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문학상

 

제18회 만해문학상 발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3년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만해문학상의 제18회 수상작이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11월 26일(수) 오후 6시 한국프레스쎈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백석문학상·신동엽창작기금·창비신인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제18회 만해문학상 수상작(공동수상)

 

박범신 장편 『더러운 책상』

유홍준 지음 『완당평전』

 

심사위원 고은 구중서 김우창 백낙청

 

 

2003년 7월

만해문학상 및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

 

 

 

심사경위 및 심사평

 

 

올해의 만해문학상 심사위원회가 두 차례 열렸다. 7월 8일의 마지막 모임에서 창작 분야는 시보다 소설 장르로 범위가 좁혀졌고 평론 및 비소설 산문 영역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유홍준의 『완당평전』이 최종 후보로 남았다.

소설 분야에서 비중있게 거론된 작품들은 대개 성장기 소재 소설이었다. 이제 우리 시대 우리 상황에서 현안으로서의 문제의식은 지난 시대에 비해 긴박하지도 절실하지도 않다는 뜻일까.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서 소설쓰기는 더 어려워지고 소설을 평하기도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중 한 소설집의 경우, 영원을 단절하는 시간들을 극복하기 위해 기억의 방법을 활용하며 자기를 비운 그릇에 그 기억들을 담으려 하였다. 그러나 철학의 한 주제로서의 시간론은 기억이나 연결에 있다기보다 불멸한다 할 만한 인간본성의 내용 그 자체에 있다. 그리고 문체가 단아하다 하더라도 작가 자신의 말이 많으면 작품세계 자체로서의 완결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또 한 소설은 싱그러운 자연과 토착언어의 밀도가 훌륭한 조화를 이룬 장편이었다. 그 자연 자체가 풍요한 문화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 다수가 작가적 치열성이나 기법의 참신성에 관한 아쉬움을 표했다.

끝까지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며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킨 것이 박범신의 장편소설 『더러운 책상』이다. 역시 성장기 소재 작품이다. 열여섯살에서 스무살에 이르는 기간이 주된 내용인데, 이제 쉰여섯에 이른 삶의 자리에서 그 젊은 시절을 생각한다. 젊은날의 자신은 3인칭인 ‘그’로, 지금의 자신은 1인칭 ‘나’로 구분되고 ‘그’ 또는 ‘나’의 체험과 생각은 일련의 단편적 서술로 전달되는데, 때로는 서정적인 그 강렬한 문체와 더불어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상당부분 이러한 독특한 기법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것은 광기에 가깝던 젊은 ‘그’의 순수성을 절대시하고 ‘나’의 성숙을 참된 성숙으로 인정치 않는 작가 나름의 철학에 근거한 기법이라 대체로 신선한 느낌을 유지한다.

물론 그런 철학의 타당성에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었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와 ‘나’의 분리가 서술전략으로서도 약간의 무리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나아가 『더러운 책상』의 소재나 주된 관심사가 전체적으로 만해문학상 또는 민족문학 나름의 격조와 거리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회는 이 작품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문학에 대한 지극한 열정을 높이 평가했고, 개인의 광기를 사회의 광기로 연결지으면서 1960년대라는 시대 저변의 실상을 그려낸 성과 또한 만만찮음을 인정하였다.

결국 『완당평전』(전3권)과의 우열을 가리는 문제가 남았다. 『완당평전』은 조선왕조시대 실학의 대학자요 시인이며 서화의 거장인 추사 김정희에 대한 전기문학의 큰 업적이다. 이 저서에 대해서도 서예가 김정희에 치우쳐 원만한 추사전에 못 미친다는 아쉬움이 피력되기도 했고, 학계에서 실증상의 오류 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있다는 사실도 감안되었다. 그러나 문학상 심사위원회의 입장에서는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과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2권을 통해 현대 기행문학의 새 영역을 개척한 데 이어, 『화인열전』 2권과 이번의 『완당평전』을 저술함으로써 한국문학에 전기문학의 역작을 보태준 공로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박범신과 유홍준을 놓고 한동안 토론하던 끝에 공동수상의 가능성을 운영위원회와 창비사측에 타진하기로 했다. 같은 장르라면 심사위원회의 책임회피라는 혐의를 받을 수 있으나 소설과 비소설이라는 상대평가가 어려운 장르들인데다 두 저자 모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내세울 수 있었기에 공동수상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다만 운영위에서 이미 배정한 상금을 절반씩 나누는 것은 수상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기에 소정의 상금을 두분 모두에게 드릴 수 있을지를 타진키로 한 것이다.

