청 한가지 이유는 집권 초기부터 국내에서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고 그의 지지율도 엄청 떨어진 거라고 봐요. 그래서 그 시점에서 그는 더 넓은 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대신, 자기를 지지한 보수주의자들-더 심하게 말하면 수구세력들-에게 호소하기로 작정한 거지요. 그후로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일종의 인질이 된 것 같아요.

커밍스 그거 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백낙청 한국에는 부시가 그랬던 것처럼 공상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북한이 곧 붕괴될 거라든지, 우리가 계속 압력을 가하고 끈기있게 기다리면 온갖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지요. 독일이 통일된 직후부터 선생이 줄곧 주장하셨다시피, 가까운 장래에 북한의 붕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설사 일어난다 해도 분명히 상황은 그다지 좋은 일이 못될 겁니다. 북한에 대한 이대통령 자신의 태도는 다분히 오락가락해왔습니다. 북측은 처음에는 상당히 참았어요. 그렇게 선거기간부터 3월말까지 약 1백일간 기다리다가 그들은 이대통령에게 거칠게 인신공격을 해대기 시작했지요. 물론 그런 공격은 도움이 안됐습니다.

커밍스 이런 상황은‘분단체제’에 대한 선생의 지론을 잘 예증하는 것 같습니다. 이 새로운 상황이 사람들 눈에는 남과 북에서 동시에 새로 발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그건 낡은 세력이 다시 발호하는 문제입니다. 분단체제가 얼마나 빠르게 되살아나는가를 보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이에요.

 

분단체제의 지속을 바라는 사람들

 

백낙청 내 지론의 일부는 한반도 양쪽 모두에 분단체제를 지속시키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비록 표면적으로 그들은 사뭇 적대적이지만 분단체제의 지속이라는 이해관계를 공유합니다.

커밍스 아,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예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나는 미국 국방부의 강경파도 특히 소련이 붕괴되고 난 후에 북한의 강경파들과 일종의 공생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의 방위계획도 실제로는 북한 같은 적이 존재하는 데 달려 있지요. 그러나 선생이 분석하신 분단체제는 너무도 깊고 오래 지속된 것이라 이대통령의 태도나 그를 거칠게 공격한 북한의 태도 같은 사건만으로도 즉각적으로 재충전될 수 있지요.

그러나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성사된 합의, 특히 서해안과 해주, 남포 등의 항구 개방을 위한 경제합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합의의 정치경제학적 함의와 그 합의가 동북아 허브경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상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대해 이곳 한국에서 한두편의 글을 썼지요. 내가 놀란 것은 이명박씨가 1차 남북정상회담보다 2차 정상회담에 더 비판적이라는 사실입니다. 2차 정상회담은 북한과의 매우 합리적인 경제협력을 위한 청사진, 서로에게 정말 도움이 될 청사진을 마련했는데도 말이지요. 따라서 그는 전임자가 수행한 어떤 정책도 부정하고자 했던 조지 부시 같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백낙청 2007년 10월 4일의 2차 정상선언은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을 실행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작성했습니다. 따라서 그간 진행된 일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6·15선언보다 10·4선언이 더욱 못마땅할 겁니다. 물론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후임자가 실행해야 할 온갖 합의를 해버린 전임자에 대해 어떤 후임자라도 얼마간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해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그냥 10·4정상선언을 원칙적으로 지지한다고 해놓고 거기서 시작하면 되는 거예요. 양쪽이 만나서 어떤 것을 먼저 실행하고 무엇을 미룰지를 의논하자고 제안하는 거지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10·4합의 중에서도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한 대목이었습니다. 누가 후임자가 되든 즉각 이행할 수 있는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여타 분야의 남북관계 확대에도 심각한 장애물이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분쟁을 마침내 해소했기 때문에, 좀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 폭발의 뇌관을 제거했기 때문이지요.

커밍스 저도 그 구상을 읽었을 때 매우 흥분되었습니다만, 곧바로 정치가 개입했지요. 북한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북한은 김대중 및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했는데 그런 합의가 다음 정권에는 별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빌 클린턴과 맺은 합의가 부시가 등장했을 때 무시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사람들은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협정문에 클린턴이 서명한 것을 잊어버립니다. 부시는 그 협정문을 그냥 찢어버리고 북한을‘악의 축’에 넣었어요. 그건 결코 외교를 하는 방식이 아니지요. 그러면 북한은 민주적인 미국 지도자들의 약속이 계승되리라고 믿을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북한 사람들은 매우 답답할 게 분명합니다.

백낙청 오바마 행정부에서의 북미관계는 어떻게 되리라 보십니까?

