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 김수영 시인 40주기에 부쳐

 

제 모습 되살려야 할 김수영의 문학세계

김수영 미발표 유고 해제

 

김명인 金明仁

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계간 『황해문화』 편집주간. 저서로 『희망의 문학』 『불을 찾아서』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 공편서로 『살아있는 김수영』 등이 있다. criti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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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金洙暎) 시인의 생애와 시세계의 수많은 갈피에 자취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40년 전 시인이 타계한 뒤로는 그저 하나의 풍문으로만 남아 있던 부인 김현경(金顯敬) 여사를 우연치 않은 기회에 만나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의 댁에서 그간 소장하고 있던 시인의 적지 않은 유고를 접하는 천금의 기회를 얻었다.

김수영 시인의 40주기 기일인 6월 16일이 임박해오는 이때, 그 유고들 중에서 아직 한번도 발표되지 않았고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의 생생한 흔적들을 시인 생전의 마지막 발표지면인 『창작과비평』을 통해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된 것은 감회가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리를 빌려 김현경 여사와 창비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김현경 여사 댁에서 흥분과 설렘 속에 찾아낸 유고더미는 시인의 첫시집 『달나라의 장난』(春潮社 1959)의 편집원고 일습1과, 역시 원고지에 청서된 여러편의 시와 산문 원고들, 각종 봉투와 광고지, 엽서, 심지어는 시멘트 포대 종이 등에 씌어진 시나 산문의 초고, 그리고 1954년 1월경에서 1961년 5월 14일 사이에 작성된 메모장 및 국반판 정도 크기의 공책 10여권 들이었다.2 특히 이 메모장과 공책들은 일기, 단순한 메모, 시 초고, 수필, 소설을 위한 메모와 습작, 번역원고 및 번역을 위해 필사해둔 영문작품 등이 전부 포함되어 있어서 김수영의 시와 사유가 날것 그대로 소용돌이치는, 가히 김수영 문학의‘진본(珍本)’이라고 해도 좋을 귀중한 문학사적 자료들이다.

이후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민음사에서 1981년에 초판이 간행되고 2003년에 개정판이 나온 기존의 『김수영 전집』 1·2(시, 산문) 중 시전집의 경우는 아마도 『달나라의 장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등 출간본 시집들과 1953년 이후의 신문, 잡지 발표작들을 근간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유고더미에는 그 초고본들과 고의 혹은 실수로 누락된 작품들 그리고 미완성작(혹은 미완성작으로 간주된 작품들)이 남아 있다. 산문전집은 대체로 신문, 잡지 발표작들을 집성한 것으로 보이는데,‘일기초(日記抄)’를 제외하면 이 유고더미 속 산문과 메모 들의 상당부분은 누락되어 있다. 따라서 이 유고더미는 김수영 문학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늦기 전에 필히 온전한 전집 속에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분명히 1961~68년 사이의 시기에도 김수영의 일기나 메모, 미발표 시작품 등이 있었을 터인데, 전집에는 각종 매체에 발표된 텍스트들만 수록되어 있어서 이들 역시 당연히 전집에 편입되어야 할 것이다.3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미발표 유고들만으로도 김수영 연구는 다시 가속도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이번에 발견된 유고더미 중에서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원고를 모두 소개했으면 좋겠지만 일정과 지면 사정상 면밀히 검토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어서 후속작업을 기약하며 일단 그 일부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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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를 소개하더라도 먼저 이번에 발견, 확인한 미발표 유고의 전모를 가능한 한 밝히는 게 순서일 것이다. (여기서 ‘수록’ ‘미수록’은 『김수영 전집』 수록 여부를 나타내며, 굵은 활자로 강조된 것은 이번호 『창작과비평』에 수록된 것이다.)

 

1) 1954년 1~5월: 7.5×12.5cm크기의 수첩(전체 미수록)

- 전집에 수록된 미완성 소설 「의용군」 관련 창작 메모

- 1954년 1월 6~7일 사이 단양지방 답사여행과 관련된 메모

- 단편소설 「구선생의 사랑」 집필을 위한 메모

시 「네거리에서」(가제) 초고

- 1954년 5월 25일자 메모:‘진정한 희극소설’에 관한 단상

 

2) 1954년 6월: 국반판 크기의 노트 <人物 事件 性格/綴字法/甲午年 六月>

시 「哀와 樂」(미수록) 초고

-‘ 되우’‘귀중중하다’‘심이 빨랐다’‘데퉁스리’‘고붓고붓’등 한국어 어휘 공부의 흔적이 있는 짧은 줄글들

-‘만화문화’에 대한 단상들

 

