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동북아경제중심’의 가능성과 문제점(21세기의 한반도 구상 1)

 

정신 인프라가 ‘동북아중심’의 요체이다

 

 

최병권 崔炳權

조선일보 빠리특파원, 문화일보 논설위원 역임. 현재 시사평론지 『Weekly SOL』의 발행인 겸 편집인. 저서로 『세계시민입문』 『뉴 밀레니엄,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 『아메리카』(공저) 등이 있음. bksol@hanmail.net

 

 

‘동북아중심국가’ 또는 ‘동북아경제중심’이라는 새로운 국가경영비전이 제시됐다. ‘노 비전’ ‘노 리더십’ ‘노 체인지’의 ‘3 노’,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가장 문제로 삼았던 ‘노 비전’의 한 시대가 끝나는 것 같아 여간 기쁘지 않다. 비전은 항해의 나침반이나 여행길의 신호판과 같은 것이다.

장기발전비전 없이 그냥 되는대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이 일 저 일과 부딪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처음 출발할 때 지향했던 목표지점을 잃고 엉뚱한 길로 접어들기 쉽다. 민주화와 함께 만발했던 국민적 기대가 국민적 실망, 국민적 냉소와 허무주의로 끝을 맺은 지난 10년간의 쓴 경험도 국가발전의 밑그림이 애당초 없었거나,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극히 정치구호적인 것이었거나, 아니면 처음의 국가발전비전을 누군가가 진행과정에서 왜곡해버린 데에 따른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말한다.과학적으로 분석해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현실화됐을 때 우리는 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적도 사실 따져보면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그 점에서 기적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적이래도 좋고 기적이 아닌 합리성의 극적인 안무래도 좋다.

어떻든 새 정부가 들어섰고, 이 새 정부에서 국가의 장기발전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동북아경제중심이 그것이다. 노대통령도 취임식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동북아경제중심’을 이야기하면서 비전의 실현을 위한 국민통합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동북아중심의 장기 국가발전의 방향에 담길 구체적 프로그램을 작성할 실무위원도 구성된다고 한다. 비전과 프로그램, 정책과 실제적인 행동지침들이 곧 제시될 예정이다.

 

모든 낯선 것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을 수 없다. ‘중심’이라는 말도 우리에게는 낯선 말이다. ‘중심’을 지금 중국 사람들은 흔히 영어의 ‘center’ 또는 ‘institute’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 과학기술중심’이라고 하면 ‘중국 과학기술연구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말하는 ‘동북아경제중심’에서 ‘중심’은 물론 ‘연구소’가 아니고, ‘쎈터’라는 뜻과도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동북아경제중심’을 청와대 쪽에서는 영어로 ‘a northeast business hub’로 표기한다는 말도 있다. “인근 국가로부터의 항의도 있고 해서 고심중”이라고 하는데 영어 표기대로 하면 한국이 동북아 기업활동의 여러 거점 중 하나가 되겠다는 것이다. ‘동북아경제중심’이 주는 메씨지가 상당히 약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어 표기가 어떻든 ‘동북아경제중심’은 한국이 동북아에서 우뚝 서는 존재로 새로 발돋움하겠다는 국가경영의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바로 그 때문에 ‘고심’을 하고 여러가지 말들도 생기고 있다. ‘중심이라니 우리가 무슨 중심이냐’는 말에서부터 중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중심이고, 일본은 지리적으로 동북아 국가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서방세계에 속할뿐더러 일본이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에 들어간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동북아를 하나의 정치경제단위로 내세우느냐는 말도 없지 않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고위관료였던 어떤 사람은 ‘동북아경제중심’ 또는 ‘동북아중심국가’에 대해 “인구, 국토 등의 개관적인 변수들을 무시하고 순전히 주관적인 의지에 의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한국이 객관성 없는 환상을 추구하고 부질없는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유발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심국가는커녕 보통국가가 되기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입 가진 자는 모두 한마디씩 하고 있는데 말은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좋다. 비록 그것이 비우호적이거나 빈정대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국가경영의 그림이 크면 클수록 수많은 말의 세례 속에서 비전의 구체적 프로그램이 정교해지고 정책내용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인의 만가지 말들에 이어 동북아중심국가 또는 동북아경제중심에 대해 한마디 거들고자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경제중심이든 중심국가든 실체는 하나일 것이다. 한국이 더이상 변방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고, 우리의 운명을 타자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중심이다. 모든 사물에는 중심이 있고, 중심으로부터 구심력이 나온다. 사람과 물건을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없는 것은 중심이 아닌 것이다. 구심력을 다른 말로 하면 매력일 텐데 매력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약탈의 대상도 분명히 매력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매력은 약탈의 대상이 되어 군침을 흘리게 하는 지난날의 그런 매력은 아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를 얻고 배우며 함께 협력해서 더욱더 큰 것을 이룩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가 바로 중심의 매력 포인트이다. 그래서 중심에는 사람과 물건, 지식과 정보가 몰려들고 항상 개방되어 있다. 국경이 열려 있고, 사회가 열려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있다. 열려 있지 않고는 사람과 물건, 정보와 지식이 몰려들 수 없는 것이다. 열려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고 다른 문화와 다른 문물을 받아들여 나의 것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 중심이다. 그런만큼 중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위험을 가지고 있다. 중심을 잘못 내세우다가는 남의 것을 흡수, 통합하기 이전에 나의 것을 오히려 흡수, 통합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중심에서 나오는 끌림, 다른 말로 하면 매력의 크기는 나라나 인구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음에도 전혀 찾고 싶지 않은 나라가 있는 반면 그 반대의 나라도 있다. 끌림은 강함이나 크기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이 동북아중심을 내세웠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으며 이를 비웃는 것은 어리석음의 징표이거나 악의일 따름이다. 어느 나라에든 중심은 있다. 문제는 이 중심에서 나오는 구심력과 끌림의 강함 또는 약함이다. 작은 나라라도 큰 중심과 강한 끌림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데 네덜란드가 바로 그런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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