커밍스 한가지 분명히해두어야 할 점은 오바마가 클린턴 행정부의 많은 인물과 힐러리 클린턴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 대통령이 맺었던 협정, 특히 앞서 언급한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을 당근을 제공해서 포기하게 하는 협정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라고 봅니다. 클린턴은 2000년 11월과 12월에 그 협정을 사실상 성사시켰지만 부시 행정부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아서 폐기해버렸어요. 따라서 실용적인 차원에서 보면 오바마 행정부가 협정문서를 다시 찾아내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리라고 짐작해볼 수 있는데, 다른 한편 오바마 행정부 내의 많은 클린턴 행정부 사람들은 핵확산을 우려하지요. 여기에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다 있습니다. 좋은 면은 미국이 북한과 협정을 맺기를 원하리라는 겁니다. 그러나 또한 1994년 영변 핵시설에 선제공격을 계획했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데, 그게 위험한 면이지요. 그러나 나는 오바마가 탁월한 인물이고 경륜과 비전에서 그런 사람들보다 윌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바마가 심지어 클린턴 행정부 시절과도 매우 다른 외교를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제대로 조율되지 않았어요. 클린턴 자신은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는 1994년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고, 그러다가 제네바합의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파와 공화당이 반대했기 때문에 클린턴은 그 합의의 이행에 별로 힘을 쏟지 않았어요. 1998년과 1999년 김대중정부의 꾸준한 노력으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두번째 포용정책을 성안했지만, 클린턴 자신은 이 문제에 관해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고 그 점은 이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오바마가 탈냉전시대의 대통령, 세상물정에 밝고 미국과 대립적인 국가를 다루는 데 비정통적인 수단을 사용할 대통령이 되리라는 데 큰 희망을 걸어도 좋다고 봅니다. 물론 그가 득달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려고 달려가지는 않겠지만 이전의 많은 대통령들과는 사뭇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백낙청 나는 오바마의 외교가 부시의 외교와 다를 뿐 아니라-

커밍스 그건 두말할 나위 없지요.

백낙청 클린턴의 외교와도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도 말씀하다시피, 첫째, 클린턴은 북한과의 관계를 타결하는 데 아무런 비전이 없었어요. 둘째, 전반적인 상황이 지난 8년간 변했지요. 당시에는 미사일 문제였지만 지금은 미사일 더하기 핵 문제입니다. 또한 내 생각에 북측 당국은 자신이 8년 전보다 더 불안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바마가 클린턴 행정부 말년의 낡은 문서들을 찾아내서 그냥 그것을 실행하려고 한다면 북측은 아마 응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저팬 포커스’웹싸이트(www.japanfocus.org)에 올라온 존 페퍼(John Feffer)의 최근 글을 혹시 읽어보셨는지요?

커밍스 읽어봤습니다.

백낙청 매우 흥미롭더군요. 글은 제목은 「북한이라는 난제: 믿을 수 있는 변화인가 아니면 현상유지 정책인가」(The North Korean Conundrum: Change You Can Believe In or Policy Status Quo?)지요. 그는 부시가 주려던 당근을 단순히 더 안겨주는 것만으로는 북한의 핵무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로 북한이 이미 착수한, 페퍼가 말하는 체제변화를 지원하면서 말이지요. 북한이 교조적 사회주의에서 김정일이‘실리적 사회주의’라고 부른 체제로 이행하는 변화를 미국은 휠씬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커밍스 북한의 취약점은 페퍼가 논한 바로 그 개혁입니다. 페퍼는 북한의 광범위한 시장화를 묘사했는데, 그로 인해 북한은 10년 전과 다르게 변했지요. 대다수 미국인들은, 심지어 식견있는 미국의 지도급 인사들조차 그런 북한을 정말 모릅니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그토록 중요한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 회담은 우리가 이전에 이야기한 북한의 경제계획들과 합치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시장을 위한 조치들 및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과도 부합합니다. 존 페퍼가‘체제변화’라는 용어를 쓴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만, 영변 원자로의 해체를 추진하면서 미국이 시장개혁을 향한 조치를 지지하는 게 좋겠다는 주문이라면 그건 실행 가능한 정책이라고 봐요. 물론 그런 정책은 클린턴 정부가 2000년에 취한 노선을 따라 북한의 체제보장을 수반해야 하겠지요.