3) 1954년 11월 22~28일: 국반판 크기의 노트 <Fiction (I)>

-‘ 아편중독자(여자)와 평범한 회사원의 기구한 사랑’이라는 주제의 소설 창작을 위한 메모

- 11월 22일 일기(미수록): 유주현을 만나고

- 11월 24일 일기(수록)

- 11월 25일 일기(일부 미수록): 전집에는‘프린스’다방에서의 사색 메모 누락됨

- 11월 27일 일기(일부 미수록): 전집에는 모친과의 갈등을 그린 상당부분 누락됨

- 시 「꽃」(가제) 초고

- 11월 28일 일기(미수록): 중국인 소학교 운동장의 황혼 풍경 묘사

-‘ 단편소설(70매 내외 12월 20일)’ ‘20년 전 강원도의 풍토미’ ‘15매 11/20일’ 등 메모

 

4) 1954년 11월 30일~12월 27일: 국반판 크기의 노트 <소설 II (Fiction)>

- 11월 28일 일기 계속(미수록): 시골학교 교원노릇 동경

- 11월 30일 일기(미수록): 적극적 정신의 필요성, 자부심, 희망, 생활, 소설 등에 대한 생각. 목에 걸린 가시 때문에 병원에 간 에피소드

- 11월 30일 일기(수록): 염상섭, 춘원 등의 소설 이야기, 여의사와의 혼담 등

- 12월 3일(미수록):‘Essay’s plot’이란 제목

- 12월 23일 일기(미수록): 평론가 이철범에 대한 인상

- 시 「卓球」(미수록) 초고

- 시 「大音樂」(미수록) 초고

- 시 「나의 피」(가제, 미수록) 초고

- 12월 27일: 시 「레이판彈」(수록) 초고

 

5) 1954년 12월 28일~1955년 1월 11일: 국반판 크기의 노트 <나비의 무덤>

- 12월 28일 메모(미수록): 신조-‘소설에의 길’일과: 글쓰기, 책읽기, 밥벌이 4시간씩

- 12월 28일 엣징그(미수록): 다방‘카나리아’의 풍경

- 12월 29일 일기(미수록): 짧은 단상

- 12월 30일 일기(수록): 생계를 위한 번역일의 애환

- 1월 2일 「乘夜圖」(미수록) 초고: 청춘과 죽음과 영원, 시로 간주하기 어려울 듯

- 1월 3일 시 「나비의 무덤」(수록) 초고

- 1월 5일 일기(미수록): 소설에 대한 집착-“좋은 단편이여 나오너라”

- 1월 7일 일기(미수록): <冒險(아반출)>-매매춘에 대한 변명,  “내가 쓰는 글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 1월 10일 일기(미수록): <동백꽃>-노선생과의 연애에 대한 생각, 여자에 대한 생각

- 1월 11일 일기(수록): 영화 <인생유전> 감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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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원고들은 전부 김현경 여사가 원고지에 청서(淸書)한 것으로 조판부호 등도 그대로 남아 있다.
  2. 여기서‘10여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두차례 김여사 댁을 방문했지만 이 유고더미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꼼꼼하게 분류하고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현재 김수영의 원본 유고는 그의 매씨이자 민음사판 전집의 편집자이기도 한 김수명 여사 및 민음사와 부인 김현경 여사가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한다. 김현경 여사에 의하면, 김수영 시인이 타계한 이듬해 무렵 신구문화사에서 김수영 시전집을 출간하겠다고 하여 김현경 여사가 유고들을 정리하여 신구문화사에 보냈으나, 1년 정도 후에 당시 출판사 사정이 여의치 못했던 신구문화사가 출간을 못하겠다 하여 그 원고들을 돌려받아 소장하고 있던 중, 마침 현대문학사 편집장직을 사임하고 일을 쉬고 있던 김수명 여사에게 유고시집의 편집과 출판 일을 맡기면서 유고들을 전해주었고, 그 결과가 바로 사후 첫 시선집인 『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였다. 이후 같은 유고들을 토대로 하여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 『퓨리턴의 초상』(1976), 시선집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 등이 연속해서 나오고, 이윽고 1981년 두권의‘전집’이 간행되면서 김수영 씬드롬이 본격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후 김수명 여사는 김현경 여사에게 일부의 유고들을 반환했고, 그것이 이번에 필자가 김현경 여사 댁에서 발견한 유고더미인 것이다. 불행히도 필자는 김수명 여사가 어떤 기준으로 이 일부 유고들을 반환했는지, 또 김수명 여사 혹은 민음사가 소장하고 있는 원본 유고의 양이나 질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961~68년간의 일기 등 미발표 유고가 분명히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확인하는 일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