심사위원회의 이러한 건의에 대해 창비사측은 기꺼이 추가출연 의지를 밝혔고, 이에 운영위원회의 추인을 받음으로써 심사위원회는 한번 더 만나서 괴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되었다.

[高銀 具仲書 金禹昌 白樂晴]

 

 

수상소감

 

이쪽과 저쪽 사이의 날카로운 틈새로 가는 길

 

박범신

 

 

한때는 ‘문학상’이라는 걸 정말 받고 싶었다. 창작집 『흰소가 끄는 수레』와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를 내던 90년대 말쯤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엔 작가라는 이름으로 얻은 명리를 스스로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보상 같은 것을 문학 동네로부터 받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곧 그것이 어린아이와 다름없는 유치찬란한 투정이라는 걸 착하게도 금방 깨달았다.

‘작품’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문학상을 받는다고 해서 작품의 본질적 가치가 새로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문학상’은 잘해봤자 먼 길을 걷는 자에게 주는 한잔의 단술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나를 ‘작가’로 받아준 심사위원들께 고맙기는 했지만 뜻밖에 아주 담담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잘 썼든 못 썼든 완성된 형태로 이미 독자에게 가 있는 ‘작품’이야말로 언제나 작가에겐 유일무이한 힘이자 권력인 것이다.

젊을 때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베스트쎌러가 되면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느꼈으며, 나도 모르게 더, 더…… 하고 온갖 ‘재롱’을 떨면서 독자들 가슴으로 달려들어갔다. 어떤 이는 내가 「흰소가 끄는 수레」를 통해 젊은날의 내 작가적 관점에 대해 ‘반성문’을 썼다고 말해주기도 했는데, 오해에 불과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 밀리고 찔리고 찢기면서 소설을 쓴다. 결코 늙지 않는, 사랑에 목마른 우주적인 짐승 한마리가 내 안에 살고 있어 수시로 생살을 찢고 나오는 것 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젊을 때의 나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깊은’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나의 ‘짐승’도, 나와 함께, 사랑이란 많고 적고 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시간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깊은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조차 깨박칠 때 작가로서 내가 거듭나리라는 것을. 그것은 이를테면 향기로운 감수성과 깊고 꿋꿋하고 맑은 영혼을 짝 맞춰 갖춘 만해선생과 좀더 가까워지는 길일는지도 모른다. 버겁고 무섭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와 내 안의 짐승이 유일하게 꿍짝을 맞추어 결의했던 이승의 맹세가 여기 있으니, 함께 죽을 때까진 어쨌든 신틀아범으로 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전략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어느 집단이나 어느 상투적 관념에 편입되지 않고, 단독자로서, 이쪽과 저쪽 사이의 날카로운 틈새로 혼자 나아가면서, 그 실존의 긴장을 무기 삼아 ‘버겁다’는 억눌림을 베어야 할 터이며, 또 언제나 그래왔듯이,‘청년작가’다운 문학적 순정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 에둘러 가지 않고, 순정어린 직진보행으로 ‘무섭다’는 공포감을 깨박쳐야 할 터이다. 말하자면 ‘벼랑끝 전술’인데 그 길에서 따로 방패를 만들어 들 생각은 없다. 어떤 나는 스무살에 호남선 철로를 베고 누워 이미 죽었고, 또 어떤 나는 마흔 몇살에 굴암산 정수리에 목매달아 이미 죽었다. 살아남은 나는 때때로 죽은 나에게 다급하게 쫓기면서, 그러나 죽은 그들이 주는 놀라운 힘으로 아직껏 내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홍복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쓴 소설 『더러운 책상』은 그런 것에 대한 나의 가감없는 기록이자 고해 같은 것이다. 『더러운 책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광기로 휩싸인 세계의 폭력적 구조는 날로 깊어지고 있고, 나의 문학적 순정은 날로 투명해지고 있으니, 어떤 때의 나는 천애고아로서 너무도 먼 길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창 너머, 울울창창한 북악의 숲이 무섭다.