나는 그 점에서 존 페퍼와 의견을 같이합니다만, 1990년대에는 없었는데 오늘날에는 있는 최악의 문제가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했다는 겁니다. 그동안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국무부 차관보의 영변 원자로를 해체하려는 노력은 많은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의문 때문이지요. 나는 확실하게 못 박아둘 것부터 박아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영변 플루토늄 시설을 제거할 수 있으면 일단 그것부터 제거하는 거예요. 그런데 원자폭탄의 경우 북한이 그 모든 폭탄들을 포기할 거라는 점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그들이 몇개를 포기한다고 해도 어딘가에 또 숨기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밖의 다른 모든 것을 확실히하고 미사일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들이 몇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기분을 내고 있는들 대수로울 게 없지요. 그리고 그 선에서의 합의는 실행 가능한 것입니다. 워싱턴 정계에서는 비판이 나오겠지만 그건 실현 가능한 합의이고, 일련의 전향적인 조치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주장하기가 매우 어렵게 될 겁니다. 다만 북한이 하나나 둘 또는 세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미 의회에 먹히기 힘들겠지요.

선생은 『흔들리는 분단체제』에서 북한의‘농성(籠城)체제’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저는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핵무기 개발이 얼마간 합리적인 반응이니까요. 그래서 미국이 60년간 이 작은 나라를 상대로 취한 농성 강요라는 맥락에서 보면, 첫째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건 놀랄 일이 아니고, 둘째로 북한이 얼마간 그런 능력을 갖췄다 해도 그건 그렇게 끔찍한 게 아닙니다. 북한에는 안보와 연관된 1만 5천개의 지하시설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검사관들이 그 모두를 뒤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요. 설혹 그런다 해도 중국 국경 너머로 무기를 옮겨놓았다가 트럭으로 다시 가져오면 그만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 사람들이 가진 마지막 하나의 핵무기까지 찾아내야 한다는 요구는 말이 안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를 고집하다 보면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아주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지도자들과도 협상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했으면 하는 거지요. 그것이 반드시 정상회담이나 그 비슷한 것을 의미할 필요는 없고 단지 대화와 외교의 의지가 중요하겠지요. 오바마 대통령이 그러리라 믿습니다.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넘어서

 

백낙청 내가 평양 당국이 가령 8년 전보다 더 불안하게 느낀다고 말한 것은-물론 많은 객관적인 상황에서 북한이 10년 전보다 휠씬 나아졌다는 선생의 말씀에 동의하지요-그러나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대로 경제개혁이 위태로워질 위험이 있는데, 만약 실패한다면 그들은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거든요. 그건‘튜브에서 짜낸 치약’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경우니까요. 그들이 아무리 원해도 그들은 과거의 체제로 돌아갈 수 없어요. 북의 지배층 내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분명해요. 그래서 존 페퍼가 말하는 그런 위험이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밖에 또 하나의 위험이 있고 북의 지배층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봅니다. 바로 경제개혁의 성공에서 발생할 위험이지요. 이는 미국의 봉쇄가 풀리는 데서 발생하는 위험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북의 지도층이‘농성체제’를 인민들에게 정당화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테니까요.

남한의 많은 진보적 인사들은 우리가 중국과 베트남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개혁개방을 북한도 수행하리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현재의 분단상황에서 그게 실행 가능한 전망일까 의문스러워요. 중국과 베트남은 모두 분단을 해결하고 난 후에 경제개혁에 착수했어요.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긴장이 아무리 완화되더라도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시간이 가면서 남한에 의한 일방적인 흡수통일 같은 위협이 언제나 있을 터라서, 북한정권의 안전을 보장해줄 어떤 정치적 틀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단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의 교류가 크게 확장되면 우리는 국가연합 안을 담은 6·15공동선언 제2항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의 경제개혁이 진행될수록 한반도에는 공존에 합의한 별개의 두 국가보다는 더 긴밀하지만, 어느 한쪽 정권을 위협할 정도로 긴밀하지는 않은 어떤 정치적 틀이 필요할 테니까요.

커밍스 그게 맞는 것 같군요. 그러나 북한에 관해서, 그들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더 걱정하는지 아니면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때 자기네 인민들을 더 두려워하고 자신들에게 벌어질 상황을 두려워하는지 저는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은 북한 지도층에게 시장개혁을 진행하는 데 어떤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공산주의 정권들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기 일쑤지요. 그런 정권들은 1989년에서 1991년 사이에 모두 무너졌다는 거예요. 하지만 동아시아의 중국과 베트남에서 진행된 것은 일종의 공산주의 정권의 탈공산화였지요. 두 나라에서는, 특히 군부 지도자들이 대기업 총수가 되어 돈벌이를 시작하고 전세계를 상대로 자신의 상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인민해방군은 기업계의 봉토(封土)들로 변했고 똑같은 상황이 베트남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때로는 공산당 관료들 자신이 그렇게 변신하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2000년에 미국에 가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조명록(趙明祿) 장군은 미사일과 미사일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미래를 봅니다. 국가 주도의 시장경제에서 부자가 되는 자신을 보는 겁니다.

