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피어라 수선화』,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등이 있음. HAHANBUN@hitel.net

 

 

정처 없는 이 발길

 

 

포클레인 소리는 연 사흘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 육중한 기계가 우지끈 한번 힘을 쓸 때마다 앞집과 옆집과 그 옆집들이 흔적도 없이 무너져내렸다.

“커피 남은 것 있는가?”

갑생은 마루 끝에 나앉아 포클레인의 활갯짓을 구경했다. 그랬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동물이 빈 동네를 활갯짓하며 돌아다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포클레인 저 혼자 살판이 난 것이다. 집이 무너지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수자원공사에서 나온 인부들이 철거된 집의 잔해들을 그러모아 불태우는 것으로 철거작업은 완전히 끝을 맺는 것이다. 갑생의 아내는 마지막 남은 커피가루를 양재기에 쏟아붓고 커피병에 남아 있는 찌꺼기를 물로 헹구어냈다. 갑생이 커피를 양껏 들이켜고 나서 아내에게 건넸다. 그 아내도 말없이 커피를 입속에 털어넣었다. 커피가 들어간 뱃속이 쿨렁거리며 소용돌이쳤다. 오늘 갑생의 집은 아무 일도 없었다. 평시와 다름없이 저물녘의 커피타임도 가졌다. 그러나 평시와 다른 것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텔레비전을 시청할 시간이었지만 오늘 갑생이 부부는 사방이 어두워오는 그 시간에 불도 켜지 못하고 연기 피어오르는 마을만 우두커니 구경하고 있는 참이었다.

“지금 뭐 허는 시간인가?”

“연속극 헐 시간이요.”

“우리가 어디까지 봤는가?”

“그 뭣이냐, 인자 그 집 며느리 삼숙이가 집을 나가 살겄다고 허고 삼숙이 남편이 그러면 안된다고, 부모님을 모시고 대가족 속에 사는 것이 애들한테도 좋다고 험스로 꼬신게 그러면 그래야겄다고 허는 데까지 봤지 않어요?”

“허어, 이 사람이. 그것은 밤늦어 허는 월화드라마고 지금 시간에 허는 것이 뭣이냐고오.”

“………”

“그나저나 뉴스는 꼭 봐야 쓰겄는디……”

갑생은 입맛을 다셨다.

“뭐 입맛 다실 것 좀 없는가?”

전기가 끊어져 텔레비전을 못 보니 이래저래 늘상 꿔다논 보릿자루 같기만 하던 아내한테 말이 많아졌다.

“뭣이 있을랑가.”

사방을 둘러본들 아무것도 나올 리 없건만 아내는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리며 군입거리를 찾아 부엌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없는 마을에 타닥탁, 부시시, 우지끈 쿵 하며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불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이내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어둠이 짙어지자 공사 사람들이 미처 소화도 해놓지 않은 채 모두 철수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불 사그라지기를 기다리자면 한데서 밤을 새워야 할 판으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곳이라 일부러 불을 끌 일도 없을 터였다. 한참이 지나도 부엌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기도 민망하여 갑생은 휘적휘적 집밖으로 나와버렸다.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던 공사직원이 갑생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오늘 저녁이라도 포크레인 들어갈 수 있어요 이. 싸게싸게 뜨시요, 떠.”

갑생은 공사직원 말을 무시하고 고요히 불을 바라보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제 집보다 환해서 좋은 것도 같았다. 갑생은 불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대들보와 서까래와 마룻장과 흙더미가 타들어갔다.

기봉이네집의 대들보를 보자 기봉이 부친이 그 대들보 타고 입이 한자나 찢어지던 날이 생각났다. 그 집의 상량식을 하던 날, 기봉이 부친은 막걸리에 떡에 돼지 한마리도 잡았다. 온동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기봉이 부친을 대들보에 올려놓고 마당 가득 우꾼하게 놀았다. 그날의 웃음소리와 음식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건만 이제 그 집은 속절없이 한 모다기 모닥불로 사라져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타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타일과 석고보드와 냉장고도 탔다. 기봉이 타일 깔아 신식 목간통 만들고 씽크대 들여서 입식부엌 만들고 냉장고를 사들여놓고 자랑하던 날들도 다 엊그제 일만 같았다. 기봉은 그 아버지가 상량식 하던 날 그랬듯이 입식부엌 만들고 냉장고 들여오던 날에도 입이 한자나 찢어졌었다.

