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멜라 奇俊英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적어도 두 번』 등이 있음.

ocloud2@daum.net

 

 

 

제 꿈 꾸세요

 

 

학교 음악시간에 「메기의 추억」을 부르면 늘 같은 대목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왜 메기일까. 넓적한 입에 수염이 난 물고기 메기는 아닐 텐데. 볕이 들지 않는 음악실, 수명을 다해가는 형광등 아래 앉아 나는 입을 벌려 노래 불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높은 벼랑에서 별안간 훅 떨어지는 듯한 노래의 낙차에 나는 매번 가슴이 울렁였다. 메기는 미국 이름 ‘Maggie’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었지만 음악책에는 원곡의 가사가 없어 메기가 누구인지, 누가 메기를 그리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메기라는 이름의 수수께끼를 누군가에게 묻거나 찾아보지 않고 풀리지 않는 매듭 그대로 두었다. 외국 민요를 부를 때 떠오르는 의문은 「오 수재너」에도 있었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밴조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

수재너를 찾아온 사람이 메고 온 밴조. 밴조가 뭘까. 뭔지는 몰라도 어딘가 녹슨 쇠 냄새를 풍기고, 열기 힘든 경첩이 달린 단어 같았다. 잠결에 언뜻 들은 누군가의 고해성사처럼 밴조나 메기에는 비밀스러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고 나는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미궁을 마음껏 헤맸다. 내 고향은 대한민국 무슨 시 무슨 구가 아니라 맑은 시냇물이 넘쳐흐르는 새빨간 알핀로제가 아닐까. 다스 오버랜야 오버랜. 뜻도 모르는 이국 말을 흥얼대며 메기와 수재너가 ‘아름다운 베르네’로 떠나는 상상을 했다. 내 상상 속에서 메기는 다른 노래에 사는 수재너를 만나 밴조를 메고 알핀로제로 향했다.

 

“그런데 당신이 온 거죠.”

나는 종아리까지 눈이 쌓인 길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챔바에게 말했다. 챔바는 언제까지 이런 날씨에 이런 길을 걷게 할 거냐는 듯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웃었다. 굵고 탐스러운 눈이 퍼-엉-퍼-엉 쏟아지고 있었다. 챔바와 나는 ‘커피 포리’를 찾기 위해 남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마지막으로 그 커피우유를 마셨던 곳을 기억해 남산길 마지막 슈퍼로 왔다. 남산길 마지막 슈퍼, 그게 슈퍼 이름이었다. 둥근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우유나 사각 종이팩에 담긴 우유는 흔했지만, 나는 꼭 삼각 비닐팩에 담긴 커피우유여야 했다.

“굴러가면 굴러갔지 난 더 못 걸어요.”

커피우유를 마시고 슈퍼를 나와 챔바가 차양막 아래 서서 말했다. 올라올 때 우리가 만든 발자국이 벌써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벽을 따라 고정된 양철 홈통에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이 후드득 쏟아졌다. 나는 눈송이가 떨어지는 산잔등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 없이 잔잔했다. 먼 곳의 파랑이 지상으로 내려오며 조금씩 그 농도가 묽어지다 눈 쌓인 산 등마루에 다다라 완전히 희게 바뀌었다. 얕은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듯했다. 먼 땅도 가까운 땅도 흰 눈이 덮어버렸고 도로의 아스팔트와 가로수 나뭇가지에도 소오복히 눈이 쌓였다. 배기가스와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에 지친 나무들이 흰 눈을 덮어쓰고 쉬는 듯했다. 죽은 나도 저렇게 쉬고 있을까. 나는 챔바에게 내가 먼저 시작하겠다고 했다.

“오익오익, 잘 따라와요.”

돼지 울음소리를 내며 나는 두 손을 가슴에 포갰다. 돌이킬 수 없는 바람에 관통당한 낙엽처럼 나는 눈밭으로 쓰러졌다.

 

*

 

챔바는 내가 죽어갈 때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기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기타는 아니고, 기타의 육촌 고조할머니뻘 되는 듯한 악기를 들고서 「오 수재너」를 불렀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밴조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

이마의 제비초리가 두드러질 만큼 짧은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넘긴 챔바는 감색 차이나 재킷에 행커치프까지 한 맵시있는 차림새였지만 지독한 음치에다 한눈에도 악기 연주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둥근 울림통에 구리색 후크가 달린 현악기의 쇠줄을 위아래로 쓸고 있을 뿐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았다.

“계속 나만 볼 거예요?”