 

시장만능주의의 후과, 전지구적 경제위기 그리고 대안들

 

백낙청 이제 전지구적 경제위기로 주제를 옮겼으면 합니다. 그런 다음에 위기에 대한 동아시아의 반응을 살펴보고요. 우리가 경제학자는 아닙니다만, 선생은 적어도 역사학자로서 동북아의 정치경제를 연구하신 바가 있지요?

커밍스 참 재미있는 것이, 제가 시카고 경제학파의 본산인 시카고대에 재직하기 때문인데, 시카고학파는 레이건 행정부 이래로 경제분야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왔지요. 요즘은 규제되지 않은 시장이 만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카고학파의 근본적인 전제가 왕창 깨졌기 때문에 그들이 입 다물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지속될, 1929년 대공황에 직접적으로 비견될 만한 매우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대공황은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동을 야기했고 본질적으로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 5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즉 시장이 모든 사람들의 문제나 재화 및 써비스의 분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기각된 거지요. 대신에 조절된 자본주의라는 것이 부상했는데, 뉴딜이 좋은 예지만 2차대전 이후 등장한 독일의 사회적 시장, 프랑스식 제도, 일본식 기업자본주의 등도 모두 그런 거지요. 그것들은 모두 대공황과 대공황이 촉발한 전쟁에 대한 반응이었고 근본적인 취지는 우리가 빈곤에 대해 일정수준 이상의 대책을 마련하고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1930년대 위기에서 나온 결과였고, 실제로 미국에서는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전환점은 1980년이었는데, 우리가 지난 30년간 들어온 말은 시장이 지배하게 하라, 시장을 내버려둬라, 시장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라 등이었습니다. 내내 그렇게 떠들었던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자들이 이제 청중 앞에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이른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그들의 패러다임이 산산이 부서졌는데, 그게 시작된 것은 일년도 더 전이지만 지금 당면한 신용위기에서 정점을 맞고 있습니다.

선생과 나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좀 알려고 노력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역사적 현실을 살아가면서 흥미롭게 여기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현재 이 위기의 해법을 아는 사람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폴슨(H. Paulson) 재무장관, 버냉키(B. Bernanke)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지금은 물러난 그린스펀(A. Greenspan) 전 의장 등도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방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과거의 모든 처방이 듣지 않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올 징후가 아직 보이지 않는 고전적인 위기에 빠져 있는 거지요.

백낙청 우리가 새로운 처방이나 패러다임을 찾고자 할 때 경제학자이기도 했던 사상가 세명이 특히 떠오릅니다. 하나는 케인즈(J. M. Keynes)이고 나머지 둘은 폴라니(K. Polanyi)와 맑스(K. Marx)입니다. 이제 모든 정부들이 경제위기에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카고학파 대신 케인즈주의자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께서 방금 묘사한 문제의 규모로 볼 때 케인즈경제학이 위기에 실제로 대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적 방식보다는 휠씬 낫다 하더라도 또다른 낡은 처방이 될 공산이 큽니다. 케인즈적 처방에는 단기적인 문제와 장기적인 문제가 모두 있지 싶어요. 단기적 차원에서 문제의 규모가 비록 정부개입 없이는 안된다 하더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으로도 해결하기에 너무 클지 모른다는 겁니다. 동시에, 설혹 케인즈적 처방이 먹혀서 일정기간 상황을 통제한다손 쳐도,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상황에서의 인플레이션) 같은 고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1930년대나 40년대와는 사뭇 달라진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서 발생하는 여타 문제에 여전히 봉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케인즈에서 폴라니로, 더 근본적인 성찰을 위해서는 맑스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지요.

 

맑스와 폴라니를 다시 읽다

 

커밍스 맑스에게는 파생상품이나 CDS(신용부도스와프) 같은 것이 자본의 고전적인 예였다는 점에서, 선생이 문제의 정확한 차원을 짚으셨습니다. 『자본론』을 보면 맑스는 자본을 종종 상당히 미스터리한 어떤 것으로 언급합니다. 그건 뭔가에 가격이 매겨지지만 그 가격이 정확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인간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맞는 가격을 매기려면 거래의 쌍방이 가격에 동의해야만 합니다. 『자본론』에는 매우 흥미로운 구절이 있는데, 거기서 맑스는 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왜 우리가 금을 가치있게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다시 음미해볼 만한 구절인데, CDS같은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건 허구이고 사람들이 그 가격에 더는 합의하지 않는다면 무너지는 겁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어떻게 가격을 매길지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택처럼 물질적인 구조와 안정성을 가졌고 한 가족이 살고 있는 상품조차 가격을 제대로 매길 수 없는 거예요.