“갑생이 성님, 돈 쪼끔 들여논게 이렇게나 좋아불그만요이. 뜨신 물에 날마다 목간허고 나무허러 날마다 산에 안 올라가도 되고 참말로 문화인이 따로 없단게요.”

나무와 흙이 탈 때는 흰 연기가 솟았다가 타일과 석고보드와 냉장고가 탈 때는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냉장고에서는 아직도 신김치 냄새가 배어나왔다. 갑생은 연기냄새를 흠씬 들이켰다. 머리가 좀 어질어질하고 목 안이 매캐했지만 금방 괜찮아졌다. 지금 불타고 있는 그 집 주인 기봉이는 일주일 전에 그 집을 떴다. 시내로 간다고 했다. 마을에서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 갑생이집만 빼고 마지막 남은 집이었다. 냉장고는 버리고 갔으되 작년에 새로 놓은 ‘보이라’는 알뜰히도 뜯어갔다. 아직 정처를 잡지 못한 갑생이를 생각해주느라 이삿짐 쌀 때도 조용조용 싸더니 막판에 갑생을 불렀다.

“갑생이 성님, 간단헌 일이기는 허지마는 나 좀 도와주씨요.”

아침에 짐을 싼다기에 거들어주려고 갔더니 실상 도와줄 일이 없었다. 기봉이 마누라서껀 전주로 출가했던 기봉이 여동생들이 와서 설치는 통에 아녀자들 속에 끼여들기도 뭣하여 쭈그리고 앉아 구경을 하고 있었더니 아무것도 안 시키기는 더 미안했던지 트럭에 보일러 올리는 데 갑생의 손을 좀 빌리자 하였다. 기봉은 즈이 어머니 때부터 써오던 반닫이 궤짝을 사정없이 땅에다 패대기쳤다.

“어이, 보이라는 가져감서 그것은 왜 안 가져간가?”

“땅도 버리고 가는디 요런 것이 뭔 필요가 있다요. 보이라는 아직 쌩쌩헝게 버리기가 아깝구만요. 가져가서 어디 고물상에다 팔아도 값이 솔찬헐 것이요.”

“그래도 궤짝은 자네 어무니 때부터 써오던 물건이 아닌가.”

“거기는 아빠트라 이런 구닥다리는 벨로 어울리지가 않겄단 말이요.”

아파트라! 갑생은 부러운 입맛이 절로 다셔졌다. 자신에게 갈 곳만 마련이 되었다면 기봉이 버리고 가는 물건들 죄다 자신이 가져가고 싶었다. 기봉은 반닫이 궤짝도 버리고 즈이 마누라가 시집올 때 해온 포마이카 장롱도 버렸다. 그러면서 슬쩍 열자짜리 십장생 자개장롱도 새로 마련했노라는 자랑을 하려다가 제 마누라가 눈치를 주자 말꼬리를 흐렸다. 기봉이네가 딴 집들보다 이사를 늦게 가는 것은 아파트 입주시기에 맞추느라 그런 것임을 뻔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갑생은 기봉이네가 아직 이사를 가지 못하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적이 위안이 되었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이웃이던 기봉이네마저 이사를 가버리고 나자 갑생은 서방 잃은 계집처럼 가슴이 허허로웠다. 기봉이네가 이사를 가고 나자 동네에 남은 집이라곤 자신의 집뿐이었다. 사방에서 불꽃과 연기는 피어오르는데 어둠이 짙어지자 살살 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갑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잔돈푼이 만져졌다. 담뱃값은 될 것 같고 술값까지 하기에는 버거울 것도 같았으나 그래도 사람의 정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갑생은 길을 나섰다.

마을과 도로를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다리께에 이르자 한달 전부터 내걸린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다리가 철거되기 전에 이주 완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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