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정병호 『고난과 웃음의 나라』, 창비 2020

실천적 인류학자의 북한 읽기

 

 

김성경 金聖敬

북한대학원대 교수 ksksocio@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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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밀스러운 국가로 지칭되는 북한을 연구하는 것은 인류학자라면 한번쯤은 꿈꿔볼 만한 일이다. 전쟁과 분단을 거쳐 북한의 쌍생아로 존재해온 남한의 인류학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분단선 너머를 연구하는 것은 타문화를 분석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자문화에 대한 성찰적 시선과 탈분단적 상상을 포괄하는 엄청난 프로젝트인 까닭이다. 하지만 민족지적 접근을 지향하는 인류학의 (전통적) 특성을 감안할 때, 현지조사는커녕 자유롭게 오가지도 못하는 북녘을 연구하기란 쉽지 않다. 북한이라는 ‘매혹적인’ 대상을 앞에 두고도 인류학적 연구가 극소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에 대한 몰이해와 분단 이데올로기적 인식의 근원 또한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난과 웃음의 나라: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의 저자 정병호는 분단국을 사는 문화인류학자의 무거운 사명을 기꺼이 수행한다. 북한의 문화 패턴을 드러내어 우리 모두의 시야를 가린 이념의 장막을 걷어낸다. 더 나아가 분단과 이념을 넘어 인류애의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운다. 방법론적 한계는 분단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으로 상쇄하고자 했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뿐 아니라 탈북 어린이·청소년 교육, 평화문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시민사회 활동을 두루 개척한, 발로 뛰는 활동가이자 북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류학자이다.

사실 저자는 일본의 보육체계와 현장에 대한 문화정치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에도 보육 및 대안 교육체계와 같은 교육 인류학적 연구와 활동을 계속해왔다.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린이집 원장을 할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었던 그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는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북 지원 사업에 참여한다. 아이들에게 식량을 보내주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된 활동은 곧 연구현장이 된다. 아마도 그는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보내준다는 선한 의도가 북한의 오해로, 때로는 남한 내 이념 논쟁이나 세계의 적대적인 인식으로 좌절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북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던 것 같다. 북한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곳의 문화를 해석할 능력을 키워야 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29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은 저자가 대북 지원 민간단체 임원으로 북쪽 당국자를 만나면서 경험한 문화충격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협상 과정에서 시쳇말로 갑을 관계가 역전된 듯 북쪽 당국자들은 상대방을 향한 도덕주의적 비난과 엄포, 위협 등을 쏟아내곤 했다. 이러한 행동의 문화적 패턴을 간파한 저자는 체면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거친 몸부림에서 절박한 비명을 읽어낸다. 비슷하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나 가격폭락 위기의 제주도 감귤을 받았을 때도 고맙다는 말 대신 불평을 했던 북한체제의 행동을 “평등사회의 선물문화”로 분석한다. 선물을 준 사람들의 우월감을 상쇄하기 위한 문화적 규범으로, 당장 ‘고마움’을 표시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른 방식으로 ‘계산(정산)’”하는 것이 북한의 문화라는 것이다(69면).

그러나 저자는 북한 문화를 ‘특수한 것’으로 상대화하여 단순 옹호하지는 않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외치는 인민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독특한 가족국가 작동방식을 살피고 촘촘한 의례를 통해 카리스마적 권력이 생산되고 있음을 밝힌다. 만경대혁명학원, 동유럽으로 간 전쟁고아, 재일 조선학교 등을 통해 아버지로 표상되는 지도자의 권력이 어떻게 강화되는지 분석하는 동시에 북한체제가 주장하는 평등한 사회가 일상에서는 교육을 통한 성분 세습으로 무력화되고 있음을 비판하기도 한다.

북한의 주요 역사적 기점에서 특정한 서사가 신화화되어 문화적 의례로 실천되고 있음을 밝히는 점도 의미있다. 항일혁명투쟁으로 상징화된 저항의 역사가 고난의 행군과 선군정치 등을 거치면서 인민들에게 어떤 경험과 기억으로 남았는지, 미국이라는 최강국의 적대정책의 틈바구니에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인민들이 똘똘 뭉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지 하나씩 해석해나간다. 성분제를 포함한 규율체계를 통한 통치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무엇보다도 민족, 주체성, 혁명 등의 서사를 인민들이 내면화하도록 집단적 정치의례와 극장적 권력연출이 세심하게 조직되었음을 주목한다.

의례는 결코 일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체제와 인민의 앙상블을 통해서만이 의례는 완성되며, 이는 북한의 변화 또한 양방향의 치밀한 조율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북한 통치체제의 미세한 틈새는 장마당이라는 새로운 장에 익숙한 인민과의 치열한 관계 재구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힘만으로 체제가 일방적으로 좌지우지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변화 동력을 외부에서 찾는 것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외부세계의 일방적인 압력은 북한체제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극장국가라는 성격을 감안하여 북한체제 스스로 전혀 다른 의례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2018년 한반도 평화의 기회가, 인민들의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읽어낸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운 의례를 자발적으로 시작하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까닭이다.

물론 정치적 의례나 극장국가의 틀로만 북한체제의 복잡성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부족문화에 기반을 둔 인류학적 개념으로 근대국가의 통치체계와 사회 전반을 해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덧붙여 문화 패턴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는 정치와 경제에 대한 분석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고난과 웃음의 나라』에서 그려지는 북한 문화와 주민 일상은 블랙박스로 여겨져온 북한에 다가갈 수 있는 인식의 공간을 열어준다.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남한 시민에게 북한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이 책에는 우리가 모르는 북한에 대한 상세하면서도 통찰력 넘치는 해석이 가득하다. 인류학적 시각이 몸과 마음에 깊이 각인된 노련한 연구자만이 가능한 분석이 곳곳에 들어차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미덕은 현장활동과 연구를 병행해온 전문가의 따뜻한 시선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중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사람에게 자신의 양말과 스웨터를 벗어주고도 두꺼운 파카를 내어줄 생각을 못한 것을 후회하는 부분과 두유 한잔, 구충제 한알, 미역 한다발이라도 더 보내고자 분투했던 경험 등이 전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눈과 귀를 막고 모른 척 살아온 모두에게 반성의 기회가 된다. 하긴 삶을 위협받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니까 말이다. 저자가 꿈꿔온 공존과 평화는 그리 거창한 말이 아닐 수 있다. 북녘의 인민들이 우리와 같은 ‘인류’임을 인정하고, 그들을 향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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