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절망의 미니멀리즘

최승자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황현산 黃鉉産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저서로 『얼굴 없는 희망』 『말과 시간의 깊이』 등이 있음. dasungumi@gmail.com

 

 

최승자(崔勝子)가 살아온 삶은 시인의 신화 하나를 거의 완벽하게 구성한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교수와 싸우고 교실을 뛰쳐나와 출판사의 견습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중퇴학력으로 인문학 대가들의 글에 붉은 볼펜을 휘둘러 자주 말썽을 일으키다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두해 사이를 두고 같은 시기에 등단하여 훗날 저마다 한국시단에 봉우리를 하나씩 이루게 되는 이성복, 최승호, 김혜순, 황지우 사이에서 최승자는 자기 내장을 다 드러내는 사람의 선연한 말을 비수처럼 내던져 잊어버릴 수 없는 목소리를 만들었다. 자신을 배설물로, 잉여물로 규정하는 그에게는 감출 것이 없었다. 그는 번역으로 생계의 수단을 삼았다. 주로 예술가들의 자기고백에 해당하는 산문들을 직역에 가깝게 옮기면서도 낱말 하나하나에 생기를 주어 독자적인 문체를 확보했으며, 이 문체로 인간비평이자 문명비평인 반투명 색조의 산문들을 썼다. 그러나 번역은 그를 지치게도 했다. 네번째 시집 『내 무덤, 푸르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