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제주 4·3 모델의 (불)가능성과 남은 과제들

 

 

고성만 高誠晩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논저로 「4·3 ‘희생자’의 변용과 활용」 「KIN Gen-chin 찾기」 등이 있음.

wikigarden@jejunu.ac.kr

 

 

1. 선례화라는 욕망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이 2021년 한해 두차례 개정되면서 과거청산의 형식과 내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 14개 조문에서 31개로 전부개정된 법률이 시행 반년 만에 다시 12개 조문이 손질되고 11개 조문이 추가됐다.1 새롭게 정비된 법률이 과거청산의 양적·질적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는 전망은 조문 곳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상금(16조)과 재심(14, 15조), 인지청구 특례(21조)와 같이 4·3특별법뿐 아니라 다른 과거사 해결에서도 시도되기 어려웠던, 특히 ‘희생자 명예회복’ 실현에 초점을 맞춘 조항들이 중점적으로 보강됐다.

법률이 개정된 직후 “과거사 문제 해결의 전환점”2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제주의 상황을2) 주시해온 “다른 지역 과거사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것”3으로 진단됐다. “개정안의 내용이 실현되면 세계에서도 가장 우뚝 선 보편적 모델로 자리 잡을 것”4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무엇보다 개정법 16조는 국가가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와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전환’을 견인하는 핵심 조항으로 평가된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에 대한 첫 입법적 보상”5이라는 의의로 인해 여수·순천 10·19사건이나 노근리사건, 거창·산청·함양 민간인학살사건이 남긴 과거사 문제의 공적 해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4·3특별법이 2.0버전으로 갱신되는 과정에서6, 여순사건을 비롯한 다른 과거사 해결의 가이드라인이 출현하는 징후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주무부처 장관, 지역 국회의원, 시민단체와 언론까지 한 목소리로 4·3특별법의 의미를 유사한 사건들에 영향을 끼칠 입법 기준이자 피해자 보상 기준의 선례로 규정한다.

개정법의 효과가 제주 사회에 나타나기도 전에 여순, 노근리 같은 지역이 연쇄적으로 호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상 조항을 획득한 4·3특별법은 어떻게 다른 과거사 해결의 ‘모범’ ‘모델’ 혹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4·3 과거청산의 경험은 효용성 높은 긍정적 유산으로만 작용할까? 어쩌면 4·3이라는 선례로 인해 개별 사건들의 역사적 특수성과 사회적 현실에 바탕을 둔 밑으로부터의 과거청산이 추동될 기회가 생략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차이는 무화되고, 고유하고 독자적인 과거청산의 사상과 문화, 전략과 방법론이 모색될 가능성 역시 차단되지는 않을까?

이 글의 문제의식은 4·3특별법이 “정의로운 과거사 해결의 이정표”7로 역할할 뿐 아니라 4·3 문제의 보다 구체적인 과제와 대상을 발굴하여 소위 ‘완전한 해결’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세간의 평가와 입장을 같이하면서도, 앞서 소개한 즉각적인 반응이나 장밋빛 예견에 앞서 선행 혹은 병행되어야 할 질문이 부재하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주에만 국한되지 않을 4·3특별법 2조(정의)와 16조(보상금)의 문제점을 검토하며, ‘제주의 봄’8을 잰걸음으로 앞당기려는 과정에서 결여될 수 있는 질문들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2. ‘희생자’ 효과

 

닫힌 결말, 불가역적 종결을 의미하는 ‘완전한 해결’이 짧은 시간에 대중언어로 정착될 수 있었던 데는 ‘희생자’의 역할이 커 보인다. 사건의 복잡한 역학 구도를 단순화함으로써 현재화·기억화·제도화 과정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묵음 처리하는 데 ‘희생자’가 활용되어왔기 때문이다.

2000년 제정된 4·3특별법을 토대로 공적 영역에서의 과거사 해결이 본격화되면서, 다종다양한 죽음 혹은 실종, 부상, 감금의 이력을 갖는 주체들의 사회적 지위는 ‘희생자’와 ‘희생자 제외

  1. 신설된 11개 조문은 모두 ‘보상금’과 관련된 내용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법률 개정의 주요 목적이 보상의 근거 조항이었던 16조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발언.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제주4·3희생자 보상 실시, 과거사 문제 완결을 위한 한 걸음」, 2021.10.28. 참조.
  3. 「오영훈 의원, 마침내 “제주4·3 희생자 보상 규정 담은 ‘제주4·3’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 대한뉴스 2021.10.28.
  4. 박명림(연세대) 교수의 ‘제주4·3의 완전 해결을 위한 특별좌담회’(제주연구원 주최, 2021.4.1.) 중 발언.
  5. 앞의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6. 「비극은 평화와 만나야 한다」, 『한겨레21』 1204호(제주4·3 70년 특집호), 2018.3.26.
  7. 「제주4·3 희생자 ‘위자료’ 지원…액수·지급범위 등 과제 많아」, 한겨레 2021.3.8.
  8.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제70주년 4·3 추념식(20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