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문의 주체성과 오늘의 대학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추세 속의 학술생산

 

 

쳔 꽝싱 陳光興

타이완 칭화대학 아시아태평양문화연구실 연구원. 현재 싱가포르국립대학 아시아연구쎈터(ARI) 경력방문연구원.

쳰 융샹 錢永祥

중앙연구원 인문사회과학연구쎈터 부연구원.

ⓒ 陳光興·錢永祥 / 한국어판 ⓒ (주)창비

*이 글은 2004년 9월 25,26일 ‘타이완의 (인문사회)고교학술평가에 관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필자들이 한국 독자를 위해서 다듬고 보완한 것이다.

 

 

1. 서언

 

근년에 들어 정부 및 학계의 지도층에서는 전체 학술계에 대해 각종 규정조항을 만들어 학술평가제도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여기에는 승진 및 초빙 제도, 학술간행물의 심사평 제도, 대학평가제도 등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평가제도는 연구자에게 국제화, 영어화를 요구하며 그것을 연구자금의 분배, 개인의 포상과 징계, ‘퇴임제도’와 직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제도의 설계가 편견, 선입견, 천견(淺見)으로 인해 종종 학문간에 있게 마련인 차이점을 무시하고 국내 학술생태의 구체적 상황을 홀시하며 더 나아가 학술발전 자체의 내재적 요구와 외재적 조건을 무시하기 때문에, 평가제도는 벌써부터 학계에서 격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신진학자들은 이러한 평량(評量)방식을 수용할 수 있을 뿐 그 제정과정에 참여할 수 없으며 또한 늘상 임용이라는 생존문제로 압력을 받고 있다. 또한 이공계가 우위를 점한 기관이나 대학에서 인문사회학과는 늘 이공계의 평량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초빙을 받았으면 게임의 법칙에 따라야 하며, 불공정한 대우를 받더라도 울분을 참고 삭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력이 적은 교수나 연구원 사이에서는 점차로 건강하지 못한 심리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국내 학술의 정상적 발전을 위해 그리고 학술주체들의 공평하고 건강한 작업 환경과 조건의 쟁취를 위해, 학계는 반드시 한발 앞서 학술평가의 문제를 공공의 토론장으로 끌고 나와, 학술주체들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고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번 토론회를 개최하게 된 기본목적이다.1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얻은 성과를 토대로 한층 심도있는 토론을 진행하여 학계에 치열한 공론을 형성하고자 한다. 타이완 사회는 이미 민주시대에 진입했다고 성명(聲明)한 바이므로, 학계는 더욱 큰 책임감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현실화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이상 소수의 학술행정관료가 학술평가기제를 제멋대로 결정하도록 용납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학술사회의 여론을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학술연구자로서 우리는 시야를 법령규칙 등 행정적 차원에만 제한해서는 안된다. 학술평가는 학술행정이나 학술규범만이 아니라 지식생산의 정치경제학에 관한 문제이다. 학술행정체계가 추동하는 평가체제의 방향 및 정책 속에 숨겨진 미래의 거시도(巨視圖)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앞의 학술생산방식을 움직이는 동력의 소재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공공토론이 결여된 상황에서, 만약 쉼없이 바뀌는 자잘한 규칙조항 뒤에 숨어 있는 총체적 그림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총괄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전지구화라는 추세 속에서 인문사회학의 학술생산은 도대체 어떤 새로운 관문에 부딪히게 될 것인가? 학술연구자로서 책임감있게 문제를 역사화하고 시야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이 문제에 대답할 자격을 가진다. 학술평가의 문제는 마땅히 신자유주의의 전지구화라는 추세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2. 변화의 동력과 변화의 방향

 