챔바가 말했다. 우리는 바닥에서 발을 뗀 채 천장 가까이 떠 있었다. 챔바와 나 사이 아래에 의식을 잃은 내가 쓰러져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 몸에서 빠져나왔는데, 그건 마치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로 이어지는 노래처럼, 마디 바꿈도 없이 나를 둘러싼 리듬이 일시에 다른 흐름으로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리시브 다음 토스, 스파이크로 이어지는 단계를 건너뛰어 변칙 속공으로 네트를 넘어간 공의 기분이랄까. 무섭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빠져나온 나와 쓰러져 있는 나 사이에서 희미한 캐러멜 향이 났는데, 그건 아마도 의식을 잃기 직전 내가 먹었던 캐러멜 향이 첨가된 아몬드크런치크랜베리초코바 때문인 듯했다. 아몬드와 잘게 부순 과자, 말린 크랜베리가 딱딱하게 굳은 초콜릿 덩어리와 함께 인후부의 길을 잘못 든 순간, 내 숨구멍의 마디들이 생장점을 뚫고 나가는 식물처럼 몸이라는 외피를 뚫고 나갈 듯 팽창했다. 폼매트에 엎드려 캑캑거리면서도 나는 이 상황이 죽음으로 끝날 수 있음을 인식했다. 그렇다면 내 사망확인서에 적힐 사망 원인은 이런 건가. 이물질에 의한 기도폐쇄와 호흡곤란. 하지만 그보다 먼저 시도한 약물 과용은? 켜켜이 쌓인 삶의 질곡들과 내가 나를 찢고 소각해버리고 싶게 만드는 과거의 크고 작은 수치심은? 한마디로, 여름이 다르고 겨울이 다른 내 바이오리듬과 양극성 심리는? 수면장애와 토막잠, 그것들을 불러일으킨 바닥난 의지력과 압력솥의 추처럼 옆으로 누운 팔 자를 그리며 요동친 인간관계는?

관계, 그러니까 이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시오,라고 할 때의 인(因)은?

 

혼자 사는 30대 무직 여성이 된 이유를, 단단히 준비한 끝에 모아놓은 수면제를 삼키고 사흘 만에 깨어나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며(어떻게 생과 사를 오간 사흘 동안 카드회사에서 보낸 이벤트 문자 외에 단 한명의 연락도 못 받은 거지?) 그 누구도 나의 안녕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 이 악물고 살아주마, 그렇게 결심하고 급히 먹은 원 플러스 원 초코바에 목이 막혀 죽는 이 블랙코미디, 누구의 삶도, 어떤 죽음도, 다른 이에게 웃음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건만, 어째서 당사자인 나부터 쓴웃음이 나는 이 뒤엉킨 인과관계의 인을

 

설명할 도리 없이 내 몸은 마치 튜브로 된 물감을 짠 것처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빠져나왔다. 곧이어 챔바가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실례지만, 천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나는 예의를 갖춰 물었다. 이런 순간에 나타났으니 천사나 그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소개는 나중에 하고, 30초 남았네요. 15초 뒤에 심장박동이 멈추고 그다음 뇌에 산소 공급이 끊기면 당신은 길손이 되어 떠날 거예요.”

챔바가 공중에 뜬 두 발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내 발도 물살에 흔들리는 해초처럼 흐느적거렸다. 그 아래 청색증으로 얼굴이 파랗게 된 내가 쓰러져 있고, 핫소스 얼룩이 묻은 폼매트 위에는 수년에 걸쳐 모아온 여러 조제일자의 약 봉투와 굵은 실로 제본한 정사각형 무지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아, 저걸 저기에 그냥 뒀네. 유서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이건 엄연히 사고사인데. 나는 크라프트지에 굵은 펜촉으로 쓴 내 흔적(‘내 플러그는 내가 뽑고 싶어요’)을 없애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때 챔바가 오페라핑크색 행커치프를 펼쳐 내 얼굴에 덮었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내 육신에. 그러자 몸을 빠져나와 있는 내 눈앞이 밝아지더니 출퇴근 시간 지하철 환승역에서 떠밀리는 승객처럼 방 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대로 콘크리트 벽을 통과했다.

고소공포증 있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불안이나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상승하고 또 상승했다. 지상의 액체가 태양열을 받아 대기로 올라가는 듯했다. 사람이나 덩어리진 물질이 아니라 빠르게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이 된 것 같았다. 입자. 그 와중에도 나는 내 상태를 설명할 단어를 떠올렸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 더는 쪼갤 수 없는 근본적이고 단순한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일년 전 첫번째 시도를 했을 때 응급실로 찾아온 엄마가 내 팔뚝살을 비틀며 했던 말. 이번에도 엄마일까. 엄마여야 할까. 나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됐고 받아야 할 우편물도 없으며 공과금은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자동이체 해놨는데. 앞집에 사는 유일한 이웃도 이사 간 지 몇달째. 모르겠다, 이렇게 된 마당에 평생 뽑지 못할 못 하나를 더 박는 게 뭐 대수겠나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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