생살의 대지를 찢고 나와 다투어 하늘로 뻗어가는 저기 무서운 숲 사잇길에서 이미 꽃다운 스무살에 죽은 『더러운 책상』의 그가 웅숭깊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허락해주신다면, 이 상을 내가 일찍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또 가장 미워했던 ‘그’에게 주고 싶다. 그가 너무도 오래 그곳에 홀로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더러운 책상』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 고맙습니다. 꾸벅~

 

 

朴範信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 당선.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황야』 『틀』 등 다수가 있고,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덫』『식구』 『흉기』 『흰소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있음.

 

 

수상소감

 

문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위하여

 

유홍준

 

 

나는 이제껏 단 한번도 내가 문학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만해문학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죽은 소설가·시인의 이름을 앞세운 문학상의 심사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미술사학도일 뿐이다. 거창하게 말해서 학자이길 희망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화인열전』 『완당평전』 등 지난 10년간 내가 펴낸 저술들은 한 사람의 미술사가로서 느끼고 생각하고 연구한 바를 동시대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마음에서 기술한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함에 있어서 학술이니 문학이니 하는 장르개념이 내겐 필요 없었다.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거기에 쏟아넣으면 독자들이 알아서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나의 저술 속에는 고매한 미학이론과 비속한 일상의 에피소드가 같은 페이지에 함께 들어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덕도 보았지만 손해도 많이 보았다. 한 학술지에 실린 내 책에 대한 서평을 보면 한마디로 아카데믹하지 못하다는 꾸지람이 실려 있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기관 이름을 앞세운 학술상에서 심사대상이 된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나는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상을 탐해본 적도 없거니와 그마마한 독자들이 내 책을 읽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세상이 내게 내려준 상이라고 고맙게 생각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주어진 틀로부터 내가 완벽하게 자유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완당평전』을 쓰면서 나는 얼마만큼 학술적으로 임하고 얼마만큼 문학적 장치를 가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학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듣기도 싫었고, 전기문학다운 세련됨이 모자란다는 평을 받기도 싫었다.

그래서 문학인이 아닌 학자가 쓴 전기문학의 한 모범으로 평가받는 E.H. 카의 『도스또예프스끼』를 다시 꺼내 보았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러시아사가 전공인 그가 한 소설가의 전기를 쓰면서 책머리에 또는 후기에 어떤 겸양을 보였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E.H. 카는 책 어느 구석에도 “나는 문학의 문외한인 역사학도로서 한 소설가의 전기를 쓰면서……” 식의 변명이나 양해가 없었다. 그렇게 당당할 수 없었다. 무척 부러웠다.

『완당평전』을 쓰면서 사실상 내 전공 바깥에 있는 시, 문학, 경학, 금석학, 고증학, 실학에 대해서도 내가 주저없이 아는 만큼 언급한 것은 거기에 힘입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E.H. 카처럼 자신있게 완당 김정희를 얘기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서는 아내와 동생의 회상록, 딸이 쓴 전기, 그리고 영국·독일·프랑스에서 나온 전기 등 풍부한 기본자료가 있었다.

이에 비해 완당 김정희에 대해서는 그 모든 것이 열악한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내가 기댈 언덕이란 편년도 없고 부실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국역 완당전집』과 어렵기 그지없는 완당 관계 학술논문들, 진위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완당작품집, 게다가 아직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자료들의 발굴까지 모두 짊어진 상태에서 출발해야만 했다. 마음먹은 지 20년이 걸렸고, 전기라고 하지 못하고 평전이라고 이름붙인 것에는 바로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전기문학으로 보건대 『완당평전』은 이래저래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해문학상이 내게 내려지는 것은 너무도 과분하다. 나는 내가 과연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심사위원들은 어떤 뜻으로 『완당평전』에 상을 주었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문학과 인문학의 접선상에서 그 만남을 시도하려는 가냘프고 외로운 노력에 대한 격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공손히 받아들인다.

3년 전 임형택 교수가 인문학자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인용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한 말씀이 내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꽃 피고 새 우는 것이 봄이지마는, 봄은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劉弘濬 1949년 서울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 당선.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 『화인열전』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정직한 관객』 『조선시대 화론 연구』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등이 있음.