나는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탁월한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종의 공상세계에 빠지는 걸 좋아하고 거기서는 시장이 답이라고 믿는데, 그러다가 시장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에 대한 분석에서 폴라니가 정말 위험하다고 본 것은, 대공황기에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국가들이 차례로 망가져서 각자의 특성에 따라 독재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독일과 일본에서‘신질서’가, 미국에서는 뉴딜이, 소련에서는 일국사회주의가 생겨난 거지요. 그러면서 세계경제가 완전히 붕괴되고 모든 나라가 자국의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데, 물론 그것이 바로 2차대전의 씨앗입니다.

나는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 일본 또는 한국의 사회적 지형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운동이 벌어질 형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에는 여전히 지주나 귀족계급들이 매우 강력한 반동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래서 독일이나 일본의 사회적 지형이 매우 반동적인 형태를 띨 수 있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치의 영역에서 폴라니가 예견한 상황전개를 볼 수 있는 곳은 라틴아메리카 같아요. 그 지역에서는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나라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아르헨띠나가 그렇고 어느정도는 브라질 및 그보다 작은 나라들이 그렇지요.

백낙청 폴라니의 저작에서 가장 잘된 부분은 경제가 사회의 여타 부문으로부터 괴리될 때 어떤 끔찍한 재난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진단한 데 있다고 봅니다.

커밍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처음에는 제대로 답을 못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질문하지요. “폴라니는 세가지 상품허구(commodity fictions)를 제시했다. 그건 무엇인가?” 학생들은 둘 정도는 맞추지만 셋 모두를 맞추지는 못해요. 첫째가 인간입니다. 인간이 시장에서 노동력을 파는 상품이라는 것은 허구입니다. 인간은 일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지요. 그래서 머리 위에 지붕이 있어야 하고 음식 따위가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토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인 토지가 다른 상품과 똑같이 사고팔 수 있다는 건 허구지요. 세번째는 화폐입니다. 화폐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허구인데, 이 대목에서 폴라니는 맑스와 많은 점에서 일치합니다.

저는 오늘날 학생들에게 이 상품허구가 작동하는 양상을 보고 싶다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라고 불리는 허구의 담보대출, 허구의 파생상품, 허구의 CDS를 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모든 사람을 감염시키면서 세계경제를 들쑤시고 다니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이지요. 시장에서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가치투자(quality investment)가 있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됐고, 모든 게 바로 우리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시장 자체가 왜 통제되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매우 교훈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낙청 만약 오늘날 폴라니가 살아 있어서 이 지구적 위기에 대한 처방을 내려고 한다면, 그는 사회와 문화에 내장된 시장을 다시 만들어내는 어떤 공식을 찾아내야만 할 겁니다. 다만 국민경제 차원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또는 최소한 지역적인 차원에서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케인즈에서 폴라니로, 그리고 다시 맑스로 옮겨가면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어떤 분석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맑스의 분석은 당대에는 국가적인 상황과 실제로 그다지 잘 맞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전지구적 맥락에 놓는다면 오히려 설득력이 커졌다고 봅니다.

커밍스 바로 그것이 폴라니가 『거대한 변환』의 말미에서 했던 작업이지요. 초판은 1944년에 나왔는데, 그는 이 책을 2차대전이 최고점에 치달은 때 썼기 쉽지요. 그는 말미에서 전세계적 규모의 사회민주주의, 즉 하나의 새로운 세계적 체제를 요구했지만, 또한 에필로그에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근대세계에서의 그에 걸맞을 만한 것들에 대해 논했습니다. 그는 구약의 가치를 받아들여 그것을 사회적 프로그램으로써 현세에 실현하고자 했던 철학자 스피노자로 돌아갑니다. 폴라니의 에필로그에 담긴 메씨지는 산업화된 세계 도처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봅니다.

