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개혁문화, 이렇게 만들자

 

정치개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민교협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대변인과 공동사무처장 역임. 저서로 『연대와 열광』 『시대유감』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등이 있음. jykim@han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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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과 2003년을 살았던 느낌은 참 대조적이다. 2002년에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분출된 거대한 에너지를 경험했다.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이런 힘과 열정의 체험은 연말에 미선과 효순 양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기쁨의 축제에 이어진 슬픔과 애도의 추도제였다. 그 어간에 있었던 대통령선거 또한 매우 드라마틱했으며 참여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2003년은 마치 한바탕의 축제 뒤에 맞이한 숙취의 쓰린 새벽과 같았다. 국제정치적으로는 북핵위기와 이라크파병 문제로 인해 정치적·사회적 대립이 격화되었고, 정치적으로는 고질적이다시피 한 의회와 정부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새만금문제, 부안사태, 네이스문제 등 시민사회의 저항을 염두에 두지 않은 관료주의적 정부정책으로 분란이 계속되었다. 수구적인 언론의 흠집내기 때문에 증폭된 것이긴 해도 성마른 대통령의 계속되는 말 실수도 국민들을 실망시켰으며, 후보시절 내보였던 개혁성은 굴절되거나 후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말에 이르러서는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차떼기 사건’이 불거졌고, 대통령 측근들이 구속되고 여야의원들에 대한 무더기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더불어 거의 자해적인 상호비방과 투쟁이 정당간에 계속되었다. 경제적으로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실업은 심화되고 비정규직은 50%에 이르렀으며, 부동산값은 치솟고 신용불량자의 급증과 카드사의 부실대출이 전체 금융시장을 압박했다.

2002년과 2003년의 이 극적인 차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에게는 2002년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긍정적 에너지를 대변한다면, 2003년은 그런 에너지가 담겨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갈 힘이 우리 사회에 내연하고 있으되 그것을 담아내고 방향을 부여할 적합한 제도가 없고 기존의 제도는 오히려 사회의 에너지를 억압하거나 소진시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판단이 옳다면 우리는 새로운 제도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국민적 기획을 만들어야 할 싯점에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발전전략에 터잡은 국민적 기획을 ‘어떻게’ 형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설득력과 비전을 갖춘 발전전략이 청사진으로 존재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전략이 사회적 합의를 획득해 국민적 기획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이런 사회적 합의를 창출할 정당화된 절차는 민주적 과정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정하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적 발전전략과 국민적 기획의 형성은, 사회내의 다양한 계급과 집단들의 이해관심을 반영하여 공적 논의로 승화하는 민주적 과정으로만 가능하다. 그럴 때만 새로운 발전전략이 동의에 기초한 사회적 동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요컨대 사회의 집합적 자기결정을 구현하는 정치체제가 제대로 기능할 때만 새로운 발전의 기획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발전전략을 검토하고 합의를 창출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정치체제는 엄청난 부패로 얼룩져 있으며, 정쟁만을 일삼고 있다. 왜 그런가? 1987년 민주화이행을 통해서 구성된 정치체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혹은 정당체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17대 총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정치개혁이 내실있고 비전을 가진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 그러니까 정치체제의 기능 상실의 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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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체제의 문제점을 정밀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사적 경로에 대한 상세한 탐색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핵심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특히 두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정당체제의 기본적 성격이 형성된 해방공간에서 1958년 제4대 총선에 이르는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정치체제 골간이 형성된 1987년 민주화 이행기이다.1 먼저 전자부터 살펴보자.

일제에서 해방된 우리 민족의 핵심과제는 나라 만들기였다. 그런데 이 과제가 세계적인 냉전체제의 구축기와 맞물려 진행됨으로써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었기에 나라 만들기의 이념적 경쟁은 매우 격렬했다. 결국 민족은 좌우로 분열되었고, 좌우는 다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이로 인해 남한사회에서 형성된 정당은 근대적 좌우파의 스펙트럼에 따라 배열되지 않고 크게 오른쪽으로 치우쳐 형성되었다. 1958년 총선에서 확연한 모습을 드러낸 보수적 정당체제는 복잡한 이합집산을 거듭하지만 그 기본적인 성격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분단체제의 힘이 남한사회의 민주화와 전세계적인 탈냉전에 힘입어 약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분단체제 하에서 형성된 정당체제의 형태 속에 여전히 강력하게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체제는 출발부터가 대중의 참여를 배제하는 상층 편향적 엘리뜨 카르텔체제였기 때문에 당연히 전체 사회의 다양한 집단을 대의(代議)하지 못해온 것이다. 이런 대표성의 위기는 근대화가 진전되고 사회가 더욱 복잡, 다원화됨에 따라 심화되어왔다.

정당체제의 대표성 위기뿐 아니라 1987년 민주화이행을 통해 형성된 현재의 정치체제 또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민주화 경로는 퇴출에 의한 이행, 즉 민주화 이전의 구체제를 척결하고 추방한 민주화가 아니라, 구체제의 한 분파와 민주화세력 사이의 협약에 의한 이행이었다. 그런데 이 협약과정, 특히 헌법과 정치관계법 개정협상과정은 6월항쟁을 주도한 국민운동본부를 배제한 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과 여당이던 민정당 간의 밀실협상으로 진행되었다.2 그 결과 행정부와 의회 간의 견제와 균형의 토대가 되는 대통령과 의회 간의 권한 배분 문제나 대선 주기와 총선 주기가 차이나는 문제 등이 신중하게 고려되지 않은 채 헌법개정이 이루어졌다. 특히 전자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에서 의회권력과 대통령권력 간의 투쟁과 교착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3당합당부터 시작된 정당간의 다양한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또한 1987년 체제는 민주화 투쟁기를 통해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를 분리하는 체제이기도 했다. 야당의 분열에 의한 민주화세력의 선거 패배가 워낙 기억에 뚜렷이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7년에 일어난 중요한 구조적 사건은 정치사회가 자기들끼리 경쟁의 규칙을 마련하고 그 공간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면서 시민

  1. 이 절의 논의는 최장집의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와 윤상철의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이행과정』(서울대출판부 1997)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2. 이는 민주화 이행 전에 정치사회가 비록 강권적 국가 속에 폭력적으로 포섭되어 있기는 해도 뚜렷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한 분파인 야당이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에서 일익을 담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투쟁의 국면을 지나 협상의 국면이 되면 정치권은 쉽사리 개헌논의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