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정세현·박인규 『판문점의 협상가』, 창비 2020

통일정책사의 풍부한 축소판

 

 

서보혁 徐輔赫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suhbh21@kin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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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북 통일정책의 살아 있는 전설의 전모를 알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에 서평 청탁을 수락했다. 많은 분량에 걱정했지만 책은 술술 읽혔다. 대담이라는 형식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이 전후 맥락과 함께 전달되고 거기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입담도 한몫하였다. 좋은 회고록이란 묵직함과 가벼움이 어우러져야 할 터인데 정세현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북한과 마주한 40년』(박인규 대담)은 그런 평을 받을 만하다.

남북관계는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남북한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場)에서부터 정책 수단, 통일의 필요조건, 자주성 등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KAL기 폭파사건 같은 불행한 일을 재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남북관계에서는 시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내 실랑이하는 것보다는 요즘 말로 ‘퉁 치고’ 넘어가야죠”(167면)라는 답에 위와 같은 여러 남북관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남북관계는 친구이자 적이라는 이중적 이미지 위에서 만들어진 상호의존관계이기 때문에 신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 9·19 군사합의까지 해놓고 나서 국방비를 8퍼센트나 늘리고 F-35 들여오고 한미 군사훈련 강화하는 등의 일”을 비판할 수 있지만, 미국의 요구(무기구입 등)를 수용하고 “그걸 기반으로 대미 영향력을 확보한 뒤에 북미 간의 중재자 및 촉진자로 가겠다는 생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한국정부의 태도는 “상충되는 일을 하면서 그게 가져올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는 지적”(594면)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남북관계는 모순적이고 복잡한데 특정 시각을 적용해 평가·전망하는 것은 자기만족은 할 수 있어도 타당성이 떨어진다. 이 회고록은 반세기 이상의 남북관계 고비고비를 짚으며 긴 호흡으로 내다볼 것을 행간에서 말해주는 듯하다.

남북관계란 남한의 입장에서는 대북정책의 대상 혹은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대북정책의 목표는 통일뿐만 아니라 안보와 평화, 경제, 인도주의 등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목표들은 정권의 시각과 해당 시기 남북관계의 맥락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물론 그것은 상대적이고 그런 가운데서도 안보와 평화는 늘 최우선에 있다. 책에서는 1969년 통일원 발족에 대해 체제 자신감이 커져 기존의 “‘선 안보 후 통일’ ‘선 경제 후 통일’이라는 구호에서 탈피해 통일을 준비하는 모양새”(101면)를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안보와 평화가 대북정책에서 최우선인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에 대한 시각과 주요 정책수단에 따라 정책은 크게 달라진다. 문재인정부에 정 전 장관은 “적어도 전쟁의 공포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는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648면)를 나타냈다. 말하자면 선 평화 후 통일이다.

대북정책 결정의 투명성 문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아본다. 1995년 6월 ‘인공기 게양 사건’이 일어난 15만 톤의 대북 쌀 지원은 청와대 비서실장 주도로 비밀리에 진행돼 당시 통일비서관인 정 전 장관도 배가 떠나기 며칠 전에야 알았다고 한다.(279~80면) 인공기 사건을 그는 투명하지 않은 정책결정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세심한 준비 부족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대북정책을 모두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정책 목표 달성의 효과성과 남북관계 관리의 효율성을 감안할 때 과도한 신조이다. 노무현정부 들어 6·15정상회담 관련 대북송금 특검이 진행되었고 그것이 2차 정상회담을 포함해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국 관건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높여나갈 것이냐이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궁리하기 전에 먼저 그 조건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책은 좋은 사례를 소개한다. 2003년 4월 27~29일 10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제임스 켈리(James Kelly)가 정세현 장관을 직접 찾아간다. 미국이 고안한 5자회담안을 북한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설득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북한을 설득해달라고 통일부 장관을 찾아오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일관되게 쌀과 비료를 지원한 덕분에 북한이 남한 말을 듣는다는 걸 그들이 확인했기 때문이”(430면)다. 결국 6자회담으로 진행된 북핵 다자회담은 정장관의 아이디어를 북한이 취한 결과라고 한다. 이 사례는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가운데 한미 간 소통이 활발하면 한국의 위상과 역할이 올라감을 말해준다. 1990년대 후반 김대중정부가 미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른바 페리 프로세스)을 이끌어간 것이 북한의 신뢰를 끌어냈다는 분석(333~34면)도 좋은 사례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견인하고 9·19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 채택으로 나아간 것이다. 반대로 미 행정부(오바마)가 북한에 패키지 딜(비핵화 -북미수교-평화체제)을 추구한다고 해도 한국정부(이명박)가 반대하면 그만이었다.(468~69면)

그런 사례들을 보면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2018년 8·15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개선의 종속 변수가 아닙니다”(557면)라고 한 뜻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한미관계가 소중한 가운데서도 동맹(사실은 미국)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을 오리엔탈리즘하에서 ‘악의 축’이나 ‘불량국가’로 접근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문제를 이용하는 행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475~77, 621면) 1990년대 초 한국의 남북한 교차승인 정책과 최근 남북군사합의서 채택에 미국이 반대하는 태도(609, 644~45면)에 맞서 그것이 미국에도 이익임을 설득해나가야 할 것이다. 평화를 위한 용미론(用美論)이랄까.

평화주의적 정책결정과 일관된 평화·안보 정책을 위해 정책결정 시스템의 통합성과 효율성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동안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364~65면) 북한전문가들을 널리 활용하지 않는 관성도 덧붙일 수 있겠다.

‘장관님’이라는 호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관료 출신인 저자의 통일운동에 대한 이해가 소극적인 것은 다소 아쉽다. 풍부한 대북정책의 경륜 속에서 펼쳐질 합리적인 국가안보정책, 통일정책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를 기다려보아야 하겠다. 한반도는 핵분단체제로 갈 것인가, 통일평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 회고록을 덮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분단국에서 국제정치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이유는 하나다. 통일 문제 때문이다”(65면)라는 이용희 선생의 일성이다. 정세현 전 장관을 평생 통일 문제에 매달리게 만든 이 말은 국제정치학도인 필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