다른 종류의 세계체제를 향한 움직임은 어떤 의미에서는 1945년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체제의 토대는 물론 자본주의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폴라니의 저작이 출간된 해인 1944년에 IMF와 세계은행, 여타 기제들을 거느린, 로우즈벨트가 구상한 세계를 위한 조절된 뉴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선진 공업사회의 경우 그런 기제들이 유럽과 아시아의 전후경제를 되살리는 데 훌륭하게 작동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국내경제에서의 시카고학파 이론의 국제판이었고, 이번 위기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거지요.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정부들 중에는 이미 신자유주의에 매우 강력하게 대항한 경우도 있습니다. 유럽과 동아시아 그리고 미국에서도 앞으로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지도자는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지속과 지역의 대응

 

백낙청 현 남한정부를 제외하면 그렇지요. 물론 여기서도 그들이 그걸‘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습니다만-

커밍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딴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의 정책을 보면 그는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시기에 당선된 인물입니다. 그래서 제 발등을 찍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분단체제 그리고 그것과 세계체제의 연관성에 관해 작업을 해온 선생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폴라니가 말한 지점에 있습니다. 즉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정말 뭔가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유럽연합이 최소한 그런 극복을 시도하는 하나의 예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경제를 재가동하기 위해 지역 범위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일괄대책을 발전시키려는 거니까요. 가장 경제규모가 큰 독일이 소극적이지만, 만약 독일과 프랑스, 유럽연합 국가들이 경기부양과 초국가적 경제정책 방향으로 함께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가 이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물론 자본주의모델을 벗어나는 건 아니지요.

백낙청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1945년에 어떤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데는 동의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체제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선진 산업국가들이 시행한 복지 프로그램은 이전 단계에서 몇몇 앞서간 국가가 내부적으로 채택했던 복지정책과 비슷한 성격이지요. 자본주의 자체가 일종의 복지자본주의로 변화한 것이 아니죠. 지구적 차원에서는 동일한 종류의 불평등이 지속되어왔습니다.

커밍스 제가 언급한 1945년 이후의 정책들, 즉 브레튼우즈 협정, 독일의 사회적 시장 등은 선진 산업국가 국민에게 모두 매우 이로웠다고 봅니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은 2차대전 중에 완전히 폐허가 되거나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요. 그래서 그런 경제재건은, 특히 일본과 독일에서는, 고도성장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경제성장에 관한 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정치는 엉망이지만 이딸리아 같은 나라에서도 적절한 성장과 사회복지, 문명적 조화의 동시적 달성을 현실세계에서 이룩할 수 있는 만큼 이룩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빠리나 뮌헨, 베를린에 가면 이게 바로 문명화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구나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다고 세계체제가 하나의 전체로서 거대하고 심각한 불평등의 체제가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그런 심각한 불평등이 눈에 안 들어오지요. 반면에 미국에는 도처에서 그런 불평등이 목격됩니다. 시카고대학이 대부분의 백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싸우스 싸이드(South Side)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저도 그런 심각한 불평등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있지요. 한국이나 독일, 프랑스에서는 그같은 상황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후진적이고 미국의 지도자들이 시장이라는 해결책에 집착한 탓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생계가 막막해졌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어떤 의미에서 세계체제의 축소판입니다. 그 점에서 자본주의는 처방을 못 내놓고 있지요.

백낙청 이제 신자유주의가 아무런 처방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매우 장기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자유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불평등과 빈곤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무능력에 대한 논리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을 위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으니-

커밍스 차라리 일부 사람만을 위해서나 문제를 해결하자는-

백낙청 바로 그거예요. 게다가 그것조차 온갖 거품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이 문제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맑스의 생각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모든 거품들, 즉 이는 표면적으로는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신용위기가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 즉 실물경제에까지 도달해서 현재의 경제문제를 야기한 것이지만, 금융위기 배후에는 실제로 이윤율의 저하가 있는지 모릅니다. 경제가 계속 굴러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거품을 요구하는데, 거품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지요. 그렇다고 제가 그 옛날식으로-

커밍스 폴라니가 자신의 저작 말미에서 제시한 처방은 세계적 차원의 사회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런 사민주의는 부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재분배할 수 있는 거버넌스의 지구적 메커니즘, 일종의 세계정부를 의미합니다. 선생과 나는 그것이 오늘날의 체제보다 휠씬 나은 체제라는 데는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이 모두 이 세상에 상당기간 살아본 사람으로서, 불평등 문제에 대한 수많은 해법이 시도되고 그중 몇몇은 불행하게도 실패한 그런 세계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사회주의와 소련의 붕괴는, 어떤 진보적 해법이 있다고 믿었던 우리에게는 타격이었습니다. 그것이 많은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 거대한 시도는 본질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또한 세계적 규모의 불평등에 관한 한 조절된 뉴딜이든, 그에 뒤따른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든 간에 자본주의적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시장은 통제되고 조절될 때 재화 및 써비스를 잘 분배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민주정치, 조절된 시장, 재분배 프로그램을 위한 어떤 기제가 있어야만 하는데, 미국에서 달성하기 그토록 어려운 것이 바로 재분배 프로그램이지요.