2차대전 후 냉전체제는 전지구적으로 빠르게 형성되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북한, 중국, 북베트남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확장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자본주의 세계의 반공 방위선을 연장하여 각지와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고, 일본, 남한, 오끼나와, 타이완 등지를 권역성(regional) 군사부서 안으로 편입시켰다. 잊어서는 안될 것은 냉전질서가 장기화됨에 따라 그것의 작용범위가 군사나 국제정치의 층위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친미반공의 기운은 사람들의 정서 속에 깊이 침투하여 우리의 정치·사회·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의 사고와 신체 그리고 욕망 속에서 유동해왔다. 문화적 차원에서 타이완 지역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전전(戰前)에는 미국과 그다지 큰 관련이 없었다.그러나 전후 냉전구조와 양안(兩岸,타이완과 중국대륙)의 긴장, 거기에 타이완 국민당정권의 친미반일 콤플렉스에 한국전쟁 후 남북한 분단상황이 가세하자, 미국은 서둘러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교육부가 공포한 통계에 의하면,1990년대 이전 타이완 유학생의 80~90%가 미국으로 향했다. 타이완은 당시 미국 최대의 유학생 군단을 이루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타이완 유학생의 절반이 미국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전후 지식인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정치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는 타이완의 중요한 상상의 대상이 되었다. 대중문화의 시장이 할리우드에 의해 잠식된 것은 물론이며, 대안적 대항문화조차도 본능적으로 미국식을 따랐다. 요약하면, 전후 타이완의 미국화는 미국에 대한 총체적·전면적 의존이라 할 수 있다. 타이완의 학술생산은 이러한 구조를 통해 미국의 계통 속으로 편입되었다.2 하루아침에 우리는 구석구석까지 미국을 본으로 삼아 제도 및 학과분계까지 모두 미국을 따랐다. 심지어는 교과서나 번역물 역시 모두 미국에서(정확하게 말하면 냉전체제 하의 미국 학계)에서 들여왔다. 미국유학생들이 지식 차원에서 냉전체제의 세례를 흠뻑 받았기 때문에, 친미반공이 타이완의 대학과 지식생산의 기본구조가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80년대말, 소련이 와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정권들이 차례로 무너지자, 근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세계냉전체제는 구미지역에서 종결을 고하게 되었다. 그러자 미국 주도의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의 동력이 빠른 속도로 패권을 형성했다. 그것은 자본을 최전방에 앞세우고 자유시장을 수단으로 삼아 냉전시기에는 침범할 수 없었던 영토를 향해 진격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과 대립하는 사회주의 방해세력을 소탕한 후 자본주의는 전지구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지구화란 냉전의 해빙3과 함께 출현한 것으로, 전지구화를 통해 냉전시기에 서로 동떨어져 있던 지역간에 관계가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학술생산방식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냉전시기 미국대학과 학술생산이 국가이데올로기로부터 통제를 받았다고 한다면,1990년대 이후 지배적 힘은 전지구적 경쟁 속의 시장주도성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대학의 원로교수인 미요시 마사오(三好將夫)는 2000년에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전지구적 기업화가 가져온 효과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데는 학술생산력의 외관과 그 정책에서이다. 과정에 등록한 사람 수, 학위취득의 수, 박사취업률은 모두 고도의 관리와 감시 대상이며, 마치 공업생산단위에서처럼 정확하고 합리적인 통계를 가진다. 학술의 등급은 출판량과 인용문 수로 계산된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경비를 처리하거나 연구지원금을 받는 것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4 말하자면 90년대 이후 미국 대학에는 전대미문의 전문화 현상이 생겨났다. 그 배후에 있는 기본적 논리는 사유화와 시장화를 향한 신속한 방향전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객관적 수량화를 가장한 평량표(評量表)가 나와 학술을 계량화했다. 대학의 양상과 사회적 위상 역시 빠르게 변화했다. 예를 들면, 과거 대학총장은 학술, 견식, 사회적 명망 등에 기반해 선출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총장은 대기업의 CEO로 바뀌었다. 총장은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내야 하며 경영능력을 겸비하여 대학에 이윤창출 씨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유화와 시장화의 논리가 극도에 이르러 전지구적으로 거침없이 확산되는 상황이 오게 되면, 교육기구 역시 오로지 유명 브랜드의 대학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하바드대학이 맥도널드처럼 전지구적으로 확산되어 도시 곳곳을 침공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미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각지의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 명문학교들과 연합해 이익을 챙기는 경우도 늘어갈 것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과 미국 MIT의 원거리 합작이 그런 예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시장화 추세는 부단히 후진국을 견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후진국의 모방과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타이완이나 싱가포르, 남한 및 중국대륙 각지에서도 상호경쟁이라는 압력하에서 학술생산은 수량화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경쟁력의 수치로 환원되어 다소간의 포상과 징계의 준거가 되고 있다. 각각의 학교가 받게 되는 예산지원금의 액수는 물론, 심지어는 시장에서의 퇴출 여부조차 이러한 수량화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또한 국제 무대에서도 각 대학은 국제대학평가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경쟁을 벌이고 있다.5 어떤 경우에는 몇개의 대학이 연합해 규모를 증가시켜서 국제 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6 개별 연구교수의 경우에도 극도로 단순화되고 수량화된 평가방식이 적용된다. SSCI(Social Sciences Citation Index,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 A&HCI(Arts& Humanities Citation Index, 예술·인문과학논문인용색인), TSSCI(Taiwan Social Science Cita

  1. ‘타이완의 (인문사회)고교학술평가에 관한 토론회’가 2004년 9월 25,26 양일간 타이뻬이 국가도서관에서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발표된 논문이 지금 수정·출판중이다. 이 토론회의 의도는 학술행정권력으로부터 학술의 자주권을 되찾고 학술적 반성을 촉구하자는 데 있다. 그 성과는 마땅히 지식사(知識史) 속에서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2. 그런데 전후 미국대학의 학술생산은 냉전구조 속에서 주조되어 국가이데올로기에 복무하고 있었다. Noam Chomsky et al., The Cold War and the University: Toward an Intellectual History of the Postwar Years(New York: New Press 1997) 참조.
  3. ‘종결’이 아닌 ‘해빙’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냉전의 종결이라는 용어가 구미지역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동아시아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한 그리고 양안 사이에는 여전히 냉전시기의 군사위기가 동결된 채 남아 있으며 그 충돌의 정도는 냉전시기보다 더 크다. 이것이 구미지역의 관점을 맹목적으로 가져올 수 없는 이유이다.
  4. Masao Miyoshi, “Ivory Tower in Escrow,” Boundary 2, 2000년 봄호.
  5. 타이완 국립 칭화대학(淸華大學)이 제출한 ‘20·20’이 그런 예이다. 즉 20년 안에 세계 대학순위 20위권에 들겠다는 계획.
  6. 타이완연합계통대학(양밍陽明, 즁양中央, 칭화淸華, 쟈오따交大)의 구상이 그런 경우이다.현재 교육부는 칭화대학과 쟈오퉁(交通)대학의 합병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