백낙청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 시도들에 대한 선생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내가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에서 혁명과 사회주의사회 건설 등이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옛날식 모델로 돌아가려는 건 아니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지요. 그러나 선생은 라틴아메리카를 폴라니의 기획과 유사한 것을 건설하기 위한 지역운동 또는 일군의 지역내 개별국가 운동들을 한 예로 언급하셨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를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 그것이 기존 사회민주주의의 한 변종이 될지 아니면 더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제 어쩌면 세계에 어떤 새롭고 뜻있는 대안을 제공할 수도 있을 동아시아의 구체적인 위기대응 가능성에 초점을 옮겨가는 게 좋겠습니다.

 

동아시아의 전망과 남한 시민사회의 역할

 

커밍스 대규모 복지체제를 갖췄지만 자민당과 정부의 지도력이 모두 빈곤한 국가인 일본은 1990년대 내내 그런 문제들을 다뤘습니다. 그들은 경제를 재가동하기 위해 다양한 대증요법을 시도했는데,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지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직면한 것과 유사한 상황, 즉 디플레이션, 부동산값 폭락 위기, 붕괴한 주택담보대출 등의 상황에서 일본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본경제는 그럭저럭 괜찮아요. 비록 2009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겠지만 여기저기서 선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시방편의 땜질(tinkering)은 위기에 대해 일본이 보여주는 동아시아적 대응의 한 예입니다.

내가 보기에 중국은 지난 30년간 두자리 숫자 성장에 익숙한 터라서 어떤 대응을 할지 가장 미지수입니다. 중국은 모든 새로운 인력을 끌어들이고 구직시장에서 매년 생겨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8%가량 성장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성장률이 3~4%로 떨어지면 엄청난 실업과 사회불안이 발생할 겁니다.

한국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에 3% 성장을 말합니다. 이명박정부는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처럼 여기저기 땜질하는, 비교적 소소한 일을 시도하리라 봅니다. 북한의 정치경제는 자력갱생과 세계경제로부터의 상대적 이탈을 통해 이같은 위기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시점에서 북한이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의 모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가장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문제의 근원에 있고, 오바마 행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아마도 다른 나라들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좋은 지표가 될 겁니다. 물론 나는 오바마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몰라요. 하지만 분명히 그에게 케인즈가 핵심적인 인물이고 폴라니는 불행히도 그렇지는 못할 거라는 선생의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저는 위기를 통해 사람들이 시장이 규제되어야만 한다는 점과, 누군가 부자가 되려면 우리 중 가장 빈곤한 사람들도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이번 위기가 1930년대 위기와 같은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선생께서 언급하신 이윤율 저하 문제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미국에서 우리는 이 거품에서 저 거품으로 옮겨 다니는 식이었지요. 1990년대 후반의 씰리콘밸리 거품에서 부동산 거품, 그러다가 지금은 꼭 거품이랄 수도 없는, 터져버린 거품인 신용위기 등으로 말이지요. 저는 그중 어떤 것도 조절자본주의 경제에서라면 반드시 일어났을까 의문입니다. 즉 언제나 거품을 향해 사태를 밀어붙이는 자본주의의 경향은 미국의 경우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다른 선진경제에는 그대로 들어맞지 않지요. 블레어(T. Blair)와 새처(M. Thatcher) 시절의 영국에서도 그와 동일한 경향이 있었지만, 적절한 규제와 심지어 일종의 이윤상한선이나 거품경제에서 돈벌이를 잘하는 사람들의 큰 부를 징수할 수 있는 세금제도 등을 통해 그런 경향을 제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레이건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가장 높은 세율은 약 90%였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1천만달러를 번다면, 세금을 제하고 손에 쥐는 돈은 1백만달러라는 겁니다. 이는 공산주의가 아니고 사회주의적인 발상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부를 재분배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백낙청 동감입니다. 그런데 이윤율 하락에 대해 말하자면, 그건 물론 이런저런 국지적 사례보다는 전지구적 자본 자체에 적용할 수 있는 매우 추상도 높은 학설이지요. 그러나 이건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이니 동아시아로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먼저 한국정부의 경우, 일본식 모델인 땜질개혁만 모방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웃음) 그건 어쨌든 최소한 정부가 긍정적인 뭔가를 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나 내 생각에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다시 한번 움직여서 이 정부에 어떻게든 제동을 걸지 않는 한 그들은 땜질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전속력으로 역주행하려 들 거예요.

커밍스 그건 이명박 대통령이 딴 세상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가 되겠지요.

백낙청 그리고 그건 그가 우리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공헌하는 또다른 길이 될 겁니다.(웃음)

커밍스 그렇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습니다.(웃음)

백낙청 그렇지요. 동아시아에 대해 말하자면 두가지 상충되는 전망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동아시아 경제가 다른 지역 또는 최소한 미국보다는 더 잘될 거라는 주장입니다. 많은 분야에서 펀더멘털이 튼튼하고, 가령 일본이 그리고 일본과는 좀 다른 방식이지만 1997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도 그런 문제들을 지난 15년간 다뤄왔다는 거예요. 또한 중국과 일본은 현금이 많고, 그런 현금은 불경기 때 더욱 힘을 발휘하지요. 그래서 그 점이 동북아지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동북아 경제가 너무도 수출지향적이라서 다른 지역경제보다 더 힘들 거라는 견해입니다.

커밍스 그런데 일본과 한국, 중국은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이 구매하지 않고 따라서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가 분명히 이 나라들의 수출에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요따조차 미국인들의 자동차 구매 기피 때문에 타격을 입고 있지요. 그러나 미국시장의 경기하락에 가장 취약한 나라는 중국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이야기를 나눴다시피 중국은 8, 9, 10%의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선전하고 있는 회사가 하나 있다면 그건 월마트입니다.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메이씨백화점에서 할인점 월마트로 옮겨가고 있으니까요.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 상품의 8분의 1가량은 월마트 중국지사에서 보내는 건데, 그것이 중국의 수출을 지탱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지요. 한국의 경우 은행이 국제 금융체제의‘바이러스’에 일본보다 더 노출되어 있지만, 제가 보기에 지식산업이 매우 활발하고 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기반이 없는 수많은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처지가 낫지요.

백낙청 동북아 국가들이 현재의 경제위기에 타격을 덜 받는다고 할 때 그건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해결책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폭풍우를 피하면서 좋았던 옛날이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 있다는 거지요.

커밍스 저는 일본에서는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일본은 방향타가 없는 나라예요. 이를테면 일본 총리는 매번 바뀌고 취임하면 금방 인기가 없어지는데다가 그나마 1년 남짓 재임할 뿐이죠. 지금 아소오(麻生太郞) 총리는 매우 인기가 없지요. 정치적 지도력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인데, 그 시초는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199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래서 경제정책을 땜질하고 총리를 갈아치우는 일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고 봅니다. 일본은 필요한 구조조정이나 개혁을 실행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백낙청 나는 이 구도에서 한국을 핵심적인 변수로 봅니다. 첫째,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어쩌다 보니 규제완화와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 등 낡은 방식을 고집하는 대통령을 뽑았지만, 바로 그 점이 시민사회와 야당들로 하여금 분발해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제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만들 테니까요.

커밍스 그런 일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일어날 공산이 크지요.

백낙청 그렇습니다. 나는 그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날 거라 희망하고 또 기대합니다. 그리고 만약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정부정책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건 대통령이 몇몇 케인즈주의 조언자의 말을 자발적으로 듣고 땜질식 처방을 채택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사태를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겠지요.

또 하나 우리만의 독특한 요인은 남북관계입니다. 지금은 교착상태지만 관계가 재개되면 상당히 발전한 자본주의경제와 매우 다른 종류의 경제를 종합하는 협동적인 프로젝트를 진전시킬 수 있지요. 그로써 온갖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해질 테고, 그러면 남한 내부에서 혁신과 창조적 사고를 위한 공간도 확장될 것입니다.

커밍스 그 작업을 우리가 아까 논의한 2차 정상회담의 합의로 돌아가는 데서 시작해야겠지요. 이명박정부는 자신의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아주 고립되어 있거든요. 아무도 6자회담에서 남한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남한은 일본과 함께 가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은 6자회담에서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명히 그러리라 봅니다만, 만약 오바마가 6자회담을 지지하고 그의 보좌관들도 6자회담에서 동북아의 안전을 도출하는 어떤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명박정부도 변화해야 할 거고 그런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백낙청 개인적으로 이제 나는 이명박정부가 자진해서 변할 거라는 희망을 아예 포기했습니다. 그러니-

커밍스 그러니 그가 바뀔 수 있도록 외부에서 강제해야겠군요.

백낙청 나라 밖에서 그리고 나라 안, 정부의 바깥에서 말이지요. 또한 우리는 미국 정부와 남한 시민들 간에 종전과는 다른 종류의 연대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전에는 남한 내부에서 개혁운동과 대북화해를 가로막아온 남한내 보수세력과 부시 행정부의 연대였습니다. 이제는 변화를 위해서 미국내 오바마 및 그 지지자들과 남한 시민사회의 민주개혁세력 간의 연합과 연대가 필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지요.

커밍스 저는 그런 일이 어차피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백낙청 그렇다면 그런 희망을 품고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